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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처 | [CULTURE IN MUSICAL] 엽기발랄 컬트 뮤지컬의 매력

글 |안세영 2017-08-01 6,167


내 맘에 드는 것이 꼭 모두의 맘에 들리라는 법은 없다. 반대로 모두가 좋아하는 것이 꼭 내가 좋아하는 것이 되지도 않는다. 대중 엔터테인먼트 산업인 뮤지컬은 상업적인 성공을 위해 대다수의 취향에 맞춘 작품을 생산하게 마련이지만, 간혹 소수 마니아의 취향을 적중시켜 전설이 되는 작품도 있다. 현재 공연 중인 <록키 호러 쇼>와 <이블데드>가 이러한 예에 속한다. 두 작품은 곧잘 ‘컬트 뮤지컬’이라는 이름으로 소개되곤 한다.


도대체 ‘컬트’가 무엇이기에? 컬트 뮤지컬이란 말이 낯설진 몰라도 컬트 영화에 대해서는 한번쯤 들어봤으리라. 컬트(Cult)란 본래 종교적인 숭배 의식을 가리키는 말로, 컬트 영화라 하면 소수의 관객에게 열광적인 숭배를 받는 영화를 뜻한다. 극장에 모인 관객들이 등장인물의 옷차림과 대사, 행동을 따라하며 영화 관람 행위를 그들만의 제의로 만들어버린 영화 <록키 호러 픽쳐 쇼>가 대표적이다. 하지만 컬트 영화를 장르적으로 정의내리기란 쉽지 않다. 아니, 불가능하다고도 할 수 있다. 컬트 영화라는 용어 자체가 장르가 아닌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탄생했기 때문이다.어떠한 영화가 컬트 영화가 되느냐 마느냐는 오로지 관객의 손에 달려 있다. 컬트 영화는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관객에 의해 결정된다.


따라서 컬트 영화가 무엇이냐는 질문에는 컬트 현상을 가능하게 하는 문화적·정서적 토대를 살펴봄으로써 우회적으로만 답할 수 있다. 일반 관객에게 외면당한 작품이 소수 마니아의 절대적인 지지를 불러일으킨다는 건 작품 안에 가치를 전복하는 힘이 있음을 반증한다. 기존 질서와 가치관을 벗어나 대다수에게 거부감을 일으키기 쉬운 요소가 한편으로는 컬트 영화가 될 가능성을 부여하는 것이다. 예컨대 상식적인 인과관계를 벗어난 기이한 전개와 뒤틀린 상상력, 비현실인 표현이 낳은 우스꽝스러움, 섹스·마약·폭력 등 사회적으로 금기시된 것들에 대한 판타지, 주류 문화에 편입되지 못한 젊은 세대의 하류 문화, 기존 영화의 공식이나 명장면에 대한 노골적인 패러디가 컬트 영화의 반열에 오른 작품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특징이다. 이러한 컬트 영화는 기성 영화들이 충족시켜주지 못한 관객의 잠재된 욕망을 건드려 폭발시키고 일탈의 짜릿함을 선사한다.


이제 뮤지컬에 대한 얘기로 돌아오자. 컬트 뮤지컬은 위에서 살펴본 컬트 영화의 속성이 뮤지컬 안에서 발견될 때, 또한 그것이 마니아의 열광적인 지지로 이어질 때 사용되는 용어다. 국내에서는 <헤드윅>, <쓰릴 미>가 컬트 현상을 불러일으킨 대표적인 뮤지컬이라 하겠으나, 비교적 논리적인 내러티브를 갖춘 이들 작품보다는 컬트 영화를 원작으로 한 뮤지컬이나 B급 감성을 간직한 코믹 호러 뮤지컬을 지칭할 때 컬트 뮤지컬이라는 표현을 더 자주 사용한다.


비디오와 DVD, 온라인 다운로드의 탄생으로 컬트 영화는 위기를 맞았다. 좋아하는 영화를 영화관에서 상영해주지 않아도 관람할 수 있게 되면서, 집단적 관람 체험이라는 컬트 문화의 핵심적 성격이 위협받았기 때문이다. 이와 달리 뮤지컬은 반드시 공연장 안에 집결해야만 관람할 수 있기 때문에 컬트 문화의 제의적 체험을 여전히 유효하게 만든다. 뮤지컬의 소재와 형식을 확장하는 컬트 뮤지컬의 존재는 앞으로도 관객에게 신선한 즐거움을 제공할 것이다. 




