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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처 | [SPECIAL] 뮤지컬 속 드래그 퀸 [No.156]

글 |안세영 2016-10-04 7,034

국내 뮤지컬 시장에서 드래그 퀸은 더 이상 낯선 존재가 아니다. 과장된 여장을 하고 여성처럼 행동하는 남성을 지칭하는 드래그 퀸. 그들은 <헤드윅>, <라카지>, <프리실라>, <킹키부츠> 등 뮤지컬 무대에 등장하며, 화려한 비주얼로 관객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무대 위를 누비는 아름다운 무법자 드래그 퀸. 그들은 어떤 존재이며, 그동안 무대에서 어떻게 그려져 왔을까? 공연사 속 드래그 퀸의 모습과 더불어 드래그 퀸의 분장 세계와 의상에 대해 알아보았다.



무대 위 아름다운 무법자 드래그 퀸


남자 배우가 여장을 하고 화려한 춤과 노래를 선보이는 ‘드래그 퀸’은 국내 뮤지컬 시장에서 더 이상 낯선 존재가 아니다. <헤드윅>, <라카지>, <프리실라>, <킹키부츠> 등 유명 라이선스 뮤지컬에 등장하는 ‘여자보다 예쁜’ 드래그 퀸은 주연과 앙상블을 망라하고 관객을 홀리는 인기 스타로 자리매김했다. 낯선 퀴어 문화의 하나인 드래그 퀸이 어떻게 이렇듯 무대를 주름잡게 된 것일까?





남녀의 경계를 허무는 드래그

‘드래그(Drag)’란 기본적으로 이성의 옷을 입고 이성처럼 행동하는 것을 뜻하는 말이다. 이때 여성으로 드래그한 남성을 ‘드래그 퀸(Drag Queen)’, 남성으로 드래그한 여성을 ‘드래그 킹(Drag King)’이라고 부른다. 이들은 공적 공간에서 과시적인 퍼포먼스를 위해 여장을 하는데, 그런 점에서 사적 공간에서 이성의 옷을 입는 크로스 드레서(Cross Dresser)와 구분된다. 즉, 드래그 퀸이란 과장된 여장을 하고 연극적인 퍼포먼스를 하는 남성을 가리킨다.


드래그 퀸은 단순히 여성처럼 보이도록 차려입는 것이 아니라 전형적인 여성의 이미지를 과장되게 모방한다는 특징이 있다. 때로는 여성성을 대표하는 유명 스타의 스타일을 모방하기도 한다. 여성스런 자태와 제스처를 표현하는 것 또한 옷차림 못지않게 중요하다. 의상, 화장, 가발, 장신구로 현란하게 치장한 드래그 퀸은 춤, 노래, 립싱크, 패션쇼, 연기, 스탠드업 코미디를 망라하는 ‘드래그 쇼’를 선보인다. 드래그 퀸 중에는 바와 클럽에서 드래그 쇼를 하며 이를 직업으로 삼는 이도 있고, 퀴어 퍼레이드와 같은 축제에서 일회적으로 드래그를 하는 이도 있다. 일반적인 오해와 달리 모든 드래그 퀸이 여성이 되고 싶어 하는 트랜스젠더나 동성애자는 아니다. 시스젠더 이성애자 중에도 취미나 직업 삼아 드래그 퀸으로 활동하는 이가 존재한다. 이들이 드래그 퀸으로 활동하는 이유는 단순한 재미부터 성적 흥분, 예술적 퍼포먼스, 성별 이분법에 대한 반발, 자기 정체성 표현 등 다양하다.


퀴어 문화 안에서 드래그는 기존의 고정적이고 이분법적인 성별 체제에 대한 도전을 의미한다. 일찍이 페미니즘 이론가인 주디스 버틸러는 개인의 젠더가 반복된 수행을 통해 구성된다고 설명했다. 이는 본질적이고 고정적인 성 정체성이란 존재하지 않으며, 개인의 성 정체성은 남성성 혹은 여성성에 대한 사회적 규범을 모방하는 행위, 특히 몸의 스타일 만들기를 통해 유동적으로 구성된다는 뜻이다. 이러한 젠더의 모방적 속성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예가 바로 드래그 퀸이다. 드래그 퀸은 규범을 위반하고 여성의 의상과 몸짓을 차용하는 동시에, 과장된 의상과 몸짓으로 성별에 대한 고정관념을 극대화해 하나의 쇼로 보여준다. 이를 통해 그들은 남성성 혹은 여성성이라는 개념 자체의 허구성을 폭로하는 역할을 한다.





공연사 속 여장 남자

드래그 문화에 친숙하지 않은 국내에서 드래그 퀸이 가장 환영받는 곳은 연극과 뮤지컬 무대다. 사실 공연의 역사 속에서 여장은 유구한 전통을 갖고 있다. 드래그란 단어도 본래 극장계에서 사용되던 은어로, 기록에 따르면 최소 1870년부터 여장 배우를 가리키는 말로 사용되기 시작했다고 한다. 드래그의 어원은 분명하지 않지만, 여장 배우의 긴 치마 자락이 무대 바닥을 쓸고(Drag) 다니는 모습에서 비롯했다는 설이 있다.


