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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컬처 | [NOW IN LONDON] <아워 레이디스 오브 퍼페추얼 서커> [No.157]

글 |조연경 런던통신원 사진제공 |Manuel Harlan 2016-10-12 5,492

어디로 튈지 모를 청춘의 질주  

<아워 레이디스 오브 퍼페추얼 서커>




생명력 넘치는 학생들이 이끌어가는 힘센 작품이 등장했다. 뮤지컬 <빌리 엘리어트>로 유명한 작가 리 홀이 앨런 워너의 소설 『소프라노스(The Sopranos)』를 기반으로 각색한 이 작품은 빅키 페더스톤의 연출로 2015년 에든버러 프린지 페스티벌에서 첫선을 보여 호평을 받았다. 그리고 1년여의 전국 투어 끝에 런던 국립극장에 입성했다. 이 작품의 제목인 <아워 레이디스 오브 퍼페추얼 서커(Our Ladies Of Perpetual Succour)>는 작품 중 학생들이 다니는 기독교 계열 여학교의 이름이며 ‘영원한 도움의 성모’를 뜻한다. 스코틀랜드 서부의 작은 도시 오반에 있는 이 학교의 학생들은 대도시 에든버러에서 열리는 합창 대회에 참여하기 위해 길을 떠난다. 그중 여섯 학생의 모험담을 그린 이 작품은 스코틀랜드 소도시 노동자층 집안의 여학생들의 모습을 여과 없이 드러내는 솔직함이 매력이다.




소외된 청춘의 반란


비록 주인공은 교복 치마를 입은 학생 여섯 명이지만 기독교 계열 여학교 학생에게서 기대할 법한 순하고 신실한 모습을 바랐다면 오산이다. 생김새도 머리 모양도 제각각인 학생들의 입에선 거침없는 욕설이 섞인 억센 스코틀랜드 사투리가 쏟아진다. 하느님을 대표한다고 생각하고 늘 몸가짐을 단정히 하라는 지도교사의 말은 당연히 무용지물이다. 선생님 앞에서 순한 양처럼 굴던 학생들은 곧 본모습을 드러내고 여학교 학생들 특유의 자유분방한 모습으로 도시를 누빈다. 이 작품은 그런 학생들의 일탈과 내면의 사춘기다운 불안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며 건강한 웃음을 만든다.


학생들을 연기하는 여섯 명의 여성 배우들은 자신이 맡은 캐릭터 외에 작중 등장하는 모든 인물을 직접 표현한다. 세상 물정 모르는 할머니부터 술 취해 집적대는 아저씨까지 어색함 없이 연기하는데 마치 콩트처럼 우스운 장면들이 연달아 이어진다. 펍에서 강짜를 부리고 거리에서 낯선 사람과 시비를 붙는 등 이 학생들은 도무지 무서움을 모른다. 거의 모든 대사에 비속어가 섞여 있고 음담패설에도 거침이 없다. 이 작품은 관객이 품었을지 모를 여학생에 대한 환상을 산산이 깨부수고 대담하게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 여학생은 수줍고 얌전하다는 고정관념에 휩싸인 관객이라면 못 참고 도망가 버릴 만큼 대범하고 뻔뻔하다. 지금까지 미디어에서 상대적으로 소홀히 다뤘을 스코틀랜드 지방 소도시의 여학교 학생들이 목소리를 들려줬다는 것만으로도 이 작품은 분명 가치가 있다.


헐렁한 교복을 입고 버스를 타기 위해 모인 여섯 학생들은 작은 일에도 크게 호들갑을 떨지만, 자기만의 심각한 고민이 있어도 내색하지 않고 허세를 부리며 친구들과 함께할 일생일대의 모험을 손꼽아 기대하는 평범한 학생들이다. 버스 뒷좌석에 자리 잡은 몇몇 학생들은 교사의 눈을 피해 어설프게 담근 술을 나눠 마시며 그날 밤의 일탈을 준비한다. 버스가 에든버러에 도착하고, 합창 예행 연습을 끝낸 이들은 지도교사의 당부를 듣고 거리로 나선다. 이들은 다음 날 새벽 6시 리허설까지 주어진 자유 시간을 도시에서 보낼 생각에 들떠 있다. 단번에 교복을 벗어 던지고 짧은 치마로 갈아입은 이들은 우선 펍으로 향한다. 이젠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마음껏 큰 소리로 떠들면서 자유를 만끽하고 넘치는 생명력을 폭발시킬 시간이다.


