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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컬처 | [NOW IN LONDON] <내 작은 인생> [No.158]

글 |조연경 런던통신원 사진제공 |Charlie Round-Turner 2016-11-18 3,866

일상에 스민 초조함의 무게  

<내 작은 인생> THIS LITTLE LIFE OF MINE




뮤지컬 <내 작은 인생(This Little Life Of Mine)>이 2016년 가을, 전 세계에서 처음으로 런던 파크시어터에서 관객들을 만났다. 90석 규모의 소극장 무대에 올라온 이 작품은 지극히 영국다운 작품이며 영국에서도 특히 런던 사람들의 생활을 세밀하게 반영하고 있다. 키보드와 첼로로 연주되는 음악에 맞춰 보통 사람들의 이야기를 풀어내는 이 작품은 가벼운 로맨틱 코미디처럼 보이지만 금세 껍질을 벗고 묵직한 주제를 들이민다. 대체로 만족스러운 보통 삶에서 단 한 가지가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면, 그 삶은 과연 계속 행복할 수 있을까.




두 사람 인생의 단편


이 작품은 주인공 커플인 여자 이지와 남자 존지, 그리고 각각 서너 가지 멀티 역할을 맡은 여자 배우와 남자 배우, 이렇게 넷으로 구성된 4인극이다. 이지와 존지가 어떻게 만나서 어떤 로맨틱한 신호를 주고받다가 싸우고 지쳐서 헤어졌는지를 그리는 로맨틱 코미디 같지만 이 작품이 주목하는 점은 다른 데에 있다. 이 극은 두 사람이 함께하는 런던 생활의 한 단면을 뚝 잘라 보여줄 것처럼 무대에 올렸다. 두 캐릭터가 무대에 오르기 전이나 무대에서 내려간 후에도 둘의 삶은 계속 이어졌고 이어질 것임을 암시하는 듯, 무대 위 이야기를 보편적인 사람들의 이야기로 확장시킨다. 명확한 결론을 내리고 끝내지도 않는다. 그래서 이 극은 ‘그리고 행복하게 살았답니다’로 끝나는 동화와는 거리가 멀다.


가구 몇 가지가 놓인 거실과 주방이 있는 무대. 침실 하나가 딸린 전형적인 ‘원베드룸’ 형태의 아파트 현관문을 열고 이지와 존지가 들어선다. 집이 좁아서 실망하고, 식구가 늘면 그땐 어떡하나 걱정하는 이지에게 존지는 이 집이 좁아 보여도 런던 2존에서 감당할 수 있는 최선이라고 설득해, 결국 둘은 집을 계약한다. 비현실적으로 치솟은 런던 부동산 가격을 놓고 고민하는 둘을 보며 관객들은 즉시 공감대를 형성하게 된다.


이후에도 두 사람은 전형적인 런던 생활자의 모습을 보여준다. 이사한 집으로 친구들을 초대해 요즘 트렌드라는 개방적인 연애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즐겁게 시간을 보내기도 한다. 바쁘게 생활하는 가운데 아늑한 집 안에서 오붓한 시간을 보내기도 하며 특별한 날 존지의 부모와 함께 식사를 하기도 한다. 존지의 엄마가 늘어놓는 잔소리에 위축되고 스트레스를 받는 이지의 모습은 누구나 쉽게 공감할 수 있는 갈등을 보여준다. 우리 같은 그들의 소박할 일상을 세심하게 무대 위에 펼친 이 작품은 철저히 관객과 눈높이를 맞추며 관객들을 이야기 속으로 끌어들인다.



