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민간단체가 운영하는 창작뮤지컬 개발 프로그램을 통해 선보인 작품들이 두각을 보이고 있다. 다년간 프로그램 운영을 통해 다양한 시도와 노하우가 쌓이면서 결과가 만들어진 것이다. 대표적인 민간 개발 프로그램인 CJ 크리에이티브 마인즈의 조용신 예술감독, 우란문화재단의 김유철 피디, 대명문화공장의 한경숙 피디와 각 프로그램의 역할과 활동에 대해 이야기했다.
프로그램 소개
민간에서 운영하는 대표적인 뮤지컬 개발 프로그램의 담당자분들을 모셨다. 각 프로그램을 소개해 달라.
조용신 2004년 문화 콘텐츠 전문 기업으로서 CJ엔터테인먼트(현재 CJ E&M)가 창작뮤지컬 쇼케이스라는 행사를 시작했는데, 박칼린 음악감독의 킥뮤지컬컴퍼니와 함께 창작자 양성과 콘텐츠 개발을 2008년까지 진행했다. 2010년 CJ 문화재단이 이를 발전적으로 확대한 것이 연극/뮤지컬 신인 창작자 지원 프로그램인 크리에이티브 마인즈이다. 당시에는 재단이라는 성격상 직접 본공연을 제작할 콘텐츠를 찾기보다는 신인 작가와 작곡가의 창작 능력을 강화시키는 프로그램으로 시작했다. 매년 4~6개의 작품을 선정해 CJ아지트 광흥창에서 리딩 워크숍 형태로 발표했다. <모비딕>, <여신님이 보고 계셔>, <풍월주>, <라스트 로얄 패밀리>, <아랑가> 등이 지원을 거쳐 본 공연까지 오른 작품들이다. 공연계와의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CJ아지트 대학로를 개관하면서 본 공연 제작이 가능한 환경을 마련했다. 이번 달에 제작 공연의 첫 사례로 <판>이 공연된다. 앞으로 크리에이티브 마인즈에서 선정된 작품들 중에 매해 한두 작품 정도 극장에 어울리는 작품을 선정하여 직접 제작 공연을 선보일 예정이다. 또한 3주 정도 CJ아지트 공간을 무상 대여하고 제작 지원비를 지급하는 연극 공간 지원 프로젝트도 운영하고 있는데 올해에는 다섯 작품이 공연될 예정이다.
김유철 2012년 1월에 프로젝트박스 시야라는 극장을 개관하면서 행복나눔재단 사업의 일환으로 시작했다. 2014년 우란문화재단은 행복나눔재단의 공연사업팀에서 문화 콘텐츠를 집중 제작·지원하는 재단으로 분리되면서 지금에 이르게 됐다. 처음에는 상업 공연 제작도 염두에 뒀으나 이미 그런 작업은 많이 이루어지고 있으니, 업계에 이바지할 수 있는 일을 찾아보자고 해서 만들어진 것이 창작자를 지원해서 본 공연에 이르기 전까지의 단계를 지원하는 프로그램인 ‘시야 스튜디오’이다. 대본 개발, 리딩 쇼케이스뿐만 아니라 프로덕션과 만나는 지점을 도와주려고 하기 때문에 창작자들의 아이디어를 비주얼적으로 구현하는 트라이아웃 형태의 무대화 작업까지 하고 있다. 예술감독 책임제나 멘토제로 운영하는 것이 아닌, 열망이 있는 창작자를 선정하고 환경을 지원해 꿈에 가까이 갈 수 있게 돕는 역할을 한다. 그래서 공모가 아니라 창작자를 직접 찾고 있다. 시야 스튜디오의 전 단계인 ‘시야 플랫폼’에는 대본을 집필하는 프로그램 ‘시야 플랫폼:작곡가와 작가’가 있다. 시야 플랫폼:작곡가와 작가에서 집필한 대본을 시야 스튜디오를 통해 개발한 작품 중 하나가 바로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이다. 뮤지컬만 예시로 들었지만 연극, 전시, 컨템퍼러리 등 다양한 장르의 창작자들을 지원하려고 한다. 올해 라인업에는 연극도 있고 연말에는 컨템퍼러리 장르 또한 준비 중이다.
