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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처 | [ZOOM IN] 공연 리플릿의 변신 [No.174]

글 |박보라 2018-03-27 3,041
소유하고 싶은 종이의 탄생

장면 하나
‘혹시 <베어 더 뮤지컬> 리플릿 필요하신 분 계신가요? 나눔할게요.’

장면 둘
리플릿이 배치된 장식장을 둘러보던 관객이 깜짝 놀라 웃음을 터트린다.
“어머, 손편지인가 봐. 이거 너무 예쁜 거 아니야?”   




시야를 마주하다
최근 뮤지컬과 공연의 신기하고 기발한 리플릿이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리플릿은 공연 홍보의 수단으로 주로 쓰이는 얇은 종이를 말하는데, 기본적으로 작품의 제목, 시놉시스, 출연진, 창작진을 비롯한 정보 전달을 목적으로 한다. 보통 한 손에 들어올 정도로 작은 직사각형의 종이는 다양한 공연장에 비치되어 관객의 눈을 사로잡는다. 가볍고 알맞은 사이즈 탓에 뮤지컬 마니아들은 좋아하는 작품의 리플릿을 모으기도 한다. 프로그램 북을 사는 것이 부담스러운 관객에겐 공연 정보와 캐스팅, 공연 사진이 집약되어 있어 공연을 추억할 수 있는 좋은 수단이다. 또 공연을 기다리면서 가볍게 읽기 좋아 호응도가 높다.

과거에는 간단한 정보 전달을 목적으로 만들어진 리플릿이 최근 들어 엄청난 변신을 이뤘다. 리플릿은 공연 정보를 전달할 수 있는 광고의 한 방법으로 여겨지는데, 이는 다른 광고에 비하면 규모는 작지만, 꾸준히 관객의 시야에 노출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공연 규모에 따라 다르지만 보통 만 장 이상 제작하는데, 해당 공연의 대상층을 먼저 선정하고 이에 따른 위치 선정에 들어간다. 지나가는 사람들의 시선이 많이 닿는 곳에 배포해 작품의 인지도를 높이는 것이 가장 큰 목적이다. 클립서비스의 한 관계자는 “최근 브랜딩 마케팅은 쉽게 접근할 수 있고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는 SNS와 같은 온라인 마케팅에 집중되고 있지만, 리플릿과 같은 오프라인 홍보물과 온라인 노출이 적절하게 진행될 때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며 문화 콘텐츠 관람이 주로 집중된 곳에 배포한다고 밝혔다. 리플릿은 대개 한 가지 디자인으로 제작되지만 출연 배우나 공연 특성에 따라 다양한 디자인을 선보이는 경우가 있어 컬렉터들의 수요가 높다.



리플릿 대란의 ‘핫템’
특히 공연의 메시지를 강렬하게 전할 수 있는 리플릿은 관객들의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지난해 공연된 <캣츠>의 리플릿은 500부 한정으로 제작된 리미티드 에디션으로, 절취선을 뜯으면 숨어 있는 메시지가 공개되는 디자인이었다. 제작사는 해당 리플릿을 재미있게 활용할 수 있도록 공식 페이스북을 통해 ‘#캣츠플레이’라는 포스팅을 게재하며 색다른 매력을 선사했다. 올해 <캣츠>의 리플릿은 예술적인 안무가 돋보이는 젤리클 고양이의 매력을 보여주는 것이 목적이었다. 리플릿의 앞면에는 각기 다른 고양이 캐릭터를 배치하고, 내지에는 12종류의 화려한 안무와 점프컷을 넣었다. 해당 리플릿의 사진이 사용된 포스터는 MD 판매 문의가 끊이지 않았다는 후문이다. 또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의 경우, 공연의 정보를 담는 리플릿의 목적을 최소화하고 주연 배우의 사진을 크게 삽입해 시선을 사로잡았다.

초연에 이어 재연도 상당한 인기를 얻었던 <팬레터>는 ‘리플릿 대란’을 불러일으킬 정도로 마니아층의 폭발적인 사랑을 받았다. 티저 리플릿과 메인 리플릿 두 종류로, 메인 리플릿은 공연의 상세한 정보를 기입한 리플릿 본연의 역할에 충실했다. 초연 티저 리플릿은 ‘해진의 편지’를, 재연 티저 리플릿에는 뮤지컬 넘버의 가사를 배우의 손글씨로 삽입했다. 여기에 경성 시대를 강조한 분위기와 작품의 분위기를 담은 디자인이 마니아층의 관심을 모았다. <팬레터>의 제작사 라이브 측은 리플릿을 디자인하면서 작품의 분위기와 경성 시대의 감성 그리고 편지라는 요소를 리플릿에 담기 위해 고민을 했다고. 재연 티저 리플릿의 컨셉은 ‘등장인물들이 관객에게 보내는 편지’로, 소장하고 싶은 리플릿을 통해 공연을 추억하게 만든다는 의도를 담았다. 작품의 등장인물인 해진, 세훈, 히카루 역의 배우들이 원고지 위에 손글씨로 뮤지컬 넘버를 써 내려갔고, 편지 봉투 이미지를 더해 <팬레터>가 보내는 편지를 완성했다. 이것은 초연 티저 리플릿인 ‘해진의 편지’에 이은 컨셉으로 리플릿을 접한 관객이 곧 세훈이 되어주었으면 하는 의도에서 시작된 것이다. 다만 초연의 티저 리플릿은 디자이너의 가족이 직접 ‘해진의 편지’를 손글씨로 써준 비하인드 스토리가 숨어 있다. ‘리플릿 대란’이 일었던 재연 티저 리플릿은 많은 관객의 성원에 보답하기 위해 공연 초반 유료 관객에게 만 부 정도 추가 배포됐다.