그렇게 대체로 즐겁고 때론 스트레스를 받기도 하지만 소소한 행복이 있다면 됐다고 말하려는 작품처럼 보이지만, 이내 이 작품이 진짜 하려던 얘기가 드러난다. 같이 살 집으로 이사하고 삶이 안정되자 이지와 존지는 아이를 갖기로 합의한다. 하지만 마음처럼 쉽게 되지 않고 이지는 점차 조급한 마음을 드러낸다. 그러다 임신 소식을 듣지만 안정기에 접어들 때까지 알리지 않으려던 이지의 의도와 달리 존지가 가족들에게 소식을 전하고 둘은 작은 갈등을 겪는다. 그러고 얼마 뒤, 이지는 자연유산 되었다는 소식을 듣는다. 다시 시도하면 된다고 마음을 다잡는 이지를 보고 존지는 유산된 아이를 애도하지도 않는 그녀가 냉정하다고 느낀다. 이지는 곧 다시 임신이 가능한 날짜를 계산하고 계획을 짜기 시작하지만 존지는 이지가 너무 임신에 집착한다고 생각하고 점점 둘 사이의 골이 깊어진다. 그 와중에 존지는 동네 술집에서 우연히 마주친 이지의 친구와 외도를 하게 되고, 이지와 존지는 그 일로 다퉜다가 화해하지만 결국 서로 마음이 멀어졌음을 느끼고 헤어지게 된다.


모든 게 완벽하지는 않아도 어느 정도 만족스럽고 행복했던 보통의 삶은 이지가 그토록 원했던 아이가 찾아오지 않자 삐걱거리게 되고, 결국 둘은 서로의 차이를 좁히지 못하고 끝을 낸다. 극 말미, 하얀 무대 위에 영상 화면이 겹쳐지면서 만약 둘의 아이가 태어났더라면 펼쳐졌을 행복해 보이는 일상이 그려진다. 그렇게 두 사람이 가지 못한 길에 대한 슬픈 헌사가 끝나면 조명이 어두워지고 이지가 텅빈 집에서 마지막 짐을 챙겨 나가면서 극은 막을 내린다.




일상 공감의 온도 차이


이 공연은 현대 사회에서 살아가는 커플의 리얼한 일상을 무대에 올려 관객들이 자신의 이야기처럼 느낄 수 있게 하고자 했다. 하지만 극의 전개 과정에서 다양한 장면들이 어우러질 때, 공감에만 초점을 맞추다가 중심을 잃고 산만해져버린 것 같다. 이 뮤지컬에는 런던에서 생활하는 도시인이 쉽게 공감할 수 있는 일상을 코미디처럼 그린 장면과 보통 사람을 대변하는 이지와 존지가 아이를 가지려는 과정에서 겪는 어려움과 고민을 다룬 장면이 헐겁게 이어져 있다. 카페 에피소드, 개방적인 연애 에피소드, 채팅 앱을 통한 현대식 남녀의 만남에 관한 에피소드, 간섭하는 남자의 부모와 이에 스트레스 받는 여성의 에피소드처럼 현대인의 공감대를 건드려 웃음을 자아내려는 장면들이 이지의 초조함이나 존지의 답답함과 얽혀 있어 흐름이 매끄럽지 못하다.


이 뮤지컬의 넘버들은 주로 주연들의 주요 사건이나 갈등과 상관없는 코믹한 장면에 삽입되어 있고 그런 장면들이 더 기억에 강렬하게 남았다. 예를 들어, 이지가 친구와 대화하려고 찾아간 카페의 바리스타가 과장된 유럽 억양으로 노래하는 장면에서 관객들의 웃음이 가장 크게 터져 나왔다. 관객들은 자신들이 카페에서 커피를 주문할 때 있었던 일을 생각하며 무대 위 우스꽝스러운 바리스타에게 공감했다. 하지만 손님의 기호에 맞게 커피 취향과 사이즈를 회사 방침대로 물어보는 바리스타를 굳이 과장된 억양으로 희화화해야 했는지는 잘 모르겠다. 관객들의 웃음을 이끌어낸 또 다른 부분은 이지와 존지의 집들이에 찾아온 친구들이 개방적인 연애가 부부 생활에 활력소가 된다며 격정적으로 권유하는 섹슈얼한 장면이었다. 이 장면은 극 초반에 등장했고 유난히 튀었기 때문에 향후 이야기의 흐름을 바꾸는 포인트가 될 것처럼 보였지만 그냥 우스운 장면으로 소비되고 말았다. 이렇게 주요 장면보다 코믹하게 분위기를 환기하려는 부분적인 장면이 음악과 함께 강조되면서 결국 이 작품이 하고자 하는 이야기의 핵심이 분산된 것 같다. 뮤지컬 넘버만 따로 모아 듣는다면 하나의 스토리가 있는 공연이 아니라 일상에 얽힌 여러 에피소드가 나열된 공연으로 비칠 정도다. 일상의 공감을 노리려던 장면들이 어수선하게 흩어지면서 정작 작품은 구심점을 잃는다.


