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 꼭 필요한 뮤지컬
<어느 평화주의자의 암과의 전쟁에 관한 안내서>
외면하고 싶지만 맞서야 할 때가 있다. 알고 싶지 않지만 알아야 할 때도 있다. <어느 평화주의자의 암과의 전쟁에 관한 안내서>라는 긴 제목의 뮤지컬을 보러 와서 빈 무대 앞에 앉은 관객들은 스피커를 통해 연출가의 차분한 목소리를 듣게 된다. “우리는 극장에서 질병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어요. 하지만 그런 무거운 이야기를 한다면 아무도 보러 오지 않겠죠.” 연출가는 그래서 뮤지컬이라는 장르를 선택했다고 말한다. 외면하고 싶어서 똑바로 쳐다보지 않고,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듯 피하기만 해온 주제이지만 꼭 알아야 하고 함께 이야기해 봐야 하기 때문에 밝고 즐거운 이미지의 장르로 포장해서 ‘암’을 무대에 올린다. 런던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극단 컴플리시트(Complicite)는 협업을 통해 런던에서 가장 안정적으로 관객이 드는 편인 영국 국립극장 무대에 공연을 올려 질병, 그중에서도 특히 공포스럽게 느껴지는 암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리고 연출가가 바란 대로 <어느 평화주의자의 암과의 전쟁에 관한 안내서>는 제법 많은 관객들과 만나게 됐다.
이야기가 아닌 진짜 현실
암이라고 하면 그동안 대중매체에서 주로 소비해 온 이미지들이 먼저 떠오른다. 핏기 없이 청순한 여성이나 항암 치료로 머리가 다 빠져 모자를 쓴 어린이 등 대중매체는 그동안 암을 아이콘처럼 소비해 왔다. 하지만 <어느 평화주의자의 암과의 전쟁에 관한 안내서>는 이런 상업적인 서사에서 벗어나 생생하면서도 독특한 인물군을 전면에 등장시킨다. 다양한 인종, 성별, 연령대의 인물을 통해 암이라는 불행이 어느 누구에게나 찾아올 수 있는 것이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관객들은 한 평범한 여성인 ‘엠마’의 시선을 따라 천천히 극 속으로 들어가고 암에 대해 알아가는 여정을 함께하게 된다. 엠마는 태어난 지 몇 개월밖에 안 된 아이를 혼자 키우는 싱글맘이다. 암에 대해 전혀 모르는 엠마는 추가 검사를 위해 내원해 달라는 요청을 받고 아이를 데리고 병원에 가는 길이다. 엠마가 도착한 병원은 차갑고 바쁜 곳이다. 병든 사람들이 많고 의미 모를 어려운 단어들이 자주 들리니 엠마는 괜스레 주눅 들고 불안하다. 엠마가 어리둥절해하며 접수 차례를 기다리는 동안 사연이 있는 다른 인물들도 등장한다. 말기 암이라 끝을 준비해야 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힘들어하는 흑인 여성, 숨 쉬기 어려워 호흡기를 꽂고 있는 노동자층 백인 남성, 엄마의 걱정과 관심이 부담스럽고 직장에 암을 숨겨야 하는 게 버거운 젊은 남성, 자신이 앓았던 암이 뱃속 태아에게 유전됐을까 봐 걱정하는 젊은 백인 여성, 암보다 휴대전화에 더 집중하는 젊은 흑인 여성 등이다.
이 작품에서 보여주는 암 환자의 모습은 일정하지 않다. 전부 머리가 빠져 있지도 않고, 전부 좌절에 빠져 있거나 터무니없이 의연하지도 않다. 건강을 제대로 관리하지 않아서 암에 걸린 것 같아 보이는 인물도 있지만, 이유 없이 암의 습격을 받은 것처럼 보이는 인물도 있다. 그리고 그들의 암 투병 중에도 삶은 여전히 지속된다. 이 작품은 여러 인종과 계층의 인물들을 통해 다양한 모습의 암을 이야기한다. 이유는 단순하다. 그게 사실이기 때문이다. 이 작품은 그동안 미디어가 왜곡해 온 암의 이미지를 전복하려 한다. 그리고 암을 겹겹이 둘러싸고 있는 막연한 두려움과 불안이 무지 때문이라고 믿고 그걸 한꺼풀씩 벗겨내려고 노력한다.
