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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컬처 | [NOW IN NEWYORK] <홀리데이 인> [No.157]

글 |여지현 뉴욕 통신원 사진제공 |Diane Sobolewski 2016-10-12 4,609

틴 팬 앨리의 대표 어빙 베를린의 귀환  

<홀리데이 인>



고전 뮤지컬 영화의 재탄생


지난 시즌 라운드어바웃 시어터에 올라간 고전 뮤지컬 <쉬 러브스 미>의 흥행은 브로드웨이에 꽤 신선한 반향을 일으켰다. 그 영향일까. 라운드어바웃 시어터는 이번 시즌의 첫 작품으로 1942년 빙 크로스비와 프레드 아스테어가 출연해 인기를 끈 고전 뮤지컬 영화 <홀리데이 인>을 바탕으로 한 동명의 뮤지컬을 택했다. 작곡을 맡은 어빙 베를린은 대중음악 작곡가 그룹인 틴 팬 앨리의 대표적인 작곡가로, 20세기 초 미국 대중음악계의 아버지 같은 존재다(가장 유명한 캐럴 ‘화이트 크리스마스’를 쓴 사람이 바로 어빙 베를린이다). 20세기 초에는 당시 유행했던 레뷔(하나의 주제로 엮은 버라이어티 쇼)의 전통을 따르는 많은 쇼가 나왔는데, 그중 많은 작품들이 어빙 베를린이 쓴 곡을 적절하게 재사용하는 방식으로 만들어졌다. <홀리데이 인> 역시 그런 작품 중의 하나였다. <홀리데이 인>은 당대의 인기 배우 프레드 아스테어와 빙 크로스비가 출연했고, 로맨스를 적절히 살린 공연으로 꽤 성공적인 흥행을 기록했다.


성공적인 원작을 무대화할 경우 그 작품의 팬층을 확보한 채 출발할 수 있다는 점에서 좋지만, 한편으로는 원작에 얽매이거나 낡은 감성의 내용이 현재 관객들의 공감대를 얻기 힘들다는 위험성이 따른다. 오는 10월 6일 정식 개막을 앞두고 프리뷰 공연 중인 <홀리데이 인>의 경우, 원작은 세 남녀 주인공의 삼각관계에 개연성이 떨어지고, 백인 배우가 흑인 분장을 하고 이를 희화화하는 민스트럴 쇼적인 요소가 있어 오늘날의 관객들에게 거부감을 줄 수 있다. 하지만 뮤지컬은 원작의 캐릭터는 그대로 살리되 이야기를 각색해 꽤 좋은 성과를 내고 있다.



고전적인 로맨틱 코미디의 정석


<홀리데이 인>의 음악과 스토리는 어디로 보나 틀림없는 고전이다. <홀리데이 인>이 상연 중인 라운드어바웃 시어터의 Studio 54는 브로드웨이의 다른 공연장에 비해 더 오래되고 낡았는데, 이런 극장의 풍경이 고전적인 분위기에 한몫을 더한다. <홀리데이 인>은 오프닝부터 작품의 고전적인 특징이 잘 드러나는데, 무대 양쪽 박스석에 위치한 6인조 밴드가 들려주는 유려한 서곡은 관객들을 1974년의 여름으로 안내한다. 막이 오르면, 짐과 테드, 라일라 세 사람으로 이뤄진 남녀 혼성 송 앤드 댄스 레뷔 그룹의 공연이 한창인 뉴욕의 한 공연장에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오래전부터 공연을 그만두고 농장을 차리고 싶었던 짐은 그날 공연이 끝나자, 연인 라일라에게 당장 이곳을 떠나 코네티컷에서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자며 청혼한다. 공연을 그만둘 생각이 없었던 라일라는 짐의 제안에 주저하지만, 청혼을 받아들인다. 때마침 테드와 그들의 에이전트가 등장해 6주 투어 공연이 잡혔다는 소식을 알라는데, 라일라는 짐에게 투어 공연에 참여하겠다는 의사를 밝히며 먼저 코네티컷에 가 있으라고 한다. 코네티컷의 농장에 도착한 짐은 태어나서 처음 해보는 농사일에 정신없는 나날을 보낸다. 그 과정에서 지난 25년간 집을 관리해 온 루이스와, 짐이 이사 오기 전에 농장에 살다가 금전적인 어려움 때문에 집을 팔고 아파트에서 살고 있는 린다를 만난다. 린다는 젊은 날 잠시 뉴욕의 공연계에 몸담았다가 현실을 깨닫고 고향에 돌아와 학교 선생님으로 살아가고 있다. 루이스는 짐의 의사와 관계없이 농장을 관리해 주는 대신 농장에서 숙식을 해결하기로 한다. 그리고 몇 주 후 라일라가 농장을 찾아와 자기는 공연을 포기할 수 없다며 짐과 파혼하고 라스베이거스에서 잡힌 공연을 마무리하러 떠난다. 농장에 혼자 남겨진 짐은 매달 납입금을 낼 수 없어 농장이 경매에 넘어갈 위기에 처한다. 그런 짐에게 그나마 힘이 되어주는 것은 루이스와 린다의 우정이다. 추수감사절이 지나고, 크리스마스가 와도 짐의 실연의 상처가 아무는 것 같지 않자 루이스가 뉴욕에서 짐이 함께 공연하던 친구들을 불러 집에서 춤과 노래가 뒤섞인 파티를 연다. 파티 중 짐은 농장에서 휴일이나 기념일에만 공연하는 ‘홀리데이 인’을 만들어 생활비를 벌어야겠다는 아이디어를 떠올린다. 짐의 설득을 못 이긴 린다는 짐이 개최하는 새해 전야 홀리데이 인 공연에 출연하기로 하는데, 공연 당일 라일라가 부자 남편을 만나 공연계를 떠나겠다고 폭탄 선언하자 파트너를 잃은 실망에 술을 잔뜩 마시고 취한 테드가 무대에 난입해 엉망이 된 공연을 부랴부랴 마무리 짓는 것으로 1막이 끝난다.


