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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STAFF] HJ컬쳐 프로듀서 한승원 [No.153]

글 |배경희 사진 |이배희 2016-06-14 6,313

감사함이라는 동력


2014년 창작뮤지컬 <빈센트 반 고흐>를 앞세워 수면 위로 떠오르기 시작한 신생 제작사 HJ컬쳐가 지난 2년 만에 선보인 작품 수는 무려 열 편에 가깝다. 올 상반기에만 벌써 <살리에르>, <마리아 마리아>, <파리넬리> 세 편의 창작뮤지컬을 연달아 무대에 올렸으며,  하반기에는 신작 <리틀잭>과 <라흐마니노프>로 관객 앞에 설 예정이다. HJ컬쳐의 저력은 어디서 나오는 걸까. HJ컬쳐의 한승원 프로듀서를 만났다.





HJ컬쳐가 그리는 이상향


2010년 어떤 계기로 HJ컬쳐를 설립하게 됐나? 당시 신생 뮤지컬 제작사를 차린다는 게 쉬운 결정은 아니었을 텐데.
단대 연극영화과 재학 시절부터 공연 기획에 관심이 많았다. 사실 내가 학교 다닐 땐, 기획은 과에서 재능 없는 애들이 맡는 파트라는 분위기였는데, 난 연기나 연출보다 프로듀서 일이 재밌어서 기획을 도맡아 했다. 학교를 졸업하고 나선 국립박물관 문화재단에 들어가 5년 정도 근무하고 EMK뮤지컬컴퍼니 기획 파트를 거쳐 독립했다. 처음부터 제작사를 차리겠다는 생각으로 회사를 나온 건 아니었는데, 대학원을 다니면서 내 회사에 대한 생각을 갖게 됐다.


대학원의 어떤 점이 회사 설립을 결심하게 한 건가?
공연 쪽에서 돌파구를 찾거나 아니면 깨끗하게 포기하자 하는 마음으로 들어간 학교가 동국대 영상대학원 문화콘텐츠학과였다. 광고하는 사람, 애니메이션 작가, 방송 쪽 관계자, 학교엔 말 그대로 문화 콘텐츠 사업에 관련된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있었는데, 그야말로 신세계더라. 공연계 밖의 사람들과 교류하면서 오히려 공연계 내에서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할지 어렴풋이 느꼈던 것들을 정리해 나가게 됐다.


창립 당시 롤모델로 삼는 회사가 있었나?
롤 모델은 일본의 다카라즈카나 시키, 캐나다의 태양의 서커스 같은 기업형 극단이었다. 이들 극단의 공통점은, 순수 티켓 매출보다 머천다이즈 사업 같은 부가 매출을 통해 더 많은 수익을 올린다는 것이다. 우리 회사가 설립 초창기부터 장기 전략으로 ‘W 액팅 스쿨’이라는 배우 아카데미 사업을 병행한 것도 그래서다. 최종 지향점은 지금처럼 수업료를 받고 아카데미를 운영하는 게 아니라, 극단 시키처럼 소속 배우 월급제를 실시해 잘 훈련된 배우들을 작품에 기용하는 것이다.



첫 작품은 2011년에 올라간 <셜록홈즈 - 앤더슨가의 비밀>이다. 작품을 개발해 온 극단 레히는 당시 잘 알려진 집단이 아니었는데 어떻게 제작을 맡았던 건가.
레히는 어렸을 때 공연하면서 친해진 단체다. 가족 같은 관계였다고 해야 하나. 표면상으로는 공동 제작이라는 타이틀을 갖게 됐지만, <셜록홈즈>는 레히가 기획 단계부터 주도적으로 개발해 온 프로젝트고 개인적 친분으로 하게 된 거라 공동 제작이라는 말을 쓰는 게 불편한 면이 없지 않다.


