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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INTERVIEW] <함익>의 연출가 김광보 [No.156]

글 |박병성 사진 |심주호 2016-09-12 4,596

<함익>의 연출가 김광보

재벌가의 딸로 태어난 햄릿



최근 <햄릿>이 자주 올라간다. 원로 배우들이 출연한 국립극장의 <햄릿>은 무대 위에서 수많은 삶을 연기한 배우들에게 보내는 헌정극이었다. 그리스 시대 원형극장을 꾸민 무대와 국립극장이라는 상징성이 그러한 성격을 더욱 두드러지게 했다. 김강우의 출연으로 관심을 모은 <햄릿-더 플레이>는 어린 햄릿과 광대 요릭을 등장시켜 햄릿의 어린 시절을 부각시켰는데, 이에 대한 평은 갈린다.


올가을 또 한 편의 주목할 만한 <햄릿>이 무대에 오른다. 현대 한국의 재벌가를 배경으로 햄릿을 여성으로 바꾼 서울시극단의 <함익>이다. <달나라 연속극>(원작 <유리동물원>), <로풍찬 유랑극단>(원작 <쇼팔로비치 유랑극단>), <뻘>(원작 <갈매기>) 등을 통해 이미 해외 고전을 한국 배경으로 훌륭하게 각색한 김은성의 작품이라 더욱 믿음이 간다. 연출은 서울시극단의 단장이자, 최근 연극계에서 주목받고 있는 연출가 중 한 명인 김광보가 맡았다. 그에게 한국 재벌가의 딸로 살아가는 함익에 대해 들어보았다.




세계적인 고전, 햄릿

                     

셰익스피어 서거 400주기를 맞아 셰익스피어의 작품이 많이 올라간다. 그중 <햄릿> 공연이 유독 많다. <함익>에서도 <햄릿>에 대한 학생들의 솔직한 평가가 나온다. 본인이 생각하는 <햄릿>의 매력은 무엇인가?

과도한 욕망은 파멸을 부른다는 전제가 명확하다. 서사가 매끄럽게 전개되고 인물 관계나 갈등이 분명하게 드러나기 때문에 흥미롭게 볼 수 있는 작품이다. 뮤지컬 <햄릿>을 제외하고 연극으로 <햄릿>을 연출해 본 적이 없다. 이 작품을 내가 연출한다면 어떻게 보여줄 수 있을까 고민한 적이 있다. 햄릿은 영민하고 세심한 인물이니 내면의 정서적인 흐름에 주력해야 하지 않을까 싶었다. <함익>에서 햄릿을 여자 주인공으로 내세운 것도 그러한 성격이 반영된 이유라고 본다.


지금까지 많은 <햄릿>이 공연되었다. 가장 인상 깊은 <햄릿>이라면?

상트페테르부르크 황실극장 극장장이자 예술감독인 발레리 포킨이 올린 <햄릿>을 본 적이 있다. 무대가 인상적이었다. 밖에서 바라본 원형 경기장이 <햄릿>의 무대였는데, 원형극장의 안과 밖 공간을 모두 사용했다. <햄릿>의 중요한 요소만 뽑아서 한 시간 반으로 줄이고 설명 없이 전개하는데 인상적이었다.


김은성 작가는 원래 고전을 한국 배경으로 번안하는 작업을 많이 해왔다. 이번 작품은 번안을 넘어 재창작하는 수준이다.

햄릿이 여자라는 설정이 가장 흥미롭다. 여성성에서 나오는 치밀함이라든가, 그런 것들이 이 작품을 흥미롭게 한다. 또 하나 추가된 것이 <로미오와 줄리엣> 구조이다. (<함익>은 줄리엣을 꿈꾸는 햄릿이라는 설정으로, 재벌가에 남을 것인가, 아니면 사랑을 찾아 떠날 것인가로 고민하는 함익을 보여준다. 그러나 그 고민은 햄릿 식으로 겉으로 드러나지 않고 내적인 갈등으로만 표현된다.)


이 작품은 어떻게 시작되었나?

지난해 서울시극단 단장으로 부임하면서 2년 라인업을 짰는데, 김은성, 장우재 작가에게 이야기도 하지 않은 상태에서 작품을 의뢰하겠다는 기사가 먼저 나갔다. 후에 연락을 했더니 다행히도 하겠다고 하더라. 김은성 작가가 먼저 하기로 했는데, 그때 말한 작품이 <함익>이었다. 당시에는 햄릿을 재벌가의 여자로 만들겠다는 컨셉만 있었다. 그리고 극본을 본 것은 지난 7월 초였다. 연습 들어가기 직전에 극본을 봤다. 처음에 햄릿이 여자라는 설정을 잘 이해하기 어려웠는데, 햄릿의 섬세함이나 내면적으로 갈등하는 캐릭터가 여성이기 때문에 잘 보여줄 수 있겠구나 싶었다.