이 작품은 관객들에게 사실을 전달한다. 그 메시지가 최대한 많은 관객들에게 닿을 수 있도록 뮤지컬이라는 장르를 택했고, 시종일관 밝고 신 나는 멜로디로 극을 진행시킨다. 그동안 대중매체에서 묘사되어 온 상징적으로 왜곡된 모습이 아니라 실제로 보편적이며 다양한 인물군을 택한 이 작품은 우리가 사는 사회를 있는 그대로 반영하기 위해 노력하며 다양성을 추구한다. 환자 역할이 아닌 간호사나 병원 직원 등의 멀티 역할에 장애인 배우를 기용한 것도 그런 맥락에 있다. 영국 국립극장은 평소에도 배우의 다양성에 신경을 쓰는데, 이 작품은 그중에서도 유독 인종, 성별, 장애, 연령의 다양성을 면밀히 챙겼다.
환상과 일상의 경계
엠마가 설마 했던 사실을 받아들이는 과정을 그리고 있는 이 작품의 1부는 병원에 온 엠마의 하루를 따라가는 한편, 엠마가 만나는 다른 환자들의 사연을 풀어낸다. 또한 엠마가 환상을 보는 듯한 장면을 중간중간에 삽입하여 엠마가 느끼는 불안을 시각화했다. 알록달록한 암세포 의상을 입고 나온 배우가 춤을 추며 자기소개를 하면서 암에 관한 지식을 전달하는 초반 장면은 엠마와 관객 모두에게 암세포와의 첫 만남을 덜 공포스럽게 그리려는 노력으로 다가온다. 이 작품은 다양한 갈래의 이야기를 통해 암에 대해 잘 모르는 일반인의 불안과 자신, 혹은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이 암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의 암담함, 암에 익숙해진 환자가 느끼는 불안, 좌절과 답답함 등을 그리면서 최대한 사실에 입각해 극을 이끌어 나간다. 그러면서도 차가운 회색의 병원 벽과 조명을 비판적으로 바라보려는 느낌도 준다.
엠마가 다른 환자의 사연을 듣고, 혼자 남겨져 암세포의 환상을 볼 때 무대는 조금씩 암세포에 잠식당한다. 무대를 빙 둘러싼 병원 문에서 하나둘씩, 암세포가 무질서하게 자라난다. 그렇게 암에 조금씩 익숙해지면서 엠마는 마침내 자신의 아들이 암일지도 몰라서 검사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한다. 암이라는 것도 아니고, 암일지도 모른다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공포스럽고 혼란스러워질 수 있는지 보여주면서 극은 2부로 넘어간다.
2부에서는 본격적으로 암 환자와 가족의 내면을 들여다본다. 1부의 음악이 주로 쉽고 발랄한 멜로디로 구성됐다면 2부의 음악은 전자음과 밴드 사운드가 많고 더 혼란스럽다. 그리고 무대 위는 점점 난장판이 되어 간다. 무대 뒤에 숨겨져 있던 밴드가 전면에 드러나고, 모든 문에선 암세포가 자라나 배우들의 등퇴장 동선마저 다 막아버린다. 비좁아진 무대 위에 배우들도 마치 암세포처럼 옹기종기 모여 앉을 수밖에 없다. 그리고 1부에서 공개되지 않았던 인물들의 내면이 조금씩 새어 나오면서 의연했던 것처럼 보였던 환자들 안의 불안이 표출된다. 환자들은 곁에 없는 그리운 이에게 하고 싶은 말을 독백처럼 늘어놓기도 하고, 옆에 있지만 차마 소리내어 하지 못하는 말을 격렬한 록 음악에 맞춰 쏟아내기도 한다.
2부는 그야말로 감정의 소용돌이 같다. 밤이 되어 병원이 가라앉으면 감정이 더욱 요동친다. 부족한 정보를 인터넷에서 검색하며 마음을 가라앉히려 하지만 낮에 감춰뒀던 속마음은 밤의 어둠을 틈타 폭발한다. 낮엔 가능성과 희망을 노래했지만 밤이 되니 암에 대한 증오가 여과 없이 터져 나온다. 그런 분노의 단계를 거쳐 환자들은 수용의 단계에 들어선다. 완강히 부정하던 호스피스 시설을 알아보기도 하고 기를 쓰고 숨겼던 암 치료 사실을 직장에 밝히기도 하며 낙관주의를 버리고 자신의 나약함을 자랑스럽게 전시하기도 한다. 그렇게 환자들은 암을 받아들이려고 노력한다.
