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계단을 밟다
2016 우수 크리에이터 발굴 지원 사업 ‘뮤지컬 인큐’(문화체육관광부, 한국콘텐츠진흥원 주최, 알앤디웍스 주관)에서 지난 8월 31일 다섯 작품의 리딩 공연을 발표했다. ‘뮤지컬 인큐’는 뮤지컬 신인 창작자를 양성하고 우수 작품을 발굴하기 위한 뮤지컬 지원 제도이다. 리딩 공연에 발표된 다섯 작품 중 세 작품은 내년 1월 쇼케이스를 펼치고 이 중 한 작품에 정식 공연 기회를 준다. 이번 리딩 공연에서 선발된 작품은 <해담아, 반딧불이 보러와>, <소울, 메리 미>, <세븐>이다. 개성 강한 세 작품의 창작자들을 만나 작품을 개발한 과정과 이후 쇼케이스에 임하는 자세를 들어보았다.
<해담아, 반딧불이 보러와>의 허선혜 작가·이지선 작곡가
작품 및 작가 소개
만화에만 빠져 사는 청순, 별에 빠진 두리, 미신을 맹신하는 계룡. 셋은 중학교 친구 사이다. 어딘지 찌질한 이들에게 엄친남 해담이 먼저 손을 내민다. 이제 스물다섯 살이 된 친구들. 5년 전 죽은 해담에게서 구조해 달라는 편지가 오고 이들은 해담을 구하기 위해 여행을 떠난다. 허선혜 작가는 연극 <햄스터 살인사건>의 작가이기도 하며 주로 연극 작업을 해오다, 지인의 소개로 이지선 작곡가를 만나 뮤지컬에 도전했다. 이지선 작곡가는 한예종 음악극 창작과를 나와 예그린프린지에서
인큐에 지원한 작품은 <그 겨울, 연습실>이었다고?
이지선 <그 겨울, 연습실>은 연습실이란 공간에서 졸업 공연을 준비하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였다. 인물들이 너무 연습실 안에만 있는 거 아니냐는 멘토링을 받았는데, 거기서 여행을 떠나는 발상이 나왔다. <그 겨울, 연습실>은 아픔이 있는 사람들의 어두운 이야기였다. 단점을 보완해 톤을 밝게 해보려고 했다. 이런 컨셉으로 작가님이 트리트먼트를 만들어 왔는데 너무 맘에 들었다. 그다음부터는 순조롭게 진행이 됐다.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었나?
허선혜 나와 주변 친구들을 보면 되게 어둡고 암울하고 자존감도 약하다. 그 나이의 젊음이 너무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각자 분명히 반짝거리는 무언가가 있는데 그 아름다움을 잘 인식하지 못하고 지나치는 것 같다. 우리에게도 반짝이고 아름다운 부분이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었다.
리딩 공연을 본 소감은?
허선혜 배우들이나 음악감독, 연주자분들이 쓴 것 이상으로 작품을 잘 살려주었다. 꿈같은 시간이었다.
이지선 배우들이 참여하면서 둘이서만 하던 이야기를 공유할 사람이 많아지니까 좋았다. 머릿속에 있는 이야기를 배우들을 통해 실제로 보고 들으면 항상 행복한 것 같다. 생각한 것 이상으로 많은 것을 발견해 주었고 많은 도움을 받았다.
어떤 평가를 많이 들었나?
허선혜 힐링극이다, 통통 튀고 귀여운 작품이라는 말을 많이 했다.
작품을 만들면서 가장 힘들었던 점은 무엇인가?
허선혜 사건들을 쌓아가면서 뭔가(메시지나 감동)를 줄 수 있을지가 고민이었다. 사건을 구성하는 게 힘들었다. 계속 수정을 했는데 지금도 의구심이 든다. 멀티 배우를 한 명 더 추가해서 사건을 좀 더 풍부하게 하라는 조언도 받았는데, 욕심으로는 세 명의 친구들로만 이끌어가고 싶었다. 디테일을 통해 탄탄한 구성이 되도록 고민 중이다.
이지선 이야기 플롯은 연습 때 순서를 바꾸는 등 다양한 변화를 줬다. 지금 구성에 만족하는 편이다. 이야기에 대해서는 작가의 시선을 믿고 있다. 음악적으로는 전체적인 템포감을 어떻게 조절할지 고민하고 있다. 리딩은 50분 안에 끝내야 해서 템포 조절을 하지 못하고 빨리 진행시켰다. 쇼케이스 때는 템포를 섬세하게 조절해볼 생각이다.
이 작품을 보는 관객들이 어떤 것을 느끼길 바라는가?
허선혜 정서적으로 따뜻함을 얻어 갔으면 좋겠다. 골치 아프고 스트레스 받는 일에서 벗어나 휴식처가 되길 바란다.
