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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SPOTLIGHT] <모래시계> 이호원[NO.172]

글 |박보라 사진 |표기식 2018-01-08 12,135

오르막길


일명 ‘귀가시계’라 불리며 국민적 사랑을 받은 드라마 <모래시계>에서는 세 주인공 외에도 많은 캐릭터들이 사랑을 받았다. 특히 카지노 대부의 딸 혜린의 곁을 지키는 경호원 재희는 작품에서 지고지순한 사랑을 보여주며 그의 존재를 대중에게 강하게 기억시켰다. 블랙 수트를 입고 사랑하는 사람을 묵묵히 바라보는 재희의 모습에서 많은 여성들은 설레는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이젠 배우라는 수식어가 익숙해진 이호원이 뮤지컬로 재탄생한 <모래시계>의 재희로 첫 뮤지컬에 도전한다. 그와 나눈 순수하고 진솔한 생각들을 살펴보자.




내게 날아온 작은 새

“전 스스로 ‘타고난 딴따라’라고 생각했는데, 데뷔한 이후로 가장 오랜 시간 동안 무대에 서지 못했어요. 그래서 제게 <모래시계>는 다시 무대에 선다는 자체만으로도 의미가 컸어요.” 중소 기획사의 성공 사례로 꼽히는 아이돌 그룹 인피니트의 멤버로, 또 드라마 <응답하라 1997>로 ‘연기돌’의 반열에 올랐던 호야. 그가 인피니트를 떠나 본명 이호원으로 홀로 섰다. 그리고 곧이어 뮤지컬 데뷔 소식이 들려왔다. 그동안 영화와 드라마에서만 활발한 활동을 보여준 탓에, 그의 뮤지컬 <모래시계> 출연 소식은 의외라는 반응도 있었다. 가수로서 또 배우로서 중요한 이 순간에 뮤지컬을 선택한 그의 결단을 정의하자면, 그를 둘러싼 변화 사이에서 마음먹은 새로운 도전이었다. 사실 이전에도 이호원을 향한 뮤지컬 출연 권유는 꾸준히 있었다. 지금의 매니지먼트를 만나기 전 약 3개월 정도 ‘자유인’이었던 그에게 일본에서 공연하는 뮤지컬 출연 제의가 구체적으로 들어왔단다. 그러나 그는 고민 없이 ‘이호원만의 음악을 보여주고 싶다’는 생각에 단칼에 거절 의사를 밝혔다. 이런 과거 에피소드를 듣고 있자니 이호원과 <모래시계>의 만남이 더 특별하게 느껴졌다.


<모래시계>에서 이호원이 맡은 캐릭터는 지고지순한 사랑을 보여주며 단숨에 대중을 사로잡은 재희. 돌고 돌아 어렵사리 그의 손에 쥐어진 대본과 노래 한 곡은 이전의 작품들과는 달랐다. “유달리 재희에게 마음이 자꾸 갔어요. 안쓰럽더라고요. 재희는 한 여자만 바라보면서 그녀를 위해 살다가 죽잖아요. 전 사랑하는 여자를 위해서는 아니지만 제 꿈을 위해서 많은 걸 포기했어요. 거기서 나오는 동질감이 느껴졌죠.” 이호원과 재희는 알고 보면 상당히 비슷한 친구다. 이호원이 가수의 꿈을 위해서 고등학교를 자퇴하고 서울로 상경한 이야기는 팬이라면 누구나 알 정도로 유명한데, 그가 인생의 목표였던 혜린을 위해 달려가는 재희에게 공감하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여기에 무대에서 긴 호흡의 감정으로 연기하고 노래를 부른다는 것에 대한 그의 열망도 더해졌다. “그동안 드라마나 영화 촬영 현장에서 ‘컷’ 소리만 들리면 감정을 추스를 수밖에 없는 상황에 늘 아쉬운 마음을 가지고 있었어요. 긴 호흡의 감정으로 연기를 하고 싶었어요.”