2막 초반에는 엠마의 감정에 집중하여 더 정신없이 휘몰아친다. 복잡하면서도 불편한 사운드가 맥락 없이 이어지면서 검사 결과를 기다리는 엠마의 마음 상태를 반영한다. 간호사의 목소리는 변조되어 들린다. 마치 정신이 없어서 혼란스러울 때 주변의 소음이 웅웅대는 듯하고 집중이 잘 안 되는 것을 조명, 음악, 사운드로 표현해 효과적으로 연출했다. 고요한 가운데 복도를 서성이는 엠마의 발소리만 증폭돼서 크게 들린다. 엠마가 마침내 의사에게서 자신의 아들이 암이라는 설명을 듣는데 엠마에게 설명하는 의사의 목소리가 웅웅대는 와중에 ‘방법’, ‘수요일’ 등 특정 단어만 또렷이 들리게끔 표현한 건 충격받은 엠마의 입장에서 주변 상황이 어떻게 보이고 들리는지 관객들에게 효과적으로 전하는 연출이었다.
이 작품은 관객의 오감을 자극한다. 실질적인 고통까지 전할 순 없지만, 환자와 가족의 마음을 잠식하는 불안, 초조, 회한 등의 감정을 시각화하고 청각화해서 최대한 전하려고 노력한다. 관객을 답답한 어둠 속으로 몰아넣기도 하고, 정신없는 조명으로 혼란스럽게 만들기도 하며 불편한 사운드로 불안하게 만들기도 한다. 점점 자라나 공간을 차지하는 암세포도 환자의 몸속에서 자라나고 있을 암세포를 비유하는 효과적인 무대 장치로 보였다. <어느 평화주의자의 암과의 전쟁에 관한 안내서>는 누구에게나 갑자기 닥칠 수 있는 질병이 주는 공포와 불안을 관객들이 미리 경험하고 마음의 준비를 할 수 있게 도와준다. 자신에게 절대 일어나지 않을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던 일을, 일어날 수도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도록 도와주는 것만으로도 이 작품은 누구에게나 꼭 필요한 계몽적인 역할을 수행한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건 그렇게 무거운 주제를 직설적인 방식으로 전하면서 관객을 불안하고 불편하게 만드는 데도 불구하고 의외로 재미를 놓치지 않았다는 점이다. 메인 넘버인 “Fingers Crossed (행운을 빌어)”는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희망의 끈을 붙잡고 싶은 암 환자들의 마음을 표현하는데, 멜로디가 쉽고 밝다. 극단 컴플리시트의 실험은 어느 정도 성공했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픽션의 탈을 쓴 다큐멘터리
그런데 이 작품의 반전은 3부에 있다. 엠마의 하루를 따라간 1부, 환자들이 암을 받아들이고, 엠마가 아들의 암을 인지하면서 겪는 감정적 고통을 형상화한 2부를 거쳐 3부는 공연 시작 전에 들렸던 연출가의 목소리가 다시 개입한다. 2부에서 엠마는 극한의 감정적 고통을 표현한다. 온몸을 쥐어짜는 듯한 고통을 표현하는 강렬한 장면이 지나고, 엠마를 연기한 배우는 천천히 몸을 추스른다. 연출가의 목소리는 아무렇지도 않게 ‘제4의 벽’을 부숴버린다. 그래서 3부는 더 이상 ‘극’이 아니다. 연출가는 엠마를 연기한 배우와 대화한다. 무대 뒤에 있던 배우들이 한 명씩 나와 자신이 연기한 캐릭터의 이야기를 하는데, 실제로 나오는 목소리는 배우들의 것이 아니다. 그리고 배우들은 이내 자신의 캐릭터를 표현하는 데 이용된 소품과 의상을 벗어버리고 배우 자기 자신으로 돌아온다.