왜 두 작가를 선택했나?

가장 잘 쓰고 잘나가는 작가 아닌가. (웃음) 두 작가에게 작품을 의뢰할 때 어떤 것을 써달라고 의뢰하지는 않았다. 작가들이 쓰고 싶은 것을 써달라고 요청한 것이다. 하지만 은연중 바라는 것은 있었다. 일상에 보이는 부조리함이 드러나는 작품이길 바랐다. 그런 작품을 잘 쓸 수 있는 작가라고 생각했다.


<함익> 개발 단계에 참여했나?

참여하지 않았다. 어떤 작품을 만들 것인지 제한하지도, 재촉하지도 않았다. 내가 할 일은 작가가 쓴 것을 최대한 존중하고, 그 속에서 답을 찾는 것이다. 그게 내 스타일이다.



고독한 여인, 함익

                    

<함익>은 12세기 덴마크가 배경인 원작을 현대 한국의 재벌가로 데려왔다. 그로 인해 원작과 달라지는 점이 있다면 무엇인가?

함익의 고민 지점은 인간적인 관계이다. 재벌가 딸이지만 재벌가 주변의 그 누구와도 관계를 맺지 못한다. 재벌가뿐만 아니라 (대학교수인 그녀는) 학교에서도 원만한 관계를 맺지 못한다. 그런데 이런 상황이 겉으로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그런 내면 상태를 짐작할 수 있을 정도로만 보인다. 김은성 작가는 함익의 심리적인 흐름에 집중했다. 원작의 햄릿은 여러 사람들과 관계를 맺지만, 함익은 혼자서 그 고민을 안고 있다. 그래서 스스로 파멸의 길을 향해 갈 수밖에 없는 인물이다. 또 하나 로미오와 줄리엣의 설정이 추가되는데, 이 역시 누구하고도 관계를 맺지 못하는 함익이 관계 맺고 싶은 욕망을 드러내는 부분이다. 하지만 이 역시 성공하지 못하면서 파멸로 치닿게 된다.


그래서 굉장히 고독한 햄릿(함익)이 나온 것 같다. 분신의 등장은 결국 외로운 함익의 존재를 부각시켜 준다.

분신은 함익이 인간관계의 단절로부터 해방되는 통로이다. 분신을 통해 함익의 속마음을 드러내게 된다. 분신은 함익의 고민을 들어주기도 하고, 욕망을 부추기기도 한다. 분신이라고 해봤자 결국 머릿속의 인물인데 그를 통해 욕망을 분출하고 의지를 다져 나가게 하는 역할을 한다.


로미오와 줄리엣의 구성이 추가되었다. 함익은 학생인 연우에게 남다른 감정을 품고 있지만 겉으로 드러내지 않는다.

연우가 연극 <햄릿>을 이해하고 다가서는 태도에서 동질감을 느낀다. 이 작품을 존재론에 관한 이야기라고 한다면, 함익은 재벌가 사이에서 존재를 찾을 수 없는데, 연우를 만나 동질감을 느끼면서 삶의 원동력을 얻게 된다. 그런데 그 관계가 이루어지지 않으면서 파멸로 간다.


함익은 외동아들이었던 햄릿과 다르게 계모나 의붓동생을 둔 재벌가의 딸이지만 뚜렷한 권력 의지를 보이지 않는다. 그럼에도 재벌가를 벗어나 사랑을 찾아 떠나지도 않는다.

깝깝한 여자다. 정략 결혼할 상대에게 속을 주지도 않지만 거부하지도 않는다. 재벌이라는 울타리 속에 갇혀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인물이다. 벗어나고 싶다고 벗어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걸 너무 잘 알고 있다. 아이러니한 것은 그렇게 강압적인 환경에서 자랐는데 함익 역시 학교에서는 똑같이 학생들에게 강압적인 행동을 한다는 점이다. 좀 더 인간적으로 다가갔다면 달라질 수도 있는데 자기 목표를 이루기 위해 학생들과 소통하지 않는다.


그런 면에서 함익의 질문은 ‘떠날 것인가, 남을 것인가’로 바뀌는 것 같기도 하다. 재벌가를 떠나지도 그 속에 남지도 못하는 인물. 그런데 연우를 선택하려는 의지는 잘 안 보인다.

감정이 드러나 있지는 않지만 연우에게 다가간다. 그런데 연우가 그녀에게 반기를 든다. 엄밀히는 학생들 전체가 그녀에게 대항한 건데, (서로 호감을 나누던) 연우가 가담했다는 것이 배신으로 받아들여진다.


함익은 여기저기 휘둘리기만 할 뿐, 능동적이지 못한 인물이다.

