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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SPECIAL INTERVIEW] 박천휘 작곡가 [No.173]

글 |박병성 사진 |심주호 장소협찬 | 대학로 카페 좋은이웃 2018-02-28 3,966
분초를 다투는 
뉴욕 작곡가의 열정
 
조나단 라슨은 수년째 카페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뮤지컬을 만들어갔다. 브로드웨이에 입봉하지 못한 작곡가의 초조한 심정을 <틱틱붐>을 통해 담아내기도 했다. 조나단 라슨의 일화는 그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현재 브로드웨이 무대를 꿈꾸는 수많은 창작자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최근 뮤지컬계에서 보기 힘들었던 박천휘 작곡가는 그동안 브로드웨이 무대를 꿈꾸는 뉴욕의 뮤지컬 작곡가와 아역 배우들과 영어 교재를 만드는 작업을 했다. 벌써 9년째 이어지는 일이다. 
 
최근 3~4년은 이 일에 매진하느라 본업에 충실하지 못했다. <넥스트 투 노멀>, <레베카>, <스위니 토드> 초연 번역을 맡고 연극 <베키쇼>와 <청춘의 십자로>에서 음악을 담당한 그는 국내에서 뮤지컬에 대한 이론적이고 실질적인 정보와 지식이 가장 많은 전문가 중 한 사람이다. 본지와는 무려 9년 전 ‘Contemporary Songwrighters’를 통해 마니아 사이에서도 낯선 촉망받는 브로드웨이 작곡가들을 소개하기도 했다. 회사에 소속되어 뉴욕의 창작자와 영어 교재 작업을 했던 그는 이제 독자적으로 관련 사업을 해 나가려 한다. 박천휘 작곡가에게 뉴욕 창작자나 아역 배우들과 일했던 경험을 듣고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치열한 뉴욕 작곡가의 생활
 
먼저 어떻게 영어 교재 만드는 일을 하게 되었나?
영어도 할 줄 알고 곡도 만들 줄 아니까, 지인의 인맥으로 꽤 큰 출판사에서 영어 교재를 만드는 프로듀서로 참여한 적이 있다. 60~70곡을 담은 18권을 만들었는데, 그때 작업을 보고 신생 회사를 설립하려는 대표가 찾아왔다. 내가 만들고 싶은 대로 할 수 있도록 전적으로 지원한다면 참여하겠다고 했다. 누군지도 모르겠고 해서 무리인 듯싶은 제안을 한 거다. 그 전까지만 해도 국내 영어 교재는 한국 작곡가가 곡을 썼다. 영어의 억양이나 고조, 악센트에 덜 민감한 사람이 만들다 보니까 외국 사람이 듣기에는 무척 어색한 수준이었다. 나는 미국의 작곡가가 곡을 쓰고 그곳의 아역 배우를 출연시키겠다고 했다. 그때만 해도 교재 시장이 너무 작아서 콘텐츠에 투자하지 않았다. 사장이 동의해서 2010년부터 미국에서 스튜디오와 에이전시 등 파트너사를 찾았고 미국 작곡가의 샘플 곡을 일일이 찾아 들으면서 섭외했다. 
 
함께 작업한 작곡자들은 어떤 사람들이었나?
브로드웨이에 작품 올리는 걸 꿈꾸면서 관련된 다양한 일을 하던 친구들이다. 브로드웨이에서 뮤지컬을 올리려면 음악 파트에 작곡가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 음악슈퍼바이저, 음악감독을 필두로 편곡자, 오케스트레이터, 작품에 나오는 멜로디를 짜깁기해서 안무 장면을 마드는 댄스뮤직어레인저, 보컬편곡자, 보컬트레이너, 리허설피아니스트 등 굉장히 많은 사람들이 필요하다. 이런 일을 하면서 자기 작품을 쓰고 있는 이들이다. 지금까지 함께 일한 작곡가가 한 20명 된다. 그중 제일 유명한 사람이 케니 시모어(Kenny Seymour)라고 <멤피스> 음악감독을 했던 친구다. 이 일이 인연이 되어 같이 일했던 다른 작곡가에게 자기 일을 나눠 주기도 했다. 
 
