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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컬처 | [NOW IN NEWYORK] <컴 프롬 어웨이> [No.164]

글 |여지현 뉴욕 통신원 사진 |Matthew Murphy 2017-06-05 7,228

인류 최악의 상황에 최고의 순간을 경험한 사람들의 이야기    

<컴 프롬 어웨이>

COME FROM AWAY





깊은 상처를 남긴 9·11 테러


벌써 15년이 훌쩍 지났지만 많은 사람들에게 9·11 테러는 아직도 깊고 큰 아픔으로 남아 있다. 당시 사고로 발생한 사상자만 만 명에 이를 뿐 아니라, 이후 미군의 10년 넘는 보복 공격으로 중동 지역에 그의 몇 배가 넘는 사상자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무장 이슬람 세력의 성장과 그에 따른 차별과 갈등이 악화되는 등 9·11 테러는 역사의 흐름을 바꾼 비극적 사건이다. 지난 3월 브로드웨이에 개막한 캐나다 뮤지컬 <컴 프롬 어웨이>는 9·11 테러 이후 뉴펀들랜드의 갠더라는 작은 마을에서 일어난 일을 다룬 작품으로, 어둠 속에서도 희망을 볼 수 있다는 메시지를 그린다.


뉴펀들랜드는 캐나다 동쪽 끝에 위치한 어업과 임업 중심의 시골 마을이다. 1960년대 초, 장거리 제트 연료 비행기가 상용화되기 전까지만 해도 갠더 마을에 있는 갠더 공항이 북미 동북부 지역의 가장 큰 공항으로서 대서양을 횡단하는 비행기의 기착지 역할을 했다. 당연히 마을도 붐볐다. 하지만 1960년대를 지나면서 공항의 역할이 크게 축소되면서 갠더는 한적한 시골마을이 되어갔다. 9·11 테러 당시 미국 항공국은 사건 발생 직후 발 빠르게 미국 영공 비행 금지 명령을 내렸는데, 그에 따라 캐나다 항공국은 ‘노란리본’이라는 작전명으로 도합 250여 대의 비행기를 캐나다의 크고 작은 공항에 임시 착륙시켰다. 그중 사십 대에 가까운 비행기가 갠더 공항에 비상 착륙하게 된다. 기록에 따르면, 38대의 비행기에 탑승한 세계 각국의 승객들을 다 합하면 당시 인구 6천여 명에 지나지 않는 마을 주민들과 비슷한 규모의 수였다고 하는데, 갠더의 주민들은 이들이 미국 항공국의 허가를 기다리는 5일 동안 가족처럼 따뜻하게 맞아줬다고 한다. 이 이야기는 이미 다큐멘터리나 영화, 수필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매체를 통해 수차례 세상에 알려진 바 있다. 멀리서 온 사람들(또는 멀리서 오는 사람들)이라는 뜻의 <컴 프롬 어웨이>는 갠더 마을에서 인류 최악의 순간과 최고의 순간을 동시에 경험하게 된 불시착 승객들과 마을 사람들의 5일간의 이야기를 그린다. 한 시간 30분 동안, 갑작스럽게 엄청난 수의 손님을 맞이하게 된 마을 사람들이 외부인을 따뜻하게 대하면서, 불안함을 느꼈던 승객들이 평온을 찾아간다는 단순한 줄거리이지만, 작품은 웃음과 감동을 동시에 전한다.




9·11 테러 실화를 소재로 한 뮤지컬 


아일랜드 풍 퍼커션의 비트가 시작되면 배우들이 무대 위로 올라온다(모든 배우들은 하나 이상의 역할을 맡는다). 이윽고 시장 역을 맡은 배우가 “북미 대륙 동쪽에 위치한 뉴펀들랜드라는 섬에는 한때 큰 규모로 유명했던 공항이 있고, 그 옆에는 갠더라는 마을이 있다”며 갠더에 대해 간략히 설명하는 것으로 공연이 시작된다. 시장의 마을 소개 후 마을 사람들이 9·11 테러 소식을 접하는 첫 번째 뮤지컬 넘버가 끝나면, 비행기들이 마을에 속속들이 도착하기 시작하고 시장은 비상사태를 선언한다. 이어서 마을 주민들이 학교나 교회 등 승객들이 머물 수 있는 숙소를 정비하고 옷이나 침구류를 기증하는 이야기가 진행된다. 당시 갠더에서는 통학 버스 운전자들이 파업을 벌이고 있었는데, 승객들을 마을로 운송하기 위해 운전자들을 설득하는 이야기도 그려진다. 이후 이야기의 초점은 승객에게 맞춰지는데, 휴대폰이 얼마 없던 시절에 테러 사건으로 스무 시간 남짓 비행기에 갇혀 있던 사람들이 느꼈을 불안함을 과장을 적절히 섞어 묘사해 웃음을 이끌어 낸다. 기장이 승객들의 동요를 막기 위해 테러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 주지 않자, 근거 없는 낭설이 퍼져 급기야 기내에 있던 술을 꺼내 마시고 다 만취했다는 식으로 말이다. 비행기 탑승객 중에는 아랍계 사람도 있는데, 이로 인해 당시 승객 사이에 흘렀던 묘한 긴장감도 놓치지 않고 담아낸다.


