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은
본질에 충실해야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에드거 앨런 포>, <오! 캐롤>, <나폴레옹> 박영석 프로듀서가 올린 뮤지컬은 대중들에게 그다지 알려지지 않았던 작품들이다. 그가 뮤지컬 프로듀서로 데뷔한 것은 2006년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였지만, 자신의 색깔을 지닌 프로듀서로 존재감을 과시한 것은 2015년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부터였다. 그는 뮤지컬 제작 초기에 최고의 흥행 작곡가인 앤드루 로이드 웨버의 작품을 올렸지만 흥행 성적이 좋지 않았다. 이후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음악이 좋은 작품을 찾아내 스토리를 보완한 후 한국 관객의 정서에 맞는 작품을 선보이는 방법을 택했다. 지금까지 이러한 제작 방식은 합격점을 받았다. M.net 푸드 채널의 <거인들의 저녁식사>라는 인기 프로그램의 PD에서 시작해 하나하나 자신만의 색깔을 지닌 작품 목록을 만들어가고 있는 박영석 프로듀서를 만났다.
숨겨진 가능성을 현실로
<거인들의 저녁식사>에는 노무현 대통령(당시 민주당 대표), 이문열 작가, 정몽준 대표 등 굉장한 인사들이 출연했다. 지금도 배우 섭외력이 남다르다. 특별한 비법이 있는가?
한 작품을 무대에 올리기까지는 2~3년 정도의 시간이 필요하다. 그 시간 동안 프로듀서는 작품에 빠져 있고 성공할 것이라고 확신한다. 그런 확신이 없으면 작품을 못 올린다. 작품에 대해 프로듀서만큼 잘아는 사람이 없다. 배우들을 섭외할 때 왜 당신이 이 작품에서 필요한지 설명한다. 초기에는 그런 걸 잘 몰랐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이후 <바람사>)를 하면서 작품이 배우 한두 명으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작품이 중심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럼 그 이전에는 어떤 생각이었나?
방송국 PD 출신이다 보니까 연예인들을 많이 안다. 그래서 뮤지컬을 하고 싶다고 하면 출연시켰다. 뮤지컬의 본질을 몰랐던 거다. <요셉 어메이징 테크니칼라 드림코트>를 할 때도 배역에 어울리는 배우를 캐스팅했어야 하는데, 시류에 편승해서 인기가 많은 연예인이라고 캐스팅한 것이 패인이었다.
<바람사>부터는 프로듀서 박영석만의 색깔이 드러나기 시작한 것 같다. 이 작품은 어떤 이유로 선택한 것인가?
프랑스 뮤지컬 <바람사>에 대해서는 예전부터 들어왔다. 이 작품의 작사, 작곡자인 제라르를 만나 설득했는데, 미국의 마가렛 미첼 재단의 허락을 받는 게 어려웠다. 웨스트엔드에서 다른 버전의 <바람사>를 만들었는데 평가가 좋지 않았기 때문이다. 재단 측을 설득하고 계약하는 데 2년이 걸렸다.
이 작품부터 한국화하는 작업이 시작된다.
웨스트엔드의 트레버 넌이 만든 <바람사>는 장황한 스토리에 많은 해설을 담고 있는 모노톤의 작품이다. 그런데 우리는 <바람사>라고 하면 굉장히 화려하고 멋진 인상을 가지고 있다. 프랑스 작품을 봤는데 음악도 좋고 각 배역들의 비중도 적절하고 영화의 추억을 끄집어낼 요소가 많았다. 아쉬운 점은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인 ‘타라의 테마’가 없다는 것이었다. 프랑스는 자신의 작품에 손대는 것을 싫어한다. 계약을 할 때 반드시 지켜야 하는 사항을 빼고는 의무 사항이 없도록 했다. 그래서 오프닝과 엔딩에 ‘타라의 테마를 넣을 수 있었다. 원작자인 제라르가 초연을 보고 만족해서 재공연 때는 좀 더 드라마의 개연성을 보완할 수 있었다.