뉴욕 작곡가와 교재 작업을 했는데 어려운 점이 있다면?
교재 시장의 음악은 다 미디(MIDI)로 작업한다. 라이브 악기를 쓰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런데 뉴욕의 작곡가들 중 미디를 할 줄 모르는 사람이 많다. 미국에서는 아무리 소극장 뮤지컬이라 하더라도 피아노 한 대 놓고 할망정 MR(녹음 반주)을 사용하는 걸 상상조차 못하는 문화다. 그들 입장에서는 미디를 배울 필요가 없다. 샘플 음악을 들어보면 이 작곡가가 미디를 할 줄 아는지, 모르는지 알 수 있다. 재능이 있으면서 미디를 할 줄 아는 작곡가를 섭외했다. 윌(윌 애런슨, <번지점프를 하다>, <어쩌면 해피엔딩> 작곡가)은 미디 작업을 할 줄 몰랐는데 내가 방법을 가르쳐주고 팁을 준 경우다. 워낙 친한 친구였고 잘할 거라 생각했는데 조금만 가르쳐주었는데도 진짜 처음부터 잘하더라. 
 
뉴욕의 작곡가와 일하면서 느낀 점이 있다면?
배워야 한다고 생각한 점은 이들이 정말 치열하게 산다는 거다. 뉴욕은 내로라하는 예술가들이 다 모이는 곳이다. 샘이 날 정도로 재능이 넘치는 천재들이 정말 많다. 뉴욕은 땅값도 비싸고 집세도 비싸고 모든 것이 다 비싸다. 그곳에서 살기 위해 뛰어난 친구들이 시간을 쪼개가면서 작품을 써가며 버티고 있다. 그렇게 해도 이들이 브로드웨이에 작품을 올릴 확률은 매우 적다. 창작자들을 독려하긴 하지만 브로드웨이 시장은 너무나도 상업적이고 보수적이다. 최종으로 선택하는 기준은 그 작품이 돈이 될 것인가 하는 점이다. 링컨센터나 퍼블릭 시어터에서 좋은 작가와 작품을 발굴하지만 그런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은 마이클 존 라키우사나, 제닌 테소리 등 마이너 그룹에서 정말 실력 있는 몇 명이다. 그 기회마저도 소수에게만 주어진다. 
 
미국에서도 공모가 많이 이루어지는가?
비영리 극장에서 공모를 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정부의 지원을 받기도 하지만 독지가나 개인 후원을 받는 경우가 많다. 미국은 문화를 후원하는 독지가들이 많다. BMI 워크숍에서도 그곳 출신 학생들을 대상으로 공모하는 사업도 있고, 해롤드 프린스는 필라델피아로 근거지를 옮겨 작품 개발을 하고 있다. 윌리엄 핀이 관여하는 베링턴 스테이지의 프로그램도 있고, 지역 극장과 복지 사업의 일환으로 힘을 합쳐 하는 프로그램이 꽤 된다. 그렇게 4~5년에 걸쳐 개발된 작품 중에 거르고 걸러서 브로드웨이 입맛에 맞는 작품만 올라간다. <나타샤, 피에르와 1812년 대혜성>도 오프오프의 작은 아르스 노바에서 개발돼 오프를 거쳐 브로드웨이에 올라간 작품이다. 이 작품의 작곡가는 음악 교재 시장의 음악과는 안 어울렸지만 실력이 좋아서 지켜보고 있던 차였다. 지금은 너무 유명해진 <디어 에반 한센>의 팀인 벤지 파섹과 저스틴 폴은 초기에 같이 작업을 하자고 섭외를 했는데 연락이 안 왔다. 이들은 존 부세티 에이전시 소속이었는데, 브로드웨이 전도유망한 창작자들이 많이 소속된 곳이다. 이곳에 소속되면 어느 정도 성공이 보장된다. 브로드웨이 진입 직전 단계에 와 있는 창작자들이 많다. 이곳에서는 우리 일을 안 해주더라. 
 
 
 
 
브로드웨이 키즈를 꿈꾸는 아이들
 
뉴욕의 작곡가들이 만든 노래를 뉴욕의 아역 배우들이 부르게 했다. 같이 일한 아역 배우들은 어떤 이들인가?
나이는 8~9세부터 13~14세까지 변성기 이전의 아이들이다. 애들은 자기와 비슷한 나이의 목소리에 더 반응한다. 영국에서 넘어온 작품들, <빌리 엘리어트>, <메리 포핀스>, <마틸다>에 출연하는 아역 배우들이 많았는데 그들과 함께 많이 작업했다. 브로드웨이의 <마틸다> 공연은 4년 동안 17명의 마틸다가 있었는데 그중 8명과 작업을 했다. 처음에는 12세, 14세 아이들과 작업을 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아이들의 나이가 점점 어려지더라. 제작사에서는 변성기가 오면 아이들을 내보낸다. 아역 배우들이 트라이아웃부터 함께하는데 보통 뮤지컬을 4~5년 개발하다 보면 아역 배우들은 교체된다. 아역 배우 중에서도 스타가 있긴 하다. 같이 작업한 아역 배우 중에는 브로드웨이 5~6개 작품에 선 아이도 있다. 
 