승객들은 늦은 밤이 돼서야 기내에 보관했던 짐만 가지고 하나둘 비행기에서 내리기 시작한다. 승객들이 마을에 도착하면, 마을 사람들은 스페인, 중국, 몰도바 등 전 세계 각국에서 온 사람들의 언어를 통역해 줄 사람을 찾아 성향에 따라 음식을 준비해 주는 등 따뜻한 환대를 베푼다. 또한 마을 사람들이 승객을 하나둘씩 집에 데려가 좀 더 편하게 쉴 수 있게 해주는 등 갠더 마을 주민의 환대 역시 적절한 유머를 섞어 그린다.


이 과정에서 마을 사람들과 승객들 사이에 유대 관계가 형성돼 지나친 환대에 오히려 의심을 품었던 사람들조차 점점 마음을 열게 되는데, 그중 몇몇은 심지어 마을의 명예시민이 되는 의식을 치르기까지 한다. 그렇게 며칠 만에 마을 사람들과 승객들은 마치 오랫동안 알아온 친구나 가족처럼 가까워진다. 마을에 도착한 지 5일 후 미국 항공국의 허가가 떨어져 승객들은 마을을 떠나 다시 각자의 자리로 돌아가게 되는데, 일상으로 복귀한 사람들도, 방문객들을 떠나보낸 갠더의 주민들도 비극과 온정 사이에서 삶의 한자리가 조금 달라진 것을 경험한다. 승객들이 떠난 마을에는 승객들이 십시일반 모은 몇만 달러에 달하는 돈이 전헤지고 갠더 지역 아이들을 위한 장학 재단이 세워지고, 마을의 낡은 기반 시설을 고치는 데 드는 비용이 보태지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진다. 그리고 공연은 너무나 많은 것을 잃었지만 갠더 주민들은 무언가를 얻는 경험을 동시에 했다는 시장의 말로 막을 내린다.



집단 경험과 개인 경험의 균형


앞서 말했듯이 <컴 프롬 어웨이>는 플롯만 보면 특별할 것이 없는 내용이다. 이 공연을 특별하게 만들어주는 것은 주인공이 존재하지 않는 균형 잡힌 앙상블의 힘이었다. 앙상블을 통해 똑같은 상황에서 각각 다르게 반응하는 여러 개인의 목소리를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고 들려줄 뿐 아니라, 쉽게 다루기 힘든 9·11 테러 소재를 무겁거나 가볍지 않게 잘 그려낼 수 있었기 때문이다. 등장인물은 마을 사람들과 승객들, 두 부류로 구분이 되는데, 남자 반, 여자 반으로 구성된 열두 명의 배우들이 마을 사람과 승객의 역할을 겸한다. 사람 좋은 시장, 지역 방송국에 처음으로 출근하는 재니스, 구세군을 관리하는 뷰엘러, 지역 동물 보호 센터에서 근무하는 보니, 항공관제탑을 관리하는 보니의 남편 등이 마을 사람들인데, 각자의 역할과 성격이 확실히 잡혀 있다.


실제 마을에 불시착한 비행기의 수는 사십 대 가까이 되지만, 극 중 이야기는 아메리칸 에어라인의 여성 기장이 처음으로 몰았던 비행기 승객들을 중심으로 펼쳐진다. 승객들 역시 LA에서 온 게이 커플 케빈과 잭, 런던에서 출장을 온 중년의 닉, 그리고 단시간에 닉과 가까워지는 텍사스 출신 다이앤, 뉴욕 출신으로 마을 사람들이 의심스럽기만 한 또 다른 케빈(편의상 케빈2로 표기) 등 다양한 인물들이 명확하게 그려진다. 그리고 이 개인들의 이야기는 자칫 무겁게 그려질 수 있는 이야기를 흥미롭게 하고, 유머와 웃음이 자리할 수 있는 가장 큰 동력으로 작용한다. 예를 들어 마을 경찰들의 명령에도 불구하고 비행기 안에 있을 동물들이 걱정돼서 화물칸에 들어가 강아지와 고양이, 그리고 침팬지를 꺼내 오는 보니나, 전전긍긍하며 보니를 도와주는 남편의 이야기라든가, 케빈2가 옆 마을 시장 집에 초대를 받았지만 가난해 보이는 그 집 사람들이 자기 지갑을 훔쳐갈까 걱정하는 모습, 중년의 닉과 다이앤이 조심조심 서로를 알아가는 과정 등을 통해 관객들을 웃고 울린다. 단 이틀에 지나지 않는 짧은 기간에 사람들이 조금씩 성장하는 모습을 입체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어느 한 명이 스타로 부각되는 것이 아니라 모든 배우가 저마다 무게를 지닌 채 조화를 이룬다는 점이 무척 인상적이었다.




