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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처 | [SPECIAL] 뮤지컬을 만드는 여성들-정재진 영상디자이너 편 [No.173]

2018-03-05 5,328

2006년 <바람의 나라>로 뮤지컬에 입문했으며, <서편제>, <잃어버린 얼굴 1895>, <신과 함께_ 저승편> 등 다양한 작품에서 영상 디자인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며 국내 대표 영상디자이너로 자리잡았다. 또한 최근에는 박노수 미술관 기념 전시의 공간과 영상 디자인을 맡으며, 다방면에 활약 중인 미디어 아티스트다.

 

 

뮤지컬계의 대표 영상디자이너로 입지를 굳힐 수 있었던 노하우는 무엇인가? 
공연의 영상을 만드는 일이 정말 좋았다. 그래서 무언가를 바라려고 하지 않고, 계속 최선을 다했다. 처음 공연계에 입문했을 때만 해도 영상 디자인이 큰 비중을 차지하지 않았다. 특히 여자 디자이너는 더더욱 없었다. 전망이 밝은 분야도 아니었고, 조언을 해줄 여자 선배도 없었다. 그럼에도 주어진 대로 묵묵히 최선을 다했다. 그러다 보니 무용을 시작으로, 연극 그리고 뮤지컬로 작업을 이어가며 지금에 이르게 되었다. 


공연계에 입문할 당시 영상 디자인 분야는 여성 스태프가 전무했다. 그 점이 힘들지 않았나?
영상 디자인을 하고 싶어 커뮤니티를 만들었을 때도, 여자는 나 혼자였다. 영상 분야 자체가 테크놀로지를 다루는 작업이다 보니 남자들이 더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 참여연대에서 활동을 할 때도 촬영을 나가면 여자는 보이지 않았다. 한번은 포토라인에 서서 촬영을 하고 있었는데, 어떤 남자가 나를 잡고 뒤로 내팽개친 일도 있었다. 또 편집실에서 밤샘 작업이 잦다 보니, 체력적인 한계에 부딪힐 때도 많다. 똑같이 밤을 새워도 남자는 당연히 잘한 것이라면, 여자는 ‘여자인데도 잘하네’라는 말을 들어야 했다. 적극적으로 의견을 낼 때도, 남자에겐 ‘소신 있다’고 하지만 여자에게는 ‘성격이 세다’는 표현을 하더라. 디자이너로만 보는 게 아니라 ‘여성’ 디자이너로 한 번 더 필터링을 하는 거다. 그래서 이름 덕을 본 적도 있었다. 블라인드 테스트로 스태프를 뽑을 때, 남성적인 이름 덕분에 편견 없이 선정된 경우도 있었다. 


분야의 특성을 떠나 사회에서 여자가 커리어를 쌓아가는 것이 참 쉽지가 않다. 
하나를 선택하면 하나를 포기해야 하지 않나. 분야 자체가 육체적인 노동 강도가 세고, 밤샘이 잦아 불규칙한 생활을 이어가야 한다. 이를 이해해 줄 수 있는 남편을 만나야 가정생활이 유지되는데, 그게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또 여자는 출산을 하면 커리어가 끊긴다. 이런 점이 이 분야에 여자가 적은 이유가 아닐까. 나 같은 경우는 워커홀릭이다 보니 애초에 가정을 꾸려야겠다는 생각을 안 했다. 부모님 역시 결혼보다는 커리어적인 성공을 지지해 주셔서 커리어를 계속 쌓을 수 있었다. 또한 술을 아예 못 마시고 섬유근육통과 관절염을 오랜 기간 앓고 있다 보니, 공연계의 술자리에 함께하는 일이 쉽지 않았다. 하지만 술자리에서 중요한 대화가 오가고, 인맥과 친분으로 스태프가 선정되는 경우가 많다보니, 참여하지 않으면 고립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공연 일을 시작하는 20대 때는 분위기상 술을 마실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구토를 반복하면서도 이를 악물고 버텼던 기억이 난다. 