한경숙 2014년 대명문화공장 개관 이후 두 개관을 운영하면서 다양한 제작사와 만나다 보니 작품 개발부터 홍보, 마케팅까지 할 수 있는 레퍼토리 공연장에 대한 니즈가 있었다. 공연장 대관 투자를 해보면서 제작사가 공연장을 대관하고 제작하기까지 과정이 어렵다는 것을 느껴 제작사와 상생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했다. 특히 창작 공연의 경우, 제작사가 작품을 선택하고 올리기까지 다양한 의문을 지닌 채 공연을 올린다. 그 시험을 거치는 과정을 공연장에서 도움을 주면 어떨까 고민을 했다. 그 고민의 산물이 ‘동행’이라는 프로그램이다. 첫 해는 네오 프로덕션의 이헌재 대표, 박용호 대표와 협업으로 시도했는데, 올해는 공모전을 열어 작품을 받아 보았다. 파트너사를 개발하려는 목적이었는데 창작자들이 많이 지원해 주었다. 창작이나 라이선스 상관없고, 심지어 한동안 공연되지 않았던 작품이라도 대명문화공장에 어울리는 작품이라면 지원 가능하다. 제작사에게는 관객들에게 사전에 노출해서 본 공연까지 진행해도 좋을지 관객과 소통하고, 작품에 대해 수정 보완을 거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설문을 통해 관객 의견을 받는데, 설문 결과를 토대로 간담회를 진행한다. 관객들의 요구를 어떻게 반영할 수 있을지, 본 공연을 올려야 할지, 아니면 리딩을 한 번 더 해야 할지, 함께 고민한다.
동행은 경쟁으로 본 공연작을 선정하는 것이 아닌가?
한경숙 경쟁이 아니다. 세 편이 다 긍정적인 반응이라면 모두 올릴 수 있다. 또는 공연장 스케줄이 맞지 않거나, 더 좋은 파트너사가 생겨서 다른 공연장에서 하는 것도 무관하다. 꼭 우리 공연장에서 하지 않아도 된다.
CJ 크리에이티브 마인즈나 우란의 경우는 지원자의 조건이 다르다.
조용신 2015년까지는 본 공연을 올린 작품이 네 편을 넘지 않아야 한다는 조건이 있었고 2016년부터는 신인, 기성 구분을 두지 않고 있다. 지원 서류는 시놉시스, 대본 혹은 트리트먼트, 음원 세 곡 이상으로 동일하게 유지하고 있다. 업계에서 한두 작품 정도 발표한 이른바 ‘중고신인’들이 각종 지원 제도에 많이 지원하고 있는데, 그동안 크리에이티브 마인즈는 한 번도 본 공연을 해보지 않은 신인 창작자들도 선정된 사례가 많아서 그들의 지원 비율도 상당히 높다.
김유철 우리는 역으로 데뷔를 하지 않은 사람은 지원하지 않는다. 아직은 초창기 기틀을 닦고 있는 단계이다. 중고신인이나 기성 창작자가 새로운 시도를 하고 싶다 해도 편하게 제작할 수 있는 환경이 아니다. 이런 분들을 지원하려다 보니, 선생님들이나 주변 관계자의 추천을 받고 직접 공연을 보러 다니면서 창작자들의 작업을 살핀다. 우리가 예술감독의 역할을 하는 게 아니라, 긴 호흡으로 이 과정을 중요하게 생각하면서 함께할 수 있는 창작자를 찾는 편이다. 지금까지 대본이 있는 상태로 출발한 작품은 없었던 것 같다. 아이디어가 있는 창작자를 만나서 이런 식의 작품 개발에 어울리는 분이라고 여겼을 때 트리트먼트나 필요한 것을 받아 보았던 것 같다.
그러면 대명만 완벽한 대본을 받는 것인가?