보호자 없이 도시에 내던져진 학생들은 거리를 헤매거나 술집을 자유롭게 출입하고 낯선 사람의 집까지 따라가기도 하면서 아슬아슬하게 위험을 즐긴다. 이들은 변태 도둑에게 교복을 도둑맞는 최악의 위기에 봉착하고, 겨우 시간 내에 합창 경연장에 도착한다. 하지만 교복 없이 무대에 선 데다가 학생들 중 한 명이 마신 술을 이기지 못하고 대회를 망쳐버리면서 추후 5년간 학교 전체가 대회 참가를 금지 당하는 처분을 받고야 만다. 학생들은 그 길로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지만 이미 학교의 명예를 실추시킨 문제아로 낙인찍힌 마당에 퇴학당할까 겁이 나 집에 돌아가지 못한다. 결국 동네 클럽에 모여 세상이 끝난 것처럼 마지막 일탈을 즐긴다. 사춘기의 불안과 고민이 이들을 휘감고 있지만 결국엔 서로 의지하며 돕고 위로하며 현실이 조금 더 나아질 거라는 희망을 품는 학생들. 그 모습이 묘한 울림을 준다.




그들의 속사정


고민 없는 사춘기 청소년이 없는 것처럼 극 중 학생들도 각자 말 못할 고민을 끌어안고 있다. 암 투병 중인 학생은 이번 여행을 계기로 사고 싶었던 부츠를 사고, 자신이 암이라고 낯선 사람들에게 겁을 주며 유세도 부려보고, 성에 대한 경험과 고민을 친구에게 털어놓고, 안 마시던 술을 마시며 한껏 죽음을 향해 내달린다. 그리고 집에 돌아가서는 자신에게 가망이 없다면서 치료 거부를 선언한다.


한편, 동네에서 밴드를 하는 남학생이 실수로 전화를 잘못 거는 바람에 그 밴드의 보컬이 된 학생은 자신이 밴드에 속해 있다는 게 자랑스럽지만, 다른 멤버 남자애들은 다 멍청하다고 생각한다. 함께 음악을 하는 동지로서도, 연애 대상으로서도 매력적이지 않은 동년배 남자아이들에게 지쳐 있던 차에 동네를 떠나 대도시에 오니 자신감이 커진다. 게다가 친구가 부추기는 김에 밴드를 탈퇴하고 솔로로 데뷔하기로 마음먹는다. 하지만 막상 전화를 해놓고 밴드를 그만두겠다고 쉽게 말을 하지 못하는 그를 위해 펍에서 만난 낯선 사람이 후련하게 탈퇴 선언을 대신해 준다.


또 한편, 그룹 내에서 유일하게 모범생이라 신입생 환영회가 뭔지도 알고, 대학생이 될 미래를 그리던 학생은 반듯한 이미지 때문에 처음엔 다른 학생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고 겉돌다 극 말미가 되어서야 자신의 비밀을 터놓는다. 몇 주 전에 될 대로 되라는 심정으로 사고를 쳐서 임신하게 됐으며 부모가 그 사실을 알게 되면 자신의 인생은 끝장이라는 것이다. 좌절감에 술을 이기지 못하고 합창 대회를 망친 주범이 되어버린 그를 위해 다른 학생들은 동네로 돌아와서까지도 함께 술집을 찾아 그를 위로한다. 그리고 좌절한 모범생의 분위기를 풍기는 그에게 반한 여학생은 얼떨결에 커밍아웃을 하고 사랑 고백을 하기도 한다.