<오! 캐롤>에서는 개작이 더 심해졌다. 거의 창작이라고 할 정도의 개작이었다. <바람사>도 그렇고 <오! 캐롤>도 그렇고 중년 관객층이 좋아하는 작품이다. 의도한 것인가?
내가 40대 후반이다. 50대 초반 되신 분들은 <주말의 명화> 보고, <이종환의 밤의 디스크쇼> 같은 라디오 프로그램을 들었던 세대이다. 지금 이 세대분들이 왕성하게 사회 활동을 하고 계신다. 이분들이 또 기업의 임원으로 관람 작품을 선정할 수 있는 위치이다. <바람사>는 기업 단관이 굉장히 많았다. 중년층 주부들도 굉장히 많이 오셨다. 클라크 케이블과 비비안 리의 추억이 있으니까 볼거리나 들을 거리를 잘 만들어 놓으면 오랫동안 롱런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오! 캐롤> 역시도 닐 세다카의 노래가 새로 리메이크도 되고 CF에도 종종 나온다. 아바만큼 히트곡이 많다. 제2의 <맘마미아!>를 꿈꾼다는 컨셉을 만든 것이 좋은 반응을 얻었다.
반면 <에드거 앨런 포>는 다른 지점에 놓인 작품이다.
뮤지컬에서 음악이 베이스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음악이 사람들에게 어떻게 각인될까 분석을 많이 한다. 1980년대 팝은 트렌디한 음악이라 시간이 지나면 식상해지기 쉽다. 영국의 브리티시 록 같은 경우는 오래 들어도 염증을 느끼지 않고 오래가는 음악이다. 그런 음악을 찾고 있다. <에드거 앨런 포>는 그런 맥락에 있는 작품이다. 에릭 울프슨이나 데이비드 보위 음악 같은 프로그레시브 록을 좋아한다. 에릭 울프슨이 작곡한 작품으로 <갬블러>, <에드거 앨런 포>, <가우디>, <프로이디아나>가 있는데, 궁극적으로는 에릭 울프슨 콜렉션을 하고 싶다. 이런 작품들은 철저히 마니아를 공략한 후 대중을 끌어들여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에드거 앨런 포>는 성공했다고 본다. 스토리가 빈약하다는 말을 많이 들었는데 11월달에 완전히 새롭게 제작할 생각이다.
장점은 뮤지컬에 대한 애정
잘 알려지지 않은 작품들인데 어떻게 찾아내는가?
웬만한 브로드웨이나 유럽 작품들은 선배 프로듀서들이 있어 내가 시도할 자리가 없다. 유튜브나 인터넷을 통해 작품을 찾는다. 이때 제일 중요한 것은 음악이다. 뮤지컬은 음악을 입힌 스토리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음악이 가장 중요하다. 스토리가 약하면 보강하면 된다. 지금 컴퓨터에 100여 편의 작품 파일이 있다. 숨겨진 작품을 발굴해 내는 재미가 있다. <오! 캐롤>을 발견했을 때도 짜릿했다.
잘 알려지지 않은 작품을 발굴해서 각색하는 방식이 유리한 면도 있을 것 같다.
로열티가 상대적으로 저렴하고 그런 면에서 경쟁력이 있다고 본다. 무엇보다도 우리 작품이라는 주인의식이 생긴다. 매뉴얼대로 가야 하는 것이 아니고 우리가 만들어가는 것이니까 작업 과정이 재밌고 즐겁다.
새롭게 <나폴레옹>을 올린다. 이 작품도 잘 알려지지 않은 작품이다. 어떻게 알게 되었나?
<바람사>의 제라르가 <나폴레옹>을 만들었으니 관심 있으면 보라고 하더라. 다카라즈카에서 공연했는데 내 취향이 아니었다. 나폴레옹은 멋있는 소재인데 왜 뮤지컬이 없지 싶어 검색을 해보니 1994년 버전의 노래가 나오더라. 캐나다에서 초연한 작품인데 음악이 연결되는 과정을 보니 드라마가 보였다. 영국 작곡가 티모시 윌리엄스의 작품인데 음악이 웅장하고 드라마틱한 것이 나폴레옹다웠다. 2015년 뉴욕 뮤지컬 시어터 페스티벌에 심플한 버전으로 올라갔는데 이걸 보고 티모시와 작가 앤드루와 만나 규모를 키워서 공동 제작하자고 제안했다.
