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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처 | [SPECIAL] 뮤지컬을 만드는 여성들-구윤영 조명디자이너 편 [No.173]

글 |나윤정 2018-03-05 4,510

1991년 동숭아트센터에 10년간 몸을 담았고, 2002년 <에비대왕>으로 주목받는 조명디자이너로 급부상했다. <바람의 나라>, <영웅>, <해를 품은 달> 등에 참여하며 국내 대표 조명디자이너로 활발히 활동 중이다.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의 스태프로도 참여해 개폐막식을 맡았다. 

 

 

 

어느덧 조명디자이너로 활약한 지 30년을 앞두고 있다. 공연계 대표 조명디자이너로 오랜 시간 무대를 지킬 수 있었던 원동력은 무엇인가?
다시 태어나도 이 일을 하고 싶다. 그만큼 이 일이 내게 잘 맞다. 고등학교 3학년 때 연극을 보다 조명에 이끌려 무작정 조명실을 찾아간 게 이 일의 시작이었다. 평소에 소극적인 성격이었는데, 어떻게 그렇게 적극적인 행동을 할 수 있었을까. 지금 생각해 보면 운명 같다. 나는 이 일을 정말 좋아하고 즐겼다. 조명 디자인을 잘하기 위한 일이라면, 뭐든지 열심히 했다. 무빙 라이트가 처음 도입되었을 땐, 배울 곳이 없어 브로드웨이를 열 번이나 다녀왔다. 천만 원이나 빚을 내서 말이다. 그 정도로 미치지 않으면 안 되는 일이다. 


처음 공연계에 입문했을 때는 조명 분야에 여성 스태프가 많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일을 하면서 여성이란 점에 대한 편견이나 차별을 느낄 때도 있었을 것 같다. 
너무 많았다. 처음 서울예대에 들어갔을 땐, 남자 선배들이 나를 쫓아내려고 하더라. 기본적으로 여자는 조명을 다루는 게 아니라는 생각을 갖고 있었던 거다. 당시 선배들의 기합이 하도 심해 1학년 전체가 학교를 나가버린 적이 있다. 그런데 나만 유일하게 나가지 않았다. 동기들에게는 미안했지만, 나는 조명 디자인을 하려고 학교에 들어왔기 때문에 꿈을 포기할 수 없었다. 그렇게 학교에 끝까지 남아 있었던 유일한 사람임에도, 나중에 팀장을 뽑을 땐 학교를 나갔다 돌아온 남자 동기를 시키더라. 홍콩에서 무용과 공연이 있을 때도, 남자 동기들만 데려가기도 했다. 한번은 모 작품의 오퍼레이터를 맡아 연습을 보러 갔는데, 연출가가 나보고 어떻게 왔느냐고 묻더라. 그러더니 날 추천해 준 선배에게 바로 전화를 걸었다. “나를 어떻게 보고 여자를 보냈느냐”고 통화를 하더니, 나보고 나가라고 하더라. 그때 울면서 공연장을 나왔던 기억이 난다. 

 

그런 환경에서 일을 시작하는 것이 쉽지 않았을 듯싶다. 
초창기에는 내가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사람들이 나를 대하는 표정이나 행동이 달라지더라. “네가 조명을 한다고?” 여자인 나를 믿지 않는 거다. 그때 나를 드러낼 수 있는 방법이 없다보니 더 거칠어진 것 같다. 무시를 당하면 사람이 방어적이 되지 않나. 그래서 초창기에는 연출들과 많이 싸워, 싸움닭이란 소리도 많이 들었다. 그러다 스물다섯 살에 <남자충동>, <난타>, <유리동물원> 등을 맡으며 주목받기 시작했다. 한편으로는 여성 조명디자이너 1세대로서 좋은 점도 있었다. 업계에 여자들이 흔하지 않다 보니 그만큼 관심도 많이 받았다. 희소가치가 있으니까. 힘든 점도 있었지만 그만큼 얻는 것도 많았다. 관심을 집중적으로 받을 수 있었으니까. 그래서 제자들에게 나는 시대를 잘 타고났다고 말하곤 한다. 