이렇듯 이 이야기에 등장하는 학생들은 술김에, 분위기에 취해, 누구에게든 털어놓고 싶은 압박감 때문에 어쩌면 별로 안 친했던 동기생들에게 깊숙이 숨겨뒀던 자신의 비밀을 고백한다. 그리고 미처 고백하지 못했을 때에는 방백의 형태를 빌려 내레이션처럼 관객들에게만이라도 자신의 진짜 속마음과 불안을 이야기한다.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은 척 허세를 부리며 큰 소리로 웃고 떠드는 학생들이지만 속에서 커질 대로 커진 불안과 두려움을 차례로 공개하고 그럴 때마다 작품은 각각의 학생들에게 스포트라이트를 비춘다.


다만 아쉬웠던 점은 학생들을 동등하게 다루지 못하고 극의 전반부는 암 투병하는 학생에게 초점을 맞췄고, 후반부는 임신한 모범생에게 집중되어 있었다는 것이다. 그 사이에서 다른 학생들의 사연은 흐지부지되거나 개연성 없이 조명되기도 했다. 등장인물들이 외딴 지방의 노동자층 집안의 여학생들이라는 점이 부각된 것은 장점이자 단점으로 작용했다. 그동안 작품으로 흔하게 다루어지지 않은 부분에 초점을 맞춘 것은 장점이었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 학생들 사이의 개인차는 미처 깊게 다루지 못하고 극이 끝나버렸다. 특히 학생들의 장래 문제는 일부러 다루지 않은 듯, 대부분의 고민은 현재에 집중되어 있었다. <빌리 엘리어트>처럼 뚜렷한 특기가 있는 게 아닌 이상 노동자층 집안에서 자라서 지방 도시를 벗어난다는 것이 쉽지 않으니 학생들은 미래의 청사진을 그리지 못하고, 그걸 잘 아는 작가 리 홀은 일부러 그 부분을 비워서 그 사실을 드러낸 것 같다.




뮤지컬과 연극의 교차점


이 작품은 어쩌면 뮤지컬이라기보다 연극에 가깝다. 뮤지컬은 ‘뮤지컬 시어터’이니 사실상 연극에 속해 있어 구분 자체가 의미 없는지도 모르겠다. 이 작품은 오리지널 넘버 없이 이미 존재하는 음악을 편곡해 극에 녹여냈다. 음악감독 마틴 로는 성가부터 록 음악까지 다양한 색깔의 음악을 편곡해서 작품의 분위기를 조성했다. 단정하게 교복을 입고 고운 소프라노 목소리로 하느님의 사랑을 노래하던 학생들은 이내 교복을 벗어 던지고 시원하게 뛰어다니며 마이크를 들고 록에 취한다. 여성 악기 연주자들로 구성된 소규모 밴드가 무대 위에 있는데 그들의 연주와 배우들의 노래에 따라 극의 분위기는 삽시간에 변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결정적인 장면은 연극에 가깝게 대사만으로 진행된다. 음악이 입혀진 장면과 아닌 장면 사이의 온도차가 극심한 작품이다. 록 음악은 대부분 1970년대에 활동한 영국의 록 그룹 ‘일렉트릭 라이트 오케스트라(Electric Light Orchestra)’의 음악을 이용했다. 클래식과 록 음악을 접목한 것으로 유명한 이 그룹의 음악은 부드러운 성가와 강한 비트의 록 음악을 번갈아 사용하는 이 작품에 잘 어울렸다. ‘미스터 블루 스카이(Mr. Blue Sky)’와 ‘돈트 브링 미 다운(Don't Bring me Down)’ 등의 곡은 편곡을 거쳐 적재적소에 쓰였다. 노래할 때 핸드 마이크를 이용하는 연출은 일반적으로 대사를 하는 장면과 대비되어 강렬함을 불러오는 효과가 있는데 여기에서도 놓치지 않고 그렇게 연출하여 연극적인 장면과 뮤지컬적인 장면의 온도차를 표현했다. 그리고 소란스럽게 말하고 행동하는 학생들의 겉모습과 진지하고 조용한 속마음 방백 장면이 그 부분과 대비되듯 서로 연결되면서 이 작품은 다양한 색과 온도를 유지한 채 관객들을 지루하지 않게 이끌 수 있었다.