나폴레옹이 유명하지만 실제 그에 대해 잘 모른다. 게다가 복잡한 프랑스 혁명사 속에 놓인 인물인데 우리 관객들이 잘 이해할 수 있을까.
대본 수정을 많이 했다. 주변 인물이 굉장히 많은데 나폴레옹과 탈레랑, 조제핀을 큰 축으로 삼아 이야기를 집중했다. 나폴레옹을 영웅으로 묘사해야 하나, 독재자로 접근할까, 관객에게 맡겨두어야 하나 고민을 많이 했다. 황제가 되기 전의 순수했던 나폴레옹과, 이후 권력에 심취해서 영원한 집권을 추구하는 나폴레옹으로 나누어서 시사적인 메시지를 주려고 한다.
스태프를 선정하면 그들을 믿고 맡기는 프로듀서와, 적극적으로 작품 제작에 개입하는 프로듀서가 있는데 후자인 것 같다.
각 스태프들의 권위는 존중한다. 연습실에 가서 노트를 해도 공개적으로 의견을 말하지는 않는다. 각 스태프들과 단 둘이 있는 자리에서 의견을 말하는 편이다. 그게 권위가 아니라 책임자이기 때문에 그렇다. 프로듀서로서 떠안고 가야 하는 짐들이 있는데 문제가 생겨 해결하려면 내가 많이 알고 있어야 한다. 그래야 한다고 생각하고 그런 과정이 재밌다.
민망할 수도 있겠지만 본인의 프로듀서로의 장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뮤지컬을 좋아하고 사랑한다는 거. 애정을 가지고 있다는 게 중요하다. 그리고 음악을 좋아해서 듣는 거는 잘하는 것 같다. 음악을 듣거나 분석하고 그 역할에 맞게 배우를 찾아내는 걸 잘하는 편이다. 공연을 많이 보는데, 보면서 배우들의 장점을 메모해 둔다. 이제는 공연을 보면 배우들의 장점이 조금씩 눈에 들어온다.
국내 뮤지컬 시장의 제작 환경이 점점 열악해지고 있다. 이를 헤쳐 나갈 방안은 무엇인가?
뮤지컬 제작만큼 힘든 게 없다. 뮤지컬의 진입 장벽이 높다는 게 못 들어오게 막는다는 의미가 아니라, 단계까지 이르기가 힘들다는 의미인 것 같다. 나도 10년 동안 나름 고생하고 여러 번 포기하려고도 했다. 그런 과정에서 얻은 교훈은 뮤지컬의 본질은 뮤지컬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배우의 인기로 표를 파는 것이 아니라 작품의 힘으로 가야 한다. 배우는 작품 안에 있는 것이다.
해외 시장 진출도 시도하고 있다. 앞으로의 계획이라면.
<바람사>를 중국 프로덕션에 수출한다. <오! 캐롤>은 미국에 역수출을 시도하고 있다. <나폴레옹> 오픈 때 중국과 일본의 많은 프로듀서들이 방문한다. 우리의 뮤지컬 제작 기술은 일본이나 중국보다 높다. 이제 해외 시장을 공략할 타이밍이 됐다. 해외 시장을 개척하는 것이 궁극적인 목표이다. 중국 뮤지컬 시장이 활성화되고 있다. 지금이 기회다. 중국과 ‘진시황’을 소재로 한 합작품을 제작한다. 창작 중에서는 <전쟁과 평화>를 제작 중인데 영화의 음악만 저작권을 사와 창작으로 만들려고 한다. 창작은 저작권이 자유로운 작품 중에 보편적인 스토리를 갖춘 작품을 찾고 있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66호 2017년 7월호 게재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