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년 만에 국내 무대에 오르는 <아이러브유>는 줄거리 없이 사랑에 관한 여러 에피소드를 나열하는 독특한 형식의 뮤지컬이다. 이처럼 하나의 주제 아래 다양한 춤, 노래, 풍자적 코미디를 엮은 공연을 ‘레뷰(Revue)’라고 한다. 1910~20년대 미국에서 전성기를 누렸던 레뷰는 본격적인 북 뮤지컬의 탄생에도 영향을 미쳤다.
20세기를 풍미한 황홀한 쇼
레뷰의 뿌리는 19세기 초 프랑스로 거슬러 올라간다. 본래 프랑스어로 잡지를 뜻하는 단어 ‘레뷰’는 이 시기부터 아름다운 여배우들이 등장해 춤과 노래로 파리의 화려한 삶을 풍자적으로 보여주는 공연을 가리키는 말로 사용되었다. 특히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물랭 루즈 등의 뮤직홀에서 대규모 레뷰가 잇따라 흥행하며, 미스탕게트, 모리스 슈발리에, 조세핀 베이커 같은 레뷰 스타를 탄생시켰다.
레뷰가 영국과 미국 공연계에 도입된 것은 19세기 말. 미국에서 레뷰는 이전에 유행한 버라이어티 쇼인 민스트럴 쇼, 보드빌, 벌레스크, 익스트래버갠저 등을 혼합한 형태로 발달했다. 뚜렷한 줄거리 없이 노래·춤·촌극 등을 엮었다는 점에서 흔히 보드빌과 비견되지만, 보드빌과 달리 구체적인 주제가 있다는 점이 레뷰만의 특징이다.
1910~20년대 미국에서 레뷰의 인기는 절정에 달했다. 당시 레뷰의 전성기를 이끈 인물은 브로드웨이의 전설적인 프로듀서 플로렌즈 지그펠드. 보드빌 배우 출신의 지그펠드는 1907년 뉴암스테르담 극장에서 <지그펠드 폴리스(Ziegfeld Follies)>라는 레뷰 공연을 선보였다. 눈부시게 호화로운 무대와 의상, 수십 혹은 수백 명의 늘씬한 쇼걸로 장관을 연출한 <지그펠드 폴리스>는 단숨에 최고의 흥행작으로 떠올랐다. 이후 <지그펠드 폴리스>는 1924년까지 거의 매해 새로운 버전과 새로운 스타를 선보이며 활발히 공연되었다. <지그펠드 폴리스>가 배출한 스타로는 여성 코미디언 패니 브라이스가 있다. 줄 스타인의 뮤지컬 <퍼니 걸>(1964)이 바로 이 패니 브라이스의 삶을 각색한 작품이다. 이 밖에도 <지그펠드 폴리스>의 쇼걸 이야기를 담은 스티븐 손드하임의 뮤지컬 <폴리스>(1971), 지그펠드의 복장을 흉내낸 프로듀서들이 나오는 뮤지컬 <프로듀서스>(2001)를 통해 지그펠드의 아성을 엿볼 수 있다.
<지그펠드 폴리스>가 히트를 치자 조지 화이트, 얼 캐롤, 아서 슈베르츠 등의 제작자가 나서 비슷한 형태의 레뷰 공연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러한 대규모 레뷰(Spectacular Revue)의 인기는 1929년 경제 공황과 함께 사그라들었다. 1920년대 중반부터는 스펙터클한 무대 효과 대신 뛰어난 세태 풍자, 음악성으로 승부하는 소규모 레뷰(Intimate Revue)가 부상했다. 리처드 로저스가 작곡한 <개릭 개티스(The Garrick Gaieties)>(1925), 해럴드롬이 작곡한 <핀과 바늘(Pins and Needles)>(1937)이 대표적인 성공 사례다. 국제여성봉제노조가 제작한 <핀과 바늘>은 전쟁에 대한 풍자, 자본주의에 대한 경고, 노동조합의 장점 등 당대의 이슈를 재미있게 다뤄 인기를 끌었다. 이 작품은 장장 1,108회 공연을 이어가며 <오클라호마!>(1943)가 나오기 전까지 브로드웨이 최장 공연 기록을 세웠다.
웅장했던 레뷰의 시대는 1940년대에 완전히 막을 내린다. 경제 공황의 그늘과 더불어 라디오, 텔레비전, 영화가 쇼의 경쟁 상대로 떠오르면서 대규모 레뷰는 거의 자취를 감추었다. 하지만 대규모 레뷰에서 소규모 레뷰로 이어지는 다리를 건너 브로드웨이는 마침내 탄탄한 극적 구조를 갖춘 ‘북 뮤지컬(Book Musical)’의 시대로 나아갈 수 있었다. 재미있게도 본격적인 북 뮤지컬의 시대를 연 인물 역시 지그펠드였는데, 현대 뮤지컬의 효시로 일컬어지는 <쇼 보트>가 바로 그가 1925년 제작한 작품이다. 또한 지그펠드와 같은 든든한 제작자의 후원 속에서 20세기의 위대한 뮤지컬 작곡가 어빙 벌린, 리처드 로저스&로렌스 하트, 콜 포터, 조지 거슈윈, 해럴드 롬 등이 재능을 펼칠 수 있었다.
