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버 더 시너>
악마를 심판하다
“정신 똑바로 차려.
딱 우리가 계획한 대로 됐어. 사실 우리가 계획한 것보다
더 잘됐잖아. 그치?
모든 건 아름답게 피어났어. 이건 예술이야. 예술 작업.”
- <네버 더 시너> 중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
1924년 미국 시카고에서는 끔찍한 아동 유괴 및 살인 사건이 벌어졌다. 네이슨 레오폴드와 리처드 롭은 14세의 로버트 프랭크를 유괴한 뒤 살인을 저지르고 배수구 안쪽에 시체를 유기했다. 용의자가 없었던 사건에서 발견된 결정적인 단서는 배수구 근처에 놓인 안경. 이 안경을 통해 레오폴드와 롭은 강력한 용의자로 지목된다. 이 경악스러운 사건에 사회의 비난이 쏟아졌다. 두 사람의 유괴 및 살인 사건에 교수형을 요청하는 검사 크로우와 이를 막기 위한 변호사 대로우의 법정 싸움은 큰 화제가 됐다. 무엇보다 변호사 대로우는 재판 과정에서 레오폴드와 롭의 죄를 인정하지만, 인간의 존엄성을 보장해야 한다는 의견으로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Hate the sin, Naver the sinner)”라는 명문을 탄생시켜 지금까지도 회자되고 있다.
이 실화를 바탕으로 한 편의 연극이 탄생했다. 연극 <네버 더 시너>는 <레드>로 토니 어워즈 최우수 작품상을 받은 존 로건이 첫 번째로 집필한 연극으로, 1985년 초연 이후 브로드웨이에서 꾸준히 사랑받고 있는 작품이다. 특히 <네버 더 시너>는 국내에서 두터운 마니아층을 보유하고 있는 뮤지컬 <쓰릴 미>와 동일한 사건을 바탕으로 하고 있어, 두 작품이 어떻게 다른 매력을 보여줄지 기대의 목소리가 높다.
관객이라는 재판관
<네버 더 시너>는 시카고 대학에서 처음 만난 레오폴드와 롭이 서로의 특별함에 매력을 느껴 친구 이상의 관계로 발전하면서부터 시작된다. 이들은 니체의 초인론에 빠져 아동 유괴 및 살인을 저지르고, 용의자로 잡힌다. 이 사건은 시카고 전역에서 주목을 받고 매스컴과 대중은 이들에게 사형을 집행할 것을 요구한다. 작품은 두 사람의 교수형을 막으려 노력하는 변호사 대로우와 범죄자들을 냉혹하게 처벌할 것을 호소하는 검사 크로우의 법정 다툼을 그린다.
같은 실화를 다루는 <쓰릴 미>가 범죄의 가해자인 ‘그’, ‘나’ 두 인물의 심리 게임을 그렸다면, <네버 더 시너>는 사건에 대한 좀 더 세밀한 묘사와 두 실존 인물들의 특별한 관계, 이들을 둘러싼 변호사와 검사의 신경전에 집중했다. 특히 니체의 초인론에 푹 빠져 유괴와 살인을 저지르게 되는 두 주인공의 서사 그리고 사건에 관련된 모든 부분이 인물들의 대사와 행동을 통해 세밀하게 그려질 예정. 작품은 재판 시점과 과거를 넘나들며 진행되는데, 시간이 흐를수록 등장인물들 간의 팽팽한 신경전이 강렬하게 드러난다.
무엇보다 레오폴드와 롭의 재판을 통해 사형 제도에 대해 주목한 것도 특징이다. 변정주 연출은 “관객들이 객관적으로 사건을 바라보면서 범죄자들의 이면을 보고 난 후, 변호사 대로우와 검사 크로우의 최후 진술을 통해 관객이 스스로 (이 사건에 대한) 판단을 내릴 수 있었으면 한다”면서 “또 이 과정에서 언론의 역할에 대해서도 한 번쯤은 생각해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네버 더 시너>에서는 매스컴의 역할도 중요하다. 기자들은 극이 진행될수록 사건에 대한 자극적인 기사를 쏟아내고, 이를 접한 대중도 큰 동요를 일으킨다. 무엇보다 수사와 재판의 진행 상황은 기자들의 글과 입을 통해 무미건조하지만 강렬한 표현들로 펼쳐지는데, 현재의 언론과 별다르지 않은 상황을 연상시킨다. 이를 통해 작품은 매스컴이 대하는 범죄와 범죄자에 대한 고찰까지 던질 예정이다.
학구적이며 언어학에 뛰어난 재능을 가졌고, 차갑지만 로맨틱한 네이슨 레오폴드 역에는 조상웅, 이형훈, 강승호가 캐스팅됐다. 똑똑하고 지적이면서도 모호한 성적 매력과 관능을 품은 리처드 롭 역에는 박은석, 이율, 정욱진이 무대에 오른다. 레이폴드와 롭의 교수형을 막기 위한 노련한 변호사 대로우 역에는 윤상화와 이도엽이, 두 사람의 잔혹한 범죄에 대해 강력한 처벌을 원하는 검사 크로우 역에는 이현철과 성도현이 출연한다. 이외에도 윤성원, 이상경, 현석준이 출연한다.
MINI INTERVIEW 변정주 연출
<네버 더 시너>에 영감이 된 것은 무엇인가.
실제 사건의 자료 사진을 찾아봤다. 그런데 컴퓨터 화면에 악마의 모습이 가득 채워지더라. ‘악마의 심장’을 바라봐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악마의 심장과 평범한 사람의 심장을 구분할 수 있을까. 결국 우리가 보고 있는 살인마의 이미지는 매스컴이 과도하게 만들어낸 이미지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닿았다. 바로 이것이 <네버 더 시너>를 연출하는 시작점이었다.
작품의 메시지는 무엇인가.
아무리 흉악한 범죄의 가해자라 해도 합법적으로 사람의 목숨을 빼앗는 것이 정의로운가를 묻고 싶다. 즉, 사형 제도의 정당성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관객들에게 안겨주고 싶은 감정은 무엇인가.
어떤 ‘감정’을 전달하기보다 관객들이 이성적으로 ‘사고’하게 만드는 작품이다. 사회에서 흉악한 범죄가 일어날 때마다 우리는 그 범죄자를 악마화하고 사회의 이성을 마비시키는 도구로 활용한다. 그렇다면 범죄자가 범죄를 저질렀을 때, 범죄의 책임을 범죄자 혼자 짊어지게 하는 것이 정의로운 일일까. 흉악한 범죄자와 범죄를 놓고 검사와 변호사의 법정 대결을 통해 관객 각자가 판사가 되어 사고할 수 있는 작품이 되었으면 한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73호 2018년 2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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