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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처 | [TRAVEL] 미국의 창작 산실을 둘러보다 [No.159]

글.사진 | 이아령(공연랩 부멘토) 2016-12-27 4,410

‘공연랩’(한국콘텐츠진흥원 주최, 네이버문화재단 후원, 쇼노트 주관)은 글로벌 공연 콘텐츠 개발, 제작을 위해 새롭게 만들어진 랩이다. 지난 6월부터, 프로듀서를 중심으로 공연 분야의 다양한 창작자들이 함께 아이디어를 제안하고 창작하는 시도들을 하고 있다. 그 일환으로, 랩에 참연 중인 창작자 11명이 함께 뮤지컬의 본고장 뉴욕으로 5박 7일의 워크숍을 떠났다. 이번 워크숍은 NYU 창작 워크숍, 비정형 형태의 공연 관람, NAMT(The National Alliance for Musical Theatre) 28th Annual Festival of new musicals에 참여하는 것이 주 일정이다.






기본으로 돌아간 시간    

뉴욕은 왠지 모를 설렘이 있다. 떠나기 전부터 우리 모두를 어린아이의 마음으로 들뜨게 했다. 그것도 잠깐, 고층 빌딩, 뉴요커들의 바쁜 움직임, 맨해튼의 교통 체증과 소음은 뉴욕이 복잡한 도시임을 알려주기에 충분했다.


도착 다음 날, 이번 워크숍의 가장 중요한 NYU 창작 워크숍으로 본격적인 일정이 시작되었다. 우리는 먼저 뉴욕대학 대학원(NYU TISCH) 1학년 Musical Theatre Lab 수업을 참관했다. 20대 초반에서 60대 후반까지 전 세계에서 온 학생들로 구성된 클래스였다. <씨왓아이워너씨>로 잘 알려진 마이클 존 라키우사 등 세 명의 교수가 함께했다. 네 시간 동안 학생들은 각자의 작품을 발표했다. 타인의 작품을 코멘트 한다는 것은 민감한 문제이나 교수들과 학생들은 거리낌 없이 코멘트를 주고받았다. 코멘트의 시작을 상대방 작품에 대한 칭찬과 이해를 우선으로 했기에 가능한 것 같았다. 모두가 작품의 변화 과정을 깊이 공유하고 있었고, 자기 작품인 양 진지했다. 뮤지컬의 기본은 협업임을 다시 한 번 상기시켜 주었다. 


오후부터는 우리 작품 개발을 위한 자체 워크숍으로 뉴욕대학교 뮤지컬 창작과 학과장이자 티시예술대학 부학장인 작사가 사라 슐레징어(Sarah Schlesinger) 교수와 작곡 담당 교수인 프래드 칼(Fred Carl)이 함께했다. 현재 랩에서 최종 프로젝트로 선정한 조지 오웰의 『1984』와 미야자와 겐지의 『은하철도의 밤』을 주제로 이야기를 나눴다. 원작이 있는 작품을 어떻게 각색할지, 원작의 의미를 훼손하지 않고 뮤지컬이라는 장르에 맞게 변용하는 작업에 대해 토의했다. 



두 분은 우리들에게 끊임없이 질문했다. 왜 윈스턴은 일기를 썼을까? 줄리아는 왜 하필 윈스턴을 사랑했을까? 조지 오웰이 『1984』를 썼을 때처럼, 우리에게 앞으로 일어날 미래에 대한 경고의 메시지는 무엇인가? Why, Why, Why. 그들은 자신들의 의견을 제시하기보다 질문을 통해 우리가 작품을 다양하게 해석할 수 있도록 이끌었다. 작품 내면에 숨은 의미를 드러내고, 그 이면의 음모를 살피고, 그 원인을 다양하게 분석했다. 우리가 당연하게 생각했던 개념들을 전복시키는 것이 작품 해석의 기초라는 것을 강조했다.


몇 개월 동안 우리는 다소 무거운 분위기의 작품을 상업 뮤지컬로 제작하기 위해 고민해 왔다. 어두운 결말 속에서 어떤 희망을 보여줄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두 교수는 내용이 무엇이든 뮤지컬의 긍정적인 에너지, 즉 ‘희망’의 요소를 찾아내고, 그것을 표현하는 방법을 고민해 보라고 조언했다. 상징적인 물건, 장소, 노래 등 희망의 단초가 될 수 있으며, 어떠한 절망 속에서도 희망의 순간은 존재하므로, 그 지점을 찾는 것이 뮤지컬 구성의 핵심이라고 했다. 두 교수는 우리를 다시 기본으로 돌려놨다. 다시 돌아간 그 시작점은 익숙했다. 이전과는 다른 나를 느꼈고 잊었던 열정이 되살아나는 걸 느꼈다.


이틀 연속으로 워크숍을 이어갔다. 이날 워크숍은 전날 분위기와 사뭇 달랐다. 우리도 머릿속에 맴돌던 생각을 꺼내기 시작했다. 작가, 연출, 작곡, 안무, 디자인 등 자신의 전문 분야를 중심으로 모두가 하나의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끊임없이 의견을 제시했다. 두 교수는 대본이 무엇인지 질문했다. 흔히 대본을 텍스트 즉 대사와 가사라고 생각하는데, 사실 그보다는 구조와 컨셉을 제시하는 설계 도면과 같은 것이라고 했다. 대본을 만드는 과정부터 다양한 분야의 크리에이터가 함께하는 과정이 매우 합리적이라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행운이라며 랩의 결과물이 기대된다고 덧붙였다. 그들은 우리 랩의 진행 과정을 응원하겠노라 했고, 우리는 아쉬움과 감사함으로 돌아섰다.