공연계에서 일하는 여성들은 어떤 편견과 차별에 맞서고 있나? 
작업 초창기에는 한 후배가 일주일 만에 공연계에 회의를 느끼고 일을 관둔 적이 있다. 잦은 술자리와 성희롱 때문이다. 그만큼 남성 중심의 술자리와 그 안에서 오고가는 성희롱적인 대화와 행동들이 빈번했다. 나 역시 성희롱과 성차별 문제가 큰 고민이었다. 특정 공연계 원로는 자신의 위치를 이용해 그런 행동들을 서슴없이 하기도 했다. 처음에는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처신해야 할지 몰랐다. 능력 있는 디자이너이고 싶은데, 여성으로밖에 보지 않는 것에 회의감을 느끼기도 했다. 그래서 2009년에 일을 관두고 유학을 갔다. 하지만 내가 좋아하는 공연 일을 많이 할 수 있는 곳은 우리나라였다. 외부 환경들 때문에 일을 그만두는 것은 결국 내 손해라는 생각이 들더라. 한국에서 다시 한 번 부딪쳐 보자고 마음을 바꿨다. 더 단단해져야겠다는 다짐을 하고 할 때까지 해보기로 했다. 그리고 <에비타>로 다시 활동을 시작했다. 


지금은 공연계에 여성 스태프들이 많아졌다. 남성 중심적인 작업 환경이 개선되었을 것 같은데, 어떠한가? 
현장은 각 파트가 짧은 시간 안에 각자의 몫을 해내며 합을 맞추는 전쟁터 같다. 극도로 예민한 상황이기 때문에 각 파트가 언성을 높이는 일도 다반사다. 그러다 보니 최근에도 종종 내가 남자였다면 이렇게 대했을까 하고 느낄 때가 있다. 남자 스태프들이 초면인데도 은근히 말을 놓거나 혹은 지나치게 화를 내면서 기를 누르려고 할 때가 있다. 물론 분위기가 조금씩 바뀌고 있지만, 아직도 많은 부분에서 공연계는 남성 중심의 작업 현장이고, 여성도 남성화된 인물만 전문가로 인정하는 분위기가 있다. 오죽하면 차라리 중성적인 모습이 나을까 해서 삭발을 고민하기도 했을까. 하지만 그건 외부의 시선으로 만들어진 내가 되는 것이기 때문에 결국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보다는 내가 나인 것을 인정하면서 내 주변을 바꿔 나가기로 결심을 했다. 


그만큼 공연을 만들어가는 여성으로서 느끼는 사명감도 클 것 같다. 지향하는 바는 무엇인가?
최근 영상디자이너를 꿈꾸는 여자 후배들이 연락을 많이 해온다. 후배들이 많아질수록 책임감과 역할의 신중함을 느낀다. 사실 험한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 치면서 성격이 한층 더 단호해지기도 했다. 이런 단호함 때문에 몇몇 피디들이 나를 피곤해 한다고도 들었다. (웃음) 하지만 무대에서 영상이 현대 무대미술을 구성하는 중요한 파트라는 사명감을 갖고 있기 때문에 영상의 역할에 대해 명확하게 요구하는 것일 뿐이다. 이는 후배 영상디자이너들의 포지션과도 연결되어 있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또한, 다르다고 해서 틀린 것은 아니다. 그런데 공연계는 종종 다른 것을 틀린 것으로 한정 짓고, 이를 차별하고 고치려 할 때가 있다. 그 색안경에는 여성성 또한 강하게 자리 잡고 있다. 실력보다 성별을 먼저 보는 것은 이상한 일이다.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는 한 공연계도, 여성 창작자의 성장도 늦춰질 수밖에 없다. 우리는 남성 스태프들을 남자로 보지 않고 각 파트의 전문가로 보지 않는가. 여성 스태프도 그런 평가를 받아야 한다. 영상디자이너로서 사명감을 가지고, 영상디자이너 정재진 그 자체로 평가받고 살아갈 수 있었으면 한다.


공연계에 입문한 여성 후배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때론 여성으로서 불평등함을 느낄 때가 있겠지만, 그것 때문에 자신의 꿈을 결코 포기하지 않았으면 한다. 주변에서 뭐라고 하던 스스로 자신의 일에 애정을 갖고, 계속 공부해 나갔으면 좋겠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73호 2018년 2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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