남자 아역 배우와 여자 아역 배우의 비중은 어떤가?
여자아이의 비중이 80% 정도로 높다. 그래서 상대적으로 남자 아역 배우는 실력이 약간 떨어져도 작품에 참여할 기회가 많다. 지원자 자체가 적지만 변성기가 빨리 와서 할 수 있는 남자 아역 배우 수가 적다. 여자 아역 배우는 경쟁이 심하다. 주인공 오디션의 경우는 1천 대 1이 넘는 것은 다반사다. 오디션을 10차까지 보기도 한다. 내가 오디션을 해도 수백 명의 아이들이 온다. 
 
아역 배우 중 70%는 지방에서 온 아이들이라고 들었다. 그 아이들은 어떻게 생활을 하나?
부모님이랑 같이 원룸 같은 데를 구해서 생활한다. 경제적으로 부유한 집의 아이들이 대부분이고 머리도 좋고 교육을 많이 받은 아이들이다. 정말 잘하는 애들은 뉴욕 사립 예술 초등학교에 다니기도 하는데, 매우 소수이고 대부분은 홈스쿨링을 한다. 공연하는 아이들을 위한 홈스쿨링 프로그램을 함께 개발한 사람이 낸시 카슨(Nancy Carson)이라고 1970년대에 <애니>가 처음 올라갈 때 아역 배우 에이전시를 최초로 설립한 분이다. 브로드웨이 키즈의 어머니로 불리는 분인데, 이분과 협업하면서 뛰어난 기량의 아역 배우를 섭외할 수 있었다. 아이들은 주로 개인 레슨을 받는데 아역 배우들을 전문적으로 가르치는 특화된 보컬 선생이 있다. 
 
아역 배우 사이에서도 경쟁이 심하다 보니 브로드웨이에 서는 배우와 그렇지 못한 배우를 볼 텐데, 어떤 차이가 있는가.
브로드웨이 문턱을 넘느냐, 그렇지 못하느냐에 가장 중요한 것은 운이다. 수천 명 중 한 명을 뽑는 것인데 노래나 연기를 조금 잘하는 사람보다는 어떤 눈빛이고 어느 정도의 키에 어떤 이미지를 갖고 있는지 캐릭터에 얼마나 어울리는지가 더 중요하다. 실력은 기본이고 그 많은 지원자 중 뽑히기 위해서는 운이 필요한 거다. 그렇지만 한 번 브로드웨이 문턱을 넘은 아이는 다음번에 캐스팅되기가 쉬워진다. 넘기 전에는 실력 차이가 크지 않지만 넘고 나서 전문 선생님에게 배우고 관리를 받으면 실력이 달라진다. 또 아역 배우 중에는 언니, 오빠의 영향을 받아서 자매나 형제가 하는 경우가 많다. 같이 작업한 아역 배우 중 가장 유명한 아이가 영화 <숲속으로>에서 빨간망토로 출연한 릴라 크로포드이다. 릴라의 동생 새비 크로포드도 브로드웨이 뮤지컬 <아멜리에>에서 아멜리에 아역으로 출연했다. 
 
어린 나이에 치열한 경쟁에 내몰리다 보니 안쓰러울 때도 있을 것 같다.
아역 배우가 제일 싫어하고 무서워하는 게 키다. 실제로 나이에 비해 키가 작거나 어린 목소리의 배우가 캐스팅이 잘된다. 노래를 굉장히 잘하는 애들도 12세가 되면 변성기가 온 것도 아닌데 벌써 위축된 모습을 보인다. 아이들이 사춘기를 넘으면 캐스팅되기 힘들어진다. 대부분 영화나 TV 쪽으로 눈을 돌리지만 그중에 실제 작품 출연으로 이어지는 경우는 굉장히 드물다. 아역 배우로 시작해서 성인 배우로 가는 경우가 오히려 적다. 대부분 이 경험을 바탕으로 다른 일을 하게 되는 경우가 더 많은 것 같다.
 