 <록키 호러 쇼>        
초연: 1973년 영국 / 키워드: 외계인 과학자

전설적인 컬트 영화 <록키 호러 픽쳐 쇼>의 원작. 막 약혼한 커플 브래드와 자넷은 여행길에 폭우를 피해 들어간 성에서 외계인 과학자 프랑큰 퍼터를 만난다. 순진했던 두 사람은 양성애자 프랑큰 퍼터와 그가 창조한 근육질 인조인간 록키를 통해 쾌락의 세계에 눈을 뜬다. 극작과 작곡을 맡은 리처드 오브라이언은 자신이 동경해온 B급 영화와 록 문화, 온갖 성적 판타지를 혼합해 <록키 호러 쇼>를 창조했다. <프랑켄슈타인>, <드라큘라>, <킹콩> 등 여러 SF·호러 영화를 엉뚱하게 패러디한 이 작품은 코르셋, 망사스타킹 같은 파격적인 옷차림의 캐릭터와 중독성 강한 록 음악으로 유명하다. 1973년 런던의 소극장에서 초연한 뮤지컬은 1975년 브로드웨이에 진출했고, 인기에 힘입어 뮤지컬 영화로 제작되었다. 영화 <록키 호러 픽쳐 쇼>는 혹평 속에 개봉 2주 만에 막을 내렸지만, 1976년 심야 상영을 통해 관객이 캐릭터의 대사, 행동, 옷차림을 따라하는 독특한 컬트 문화를 낳았다.




 <리틀 숍 오브 호러스>       
초연: 1982년 미국 / 키워드: 식인 식물

1960년 B급 영화의 거장 로저 코먼이 만든 동명의 흑백 영화를 뮤지컬화했다. 꽃집 점원 시모어는 희귀한 꽃을 발견하고, 짝사랑하는 상대 오드리의 이름을 따 ‘오드리2’라는 이름을 붙여준다. ‘오드리2’ 덕분에 폐업을 앞뒀던 꽃집은 문전성시를 이룬다. 하지만 이 꽃에는 비밀이 있었으니, 바로 사람의 피를 먹는 식인 식물이라는 사실! 시모어는 점점 더 많은 피를 요구하는 꽃에게 싫어하는 사람을 먹이로 내주지만, 굶주린 꽃은 시모어가 사랑하는 오드리마저 잡아먹고 만다. 절망한 시모어는 스스로 꽃에 몸을 던진다. <리틀 숍 오브 호러스>의 섬뜩한 결말은 ‘오드리2’로 상징되는 인간의 끝없는 욕망이 어떻게 파멸을 야기하는지 보여준다. 하지만 작곡가 앨런 멘켄과 극작가 하워드 애시먼은 이러한 결말에 이르는 과정을 온통 달콤하고 신나는 음악으로 채워 코믹하게 승화했다. 1982년 오프 브로드웨이에서 초연한 뮤지컬의 인기는 1986년 뮤지컬 영화 제작으로 이어졌는데, 리메이크된 영화는 식인 식물을 무찌르는 해피엔딩으로 끝난다. 2003년 브로드웨이 리바이벌 공연은 마지막에 거대한 ‘오드리2’가 객석까지 자라게 만들어 그것이 관객을 포함한 우리 모두의 욕망임을 보여줬다.




 <뱃 보이>         
초연: 1997년 미국 / 키워드: 박쥐 인간

극작가 키이스 팔리와 브라이언 플레밍이 타블로이드판 신문에 실린 박쥐 인간에 대한 황당한 기사를 읽고 만든 작품이다. 한 시골 마을의 동굴에서 뾰족한 귀를 가진 박쥐 소년이 발견된다. 수의사 파커의 아내 메레디스와 딸 셀리는 소년에게 ‘에드거’라는 이름을 지어주고 말과 예절을 가르친다. 가족의 사랑을 독차지하는 에드거가 못마땅했던 파커는 에드거가 마을 아이를 죽인 것처럼 음모를 꾸며 그를 향한 사람들의 적대감에 불을 붙인다. 그 사이 숲으로 도망친 에드거와 셀리는 서로의 사랑을 확인한다. 하지만 뒤늦게 메레디스가 에드거의 친어머니라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둘의 사랑은 어긋나고, 에드거는 스스로 죽음을 맞는다. 외모가 다르다는 이유로 차별받는 박쥐 소년의 이야기는 인간의 편견과 이기주의를 꼬집는다. 그러나 무거운 주제를 다루는 작품의 분위기는 오히려 코믹하다. 박쥐 소년의 특이한 행동과 기존 뮤지컬을 패러디한 넘버가 웃음을 선사하기 때문이다. 작사·작곡을 맡은 로렌스 오키프는 에드거가 말과 예절을 배우는 곡 ‘Show You A Thing Or Two’에서 <마이 페어 레이디>를, 숲 속 동물들이 사랑을 나누는 곡 ‘Children, Children’에서 <라이온 킹>를 코믹하게 패러디했다.