한경숙 우리는 완전히 열려 있다. 대본, 음악만 있어도 상관없고, 공연한 풀 영상이 있어도 참여할 수 있다. 아이디어 차원도 가능하긴 한데 10월에 공모해서 2월에 리딩을 해야 하기 때문에 그때까지 리딩 공연을 할 수 있는지가 중요하다.
개발 과정
선발 과정에서 다양한 어려움이 발생할 수 있을 것 같다.
조용신 크리에이티브 마인즈는 심사 위원 제도로 운영된다. 나(예술감독)를 포함해서 업계에서 활동하는 각 분야 전문가들이 대화를 나누며 합의를 도출해 낸다. 재단의 운영 취지에 부합하면서 공연 생태계에 도움이 되도록 완성도, 대중성, 그리고 발전 가능성 등을 보고 있다. 물론 나나 재단에서 여러 정보를 모아서 독자적으로 판단할 수도 있겠지만 여러 전문가들과 함께 충분한 토론을 거쳐서 결정하는 것이 지원 사업의 취지에도 부합한다고 보기에 앞으로도 심사 위원 제도는 지속할 예정이다.
대명은 공모를 통해 선정한 것은 올해가 처음이다. 다양한 형태의 작품들이 지원이 가능해서 선정하기도 어려웠을 것 같다.
한경숙 생각 외로 많이 지원해 주셨다. 제작사보다는 극단이나 개인 창작자들이 팀을 이룬 지원자가 많았다. 오히려 선정하기 쉬웠다. 대명문화공장의 레퍼토리가 될 수 있는 공연을 찾는 게 목적이기 때문에, 이곳에 적합한 공연이냐가 1순위 조건이다. 연강홀 정도에서 가능한 작품을 지원한다면 콘텐츠가 좋아도 선정되기 힘들다.
CJ 크리에이티브 마인즈는 멘토제를 통해 작품을 개발한다. 많은 지원 프로그램이 벤치마킹하다 보니 역할이 축소되는 인상이다.
조용신 우리는 처음부터 멘토제를 시행해 왔다. 창작자들로부터 가려운 곳을 긁어줘서 많은 도움이 됐다고 이야기를 들었다. 하지만 말한 대로 이 제도가 이제 업계에 너무 흔해지다 보니 멘토 인력풀이 부족해졌다. 또한 주로 같은 분야의 선배이다 보니 개인적인 취향이 개입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래서 멘토의 직업군을 2015년부터 연출가나 프로듀서로 전환해서 대본과 음악의 세세한 수정 조언보다는 그 작품이 향후 업계 내에서 어떤 공연 상품이 될 수 있는지로 포커스를 옮겼다. 멘토제는 여전히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 외에 창작자의 능력을 발전시킬 또 다른 대안이 있는지도 고민해야 할 시기다.
시야 플랫폼은 대본 개발 이외에도 다양한 프로그램이 운영된다. 이런 고민은 어떻게 시작된 것인지?
김유철 시야 플랫폼은 우란문화재단의 여러 사업 중 인재 육성을 담당하는 프로그램들을 보유하고 있다. ‘사람’에 집중하는 재단의 성격을 가장 직접적으로 담아낼 수 있는 단계이기에, 재단이 선정한 창작자가 창작 활동을 지속적으로 할 수 있도록 고민하는 지점에서부터 프로그램 라인업이 시작된다. 예를 들어 가장 특별하게 생각했던 프로그램은 필라테스와 심리 테라피이다. 창작자의 신체를 건강하게 하고, 심리적으로 자신을 잘 알게 되면 심도 있는 작품을 집필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시야 스튜디오에서 우란은 어떤 역할을 하는가?
김유철 시야 스튜디오 같은 경우 실연이 가능한 결과물을 향해 창작자가 긴 호흡으로 달려갈 수 있게끔 하는 것을 최종 목표로 삼고 있다. 그 결과물을 창조해 내기 위해 창작자에게 필요한 제반 사항을 되도록이면 규제 없이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대처하여 제공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
대명에서는 2016년 선보인 리딩 공연을 2018년에 올리게 된다. 아직 결과물이 없어 평가가 이르지만 공연장이 직접 제작 지원에 나서는 것에 대해 내·외부적 평가는 어떤가?