원작의 재희는 조용하고 듬직하지만 섬세한 모습으로 많은 사랑을 받았다. ‘가족도 없고 배경도 없는 외톨이’었던 재희는 혜린을 만나고 나서야 삶의 목적을 찾은 인물. 뮤지컬에서도 재희는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지 않고 그녀의 뒤에서 지켜보기만 하는 캐릭터다. 이호원은 재희를 ‘누구보다 순수하게 혜린을 사랑하는 인물’이라고 설명했다. 그래서 재희를 연기하면서도 혜린을 향한 마음이 가장 중요하다. 혜린의 아버지 윤회장의 지시를 따르는 것도, 다른 사람들과 싸우는 것도 이유는 단 하나, 혜린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마음 때문이다. “재희를 능동적인 사람으로 그리고 싶었어요. 재희를 단순히 경호원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결국 재희는 혜린의 곁에 가까이 있고 싶고 그녀를 지켜주고 싶어서 그 자리에 있는 거예요. 그의 모든 행동의 원인은 혜린이고, 재희는 그런 본인의 의지와 판단으로 움직이는 사람이란 걸 보여주고 싶었어요.” 이런 재희를 만들기까지 그의 고민은 끝없이 이어졌다. 이호원은 텅 빈 공책에 재희가 살아온 인생을 적어 내려가면서부터 차근차근 그만의 재희를 곱게 빚어냈다. 또 귀엽고 발칙한 반항을 통해 이호원의 재희가 완성되기도 했다. 런스루 첫날, 재희로서 느꼈던 모든 감정을 쏟아냈다. 혜린의 이름 석 자에도, 혜린과 관련된 일들에도 민감하게 반응했단다. 본인만의 재희를 탄생시킨 순간 되돌아온 건, 뮤지컬계에서 엄하기로 유명한 조광화 연출의 따스한 칭찬이었다. “끝나고 나니 연출님께서 제게 박수를 쳐주라고 하시더라고요.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요소들이 살아났다고요. 연출님의 칭찬을 듣자마자 자신감이 많이 생겼어요.” 조광화 연출은 이호원에게 칭찬을 아끼지 않으며 이번 <모래시계>를 향한 도전에 힘을 보태주었다. 공연 전 키가 큰 동료 배우들 사이에서 유독 아담해 보이는 겉모습 탓에 걱정도 있었지만 “단단해 보여서 진짜 경호원 같다”는 조광화 연출의 말은 엄청난 힘이 됐다. 사실 ‘진짜’ 경호원의 모습은 <모래시계>에서 드러난 화려한 액션 장면에서 엿볼 수 있는데, 이호원은 이를 위해 잠깐 쉬었던 운동을 곧바로 다시 시작했다. 여기에 본격적인 뮤지컬 연습에 들어가면서 검도 연습도 추가됐다. 드라마 촬영 스케줄이 바빠지자 차에 죽도를 가지고 다니면서 시도 때도 없이 액션 연습에 열을 올렸다. 연습을 수도 없이 반복하면서 본인이 터득한 섬세하고 유일한 동작을 추가했을 정도다.


이호원은 재희로 함께 캐스팅되어 무대에 오르는 두 배우, 김산호와 손동운에 대한 이야기도 빼놓지 않았다. “정말 신기하고 재미있어요. 지금까지는 늘 저 혼자 제 캐릭터를 만들었었는데, 지금은 각각 다른 세 명이 재희를 만들고 있죠. 연습 때마다 계속 같이 밥을 먹으면서 여러 가지 의견과 고민을 나눴는데, 제가 생각하지도 못했던 것을 듣기도 했어요. 정말 많은 도움이 됐어요.”





바라는 대로 다 이뤄지기를

과거 아이돌 시절 이호원은 노래가 아닌 춤과 랩으로 대중에게 알려진 인물이다. 그런데 사실 이호원은 노래로 오디션에 합격하고 연습생 생활을 시작했다. 특히 전부터 좋아하던 R&B 장르에 대한 열정은 여전히 식지 않았다. 꽤 오래전부터 지금까지도 본인이 하고 싶은 음악을 만들고 있는 데다가 2년 전부터는 유튜브 개인 계정까지 개설했다. ‘리얼 호야’라는 유튜브 채널에서는 그가 라이브로 노래를 부른 영상, 녹음 영상부터 춤 영상까지 가지각색의 이호원을 맛볼 수 있다. 솔직히 말하자면, 뮤지컬에 도전하면서 대중가요와 다른 결을 가진 뮤지컬 넘버에 대한 걱정도 지울 수 없었다. 재희의 대표적인 넘버 ‘사랑해도 될까요’를 녹음하던 날, 걱정과 고민으로 움츠러들었던 그에게 김문정 음악감독은 칭찬을 쏟아냈단다. 이호원은 그녀의 칭찬이 위로인 줄 알았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그의 걱정이 무색하게 주위의 많은 사람들은 자연스러운 그의 노래 스타일에 엄지를 치켜들었다. 그리고 이젠 본인의 노래에 대해 확신을 품은 채 무대에 오르는 중이다. “제가 하는 일을 의심하면서 무대에 올라갈 수는 없었어요.”