2막은 밸런타인데이, 부활절, 그리고 독립기념일 공연까지, ‘홀리데이 인’이 성공적으로 이름을 알리면서 시작된다. 린다와 짐의 관계도 점점 더 발전해 나간다. 하지만 자기의 새로운 파트너로 린다를 점찍은 테드가, <홀리데이 인>의 얘기를 바탕으로 하는 할리우드 영화에 린다와 함께 남녀 주인공으로 출연하려고 하면서 갈등이 생긴다. <홀리데이 인>으로 다시 연기에 관심을 갖게 된 린다는 제안을 반갑게 받아들이지만, 이미 한 번 라일라를 놓친 경험이 있는 짐은 린다가 공연을 하겠다는 결정을 자신과 헤어지겠다는 의도로 이해한다. 짐은 린다와 헤어진 후 자신의 마음을 깨닫고 할리우드로 가서 아직도 자신을 그리워하던 그녀와 재회한다. 결국 테드의 영화는 그와 라일라가 주인공이 돼 마무리되고, 짐과 린다는 농장에서 결혼식을 하는 것으로 이야기가 끝이 난다.




홀리데이 인 2016


뻔한 로맨스물 또는 진부한 쇼 비즈니스의 뒷이야기로 전락할 수 있었던 이 작품을 살려낸 데는 연출과 안무, 배우들의 앙상블의 몫이 크다. 1막, 2막을 통틀어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1막의 마지막, 크리스마스 즈음 짐의 친구들이 농장에 와서 함께 파티를 여는 모습이다. 커다란 크리스마스트리를 배경으로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풍기는 복장을 갖춰 입은 앙상블이 탭댄스를 추고, 흔히 볼 수 있는 크리스마스 소품을 이용해 줄넘기나 공 던지기를 하는데, 이는 짐의 기분만 풀어주는 것이 아니라 관객들에게도 큰 호응을 이끌어낸다. 2막의 첫 몇 장면에서는 각 휴일에 맞는 의상을 입고 공연하는 홀리데이 인 공연이 펼쳐지는데, 그중에서 독립기념일을 맞이해 테드가 폭죽에(바닥에서 불꽃이 터지는 콩알탄 같은 폭죽) 맞춰 탭댄스를 추는 장면은 폭발적인 에너지가 넘치는 안무로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빠르게 이야기가 진행되는 1막에 비해 2막은 상대적으로 늘어지는 느낌이 있지만, 앙상블의 춤과 노래가 속도감를 살려준다. 연출 고든 그린버그와 안무를 맡은 데니스 존스의 공이 크긴 했지만, 기본적으로 그런 연출과 안무를 가능하게 했던 것은 어빙 베를린의 음악과 래리 블랭크의 오케스트레이션이었다. 또한 화이트 크리스마스와 해피 홀리데이뿐 아니라 ‘You're Eazy to Dance with(춤추기 좋은 당신)’, ‘Cheek to Cheek(볼을 맞대고)’ 등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재즈 스탠더드를 포함한 <홀리데이 인>의 음악은 뮤지컬 관객들의 향수를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게다가 <홀리데이 인>은 총 스물여섯 곡(1막 14곡, 2막 12곡)이었다. 요즘에 나온 뮤지컬치고 노래가 많은 편에 속하는데, 쇼 뮤지컬이기 때문에 음악이 많은 것이 별로 과하게 느껴지지 않고, 노래에 적절하게 스테이징과 재치 있는 안무들을 잘 엮어내 작품의 전반적인 에너지를 끌고 가는 데에 효과적이었다.