한경숙 지원을 통해 공연장이 활성화될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시작한 것인데, 공연계와 상생을 목표로 가겠다고 윗분들에게 보고를 했을 때 격려해 주셨다. 공연이 올라가서 좋은 성과가 나오면 더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것 같다. 외부적으로는 얼마 전 투자 펀드 좌담회에서 한 제작사 대표님이 우리 프로그램을 거론하면서 잘하고 있는 것 같다고 말씀해 주시더라. 공연장이 앞서서 진행하는 것에 긍정적인 평가를 내려주셨다.
CJ 크리에이티브 마인즈는 많은 작품을 제작 지원해 오면서 도움이 되었던 방식이라면?
조용신 뮤지컬 창작은 협동 작업을 통해 발전한다고 믿고 있다. 나 역시 예술감독 이전에 현장에서 작품 활동을 하는 한 사람으로서 평소에 창작자들과 스킨십을 많이 하려고 한다. 연습 과정에서도 창작자들이 배우, 스태프과 많은 대화를 하도록 유도한다. 리딩 공연 관객들을 대상으로 설문을 받은 것도 많은 도움이 됐다. 2회 공연을 하면 설문이 170개 정도가 들어온다. 어떤 관객은 전문가 이상의 디테일한 조언을 남겨준다. 이 답변을 일일이 분석하고 주관식 답안은 토씨 하나 안 바꾸고 정리해서 창작자에게 전달한다. 자신들이 생각했던 방향이 관객에게 제대로 반영되지 않은 지점도 확인할 수 있고, 관객들의 반응으로 자연스럽게 대중성의 방향을 찾게 되는데, 그게 큰 자극이 되었다고 하더라.
우란도 횟수가 쌓이면서 성과가 나오기 시작한다. 아티스트 중심의 프로그램이다 보니 다양한 방법을 시도했을 것 같다. 좋은 결과가 있었던 방법이라면?
김유철 무엇이든 제한을 두지 않으려고 했던 점이 좋은 결과로 이어졌던 것 같다. <어쩌면 해피엔딩> 내부 리딩을 할 때 느꼈던 점이다. 내부 리딩은 창작진이 대본을 점검할 수 있는 단계이다 보니, 제작비적인 부분도 그렇고 주로 키보드나 피아노 한 대로만 진행한다. 그런데 작곡가가 열정적으로 전곡을 완성했고, 리딩이지만 편곡을 해서 라이브로 시도해 보고 싶다고 했다. 원래 계획되지 않았던 부분인데 이런 시도를 통해 창작자가 음악적으로 어떻게 끌어가야 할지 많은 공부가 됐다고 하더라. 작년에 출장을 가서 플레이라이트 호라이즌(Playwrights Horizons) 단체 총괄 프로듀서와 미팅을 했다. 그분이 “창작자를 중심으로 할 것이라면 창작자가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진정으로 들어주고, 재단 차원에서 시도해 볼 수 있도록 방법을 고민하고, 도와주는 것이 중요하다. 단체에서 정해 놓은 기준 안에서 그들을 맞추는 방식은 창작자 중심이라고 말하기 힘들 것 같다”고 하더라. 판단을 하는데 중요한 지표가 된 말이었다.
대명은 올해 첫 공모 방식을 했는데, 나름 만족하는 것이나 아쉬운 점이 있을 것 같다.
한경숙 뮤지컬 지원작들은 세 가지 스타일로 나눌 수 있을 것 같다. 한국적인 감성의 음악 소재, 사극, 전쟁물 등 이 세 가지로 풀어가는 작품이 대부분이었다. 그런 면에서 지원 작품들이 좀 더 다양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우리 프로그램은 경쟁 구도가 아닌데, 진행하면서 알게 모르게 서로 비교하고 경쟁을 하게 된 점은 아쉬웠다.
CJ 크리에이티브 마인즈는 오랫동안 이 프로그램을 유지해서 신인 창작자들의 취향을 파악하고 있을 것 같다.