판타지를 현실로
관객들이 극 중 캐릭터들의 행동을 따라 하거나 대사에 반응하는 콜백(call back)으로 유명한 <록키호러쇼>는 이러한 무대의 특색을 충실하게 리플릿에 담았다. 바로 콜백에 착안해 제작된 월간 록키가 그 주인공. 폭우 속에서 길을 잃은 주인공 자넷과 브래드가 가방에서 신문을 꺼내며 비를 피할 때 관객 역시 월간 록키를 꺼내 함께 비를 피할 수 있다. 실제 월간 록키의 경우 신문을 연상시키는 재질과 굵기로 제작됐고, 공연 정보를 비롯해 다양한 콜백을 알려주는 글이 담겨 있다. 또한 그 자체가 직접 객석에서 활용할 수 있는 콜백의 도구로 활용되어 특별한 재미를 더했다.

2016년 <위키드>의 한국어 공연은 작품의 정보를 신문 형태로 전달했다. 1면 톱뉴스에는 서울과 지방 첫 공연이었던 대구 공연의 개막 소식과 캐스팅 예고 그리고 <위키드>와 관련된 최신 해외 소식을 실었다. 또 특집 기사로는 <위키드>에서 관객이 감탄하던 의상과 무대 관련 기사를 배치했다. 전면 광고나 돌출 광고 등의 디테일에도 신경썼는데, 리플릿 배포 시기가 한창 대학 신·편입학 시즌이었던 것을 착안 ‘쉬즈대학 편입학 모집 광고’(엘파바와 글린다가 다니는 학교)를 넣기도 했다. 섬세한 디테일을 숨겨놓으며 마니아들의 흥미를 자극한 것도 큰 인기 요인 중 하나였다. 그 예로 각 기사 아래에 기재된 기자의 이름에 캐스팅 관련 단서를 숨겨놓았는데, 기자들의 이름을 애너그램처럼 조합하면 엘파바와 글린다 캐스트의 이름이 나오게 만들었다. 또 기자들의 이메일 주소에도 캐스팅을 유추할 수 있는 정보를 숨겨놓았다. 클립서비스의 한 관계자는 “<위키드>의 배경인 오즈가 실제로 존재하고 그곳에서 실제 발행되는 신문이라는 판타지를 그대로 살렸다. 무엇보다 작품의 세계관이 탄탄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설명했다. 해당 리플릿이 화제가 되자 첫 지방 공연이었던 대구의 제작사에서도 요청이 들어와 공연장에 비치하기도 했다.

잡지 컨셉을 내세운 리플릿도 있다. 지난해 <마타하리>는 1960~70년대 일러스트를 가미한 패션지의 표지를 연상시킨 리플릿을 제작했다. 작품의 주요 이슈를 헤드라인으로 뽑아 정면에 배치했고, 안쪽의 공연 정보 또한 기사 형식으로 작성했다. 표지에는 주인공 마타 하리를 그린 일러스트를 넣었는데, 해당 일러스트를 리플릿에 사용하게 된 에피소드도 재미있다. 해당 일러스트는 공연 홍보를 위해 한남동 블루스퀘어 큰 외벽에 거의 1년간 설치되었는데, 남산 1호 터널을 지나는 많은 차량 운전자들, 특히 택시 운전자들이 블루스퀘어 극장을 ‘붉은색 그림이 있는 곳’이라고 지칭할 정도로 많은 사람들의 기억에 남았다. 따라서 그 홍보 효과를 이어 나가고자 리플릿에도 싣게 되었다고. 또한 이 일러스트가 그려진 MD를 제작하지 않았기 때문에 해당 일러스트를 소장하고 싶었던 관객들에게 리플릿이 좋은 선물이 되었다. 한편, EMK뮤지컬컴퍼니의 경우 일반적으로 제작되는 A4 사이즈보다 더 길쭉한 사이즈의 리플릿을 <엘리자벳> 초연 당시 제작했는데, 같은 사이즈의 리플릿 사이에서 이 길쭉한 리플릿이 단연 관객의 눈길을 잡기도 했다.