형식 파괴의 작품 관람

비정형 뮤지컬의 레퍼런스로 언급되었던  <나타샤, 피에르 그리고 1812년의 대혜성(Natasha, Pierre and the Great Comet of 1812)>과 <슬립 노 모어(Sleep No More)>를 관람했다. 이제 막 브로드웨이로 입성한 <나타샤, 피에르 그리고 1812년의 대혜성>은 『전쟁과 평화』에서 한 챕터를 각색하여 레스토랑 형태의 천막에서 관객이 참여하는 공연으로 초연을 했다고 한다. 인기 가수 조시 그로번(Josh Grovan)의 출연 때문인지 객석은 꽉 찼다. 무대와 객석의 자유로운 구성, 마치 카바레쇼 같은 내러티브 그리고 액터 뮤지션의 활용 등 여러 가지 요소가 유기적으로 작용해 친밀함을 특징으로 하는 이 작품을 일반 대극장에서 훌륭히 공연해 냈다.


이미 관객 참여형 공연으로 유명세를 타고 있는 펀치드렁크(Punchdrunk)의 <슬립 노 모어>의 공연장은 오래된 건물을 호텔 형식으로 개조한 매키트리 호텔이었다. 극장이 아닌 다른 공간(호텔, 식당, 야외 등)에서 펼쳐지는 또 다른 형식의 공연이라 개인적으로 기대되는 작품이었다. 히치콕의 영화에 영감받아 셰익스피어의 <맥베스>를 새로운 형태로 재현한 이 작품은 관객들이 자유롭게 공연장을 돌아다니며 관람하는 형태다. 정해진 순서와 방식이 없기 때문에 매우 개인적인 공연 체험을 하게 된다. 배우를 가까이서 볼 수 있고 소품을 만질 수 있다. 즉 내가 서 있는 곳이 객석이자 무대가 된다. 개인적이고 내밀한 체험이어서 나만의 공연을 연출하고 즐기고 있다는 생각이 들게 했다.


이런 파격적인 공연의 시작은 어땠을까. 이 엄두도 나지 않는 공연을 가능하게 한 과정은 엄청난 도전과 시련의 연속이었을 것이다. 어쩌면 우리가 지금 하고 있는 랩도 이 작품의 시작처럼 무모할지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지속적인 지원이 필요  

마지막 일정으로 우리는 NAMT(The National Alliance for Musical Theatre) 28th Annual Festival of New Musicals에 참석했다. NAMT는 미국 뮤지컬 시장을 붐업시키기 위해서 창작, 개발, 프로덕션, 프리젠테이션, 네트워킹, 프로그래밍 서비스 등 다양한 지원을 하는 비영리 단체다. 해외뿐 아니라 미국 32개 주에 걸쳐 무려 160개의 단체와 40명의 개인 회원이 운영과 후원을 도맡아 한다. 이 페스티벌은 새로운 뮤지컬의 리딩 공연을 통해 프로듀서, 창작자, 배우를 선보이는 동시에 극장 관계자 및 공연 전문가와의 교류를 제공하는 데 목적이 있다. 주로 초청받은 공연 관계자들을 위한 행사이므로 일반 관객은 객석이 비었을 때 볼 수 있다. 우리는 정식 초청 인사가 아니었기 때문에 남는 좌석을 기다려야 했다. 500석가량의 두 개 공연장에서 동시에 40분 전후로 다른 공연이 진행되었다. 한국과 다른 점이 없는 리딩 공연이었지만 이른 아침 비가 오는데도 새로운 공연과 창작자, 배우를 만나기 위해 몰려든 관계자들과 그 남은 자리를 차지하려는 뮤지컬 팬들이 부러웠다. 물론 세계에 단 한 군데밖에 없는 뉴욕이라 가능한 일이었다. 올해로 28회째를 맞이하는 NAMT의 가장 큰 원동력은 무엇일까. 그것은 아마도 지속적이고 안정적인 재정 지원이 아닐까. 최근 우리나라에도 뮤지컬 개발 지원 사업들이 생겼지만, 신인에 국한되어 있고, 개별적인 작품 지원에 그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심지어 정권이나 수장의 관심사에 따라 사업 내용이 바뀌기 일쑤다. 새삼 국내 뮤지컬 시장 활성화를 위한 전반적인 지원을 위해 시도했던 서울뮤지컬페스티벌의 폐지가 안타깝다.



어떤 공연은 이미 관계자들이 꽉 들어차 보지 못한 공연들도 있었다. 그 보지 못한 공연 설명을 보다 보니 낯익은 이름들이 보였다. 분명히 한국 이름이었다. 가장 경쟁이 치열한 이곳 뉴욕에서 밤새도록 노래를 부르고 작곡을 하고 글을 쓰고 있는 동료가 있다는 생각이 들자 뿌듯했다. 얼굴도 모르는 그들에게 박수를 쳤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59호 2016년 12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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