 
 
새로운 영어 교재 시장에 도전
 
원래 교육 시장에 관심이 있던 것이 아닌데, 참여했던 작업은 성과가 좋았다. 그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잉글리시에그를 통해 한국 영어 교재 시장 음악의 패러다임을 바꾸었다. 지금 다른 교재들이 에그를 따라하고 에그와 같이 만들었다고 홍보한다. 대단한 생각을 가지고 한 일은 아니지만 뮤지컬 작업하듯이 하면 다른 교재들은 경쟁이 안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전 세계적으로 봐도 교육 시장 음악은 단순하다. 아이들의 수준을 낮게 보는데 그게 달랐던 것 같다. 에그 음악은 화려하다. 아역 배우들이 높은 고음도 내고 음악의 장르도 다양하게 만들었다. 교육 전문가가 아니다 보니 에그에서 내가 하고 싶은 음악을 한 것이다. 음악을 위한 음악을 했는데 그것이 교육을 위한 음악이 됐다. 실제로 교육적인 효과도 있었다. 
 
이제는 독립된 작업을 하려고 한다. 달라진 점이 있다면?
에그에서 일하는 동안은 에그 밖을 본 적이 없다. 영어 교재 시장이 어떤지, 다른 나라에서는 어떻게 만드는지 알지 못했다. 직접 뛰어들면서 이 시장을 공부했고 전체 시장을 보는 눈이 생겼다. 영국의 유명한 교재 브랜드를 보면 음정이 전혀 안 맞는 애들을 모아서 합창을 시키기도 하더라. 음악적인 완성도보다 자유로운 분위기를 중요하게 여긴 것인데 발상의 전환을 느꼈다. 상해국제도서전에 가서 세계적인 회사의 작품들을 봤다. 음악만 하던 사람인데 시장에 대한 눈이 뜨였다. 이제는 음악적으로도 다른 색깔을 낼 수 있을 것 같고 내가 직접 하려고 하니까 여러 아이디어가 떠오르더라. 최근 그간의 작업을 소개하는 홈페이지(attaccamnb.com)를 마련했다. 
 
작곡가가 아닌 독립된 사업을 하려는 입장에서 본 영어 교재 시장은 어떤 가능성이 있나?
국내에서 영어 교재 시장은 침체기에 접어들고 있다. 너무 많은 교재가 개발되었고 아이들 수가 점차 줄어들고 있다. 비싼 프리미엄 제품으로 차별화하는 시장은 한계점에 왔다. 눈을 돌리면 가까운 중국이나 홍콩, 인도네시아, 대만, 일본 등 아시아에 큰 시장이 있다. 지금은 콘텐츠의 세계화 시대이다. 미래는 전 세계 시장을 한꺼번에 노려야 하고 디지털 플랫폼으로 가야 한다. 복제를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전 세계에서 최고가 되지 않으면 이제는 의미가 없다. 아시아 시장을 출발해서 장기적으로는 세계적인 출판사의 음악을 만드는 파트너가 될 자신이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브로드웨이 작곡가들에게 더 많은 일을 주고 싶다. 그들이 돈 걱정 하지 않고 최소한의 일로 생활을 하고 남은 시간을 자신의 예술 작업에 매진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되었으면 좋겠다. 
 
본격적으로 일이 시작되면 뮤지컬 관련 작업은 더 하기 힘들 것 같다.
교재 일을 하면서 뮤지컬 일을 하지 못한 게 가장 후회된다. 시간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단지 회사 일을 우선적으로 하다 보니 잘못하면 펑크 낼 수도 있겠다 싶어 뮤지컬 작업을 못한 것이다. 결과적으로 창작자로서 게으르게 살았다. 미국 작곡가들을 보면서 반성이 됐다. 그들은 분초를 아껴가며 작품을 쓰고 정말 치열하게 살아간다. 우스갯소리로 뉴욕대 티쉬 과정 졸업생들에게 이런 이야기를 한다고 한다. 너희에게 두 가지 길이 있다. 하나는 스타벅스에서 일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스타벅스가 아닌 곳에서 일하는 것이다. 둘은 큰 차이가 있는데 전자는 의료보험이 적용되고 후자는 그렇지 않다. 그에 비하면 우리나라의 창작자들은 굉장히 기회가 많고 좋은 환경에서 작업하고 있다. 그래서 나도 더 열심히 치열하게 작품 활동을 겸하려고 한다. 오랜만에 연극 <트레인 스포팅>의 음악 작업을 하고 있고, 올해 올라갈 창작뮤지컬 신작도 준비 중이다. 라이선스 뮤지컬도 하나 번역 중이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73호 2018년 2월호 게재기사입니다.

 

* 본 기사와 사진은 “더뮤지컬”이 저작권을 소유하고 있으며 무단 도용, 전재 및 복제, 배포를 금지하고 있습니다. 이를 어길 시에는 민, 형사상 법적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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