조용신 취향이라기보다 작품의 배경이랄까? 한국 영화에는 반드시 한국 배우가 출연해서 한국인의 이야기를 하지 않나. 하지만 최근 창작뮤지컬은 서양을 배경으로 하는 경우가 많다. 꼭 서양이어야 뮤지컬적인 판타지가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다양한 캐릭터가 있는 원작이 많기도 하고, 뮤지컬이 서양 문화에 기반하고 있다 보니 그런 추세를 띠는 것 같다. 가령 2016년 공연된 크리에이티브 마인즈 작품들도 대부분 외국 배경의 작품이었다. 그런데 본 공연 제작 작품으로 한국적인 소재의 <판>이 선정됐다. 이는 소재 때문이 아니라 우리 극장 환경과 <판>이 추구하는 무대의 양식화가 가장 어울렸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현재 신인 창작자들이 다양한 소재 개발에 애쓰고 있다. 서양을 배경으로 하는 작품이 많아지고 있는데 한국이든 서양이든 우주든 관계없다. 문제는 극장 공간에 맞는 무대의 양식화를 이끌어낼 수 있는 형식적인 세련미가 대본과 음악 안에 존재해야 한다. 대학로 기반의 중소극장 창작뮤지컬이라면 더욱 필요하다.
한경숙 좀 더 세련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너무 닫혀 있다. 음악 스타일도 확장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뮤지컬 음악스러워야 한다는 생각이 있는 것 같다.
조용신 공모를 하게 되면 대본의 완성도를 먼저 보게 된다. 대본이 별로인데 음악의 완성도만으로 선정되는 경우는 많지 않다. 그러다 보니 대본의 완성도에 신경 쓰느라 음악의 중요성까지 간과되는 일이 벌어지기도 한다. 뮤지컬에서 음악의 힘은 향후 무대화 과정에서 엄청 큰 힘을 발휘한다. 그리고 뮤지컬 음악은 장르의 다양성면에서도 무궁무진하다. 정해진 것은 없다.
음악뿐만 아니라 소재에도 트렌드가 있지 않나.
한경숙 소재는 분명 유행을 타는 것 같다. 어떠한 작품이 인기가 많아지면, 그 작품과 비슷한 느낌의 공연들이 많이 나타났던 것 같다. 그러나 <어쩌면 해피엔딩>이나 <키다리 아저씨>의 사례를 보면 어떤 소재가 성공 가능성이 높은지 모르겠다. 결국 작품성을 인정받을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가 트렌드이지 아닐까, 생각한다.
김유철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는 ‘시야 플랫폼:작곡가와 작가’의 여섯 개의 작품 중 하나였다. 특별히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를 시야 스튜디오 개발 작품으로 선택한 이유는 재단에서 한 번 더 긴 호흡으로 제작할 기회를 창작진에게 제공하면 상대적으로 낯선 소재를 대중적으로 다가가게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트라이아웃 공연의 반응이 좋았음에도 낯선 소재여서 창작진은 대중들의 선택을 받을 수 있을지 고민했는데, 걱정이 무색하게 좋은 결과로 본 공연을 마무리하게 되었다. 미리 예측할 수 있는 성공 지표나 트렌드를 집어낸다는 것은 더욱 어려워진 것 같다.
인큐베이팅 작업 이후
대명문화공장은 극장에 어울리는 콘텐츠를 찾는 게 목적이다 보니 ‘동행’의 작품들은 자연스럽게 본 공연으로 이어진다. CJ 크리에이티브 마인즈와 우란은 인큐베이팅 작업 이후에 대해 고민이 많을 것 같다.