 <이블 데드>      
초연: 2003년 캐나다 / 키워드: 좀비

샘 레이미 감독의 B급 공포 영화 <이블 데드> 시리즈에서 1983년 개봉한 1편과 1987년 개봉한 2편의 내용을 합쳐 뮤지컬화했다. 주인공 애쉬는 여름방학을 맞아 애인과 친구, 동생을 데리고 산으로 여행을 떠난다. 그들은 빈 오두막 지하실에서 고대 문서와 녹음테이프를 발견한다. 호기심에 테이프를 틀자, 주문이 울려 퍼지면서 좀비들이 깨어난다. 애쉬는 때마침 오두막을 찾아온 고고학자 애니와 손잡고 좀비를 물리친다. 뮤지컬 <이블데드>는 애쉬가 좀비로 변한 일행을 살해하고, 좀비로 변한 자신의 팔을 전기톱으로 잘라내는 등 끔찍한 장면으로 가득하다. 그러나 과장된 연출은 이처럼 공포스러운 상황도 코믹한 장면으로 둔갑시킨다. 무대 위에서 경쾌한 노래에 맞춰 군무를 추는 좀비는 더 이상 두려운 존재가 아니다. 심지어 무대에서 쏟아지는 피를 흠뻑 맞을 수 있는 ‘스플래터 존(Splatter Zone)’을 마련해 관객을 이 피의 축제에 동참시킨다.




 <톡식 어벤져>       
초연: 2009년 미국 / 키워드: 돌연변이 히어로

1985년 개봉한 로이드 카프만 감독의 B급 컬트 영화 <톡식 어벤저>를 원작으로 한 록 뮤지컬. 주인공 멜빈은 도시 오염의 주범이 시장이라는 사실을 밝히려다, 시장의 수하들에게 잡혀 유독성 폐기물 통에 빠진다. 그는 죽는 대신 흉측하지만 강력한 힘을 지닌 녹색 괴물 ‘톡시(Toxie)’로 다시 태어난다. 톡시는 시장과 맞서며 시민들의 영웅이 되고, 줄곧 좋아해온 시각장애인 사라와도 사랑을 이룬다. <톡식 어벤져>는 전형적인 권선징악형 히어로물이지만, 신선한 캐릭터를 내세워 환경오염과 외모 지상주의에 일침을 가하는 것이 특징이다. 그렇다고 마냥 정의롭고 반듯한 작품을 기대하지는 말 것! 이 작품의 백미는 엽기적인 신체 훼손 코미디에 있으니 말이다. 톡시가 악당들의 팔다리를 거침없이 뽑아버리는 장면은 잔혹하지만 유쾌하며, 녹색 폐기물을 뒤집어쓰고 살갗이 녹아버린 톡시의 분장은 흉측하지만 흥미롭다. 극작은 <올 슉 업>의 조 디피에트로가, 작곡은 본 조비 밴드의 키보디스트인 데이비드 브라이언이 맡았다. 2009년 오프 브로드웨이 초연 당시 공연 전문 사이트 ‘브로드웨이월드닷컴’에서 관객이 선정한 최우수 작품상을 받을 만큼 마니아의 사랑을 듬뿍 받았다.





 <아담스 패밀리>      
초연: 2010년 미국 / 키워드: 고딕 호러

대저택에 사는 기괴하지만 사랑스러운 가족이 등장하는 찰스 아담스의 동명 만화가 원작이다. 같은 만화를 원작으로 한 드라마와 영화도 유명하지만, 뮤지컬은 만화 캐릭터만 그대로 따와 독자적인 이야기를 들려준다. 뮤지컬 <아담스 패밀리>는 아담스 부부의 딸인 웬즈데이가 평범한 남자친구 루카스와 그의 부모님을 저택에 초대하면서 벌어지는 한바탕 소동극이다. 뱀파이어처럼 오싹한 아름다움을 지닌 엄마 모르티샤와 그런 아내에게 푹 빠진 정열적인 아빠 고메즈, 고문하는 걸 즐기는 누나 웬즈데이와 고문 받는 걸 즐기는 동생 퍽슬리, 달과 사랑에 빠진 삼촌 페스터, 불법 의약품 제조의 달인 할머니, 프랑켄슈타인을 닮은 거인 집사 러치까지! 개성 넘치는 가족 구성원이 웬즈데이의 사랑을 위해 평범한 척하는 모습이 웃음을 자아낸다. 극작은 <저지 보이스>의 마샬 브릭먼과 릭 앨리스가, 작곡은 앤드류 리파가 맡았다. 2010년 브로드웨이에서 개막한 공연은 비평가로부터 혹평을 받았지만 이와 상관없이 매진 행렬을 이어가며 흥행에 성공했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66호 2017년 7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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