연출가는 엠마 역을 한 배우와 관객들에게 배우들이 연기한 캐릭터가 사실 실제로 존재하는 인물이라고 알려준다. 연습실에 모여 앉아 연출의 이야기를 듣는 것처럼 배우와 관객은 목소리뿐인 연출의 말에 집중하게 된다. 연출가는 극중 인물의 바탕이 된 실제 인물들이 어떤 사람이었고, 어떻게 됐는지도 담담히 알려준다. 더 이상 무대 위 이야기가 아니라 다큐멘터리처럼 현실의 무게가 무대 위를 무겁게 누른다. 연출가는 이 작품을 제작하기 위해 실제 암 환자와 생존자들을 인터뷰했고 그들이 무대 위 인물로 관객을 만났다. 게다가 실제 암 생존자를 무대 위로 불러올리기까지 한다. 막연하게 남의 일이라고 여겼던 암과 암 환자를 눈앞에 보여주면서 관객들에게 확실하게 각인시키는 것이다. 그렇게 암이란 생각보다 우리 곁에 가까이 있는 실존하는 위협임을 알린다. 그리고 그 중차대한 위협을 막거나 피할 길이 없다면 터놓고 이야기라도 해보자는 것이 이 작품이 추구하는 방향이다. 그런 이 작품의 목적이 가장 명백하게 드러나는 건 연출이 관객들의 참여를 촉구하는 부분에서다.
연출은 배우들에게 주변에 암을 겪은 이가 있느냐고 묻는다. 배우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가족이나 친구 중에 암으로 세상을 떠난, 혹은 암을 이겨낸 생존자들의 이름을 이야기한다. 그리고 연출가는 관객들에게 공을 던진다. 처음에 머뭇거리던 관객들 사이에서 이름들이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짧은 시간 동안 꽤 많은 이름이 곳곳에서 튀어나왔고 울음소리도 상당히 섞여 있었다. 암이 얼마나 우리와 가까운지 보여주는 데 이보다 더 효과적인 연출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어느새 어색한 공기가 감돌았다. 뮤지컬을 보러 와서 이런 상황을 마주할 거라 생각도 못했던 관객들은 흐트러져 있었고 무대와 객석을 가르던 제4의 벽은 무너졌으며 이미 연기를 끝내고 역할을 벗은 배우들에겐 아우라가 없었다.
엠마 역할을 했던 배우는 연출에게 이제 어떡하느냐고 소탈하게 묻는다. 연출은 뮤지컬답게 노래를 주문했고, 무대 위에 있던 생존자가 메인 넘버를 노래하기 시작했다. 거기에 배우들이 화음을 넣으며 합류하자 놀랍게도 다시 이 작품은 뮤지컬이 되었다. 점차 커지는 음악이 관객을, 관객 속의 암 환자나 생존자, 혹은 그 가족들을 감싸주고 위로했다. 약한 마음을 좀 더 드러내도 된다고, 그래도 내일은 조금 더 나아질 희망이 있다고.
아무리 무거운 주제라도 픽션일 때는 내 이야기가 아닌 남의 이야기처럼 받아들이고 깊은 공감을 느끼지 못할 수 있다. <어느 평화주의자의 암과의 전쟁에 관한 안내서>는 그래서 픽션이지만 현실을 깊게 반영한 다큐멘터리 같은 접근을 택했다. 극 중 캐릭터가 실존 인물이라는 걸 알게 되면 작품의 무게가 남다르게 다가온다. 엠마 역할을 한 배우는 연출가에게 자신이 맡은 ‘엠마’도 실존 인물이냐고 물었다. 연출가는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캐릭터라고 답했다. 그리고 다행히 자신의 아들은 이제 건강하다고 이야기해 주었다.
이야기를 모두 공감할 수 있도록 전하는 데에 진실만큼 효과적인 무기는 없을 것이다. 이 작품은 그것을 증명하는 과정이었다. 공연장 로비에는 암 환자와 생존자의 인터뷰가 재생되고 있었다. 더 많은 자료가 인터넷 사이트를 통해 공개됐고, 국립극장에서는 공연 기간에 죽음이나 투병과 관련된 강연과 워크숍도 진행됐다. 이 작품은 공연을 통해 적극적으로 이 주제에 관해 소통하려 했고 관객들은 기꺼이 응답했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59호 2016년 12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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