<소울, 메리 미> 김상현 작곡가·박정희 작가
작품 및 작가 소개
찬호는 건물이 붕괴되는 현장에서 첫사랑 송이를 만난다. 저승 입구까지 갔던 찬호는 간신히 살아난 후 영혼을 볼 수 있게 되고, 뇌사에 빠진 송이는 자신의 상태를 모른 채 영혼으로 떠돈다. 이 둘이 벌이는 로맨틱 코미디. <소울, 메리 미>의 박정희 작가는 다수의 방송 프로그램에서 작가로 활약했으며 뮤지컬은 언젠가 도전할 과제라고 생각했다. 김상현 작곡가는 방송과 영화 음악을 작곡해 왔지만 원래 관심을 가진 분야는 뮤지컬이었다. 지인의 소개로 만나 <소울, 메리 미>로 인큐에 도전하게 됐다.
뮤지컬 작가와 작곡가로 도전하게 된 계기?
박정희 언젠가부터 국내 뮤지컬 수준이 높아지면서 뮤지컬이 재밌어졌다. 라디오나 방송 프로그램을 하면서도 뮤지컬은 언젠가 꼭 해보고 싶은 장르였다. 무대 경험을 쌓아보고자 작년부터 작은 작품의 협력연출로 참여하기도 하고 쇼케이스에도 도전했다.
김상현 원래 뮤지컬을 좋아해서 음악 공부를 할 때도 뮤지컬에 초점을 맞췄다. 그동안 기회가 없었는데 박정희 작가가 뮤지컬을 함께 해보자고 했을 때 그런 제안을 해준 것 자체가 기뻤다.
리딩 공연을 올린 소감은?
박정희 무대에서 느껴지는 배우들의 호흡과, 관객들의 호흡이 좋았다. 쇼케이스 공연에서는 이런 장면이 이렇게 표현되겠구나 머릿속에 그려지더라.
김상현 뮤지컬에 빠지게 된 계기가 일본에서 공부할 때 일본 멘토의 도움을 받으며 제작하는 프로그램에 참여했는데, 배우들이 내 곡을 연습하는 현장을 보고 감동을 받았다. 작가와 작곡가의 협업 이외에 배우에게 얻어지는 것이 많다.
<소울, 메리 미> 리딩 공연에 대해 기억에 남는 평가가 있나?
박정희 지인들의 경우 일단 재미있다는 이야기를 했고, 최근 뮤지컬 트렌드에 맞춰가는 작품이 아닌 인간의 드라마를 그리려고 한 점이 미덕이라고 말해 주었다.
영혼과 사람의 연애물이라는 설정이 흥미롭다. 이런 이야기를 발전시킨 과정이라면?
박정희 처음에는 장기기증이나 안락사의 이야기를 다루려고 했다. 두렵고 남의 이야기 같지만 정말 필요한 이야기이다. 분명 뮤지컬로 접근하기 쉽지 않은 소재이다. 뇌사 당한 영혼이 등장하면서 어떻게 살고 어떻게 죽어야 하느냐의 문제로 발전했다. 누구 이걸 결정할 문제인지 화두를 던져보자는 생각으로 발전해 뇌사 당한 영혼이 등장하게 되었다.
로맨스와 장기기증, 두 개의 이야기 축인데, 둘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지기보다는 별개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느낌이다.
박정희 리딩 공연은 50분 안에 단축시키다 보니 곁가지 이야기들을 정리해야 했다. 둘의 로맨스는 잠깐 숨겨 놓았다. 쇼케이스에서는 리딩에서 본 이야기가 부수적으로 빠지고 수호와 송이의 로맨스가 중심 이야기가 될 것이다.
음악적으로 신경을 쓴 것이 있다면?
김상현 작가님과 톤 문제에 대해 가장 많이 의견 조율을 했다. 앞부분은 로맨스가 주를 이루다가 뒷부분으로 가면 삶과 죽음의 주제를 다룬다. 자칫 잘못하면 분위기가 다운될 수도 있다. 너무 무겁지는 않지만 긴장감을 유지하면서 드라마가 가벼워지는 부분에서는 밝게 전개해야 했다. 분위기에 맞춰 톤을 조절하는 것이 힘들었다.
인큐를 통해 멘토의 도움으로 작품을 발전시켰는데, 과정에 대한 소감이라면?
김상현 일본 유학 시절에도 연출, 작가, 안무가, 음악감독 선생님의 멘토링을 받으면서 작품을 완성했다. 그때 굉장히 많이 배웠다. 친구들한테 보여줘도 객관적인 평가를 받을 수 있는데, 경험도 많고 극을 보는 눈도 뛰어난 베테랑 선배님이 봐주시니 감사할 따름이고, 앞으로도 조언을 기대하고 있다.