반면, 이지와 존지의 감정 변화나 갈등은 주로 대사와 침묵으로 표현됐다. 두 주인공이 하나의 사건에 대해 다르게 생각하고 상대와 다른 지점에 서 있어서 필연적으로 생기는 갈등의 흐름을 섬세하게 드러냈고 잘 조율된 대사와 침묵은 이지와 존지 사이의 차이를 효과적으로 보여줬다. 결국 두 사람이 헤어져 다른 길을 가게 되기까지 과정을 납득 가능하게 잘 설명해 준다. 문제는 앞서 말한 코믹 장면들과 이런 진지한 장면들이 똑같이 관객의 공감을 사기 위한 장면들이지만 결의 차이가 너무 확연해서 흐름이 원활하지 않게 느껴진다는 것이다.



극 초반 이지가 부르는 ‘헤이 프린스 차밍(Hey Prince Charming)’은 거의 유일하게 두 사람의 관계를 노래하는 밝은 곡이다. 이 넘버는 동화를 비유로 든 가사와 경쾌한 멜로디로 구성되어 로맨틱 코미디로 포장된 공연 서두를 예쁘게 장식한다. 중반 부분에 존지가 기타를 치며 이지에게 불러주는 노래는 달콤한 로맨스 분위기로 무대를 채운다. 하지만 이를 제외하면 둘이 눈을 맞추며 부르는 노래는 없다시피 하다. 이지와 존지가 부르는 노래들은 대부분 솔로곡이며, 둘 사이에 솔직하고 깊은 대화가 이루어지지 않음을 간접적으로 보여준다. 둘이 노래하는 유일한 넘버는 싸운 뒤 이지는 집 안에서, 존지는 집 밖에서 각자 ‘내가 너를 덜 사랑했다면 덜 상처받을 텐데’ 하고 되뇌는 두 사람의 독백이 합쳐진 듀엣이다. 서로 감추는 것 없이 대화하는 듯 보이지만 대화로는 속마음을 모두 털어놓지 못하고 뒤에서 마음을 표현하는 두 사람이 결국 이별할 것임을 암시하는 장면이기도 하다.


작은 무대에 현대인의 일상을 다 담아내려다 보니 자잘한 소품 재배치도 많아 어수선한 느낌을 준다. 전개에 필수적인 대화를 나누는 장면도 아닌데 굳이 무대를 다시 세팅하고 배우와 첼로 연주자가 소품을 옮기며 극을 끊어가야 했을까. 멀티 역할을 맡은 두 배우의 역할 전환도 너무 성급해 보였다. 주인공 여성의 활달하고 성숙한 친구였던 배우가 거의 바로 다음 장면에서 주인공 남성의 엄마로 나오니 당황스러울 수밖에. 여러 배역을 한 배우가 담당하는 소극장 뮤지컬이라면 흔한 일이지만 배우가 짧은 시간 안에 배역을 전환할 때는 연기와 그를 서포트해 주는 연출에 따라 효과가 달라지는데 분명 배우는 배역에 걸맞은 연기를 해냈지만 등장하는 타이밍이나 연출 면에서 아쉬움이 없지 않았다.




작지만 중요한 개인의 삶


<내 작은 인생>은 이지와 존지의 삶이 흘러가다가 교차됐다 다시 흘러가는 과정을 무대 위에 그리고 있다. 영화 편집자인 이지는 자신의 인생이 편집 후의 영화처럼 매끄럽기를 바라지만 현실은 투박하며 좀처럼 자신의 뜻대로 되지 않는다. 남들 다 하니까 쉬울 거라고 생각했던 임신이 생각처럼 안 되자 이지의 삶은 조금씩 흔들린다. 일을 그만두고 매달려도 아이는 마음처럼 빨리 생기지 않고, 기다리면 기다릴수록 조급함과 불안만 커진다.