비주류의 목소리


이 작품은 에든버러 프린지 페스티벌에서 첫선을 보였을 때보다 전국의 공연장을 순회하고, 마침내 런던의 국립극장 무대에 오르며 가치가 더 높아졌다. 단순히 더 큰 시장으로 와서, 런던에서 공연하게 되어서 그런 것이 아니라 스코틀랜드의 목소리를 다른 지역과 런던에 전달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 작품은 그동안 미디어나 무대에서 보고 듣기 힘들었던 지방, 청소년, 여성의 모습과 목소리를 메이저 무대에서 전하고 있다. 사회에서 상대적으로 소외된 목소리를 어느 누구보다 거칠고 박력 있게 전하는 이 작품을 보고 어떤 관객은 그들을 좀 더 잘 이해하게 됐을 것이고 어떤 관객은 자신의 경험과 비슷한 이야기에 공감했을지 모른다. 혹은 여성으로만 구성된 밴드가 무대 위에서 음악을 연주하는 모습을 보며 역할 모델로 삼은 관객이 있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작가 리 홀은 우연히 스코틀랜드 국립극장의 첫 예술감독이자 현재 로열코트극장의 예술감독인 연출 빅키 페더스톤을 만난 자리에서 어째서 소설 『소프라노스』를 무대화하려 하지 않느냐고 물었고, 그 질문은 둘이 의기투합하는 계기가 되어 결국 이 작품을 현실화하는 데까지 이르렀다고 한다. 리 홀은 <빌리 엘리어트>나 <광부화가들>처럼 지방 소도시의 노동자 계층에 주목하는 작품의 의미와 중요성을 잘 알고 활동하는 작가다. 이렇게 분명 우리 사회에 존재하지만 주류 문화에 가려 흔히 간과되곤 하는 이런 작품이 시도 자체에만 의미가 부여되는 한계를 극복하려면 더 많은 작품이 사회의 구석구석을 비추고 다양한 비주류의 목소리를 들려주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무엇보다 이 작품의 진정한 가치는 주인공 학생들을 사회적 규범이나 기준으로 묶어두거나 평가하려 하지 않는 데에 있다. 기독교 계열 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이지만 이들은 특정 종교를 믿는 것처럼 행동하지 않는다. 학생인 동시에 여성으로서 특별히 몸가짐을 조신하게 하거나, 자유분방하게 행동하면 죄책감을 가져야 한다고 압박을 주지도 않는다. 물론 학교에서 문제아로 낙인찍히고 집에서 부모에게 혼날까 봐 불안해하는 모습을 보이긴 하지만 대부분의 학생들은 자신을 그냥 좀 활달할 뿐인 평범한 학생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이들이 딱히 ‘불량소녀’인 것도 아니다. 지방 사투리가 원래 거칠고 비속어를 섞어 쓰는 습관이 있어서 보고 배운 대로 거칠게 행동할 뿐이지 오히려 속은 순박하고 꾸밈이 없다.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있는 힘껏 세상과 부딪치고 제대로 깨지며 미친 듯이 밤을 즐기는 혈기 왕성한 이 여학생들을 보면 있는 그대로 자연스럽고 현실적으로 표현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설령 곱고 예쁘지 않으며 부담스러울 정도로 에너지가 넘쳐서 욕과 음담패설을 입에 달고 다니는 학생들일지라도 <아워 레이디스 오브 퍼페추얼 서커>는 정말 스코틀랜드 구석에 이런 학생들이 살고 있다고 믿을 정도로 현실적이고 왜곡 없는 작품이었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57호 2016년 10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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