사실 이호원을 대중에게 가장 많이 알린 작품은 드라마 <응답하라 1997>의 준희다. 오랜  동성 친구를 남몰래 좋아하며 가슴앓이하는 조용한 준희는 <모래시계>의 재희와도 많이 닮았다. 두 캐릭터의 이미지가 강렬하다고 해서, 이호원도 조용하고 얌전할 거란 생각은 넣어둬라. 그에게 준희, 재희와 닮았냐는 가벼운 질문을 던지자마자 곧바로 “수다 떠는 걸 엄청 좋아한다”며 차마 지면에 싣지 못할 유쾌한 에피소드를 쏟아낸다. 조용한 성격은 아니지만 그래도 준희, 재희와 비슷한 면은 있다. “전 맺어진 사랑보다는 짝사랑을 많이 했어요. 그래서 행복한 러브 스토리보다는 가슴앓이가 더 익숙하죠. 저도 사람인지라 데뷔한 후에는 호감이 가는 몇 분이 눈에 들어왔어요. 그런데 제겐 일이 제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 사랑하면 일에 집중하지 못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한 번도 먼저 다가간 적이 없어요.”


많은 아이돌 출신의 뮤지컬 배우들이 힘들어하는 점이 있다. 평균 3분 정도의 노래로 무대에 서는 것과 다르게 꽤 긴 시간 동안 무대에 에너지를 쏟아야 한다는 것. 그러나 8년간 가수로 무대에 선 이호원은 의외의 답변을 꺼냈다. “그동안 많은 콘서트 무대에 섰어요. 단독 콘서트만 1백 회 이상 했거든요. 그런데 콘서트도 세 시간이 훌쩍 넘어요. 가수는 단순히 무대에서 노래 한 곡을 부른다고 생각하지만, 콘서트에서 서른 곡을 넘게 부르는 일은  절대 짧은 호흡으로 끝나는 게 아니거든요. 처음부터 끝까지 고르게 생각하고 배분하죠. 그래서 어느 무대에서는 힘을 빼고, 어느 무대에서 힘을 주겠다는 계획을 세우죠. 이런 부분이 뮤지컬을 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됐어요.”




리얼 호야

무대 이야기에 눈을 반짝거린 이호원을 보며 ‘열정’을 늘 가슴속에 묻고 사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그에게 최근 들어 새롭게 깨달은 생각도 있다. “어렸을 때는 ‘무조건 가수만 하다 죽을 거야’라고 생각했는데. 한 1~2년 전부터는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가수가 여전히 제게는 제일 중요한 일이지만, 이렇게 살다가 죽는 건 억울하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연예계 일이 아닌 다른 일이나 완전히 평범한 삶에 대한 궁금증도 생겼어요. 고등학교를 자퇴하고 나서도 전혀 미련이 없었는데, 최근에는 대학 생활을 못 해봤던 게 조금 아쉽더라고요. 제 자신이 그런 생각을 한다는 게 놀라웠어요. 여러 생각을 하게 되더라고요.” 이렇게 꼬리에 꼬리를 문 생각의 일부엔 뮤지컬도 있었다. 이번 <모래시계>가 그의 인생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인 뮤지컬일 수도 있다며 너스레를 떨면서도, 이젠 할 수 있는 최대한 여러 가지의 경험을 맛보고 싶다고 덧붙였다. 이호원에게 뮤지컬의 맛은 바로 많은 사람들과 함께 발맞춰 만들어가는 매력이다. 더 나아가서 연극에 대한 관심도 높아졌다. 뮤지컬을 연습하면서 지켜본 선배들의 모습을 통해 공부했고, 무대에 대한 욕심이 더 강해졌다면서 열정을 드러냈다. “뮤지컬이 처음이라 많이 부족한 부분이 있다는 걸 저도 잘 알아요. 그래서 제가 더 많이 공부하고 노력하려 해요. <모래시계>를 무사히 마치고 나서도, 좋은 기회가 된다면 좋은 작품으로 또 도전하고 싶어요.”


이호원에게 <모래시계>는 이미 좋은 기억으로 자리잡고 있다. 비슷한 또래의 배우들이 뭉친 첫 드라마 촬영장이 그가 경험하지 못했던 학교였다면, 지금 뮤지컬 무대는 편안하고 화기애애한 가족이 모인 집이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홀로 있던 자신에게 다가오는 선배들을 보며 배려를 배웠고, 시도 때도 없이 울리는 단체카톡방 덕에 심심할 틈이 없다. 때문에 뮤지컬을 향한 그의 애정은 날이 갈수록 샘솟고 있다. 이제 이호원은 <모래시계> 이후의 계획도 준비하고 있다. “우선은 뮤지컬 <모래시계>를 사고 없이 마쳤으면 좋겠어요. 또 제가 좋아하는 음악을 많은 분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마음이 가장 크고요. 그리고 건강하게 웃으면서 일했으면 좋겠어요.” 마지막으로 기분 좋은 그의 각오가 덧붙여졌다. “팬분들께서 저를 많이 걱정해 주세요. 그런데 이런 걱정에 대한 부담감보다는 감사함이 커요. 제가 더 열심히 해서 걱정은 없애고, 더 많은 기대를 품으실 수 있도록 할게요.”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72호 2018년 1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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