 

1995년 브로드웨이로 해외 연수를 떠나 큰 자극을 받았다고 들었다. 그곳은 여성 스태프에 대한 시선이 어땠나?
여성에 대한 편견이 전혀 없었다. 당시 <헤어>를 연출한 톰 오호건의 워크숍을 맡게 되었는데,  혼자 매일 사다리를 타고 조명기를 보며 빛을 맞춘다고 3박 4일 밤을 새운 적이 있다. 재밌는 건, 그런 나를 보고 배우들이 와서 계속 도움을 주려 하고 손편지와 사탕을 선물하기도 했다. 그리고 마지막 날, 연출이 고맙다고 나를 안아주면서 이런 말을 하더라. “나는 네가 무슨 빛을 찾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이미 그것을 찾았다고 생각한다.” 내 열정과 진정성을 높이 사준 거다. 그때부터 생각이 바뀌었다. 뭐든지 최선을 다하고 열심히 하면 되는구나! 이후론 사람들에게 ‘안 된다’고 하지 않고, ‘한번 해볼게요’라고 이야기했다. 조명디자이너로서 시야가 확 넓어진 경험이었다. 
 

공연계 조명디자이너로 활약하는 데 있어서, 여성이기 때문에 느끼는 단점과 강점은 무엇인가?
어렸을 때는 여자가 남자보다 신체적으로 힘이 약하다는 걸 인정하기 싫었다. 그런데 조명 기계가 사실 엄청 무겁다. 무빙 라이트는 여자 혼자서 움직일 수가 없다. 굳이 단점을 꼽으라면 이런 육체적인 문제들이다. 하지만 이 일은 여성이 맡기에 단점보다 장점이 훨씬 더 많다. 여성들은 사물이나 사람을 정서적으로 바라보는 성향이 강하다. 대체로 남자들의 표현은 거칠지만, 여자들은 굉장히 디테일하다. 최근 브로드웨이에서도 여성 조명디자이너들의 활약이 돋보이는데, 확실히 정서적인 느낌이 다르더라.

 

뮤지컬 속 여성 캐릭터의 역할이 한정적이라는 지적이 있다. 작품에 함께하는 스태프로서 느끼는 생각은 어떤가. 
안타깝다. 아무래도 구조적으로 쉽게 바뀌지 않을 문제일 것 같다. 그럼에도 여성들의 노력 또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겪는 문제이니까. 영화도 블록버스터만 흥행하는 것은 아니다. 투자 규모는 작지만 의미 있는 작품들이 많다. 이렇듯 여성들 스스로 새로운 작품을 만들거나, 관심 끌 만한 작품을 만들어가는 노력도 더해지면 좋겠다. 

 

후배 디자이너들을 위해 빛놀이집단광작소를 이끌고 있는 것이 인상적이다. 선배 디자이너로서의 책임감이 느껴진다.  
빛놀이집단광작소는 고선웅 선생님이 지어주신 이름이다. 조명디자이너로서 일을 하다 보니 사람이 얼마나 소중한지 알았다. 나는 조명 디자인을 하는 것이 정말 행복하기 때문에, 후배들도 이런 행복함을 느꼈으면 했다. 그런데 그들에게 너무 기회가 없더라. 그래서 후배들을 양성하기도 하고, 디자이너들끼리 모여 공부하고 실험적인 것도 시도해 보기 위해 빛놀이집단광작소를 창단했다. 여성 조명디자이너인 이주원도 이곳에서 함께한 내 제자다. 조명디자이너가 되기 위해서는 일단 크루부터 시작해 팔로 스팟도 잡고, 오퍼레이터로 시각을 넓히고 어시스턴트를 하면서 디자인 과정을 배워 나가야 하는데, 이 단계를 거치는 데 한 6~10년이 걸린다. 그런데 후배들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잘 모른다. 그래서 팀 작업을 통해 조명디자이너가 되기 위한 과정을 가르치면서, 그들이 디자이너로 잘 커 나갈 수 있도록 돕고 싶었다. 그런 취지로 시작한 것인데 어느덧 10주년을 넘어 뿌듯하다. 

 

공연계를 꿈꾸는 여성들에게 조언을 해준다면?
스스로 여성인 걸 자랑스럽게 여겼으면 한다. 남성들이 가질 수 없는 여성만의 특유한 무언가가 있지 않은가. 그걸 소중하게 여기면 될 듯싶다. 자신감을 가지고 당당해지자! 그렇다면 다른 사람들에게 좋은 본보기가 될 것이다. 결국 이건 남자다 여자다의 문제가 아니니까. 자기만의 특별한 스타일을 찾아내는 일이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73호 2018년 2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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