그래서 연민이 든다. 함익이라는 인물에게 드는 연민을 어떻게 보여주고 정확하게 전달할 것인가가 나의 고민이다. 함익은 감정을 폭발하는 캐릭터가 아니면서 그녀의 감정을 놓치지 않도록 해야 이해시킬 수 있다. 그래서 이 역을 맡은 배우가 굉장히 힘들어한다.



햄릿의 그림자, 혹은 또 다른 햄릿

                 

극본에 ‘Tragedy of Beggars(거지의 비극)’라는 부제가 있더라. 귀족 문화인 오페라를 풍자한 <거지의 오페라>가 떠오르는 부제인데, <거지의 오페라>에는 실제 거지와 사기꾼, 몸을 파는 여자 등 하층민들이 등장한다. 그런데 이 작품 속 인물들은 재벌, 정치인, 의사, 교수 등 사회 상류층이다.

상류층 인간들이 일반적인 사람들과 다르지 않고 어쩌면 더 속물적이기도 하다. 재벌가의 위선이나 함익 아버지가 취하는 모순. 그런 모습들을 보면 상류 사회가 더 세속적이다. 그런 (풍자적인) 비극이다.


햄릿의 중요한 대사 중 하나인 ‘죽느냐, 사느냐 이것이 문제로다’도 ‘사느냐, 죽느냐 그것은 문제도 아니야, 살아 있는가, 죽어 있는가, 그것이 문제다’로 질문을 바꾼다.

연우의 대사에 함축되어 있다. “햄릿한테 살고 죽는 문제는 고민거리도 아니었어요. 어떻게 살 것인가, 어떻게 사는 것이 진짜 사는 것인가, 살아 있는 것으로 살 것인가, 죽어 있는 것으로 살 것인가” 햄릿의 진짜 고민을 풀어낸 것이다.


<햄릿>에서 중요한 이슈 중 하나는 아버지의 복수를 지연시키는 행동이다. 그런데 함익에게는 이것이 중요한 문제가 아닌 것 같다.

함익에게는 복수라기보다는 확신의 절차이다. 원작에서는 복수를 하기 위해 극중극을 통해 확인을 한다. 그러나 <함익>에서 어머니가 살해당했다는 의심은 (원혼이 등장해 말해 주는 것도 아니고) 분신과의 대화에서만 드러난다. 분신은 결국 자기 자신인데, 혼자만의 망상일 수도 있는 거다. 


<함익>은 장소 변화가 많다. 학교, 연습실, 재벌가 집, 편의점, 함익의 방 등 굉장히 많은 장소가 등장한다. 사실적인 무대를 보여주는 스타일이 아닌데 무대는 어떻게 꾸밀 생각인가?

장소 변화가 많아 공간 분할이 중요하다. 상수에 세 군데, 하수에 세 군데, 미닫이문처럼 무대를 열고 닫아서 공간이 나뉘도록 할 것이다. 이것 역시 여태껏 해왔던 미니멀리즘 무대와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


연출하면서 가장 고민하는 지점이라면?

분신과의 만남을 어떻게 보여주느냐가 관건이다. 희곡 지문에는 ‘분신이 손 위에 올라선다’고 표시되어 있는데 분신을 어떤 식으로 등장시킬지가 고민이다. 그리고 함익과 연우와의 관계를 얼마나 정확하게 납득시키느냐가 숙제이다.


<함익>은 보기에 따라 <햄릿>을 한국적으로 번안한 것으로, 또는 <햄릿>을 재해석해 새롭게 창조한 것으로도 볼 수 있다. 연출의 입장은 무엇인가?

전혀 새로운 이야기는 아니고 기본적인 이야기는 <햄릿>이다. 기본적으로 <햄릿>의 울타리를 벗어나지 않는다.


내년에는 장우재 작가의 작품을 선보이는 건가? 어느 정도 진행되었나?

제목이 ‘Ethics VS Morals’, ‘윤리 대 도덕’이라는데 어떤 희곡이 나올지 모르겠다. 작가가 쓰고 싶은 것을 써달라고 한 거라.


서울시극단에서는 창작 플랫폼을 통해 두 명의 작가를 발굴했다. 창작 플랫폼의 취지는 무엇인가?

나는 누구보다도 한국 연극계의 혜택을 많이 받아온 사람이다. 어떤 식으로든 갚고 싶다. 창작 플랫폼도 그런 생각의 일환이다. 창작극이 얼마나 중요한가. 그럼에도 기존 작가들이 작품을 개발할 수 있는 여건이 잘 갖춰져 있지 않다. 그런 환경을 개선해 보자는 취지에서 창작극 개발 사업으로 창작 플랫폼을 시도한 것이다. 두 명의 작가를 선정해 멘토링을 받게 하고, 낭독 공연 형식으로 발표한다. 평가가 좋으면 서울시극단의 본 공연으로 올리는 프로그램이다. 서울시극단은 공공 단체이기 때문에 이러한 역할을 필수적으로 해야 한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56호 2016년 9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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