조용신 크리에이티브 마인즈 이후 본 공연이 지속되고 티켓 판매금의 일부가 로열티로 창작자에게 돌아가서 꾸준한 보상이 이루어지는 게 단체의 최종 목표일 것이다. 하지만 시장에서 모든 작품이 다 공연되기는 어렵다. 예그린앙코르처럼 다른 지원 제도를 통해 본 공연에 오르기까지 작품을 지원해 주는 제도도 사라진 상황이다. 그동안은 리딩 이후 다른 지원 제도에 나갈 때 유리하도록 공연 자료를 제공해 주고 크리에이티브 마인즈 출신 창작자들이 자긍심을 가지고 커뮤니케이션 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해 주는 것으로도 만족했다. 하지만 올해부터 극장과 어울릴 수 있는 몇 편을 제작 공연으로 올리게 되어서 그다음 단계인 상업 프로덕션화까지도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사실 해외에는 좋은 사례가 너무 많다. 퍼블릭 시어터(The Public Theatre)에서 개발한 공연이 너무 잘돼서 브로드웨이에서 투자자들이 몰렸을 때 극장이 지분을 받기도 한다. 시장이 커서 가능한 일이다. 우리나라의 시장 규모로는 그런 구조가 어렵다.
김유철 다행스럽게도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나 <어쩌면 해피엔딩>이 좋은 그림을 만들어갈 수 있었지만 언제나 핑크빛 그림을 그릴 것이라고 장담할 수 없다. 그래서 우리 재단에서 만드는 공연에 관심을 가지는 파트너사가 있어야 할까. 지역 공연장과 연계할 방법은 없을까. 고민하게 된다. 외국 같은 경우는 역으로 상업 프로듀서들이 개발 단체에 위탁 개발을 맡겨서 개발 후, 상업 프로덕션으로 이어가는 방식도 시도된다. 우리는 창작자를 지원하는 방식인데 그렇게 되면 프로듀서가 하고 싶은 것을 지원해야 하는 딜레마에 빠지게 될 것 같고, 이런저런 고민이 많다.
해외의 비슷한 민간 프로그램으로 퍼블릭 시어터나 플레이라이트 호라이즌 같은 곳을 예로 들었는데, 그곳의 작업이 우리와 비슷한가?
조용신 비영리 극장에서 제작하는 공연 개발 프로세스는 엇비슷하다. 개발 이후 시장 환경이 다른 것이다. 지금 우리나라 지원 제도에서 배출한 신작들이 나갈 수 있는 곳은 대학로가 최종이다. 물론 대극장이 있을 수 있지만 신인 창작자 인큐베이팅 프로그램이 개발 과정을 거쳐 대극장으로 가는 사례는 많지 않다.
김유철 우리 재단에서 했던 <곤 투모로우> 같은 작품이 있지만, 이것은 여러 의미에서 이지나 연출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한경숙 동행은 이러한 개발 과정을 거쳐 상업 시장으로 진출한 공연이 적다는 고민에서 시작한 프로그램이다. 본 공연으로 가기 위한 기대 환경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고, 거기서 출발했다.
앞서 말한 대로 지역 공연장 같은 경우 콘텐츠가 필요하지만 자체 제작할 여건을 갖춘 곳이 많지 않다. 그런 곳과 잘 연결하면 한국적인 모델이 나오지 않을까.
김유철 미국에 NAMT 라는 단체가 있다. 우리가 거기 회원인데 미국 전역에 뮤지컬 개발과 프로덕션을 지원하는 극장, 개인, 또는 극장 기반 단체들이 백여 군데가 넘는다. 예를 들어, 작품 개발에 1부터 8단계가 있다면 NAMT에 발표된 작품들이 이후 필요에 따라, 각 단계에 맞게 지원받을 수 있도록 지원 단체들 사이의 커뮤니티가 활성화되어 있었다. 이런 점이 가장 부러웠다. 시장이 달라서 이 방식을 그대로 받아들일 수는 없지만, 우리도 단체들 사이에 도울 지점을 찾아서 한국만의 시스템을 만든다면 좀 더 공생할 수 있지 않을까.
국가 주도 지원 프로그램은 다들 비슷한 형태의 개발 프로그램으로 운영되고 있다.