또 다른 선물
디자인을 각기 다르게 제작한 리플릿도 인기가 많다. 2016년 <레베카>의 경우 주연 배우에 따라 별도로 리플릿을 제작했다. 막심과 댄버스 부인에 캐스팅된 배우별로 리플릿을 디자인했는데, 특정 배우의 리플릿은 먼저 동이 나버려 추가 제작에 들어가기도 했다. 초연 이후 흥행을 이어 나가고 있는 작품인 만큼 브랜드 가치에 중점을 두는 것보다 같은 배역을 연기하는 서로 다른 배우들의 개성을 홍보하고자 배우별로 리플릿을 디자인했다는 것이 제작사 EMK뮤지컬컴퍼니의 설명이다.

공연의 특색을 살린 리플릿도 마니아층의 소장 욕구를 불러일으킨다. <빈센트 반 고흐>(2016년)는 리플릿의 중앙에 해바라기 그림을 배치, 펼치면 고흐의 다른 그림이 수채화처럼 나타나도록 디자인됐다. 또 고흐의 편지와 그림이 함께 어우러져 작품의 특징을 잘 전달했다. <리틀잭>(2016년)의 리플릿은 서정적인 가사를 소책자로 담아, 공연에 대한 추억을 남길 수 있도록 만들었다. <살리에르>의 초연 리플릿은 피아노 형태로 만들어졌는데, 음악가 살리에리를 다루는 작품의 특색을 살려 해당 디자인으로 제작한 경우다.

공연 리플릿으로 이벤트를 진행한 경우도 있다.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는 초연 당시 양면으로 제작된 리플릿을 배포했는데, 한쪽 면에 백석 역의 배우 프로필을 다르게 제작해 세 가지 버전으로 만들었다. 공연 초반 세 버전의 리플릿을 가지고 공연장을 방문하면 백석의 시집을 증정하는 이벤트를 열어 호응을 얻었다. 제작사 인사이트엔터테인먼트 측은 “단순히 공연의 정보를 제공하는 역할을 넘어 이벤트와 함께 진행되었기 때문에 반응이 좋았다”고 회상했다.

연극에서도 이렇게 신박한 디자인의 리플릿은 상당한 인기를 모았다. <엘리펀트 송>은 작품에서 상징적인 요소인 코끼리를 종이접기로 만들 수 있도록 리플릿을 제작했다. 리플릿은 종이접기가 쉽도록 얇은 재질로 제작되었고, 구석에 자리한 QR코드를 찍으면 종이접기를 할 수 있는 동영상으로 연결되기도 했다. 하지만 의외로 고난도의 종이접기인 탓에 실패자가 많아 해당 리플릿이 배치된 곳에는 여러 장을 가지고 가 종이접기를 시도하는 관객들이 많았다는 에피소드도 있다. 또 리플릿을 이용해 예쁘게 코끼리를 접어 해시태그와 함께 인증 사진을 게시해준 관객에겐 추첨을 통해 공연에 초대하는 이벤트도 진행했다. 나인스토리 측은 “색다른 재미를 느낄 수 있는 전단을 제작해 보기로 했고, <엘리펀트 송>을 관통하는 상징적인 존재인 코끼리가 보이는 컨셉이었으면 했다. 또 종이라는 소재로 가장 큰 재미를 느낄 수 있도록 해당 리플릿을 디자인했다”며 해당 리플릿이 탄생된 계기를 밝혔다. 이런 폭발적인 반응에 이어 <블라인드> 또한 특색 있는 디자인으로 제작됐는데, 바로 작품의 상징적 요소 중 하나인 눈꽃을 오릴 수 있는 리플릿이다. 눈꽃을 오리면 팝업 카드가 되는 리플릿을 통해, 초연인 작품의 이미지를 각인시키는 동시에 관객을 위한 하나의 선물이 되었으면 하는 것이 기획 의도였다.

1920년대 시카고에서 벌어진 레오폴드와 롭의 살인 사건을 배경으로 한 연극 <네버 더 시너>의 리플릿은 신문 컨셉으로 제작됐다. 레오폴드와 롭의 살인은 당시 많은 언론이 앞다투어 다룰 정도로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또한 무대에서도 언론을 향한 날카로운 시선을 다루고 있기 때문에 신문을 모티프로 전체적인 디자인을 잡았다. 실제 사건의 배경이 된 시대에 맞도록 흑백 신문의 느낌을 내려고 고민한 것이 특징이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74호 2018년 3월호 게재기사입니다.

* 본 기사와 사진은 “더뮤지컬”이 저작권을 소유하고 있으며 무단 도용, 전재 및 복제, 배포를 금지하고 있습니다. 이를 어길 시에는 민, 형사상 법적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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