이 공연은 이지의 변화를 세밀하게 보여준다. 런던의 작은 아파트에서 소박하게 꾸려가는 삶이지만 이지에겐 하나뿐인 삶이고, 대체로 만족스럽지만 자신이 원하는 것 한 가지가 끝내 이루어지지 않는 삶이다. 그런 이지를 위로하는 이는 그동안 이지에게 잔소리와 싫은 소리를 거리낌 없이 쏘아대던 존지의 엄마다. 아이가 생기지 않아 초조해하는 이지의 마음을 유일하게 위로해 줄 수 있는 인물이기도 하다. 이지와 단둘이 만난 자리에서 자신의 유산 경험을 털어놓은 존지의 엄마는 그 후 아이가 다시 들어설 때까지 초조하고 불안했던 마음을 이지와 공유하면서 잠시나마 마음을 가라앉혀 준다.


하지만 정작 이지를 위로해 주어야 할 파트너 존지는 갈피를 못 잡고 자기 연민에 빠져 있다. 처음부터 이지보다 가족 계획에 덜 적극적이었던 존지는 이지가 임신 소식을 들려줬을 땐 기뻐하지만 이내 유산 소식을 듣고 혼란스러워한다. 이지가 몸과 마음을 추스리고 다시 아이가 들어설 수 있도록 준비하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고 이지를 감싸주기는커녕 벌써 다음을 준비하는 이지가 냉혹하다고 생각한다. 그러고는 집안이 답답하다며 나갔다가 외도를 하는 등 이지 입장에선 실망스러운 행동을 반복한다. 이때 존지는 상대적으로 미숙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가족끼리 식사하는 자리에서 파트너에게 쏟아지는 엄마의 잔소리를 막아주지 못하거나 자신의 흠으로 인해 임신이 어려워 파트너가 고통받고 있는데 적극적으로 노력하지 않고 상황을 회피하려고 하는 모습이 그렇다.



결국 이 뮤지컬에서 이지와 존지는 싸워서 헤어지는 것도 아니고 아이가 생기지 않아서 혹은 유산을 겪어서 헤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 모든 과정을 보면서 서로의 차이를 인지하고 그것을 좁히지 못할 것이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각자의 길을 가기로 선택하는 것이다. 이 뮤지컬은 그 부분을 놓치지 않고 세심하게 표현한다. 그만큼 미세한 감정선을 잡아내기 위해 음악의 역할을 줄이고 대사와 침묵으로 이야기를 전개한다. 특히 아무런 선율도 없는 가운데 이어지는 침묵은 소극장 무대에서 효과가 극대화되어 이 공연에 깊이감을 줬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이 공연이 뮤지컬인 만큼 더 음악적인 표현을 해주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이 작품은 아주 평범한 보통의 여성과 남성을 통해 우리 모두의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새 가정을 꾸릴 때의 설렘, 친구나 연인과 함께하는 일상, 결국 차이를 좁히지 못하고 각자의 길을 가게 되는 허탈함 등 누구나 생각해 봤고 겪은 일들을 공연으로 올렸다. 마음처럼 쉽게 아이가 들어서지 않아 생긴 초조함과 불안이 평범하고 행복했던 일상에 스미고, 결국 그 초조함이 일상을 깨어버리는 과정을 통해 우리의 평범한 일상이 얼마나 쉽게, 예상 못한 일로 깨어질 수 있는지 경고하는 것 같기도 하다. 이지와 존지는 결국 아이가 생기지 않았기 때문이 아니라, 그런 위기가 닥쳤을 때 서로 대화하고 이해하며 나아갈 수 없었기에 헤어지게 된 것이다. 그런데 한 번도 대비해 보지 못한 위기를 맞아 원만하고 능숙하게 해결하고 나아갈 수 있는 사람이 있기나 할까. 이 뮤지컬은 일상이 깨어지는 과정을 아무런 환상 없이 고스란히 보여준다. 누구나 전혀 예측하지 못했을 때 일상이 깨질 수 있다. 하지만 이지에게 아이가 들어서지 않는 것, 존지와 이별을 겪는 것은 잠시의 위기일 뿐 결코 끝이 아니다. <내 작은 인생>이 끝이 아닌 것 같은 엔딩을 만드는 데 신경을 쓴 것도 그런 이유일 것이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58호 2016년 11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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