탄탄하게 잘 쓰인 착한 뮤지컬


<컴 프롬 어웨이>는 2009년 즈음 캐나다의 셰리단 칼리지의 학장이자 프로듀서, 변호사 일을 겸업하고 있는 마이클 루비노프가 이 사연을 접하고 뮤지컬화를 결심하면서 출발했다. 마이클은 캐나다 작가 아이린 산코프와 데이빗 하인과 함께 작품을 준비했는데, 지난 2011년 9·11 테러 10주기를 맞아 승객들이 다시 갠더 마을을 찾았을 당시에 현장에 가서 직접 사연을 취재했다고 한다. 그때 들은 이야기를 바탕으로 극적인 상상력을 더해 2011년 워크숍으로 선보인 후 2015년 LA와 시애틀, 2016년 워싱턴의 포드 시어터를 거쳐서 올해 브로드웨이에 도착한 것이다. 산코프와 하인은 이전에 <우리 엄마의 레즈비언, 유대인, 위칸 웨딩>이라는 뮤지컬을 만들었던 콤비로 많이 알려지지 않은 신예 창작진인데, 이번 작품으로 디테일과 큰 틀을 아우르며 이야기를 끌고 가는 작가로서 능력을 충분히 보여줬다. 그들의 다음 작품이 기대되는 이유다. 특히 내레이션과 대사를 교차하면서 어떤 부분은 직접적인 대사로, 어떤 부분은 간접적인 서술로 서사의 흐름과 인물의 다양한 감정 변화를 잘 잡아낸 점이 인상적이었다. 또한 <멤피스>로 토니상 후보에 오른 바 있는 연출가 크리스토퍼 애슐리는 배우가 하나 이상의 역할을 소화하는 이 작품의 전체적인 톤과 템포를 유지하는 군더더기 없는 연출을 보여주었다. 뉴펀들랜드 지역의 많은 사람들이 아일랜드에 뿌리를 두고 있어 아일랜드의 문화적인 영향이 강하다는 점을 고려해 아이리시 풍의 멜로디를 뼈대로 팝과 발라드, 록을 넘나드는 음악은 개인과 집단, 그리고 내레이션과 대사의 경계를 자연스럽게 만들어주는 역할을 한다. <브롱스 테일>에서 협업한 바 있는 무대디자이너 베오울프 보릿과 조명디자이너 하워드 빙클리는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진행하고 효과적으로 안내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가장자리에 나무가 몇 그루 서 있고, 뒤에는 표면이 거친 나무 벽을 세워 놓은 간단한 무대는 다른 대도구 없이 의자 열댓 개와 테이블 한두 개가 전부다. 중요한 소품 중 하나인 바퀴 달린 의자는 두 줄 혹은 세 줄로 길게 늘여 놓아 비행기가 되기도 하고 커피숍이나 사무실, 혹은 승객들이 머무는 대피소로 연출되기도 하는 등 조명과 함께 이야기가 끊이지 않고 흐르는 데에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 효과가 가장 잘 나타난 장면은 공연 초반에 비행기 안에 두 줄로 길게 앉아 있던 승객들이 미국 항공국의 비행 금지로 가장 가까운 공항에 착륙할 예정이라는 안내 방송이 나옴과 동시에 바퀴달린 의자에 앉은 채 사방으로 흩어지고 그와 동시에 핀 조명이 흩어진 사람들 위로 떨어져 한 대의 비행기에서 여러 대의 비행기로 장면이 전환되는 부분이었다. 조명과 무대 이외에도 내레이션과 음악이 적절히 사용돼 장면 전환이 매끄러워 관객들이 이야기에 더욱 몰입할 수 있었다.




공연을 보면서 내내 울컥하는 순간이 많았다. 전대미문의 테러로 낯선 곳에 불시착한 승객들과 그들을 향한 갠더 주민들의 따뜻함과 배려가 대조되는 장면에서 그랬고, 그들의 따뜻함에도 불구하고 결국 9·11 테러 비극으로 등장인물 중 한 명의 아들의 목숨이 사라진 장면이 그랬다. 그리고 아들의 죽음을 경험하게 된 아줌마가 그 아픔을 5일간 우정을 쌓게 된 갠더의 주민과 나누는 모습에서도 그랬다. 브로드웨이의 많은 공연들이 꽤 직접적으로 정치적이고 사회적인 메시지를 다루고 있는 지금 시점에, 캐나다에서 온 착한 뮤지컬 <컴 프롬 어웨이>는 관객들에게 신선함을 전달한다. <컴 프롬 어웨이>는 자연스럽게 관객들의 마음을 움직인다. 따뜻한 이야기를 탄탄한 짜임새와 앙상블의 힘으로 전한다는 점에서 굉장히 반가운 작품이 아닐 수 없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64호 2017년 5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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