<셜록홈즈>를 선보인 이후 두 번째 작품이자 HJ컬쳐의 본격적인 시작을 알린 <빈센트 반 고흐>를 내놓기까지 2년 반가량의 공백이 있었다.
크고 작은 제작사들이 차고 넘치는, 이미 포화 상태인 뮤지컬 시장에서 우리만의 경쟁력을 갖기 위해 어떻게 라인업을 꾸려가야 하나 상당히 고민이 많았다. 그리고 개인적인 생각인데, 신생 기획사들이 회사 운영에 어려움을 겪는 이유가 콘텐츠의 부재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규모가 작은 신생 회사일수록 여건상 한 번에 한 작품씩 준비하기 마련인데, 그럴 경우 한 작품을 올리고 나면 다음 작품에 들어가기까지 공백이 생길 수밖에 없다. 그 공백기엔 자연스레 직원 수가 줄어들 테고, 결국 회사가 제대로 굴러가는 것 자체가 어렵다. 최소한 세 편 정도는 가지고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여러 편을 개발하는 데에 어느 정도 기간이 필요했다.


<빈센트 반 고흐> 초연을 올리고 나서 몇 달 시간차를 두고 빠르게 신작들을 내놓은 이유가 이제 이해된다. 하지만 여러 편의 신작을 한 번에 내놓으면 그만큼 위험 부담도 따를 텐데, 그에 대한 걱정은 없었나?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지금 생각해 보면 뭘 몰라서 그럴 수 있었던 것 같다. 작품이 잘 안 된다는 게 어떤 크기의 고통인지 잘 몰랐으니까. 그리고 문화재단이라는 관에 있으면서 운영 실무를 많이 쌓았기 때문에, 공연이 잘 안 될 경우를 대비해 경영을 선순환할 수 있는 장치에 대한 나름의 계획이 있었다. 앞서 말한 아카데미 사업 같은 부가 수입원 말이다. 요즘 왜 이렇게 쉬지 않고 끊임없이 작품을 하느냐는 이야기를 많이 듣는데, 우리 회사를 믿어주는 고마운 관객들을 위해 해줄 수 있는 일이 공연을 계속하는 것 말고 달리 없다.  지금처럼 최선을 다해 정진하면 언젠가는 모두에게 선물 같은 좋은 작품이 나올 거라 믿는다.





관객에 의한, 관객을 위한 집단


회사 초창기부터 <빈센트 고흐>, <살리에르>, <파리넬리>처럼 예술가 소재의 작품을 꾸준히 선보였다. 유명 예술가 이야기를 다룬 중 · 소규모의 창작뮤지컬은 곧 HJ컬쳐의 색깔처럼 여겨지기도 하는데, 처음부터 의도했던 건가?
애초에 예술가를 주인공으로 한 작품만 해야겠다고 생각했던 건 아니다. 다만 관객들에게 즐거움을 줄 수 있는 작품을 하는 게 우리 회사의 목표인데, 사람들의 마음에 가 닿고, 마음을 위로하는 데 예술가들의 이야기만큼 좋은 소재는 없다는 생각은 했다. 위 작품들의 출발점인 <빈센트 반 고흐>를 예로 들자면, 위대한 화가 고흐도 당대엔 인정받지 못하고 평생 작품 한 점을 팔고 싶어서 분투하는 삶을 살지 않았나. 화려하고 특별할 것 같은 삶 이면에 숨겨진 인간으로서의 고뇌와 고통은 사람들에게 깊은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것 같다. <빈센트 반 고흐>를 준비하면서 예술가들 이야기가 우리의 방향성에 맞는 좋은 소재라는 생각이 확고해졌다.


관객과의 스킨십을 중요하게 여기는 것도 HJ컬쳐의 방향성 중 하나가 아닐까 싶다.
예전에 스티브 잡스가 애플 직원들을 상대로 우리 회사는 왜 존재해야 하는지 묻는 연설 강의를 본 적이 있다. 그 전엔 어떤 회사가 왜 존재해야 하는가 하는 의문을 가져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그 질문이 무척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HJ컬쳐는 왜 존재해야 하는가 고민해 봤는데, 관객 없이 HJ컬쳐가 존재할 수 있을까? 우리가 공연을 하는 이유, 그 답은 관객이라고 생각한다.