현대의 뮤지컬 레뷰
현대에도 ‘뮤지컬 레뷰’라는 이름으로 하나의 주제 아래 다양한 춤, 노래, 코미디를 엮은 뮤지컬이 공연되고 있다. 1990년대부터 오프브로드웨이를 중심으로 인기를 끈 뮤지컬 레뷰는 곧 우리나라에도 소개되었다. 2000년 LG아트센터 개관 기념으로 <스모키 조스 카페>가 내한한 데 이어 2004년 <아이러브유>, 2006년 <클로저 댄 에버>, 2010년 <엣지스>가 라이선스 초연을 올렸다.
1995년 브로드웨이에서 초연한 <스모키 조스 카페(Smokey Joe's Cafe)>는 특정한 플롯 없이 음악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작품이다. 1950∼60년대 엘비스 프레슬리, 비틀스, 롤링 스톤스 등 유명 가수의 히트곡을 쓴 작사가 제리 리이버와 작곡가 마이크 스톨러의 로큰롤 음악을 갈라 콘서트처럼 들려준다. 이 작품은 2,036회 공연을 이어가며 브로드웨이 역사상 최장기간 공연한 뮤지컬 레뷰로 기록되었다.
이처럼 유명 뮤지컬 창작자나 제작자를 기리는 의미에서 그들의 작품 속 명장면, 명곡을 이어 만든 뮤지컬 레뷰는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작곡가 제리 허먼의 곡으로 이루어진 <쇼툰(Showtune)>(1985), 작곡가 스티븐 손드하임의 곡으로 이루어진 <사이드 바이 사이드 바이 손드하임(Side By Side By Sondheim)>(1976), <푸팅 잇 투게더(Putting It Together)>(1992), <손드하임 온 손드하임(Sondheim on Sondheim)>(2010), 안무가 밥 포시의 안무로 이루어진 <포시(Fosse)>(1999), 프로듀서 해롤드 프린스의 작품으로 이루어진 <프린스 오브 브로드웨이(Prince of Broadway)>(2015) 등이 그 예다.
기존의 유명 뮤지컬을 코믹하게 패러디한 뮤지컬 레뷰도 인기다. 1982년 오프브로드웨이에서 초연한 <포비든 브로드웨이(Forbidden Broadway)>는 다양한 브로드웨이 뮤지컬을 패러디한 작품으로, 해를 거듭하여 여러 버전으로 공연되었다. 영국에도 이와 비슷하게 웨스트엔드 뮤지컬을 패러디한 <제스트 엔드(Jest End)>(2008)가 존재한다.
국내에서 라이선스 공연을 올린 <아이러브유>, <클로저 댄 에버>, <엣지스>는 앞의 작품들보다 주제 의식이 뚜렷하다. 특히 현실적인 내용과 세태 풍자로 동시대 관객의 공감을 사려는 성격이 강하다. 올해 재연하는 <아이러브유(I Love You, You're Perfect, Now Change)>는 사랑을 주제로 한 19개의 에피소드로 이루어져 있다. 젊은 시절부터 황혼기에 걸쳐 누구나 경험할 수 있는 남녀의 만남, 결혼, 권태, 이별을 그린다. 단 4명의 배우가 번갈아 에피소드의 주인공을 맡아 60여 명의 인물을 소화한다. 작가 조 디피에트로와 작곡가 지미 로버츠의 작품으로 1996년 오프브로드웨이에서 초연해 대성공을 거뒀다.
<클로저 댄 에버(Closer than Ever)> 역시 사랑을 주제로 하지만 여러 뮤지컬 넘버를 엮어 만들었다는 점이 독특하다. 본래 뉴욕의 클럽에서 공연하던 카바레 쇼를 작가 리처드 멀트비 주니어와 작곡가 데이빗 샤이어가 2막 뮤지컬로 다듬어 1989년 오프브로드웨이 무대에 올렸다. 작품은 대도시에서 살아가는 세 커플의 연애와 결혼 생활을 다룬다.
<엣지스(Edges)>는 꿈과 목표를 찾지 못한 채 방황하는 20~30대 청춘의 이야기다. ‘엣지스’라는 바에 모인 청춘들이 털어놓는 인생 이야기를 4명의 배우가 일인다역으로 연기한다. 브로드웨이의 유망주 벤지 파섹과 저스틴 폴이 함께 작업한 첫 작품이자, 2007년 ‘조나단 라슨 어워드’ 수상작으로 유명하다. 오리지널 공연은 송스루로 진행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각 뮤지컬 넘버 사이에 배우와 관객이 소통하는 시간을 만들어 공연했다.
널리 알려진 뮤지컬 작품 가운데에서도 레뷰의 영향을 확인할 수 있다. T. S. 엘리엇의 시집 『지혜로운 고양이가 되기 위한 지침서』를 원작으로 여러 고양이의 퍼포먼스를 선보이는 <캣츠>(1981), 각각 다른 시대를 살았던 9명의 대통령 암살범이 암살 동기를 들려주는 <어쌔신>(1990)은 모두 레뷰 형식을 현대적으로 차용한 작품이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71호 2017년 12월호 게재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