물론 앙상블뿐 아니라 두 남자 주인공을 맡은 브라이스 핑캠과 코빈 블루는 그들의 역할에 온 힘을 다 쏟아붓는다. 지난 2014년 토니상을 받은 <젠틀맨스 가이드 투 러브 앤드 머더>에서 주인공을 맡아 어딘지 미심쩍은 신사 역을 훌륭하게 소화한 브라이스 핑캠은 가볍고 담백한 목소리로 노래한다. 빙 크로스비의 음색처럼 느끼한 매력은 없지만, 개인적으로 성실하고 어리숙한 짐 역에는 브라이스 핑캠이 훨씬 더 어울린다고 생각한다. 코빈 블루는 <하이 스쿨 뮤지컬>과 <인 더 하이츠>에 출연해 이름을 알린 배우다. 여러 장르의 춤을 트레이닝 받은 춤꾼답게 여자들에게 인기 많고, 쇼맨십 강한 테드를 연기하는 데 더없이 어울린다. 물론 라일라와 린다를 맡은 배우들도 무리 없이 역할을 소화했다. 그런데, 특히 눈에 띄는 주조연은 루이스를 맡은 메건 로렌스와 우편배달부 소년 찰리를 연기하는 모건 가오이다. 소년 같은 매력이 있는 메건 로렌스는 짐과 린다를 이어주는 징검다리를 자처하는 넉살 좋은 캐릭터 루이스를 중성적인 느낌으로 표현해 내 원작의 남성주의적 시각을 걷어내는 역할을 한다. 이 작품으로 브로드웨이에 신고식을 올린 아역 배우 모건 가오는 홀로 추수감사절을 보내는 선생님 린다에게 노처녀라든가 불쌍하다든가 하는 말을 악의 없이 하고, 농장의 납입금을 계속 못 내고 있는 짐에게 (역시 악의 없이) 지불 기한에 대해서 얘기하는 익살스러운 역을 똑부러지게 연기해서 등장할 때마다 관객들의 웃음을 자아낸다.




같은 캐릭터, 다른 이야기


연출가 고든 그린버그는 채드 호지와 원작 각색에 참여했는데, 남성주의적이고 백인 우월주의적 시각이 담긴 원작을 현재의 관객들이 거부감 없이 받아들일 수 있도록 고민한 흔적이 많이 보인다. 일단 원작에서는 라일라가 갑자기 테드와 사랑에 빠졌다고 고백하고 짐과 헤어짐으로써 짐과 테드의 관계도 복잡해지고 라일라도 평면적이고 진부한 인물로 남는데, 뮤지컬에서는 무대에 대한 욕심으로 짐과 헤어지는 것으로 바꿔 라일라를 좀 더 입체적인 인물로 그려낸다(물론 결국 자신을 스타로 만들어 줄 수 있다고 설득하는 텍사스 부자를 만나 테드를 떠나긴 하지만). 린다 캐릭터 역시 순종적이고 남자에 기대는 인물이 아니라 독립적이고 능동적인 면을 많이 살려 정형화된 여성 캐릭터에서 탈피시켰다. 흑인 민스트럴 쇼는 당연히 삭제됐다. 앞서 얘기했듯이 루이스의 역할이 중성적인 것도 고든 그린버그와 채드 호지의 공이 크다고 볼 수 있다. 또한 코네티컷의 굿스피드 극장에 올라갔을 때만 해도 무대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백인이었는데, 뉴욕에 옮겨오면서 캐스트가 더 다양해졌고, 그로 인해 인물 구성과 성격이 같더라도 무대에서 들리는 이야기의 깊이가 달라지는 결과를 낳았다.


라운드어바웃 시어터의 예술감독인 토드 하임즈가 인사말에 <홀리데이 인>은 21세기의 머리와 시대를 뛰어넘는 가슴을 가진 작품이라고 적은 것처럼 <홀리데이 인>은 브로드웨이 관객들의 현대적인 기대와 과거에 대한 향수 사이에서 균형을 맞추고자 노력한 흔적이 작품 곳곳에 묻어난다. 애나 루이조스나 알레호 비에티의 세트와 의상 역시 전반적으로는 도드라지지 않지만, 사소한 디테일을 살린 디자인으로 작품의 균형을 유지하는 데 일조한다. 스타 마케팅이 중요한 요즘의 브로드웨이에서 스타 배우가 출연하지 않는 <홀리데이 인>이 어떤 흥행을 거둘지는 좀 더 기다려봐야 알겠지만, 어빙 베를린의 음악, 특히 무대에서 ‘화이트 크리스마스’를 들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뉴욕의 연말 가족 단위 관객과 관광객의 관심을 끄는 데에는 별 어려움이 없지 않을까 생각한다. <쉬 러브스 미>와 <홀리데이 인>으로 고전적인 로맨틱 코미디를 성공적으로 브로드웨이에 올리는 라운드어바웃 시어터의 다음 시즌 선택 또한 궁금해진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57호 2016년 10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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