지난 2월 <살리에르> 재공연을 시작으로 <파리넬리> 재공연까지, 상반기에만 벌써 세 편의 뮤지컬을 무대에 올렸다. 한 극장에서 각각 한 달이 채 안 되는 짧은 기간에 세 작품을 연달아 선보이는 방식으로 말이다. 이런 시도를 한 이유는 뭔가.
앞에서도 얘기했지만, 일본 공연 시스템을 벤치마킹하는 편이다. 일본 공연계는 한국 시장보다 더 마니아 중심으로 움직인다고 하는데, 일본 공연 마니아들의 특성 중 하나가 자신이 좋아하는 프로덕션이 있으면, 그 프로덕션의 공연은 다 보는 거라고 하더라. 거기서 아이디어를 얻어 우리 나름대로 새로운 시도를 해본 거다. 그리고 극장을 대관해 놓고 어떤 작품을 올릴지 고민하던 시점에 아는 투자 관계자가 말하길, 우리 회사 작품들이 검증된 라이선스 대작도 아니고, 대형 스타가 출연하는 것도 아닌데 두세 달 동안 객석을 어떻게 채울 거냐고 하더라. 틀린 말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새로운 시도에 대해 자평해 본다면?
차라리 아예 실패했다면 뭐라 얘기할 수 있을 텐데, 성공이라 하기에도, 실패라 하기에도 애매한 결과가 나와서. (웃음) 하지만 다소 위험한 선택이 아니었나 싶긴 하다. 혼자 계산하기론, 신작에 100퍼센트, 디벨롭 작품에 80퍼센트, 재공연에 70퍼센트, 이런 식으로 에너지 안배를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해 상반기 라인업을 짰는데, 잘못된 생각이었다. 초연은 초연대로, 재공연은 재공연대로 공연하는 게 어렵기 때문에 모든 공연에는 백 퍼센트의 에너지가 필요하더라. 이번에 개인적으로 아쉬웠던 것은 공연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사소한 실수들이 잦았다는 점이다. 우리 회사의 오랜 팬인 관객 한 분이 일련의 사건들을 두고 HJ컬쳐는 밤새 공부한 다음 시험 도중에 잠깐 졸아서 시험을 망치는 학생 같다는 안타까움을 표했는데, 정확히 맞는 말이었다. 빡빡한 스케줄을 강행하다 보니 직원들이 체력적, 정신적 한계에 부딪치게 됐고 그게 결국 실수로 이어진 거다. 그건 직원들의 잘못도 아니고, 그렇다고 관객들에게 이해를 요구할 수 있는 부분도 아니다. 내 판단 미스였다.


지금까지 작품을 하면서 스타 마케팅을 한 사례가 없었던 걸로 안다. 스타를 기용하지 않는 특별한 이유가 있는 건가.
작품의 다른 문제는 논외로 두고, 작품 홍보 문제만 놓고 보면 스타 캐스팅처럼 효과적인 장치는 없는 것 같다. 그런데 우리 회사가 작품에 소위 말하는 유명인을 쓰지 않은 이유에 대해선 이렇게 설명해 볼 수 있을 듯싶다. 우연히 들른 음식점의 음식이 맛있어서 다음에 그 음식점을 또 찾아갔는데 그때 그 맛이 안 난다면 어떨까? 사람들이 그 음식점을 다시 찾을까? 특정 배우의 힘에 기대면, 다음 시즌 그 배우가 공연에 출연하지 않을 경우 그 빈자리에 대한 타격이 크다고 생각한다. 결정적으로 스타 캐스팅은 우리가 잘할 수 있는 일도 아니다. 우리 회사가 오래 살아남는 것이 개인적인 바람인데, 우리 회사가 존속할 수 있도록 좋은 콘텐츠를 만드는 데 최선을 다하고 싶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53호 2016년 6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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