<세븐> 전순열 작가·정원기 작곡가
작품 및 작가 소개
정신의학 박사 인아는 해리성 장애를 겪고 있는 정현을 대상으로 연구를 한다. 자아들 간의 공존을 통한 치료를 진행하지만 정현의 증상은 점점 심해지고 여섯 자아 중 하나가 살인 메시지를 남긴다. 정현의 자아들이 하나씩 살해되어 가는데…. <세븐>의 전순열 작가는 다양한 뮤지컬의 조연출로 참여해 왔다. 정원기 작곡가 역시 무용, 음악극의 작곡뿐만 아니라 뮤지컬 음악 팀에서 편곡을 하는 등 간접적으로 뮤지컬에 참여했다. 둘은 인큐에서 <세븐>으로 처음 만나 호흡을 맞추면서 뮤지컬 창작자에 도전한다.
둘은 어떻게 만났나?
전순열 각자 인큐에 지원했는데, 팀을 이루게 됐다. 대본만으로도 지원할 수 있어서 나는 <세븐>으로 지원했고, 작곡가님은 별도의 작품으로 지원한 것인데 인큐에서 한 팀으로 묶어 주었다.
리딩 공연을 올린 소감은?
정원기 공연을 하고 보완할 기회가 주어진 것에 감사하게 생각한다. 이 부분이 전달되고, 이런 부분은 전달이 잘 안 되는구나, 하는 것을 면밀하게 보려고 했다. 작품의 내용을 조금 더 생각하는 계기가 됐다.
전순열 조연출 생활을 6년 정도 하다, 늦게 영국에서 연출 공부를 하고 왔다. 조연출을 할 때는 무척 바빴는데 돌아와 보니 아무도 찾아주지 않더라. 뭐라도 해야겠다는 기분으로 글을 쓰게 됐다. 뭐가 될지 모르고 그냥 썼다. 그때 인큐를 보게 됐다. 대본만으로도 지원이 가능해서 지원했다. 다행히 이곳에서 작곡가도 만났다. 개인적으로 절실했던 상황에서 만든 작품이라 특별하다.
어떤 작품을 쓰고 싶었나?
전순열 등장인물이 정신적으로나 정서적으로 아픈 사람이다. 하지만 그들을 우리와 동떨어진 사람으로 느껴지게 하고 싶지 않았다. 일반 사람들도 사회의 요구에 따라 여러 모습을 보인다. 그러다 진짜 자신의 모습이 오히려 낯설어질 때가 있다. 낯섦을 인정해야 할지, 무시해야 할지 다 같이 고민해 보면 좋겠다는 생각에서 이 작품을 만들게 됐다.
리딩 공연을 본 주위의 반응은 어땠나?
정원기 두 명이 끌고 가는 극이어서 긴장감이 느껴진다는 이야기를 많이 했다. 두 배우의 케미를 유심히 봐준 것 같았다. 쇼팽이 중요한 소재로 사용된다. 주인공이 쇼팽 연주를 좋아하는 피아니스트여서 음악 전반에 클래식한 분위기가 깔려 있다. 어떤 부분은 음악이 어렵다고 하고, 어떤 부분은 클래식해서 좋았다고 하더라. 그런 의견을 귀담아 듣고 있다.
극의 특성을 반영한 곡도 있었지만 많은 곡들이 솔로곡으로 단조로운 인상이다.
전순열 일반적인 북(Book) 뮤지컬처럼 전개되는 것이 아니라 여자 주인공의 증언으로 진행된다. 사건과 사건의 브리지는 대사로 해결하니 속도감이 느껴질 것이다. 최면을 걸거나, 자신의 증상을 증언하는 장면에서는 하나의 노래가 장면을 구성하기도 하고, 다양한 인격들이 한 노래를 부르기도 한다. 긴 노래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단조롭게 느껴질 수 있다. 실제 공연에서 연출적인 도움을 받으면 보완될 수 있을 것이다.
해리성 장애, 다중 인격은 최근 대중물에서 익숙한 소재이다.
전순열 영화나 드라마에선 해리성 장애를 소재로 많이 쓰는데 아직 뮤지컬에선 그렇게 많진 않다. 작품을 만드는 동안 해리성 장애를 소재로 한 <인터뷰>가 올라가서 깜짝 놀랐다. 소재는 같지만 <세븐>에서 해리성 정체감 장애는 소재일 뿐이고 이를 통해 일반적인 우리의 모습을 보여주려고 한다.
쇼케이스 공연에서 더 보완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전순열 <세븐>은 반전을 담고 있다. 영화가 아니기 때문에 반전에 큰 욕심을 부릴 생각은 없다. 대신 (새롭게 발견하는 재미를 줄 수 있도록) 디테일을 더하는 데 집중하고 싶다. 두 사람만 등장하는데 그들이 심리적으로 첨예하게 대립하는 상황을 만들고 음악과 잘 맞아떨어질 수 있도록 고민할 것이다.
정원기 50분 리딩 공연에서는 전막을 드라마 위주로 보여줬다. 아리아가 거의 빠졌는데 드라마 진행을 방해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드라마의 밀도를 깊게 하고, 관객의 입장에서 어떻게 받아들일지 고민하려 한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57호 2016년 10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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