동서를 막론하고 고대의 배우는 모두 남성이었고, 남성이 여성 역할을 연기하는 것도 보편적인 현상이었다. 과거에는 여성이 무대에 오르는 일 자체가 금지되었기 때문이다. 서양 연극의 융성기인 셰익스피어 시대까지도 남성 배우가 여장을 하고 여성 역할을 연기하는 일이 잦았다. 셰익스피어의 대표작 <로미오와 줄리엣> 역시 초기에는 소년이나 젊은 청년이 줄리엣을 연기했다. 바로크 시대 오페라에는 여성의 음역대로 노래하는 남성 가수 카스트라토가 존재했다. 중국의 경극, 일본의 가부키, 한국의 남사당놀이 등 동양 연극사에서도 여장 배우의 전통을 확인할 수 있다. 경극과 가부키에서 아름답고 여성스런 여장 배우는 작품의 흥행을 좌우할 만큼 큰 인기를 누렸고, 역으로 당대 여성들의 롤모델이 되기도 했다.




이렇듯 남성 배우의 여장은 역사적으로 언제나 인기 있는 쇼였다. 남성 배우의 여성 모방은 무엇보다 배우의 연기력을 잘 드러낼 수 있는 수단이다. 관객은 사회적 규범을 벗어난 여장 남자의 모습에 웃음을 터트리다가도, 여성보다 여성스런 배우의 연기력에 감탄하게 된다. 이러한 매력은 드래그 퀸을 주인공으로 한 공연 작품에서도 여전히 유효하다. 남성 배우가 감쪽같이 여성으로 변신하는 모습을 보는 것은 드래그 행위가 지닌 사회문화적 함의를 떠나, 그 자체로 연극적인 즐거움을 선사한다. 하지만 최근 등장하는 뮤지컬 작품들을 보면 드래그 퀸을 단순히 오락적인 요소로 활용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들의 실제 삶을 반영해 유동적인 성 정체성과 사회적 편견 등으로 주제 의식을 확장하려는 노력이 엿보인다.
뮤지컬에 등장하는 대표적인 드래그 퀸 캐릭터로는 <라카지>의 앨빈, <거미여인의 키스>의 몰리나, <록키 호러 픽처 쇼>의 프랭키, <렌트>의 엔젤, <헤드윅>의 헤드윅, <프리실라>의 틱, 아담, 버나뎃, <킹키부츠>의 롤라가 있다. 국내 시장에서 드래그 퀸 캐릭터는 <렌트>, <헤드윅> 같은 성소수자의 이야기를 다룬 록 뮤지컬에 등장하며 주목받기 시작했다. 특히 <헤드윅>은 드래그 쇼에서 직접적인 영감을 받아 탄생한 모노 뮤지컬로, 불법 성전환 시술에 실패한 드래그 퀸 헤드윅이 자신의 사랑과 정체성을 찾아가는 과정을 진지하게 그린 작품이다. <헤드윅>이 국내에서 흥행할 수 있었던 데에는 스타 배우들의 공을 무시할 수 없다. 유명 배우들이 예쁘게 여장한 모습이 화제가 되면서 민감한 소재에도 불구하고 대중의 관심을 끄는 데 성공한 것이다. 나아가 주인공 혼자 극을 끌어나가며 완벽한 여장, 연기, 노래 실력을 선보여야 하는 <헤드윅>은 이제 남성 배우의 역량을 증명하는 무대로 인정받고 있다.


드래그 퀸의 화려한 쇼는 쇼 뮤지컬과도 찰떡궁합을 자랑한다. 대극장 쇼 뮤지컬인 <라카지>, <프리실라>, <킹키부츠>는 모두 드래그 퀸 캐릭터를 주인공으로 삼고 이들이 등장하는 장면 일부를 전형적인 드래그 쇼 형식으로 꾸몄다. 드래그 퀸 특유의 화려하고 과장된 의상과 분장, 그리고 섹시한 춤사위는 풍성한 볼거리를 만들어냈다. 이들 작품은 성소수자가 차별받는 사회 현실을 반영하고 있지만, 갈등을 극복하는 과정을 심각하지 않게 풀어내면서 유쾌한 쇼를 보여주는 데 주력한다. 동성애보다 가족애 같은 보편적인 가치를 전면에 내세운 점도 대중에게 어필하는 데 한몫했다. 그런 점에서 드래그 퀸 뮤지컬이 보여주는 해피엔드는 어쩌면 천진난만한 판타지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누가 알겠는가. 그 판타지가 팍팍한 현실을 돌아보고 다른 삶의 형식을 꿈꾸게 한다는 점에서 이미 현실을 전복하는 데 기여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현실의 드래그 퀸들이 성에 대한 틀에 박힌 사고를 흔들어놨듯이 말이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56호 2016년 9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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