조용신 최근 콘텐츠진흥원에서 운영하는 프로그램이 굉장히 많아졌다. 나라가 돈을 대고 제작사가 개발을 대행하는 형태인데, 글로컬에서 <팬레터>가 나왔고, 최근에는 인큐라는 프로그램도 있었다. 문예위의 창작산실 뮤지컬 부문도 이제 10년 가까이 되어 가고 있다. 어떤 작품을 선정하고 개발해야 할 것인가 하는 방향성은 공공이나 민간이 아주 큰 차이는 없는 듯하다. 하지만 개발 프로세스는 차이가 있다. 창작자들이 국가 공공 프로그램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정산 처리를 위해 제작사를 구해야 한다. 그러지 못하면 창작자가 직접 프로덕션을 만들고 ‘행정 담당자’를 PD란 직책으로 고용하게 되는데 온전한 의미의 작품 프로듀서는 아니다. 왜냐면 공공 예산으로부터 작품의 제작 지원금을 받아내는 데 창작자의 역할이 훨씬 컸기 때문이다. 이른바 지원금 시장이 생기기 시작하고 한시적으로 지원금으로만 제작되고 사라지는 작품들도 많아졌다. 이러다 어느 날 공공 지원 제도가 없어지면 이런 프로세스 안에 있던 ‘행정 담당자’는 프로듀서로서 자생하기 힘들 것이다.
한경숙 공공 예산이다 보니까 꼭 해당 기간 안에 결과가 나와야 한다. 그러지 말고 예산을 나누고 장기적인 계획으로 집행했으면 좋겠다. 창작은 평균 삼연까지 공연을 해야 수익 구조가 생긴다. 처음부터 수익 구조가 만들어지는 작품은 거의 없다. 지원금을 한 작품의 개발, 리딩, 공연, 재연까지의 프로세스로 운영했으면 좋겠다. 그래야 창작자와 제작사와 신뢰를 가질 수 있고 정산도 투명하게 처리될 것이다. 동숭아트센터나, 아트원시어터 공간을 지원하는 사업이 있는데 실제 대관할 수 있는 기간이 짧거나 선정되기까지 오랜 기간이 걸려서 제작사들이 공연을 올리는 데 어려움을 겪곤 했다.
김유철 좀 더 긴 호흡으로 각각의 요구를 모아서 연결해 주었으면 좋겠다. 각각의 특성에 맞는 프로그램이 있고, 다양한 창작자가 있고, 다양한 성격의 극장이 있는데 이를 잘 헤아려서 연결하는 것은 민간이 하기 힘든 일이다. 더 윗 단계에서 해주어야 한다.
대명문화공장처럼 제작 극장으로서 제작사의 작품 개발에 참여하는 모델이 활성화되는 것은 힘든 일인가?
한경숙 대학로에서 운영 중인 극장들은 2백여 개가 넘는다. 건물주가 직접 운영하는 공연장은 극히 드문 것으로 알고 있다. 대부분 임대로 운영되기 때문에 공연장에서 임대료 외 운영비나 관리비는 그대로 공연장의 몫이다. 대관 투자만 하더라도 실제 수익을 내면 다행이지만 그렇지 못할 확률이 더 많다. 담당자 입장에서는 리스크 부담 없이 대관만 해주는 편이 훨씬 편하다.
조용신 해외 비영리 극장이라고 하면 후원자들의 후원으로 극장을 비영리로 운영하는 구조다. 이곳에서 개발한 작품이 브로드웨이에 가면 프로덕션의 성격과 투자자가 바뀐다. <마틸다>는 로열 셰익스피어 컴퍼니에서 제작해서 웨스트엔드 공연까지 직접 제작을 했다. 굉장히 큰 베팅을 한 것이다. 그렇게 갈 수 있었던 것은 <레 미제라블>이 좋은 성과를 냈기 때문이다. 이런 대극장을 목표로 한 상업 프로덕션 구조까지 가기 위해서는 예술감독, 경영감독, 제작 프로듀서의 역할 분담과 협력이 중요하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62호 2017년 3월호 게재기사입니다.
* 본 기사와 사진은 “더뮤지컬”이 저작권을 소유하고 있으며 무단 도용, 전재 및 복제, 배포를 금지하고 있습니다. 이를 어길 시에는 민, 형사상 법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