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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처 | [ZOOM IN] 레너드 번스타인 탄생 100주년 [No.174]

글 |안세영 2018-03-27 6,573


Leonard Bernstein 1918. 8. 25. - 1990. 10. 14.


2018년 클래식계는 레너드 번스타인의 탄생 100주년을 맞아 그의 업적 기리기에 한창이다. 번스타인 공식 웹사이트(leonardbernstein.com)에 따르면 2017-2018 시즌 전 세계에서 기념 공연과 이벤트가 2천여 회 열린다. 특히 번스타인의 고국인 미국에서 열기가 뜨겁다. 구스타보 두다멜이 음악감독으로 있는 LA필하모닉은 축제를 마련해 번스타인의 바이올린 협주곡, 미사곡, ‘치체스터 시편’을 연주하고, LA오페라는 <캔디드>를 무대에 올린다. 클래식 음반사들은 기념 음반을 내놓기 바쁘다. 소니는 번스타인이 지휘한 앨범 100장 세트를, 도이치 그라모폰과 데카는 함께 121장의 앨범과 36장의 연주회 DVD 세트를 출시한다. 국내에서도 작년 11월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번스타인 메모리얼 콘서트>를 시작으로 각종 연주회에서 번스타인의 음악을 만날 수 있다.

번스타인의 이름이 빛나는 건 비단 클래식 분야만이 아니다. 그는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로 뮤지컬 역사에 한 획을 그은 뛰어난 작곡가이기도 하다. 지휘자이자 작곡가, 피아니스트였으며, 클래식과 뮤지컬을 오가며 양쪽 모두에서 성공을 거둔 남다른 이력의 소유자. 레너드 번스타인의 업적을 돌아보자.




하룻밤 새 유명해진 스타
1943년 11월 13일, 카네기홀에서 저녁 공연을 앞두고 있던 뉴욕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객원 지휘자 브루노 발터가 갑작스레 병석에 눕는다. 쓰러진 거성을 대신해 지휘봉을 잡은 건 스물다섯 먹은 악단의 부지휘자. 리허설도 못한 채 평상복 차림으로 무대에 오른 그는 모두의 우려를 깨고 기적처럼 멋진 공연을 선사한다. 연주는 라디오 중계방송을 타고 미국 전역으로 퍼지고, 다음 날 그에 대한 기사가 뉴욕타임스 1면을 장식한다. 그로부터 15년 뒤인 1958년, 화려하게 데뷔한 그날의 영웅은 마침내 뉴욕 필 역대 최연소 음악감독으로 취임하기에 이르니, 그의 이름이 바로 레너드 번스타인이다.

1918년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난 레너드 번스타인은 하버드 대학과 필라델피아 커티스 음악원에서 음악을 공부했다. 11년간 뉴욕 필의 음악감독을 맡아 악단의 전성기를 이끌었고, 빈 필, 이스라엘 필 등 저명한 오케스트라의 객원 지휘자로 활약했다. 특히 뉴욕 필과 말러 교향곡 전집 음반을 내놓으며 뛰어난 말러 해석가로 이름을 알렸다. 당시 명성을 떨쳤던 또 한 명의 지휘자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이 카리스마 넘치는 독재자였다면, 번스타인은 유머러스하고 소통을 중시하는 지휘자였다. 지휘대에 선 번스타인은 춤을 추듯 열정적인 모습으로 대중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또한 <청소년 음악회>를 포함한 다수의 텔레비전 프로그램에 출연하며 클래식의 대중화에 앞장섰다. 이로 인해 한때 쇼맨십에 치우친 지휘자라는 혹평을 받기도 했지만, 오늘날 그가 카라얀과 함께 20세기 지휘계의 양대 산맥이었음을 의심하는 이는 없다.

유럽 출신 지휘자가 주요 악단을 장악한 시절, 미국에서 나고 자라 세계적인 지휘자가 된 번스타인은 미국 음악계의 자존심이었다. 하지만 그는 좌파적 정치 성향 때문에 미국 연방 수사국(FBI)의 감시를 받기도 했다. 1950년대 초 냉전과 함께 매카시즘 광풍이 불어닥친 무렵이었다. 그럼에도 번스타인은 인권 운동과 반전 운동에 참여하기를 두려워하지 않았다. 1978년 번스타인이 뉴욕 필을 이끌고 내한했을 때도 그의 정치적 신념을 엿볼 수 있는 사건이 있었다. 당시 한국 주최 측은 소련 작곡가인 쇼스타코비치의 교향곡 5번을 프로그램에서 빼달라고 요청했는데, 번스타인이 이를 묵살하고 예정대로 연주한 것이다. 한국에서 이 곡이 공식적으로 연주된 것은 이때가 처음이었다.




클래식과 뮤지컬의 벽을 허물다
번스타인은 지휘자뿐 아니라 작곡가로서도 명성이 높다. 그는 교향곡, 발레, 오페라, 뮤지컬 등 다양한 종류의 음악을 작곡했는데, 그중에서도 뮤지컬로 큰 인기를 끌었다. 클래식과 모던 재즈를 결합한 번스타인의 음악은 브로드웨이 뮤지컬에 새로운 흐름을 가져왔다.

번스타인의 첫 뮤지컬은 1944년 초연한 <온 더 타운>이다. 뉴욕에 정박한 수병 세 명이 하루 동안 도시를 누비며 사랑을 찾는 이야기다. 2차 세계대전이 배경이지만 잠시 전쟁을 잊고 행복을 즐기는 수병들의 모습을 발랄하게 그렸다. 1953년에는 그가 작곡한 <원더풀 타운>이 토니상 최우수 뮤지컬상을 포함한 5개 부문을 석권했다. 시골에서 뉴욕으로 상경한 두 자매가 역경을 딛고 사랑과 꿈을 쟁취하는 내용이다. 번스타인은 두 작품에서 발레와 재즈 음악을 조화시켜 활기찬 도시 분위기를 표현했다.

앞선 작품이 주로 재즈 음악을 사용했다면 <캉디드>는 클래식한 음악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프랑스 계몽주의 철학자 볼테르의 풍자 소설이 원작으로, 낙관주의를 맹신하던 귀족 청년 캉디드가 세상에 나가 온갖 시련을 겪는 이야기다. 1956년 초연 당시 73회만 공연하고 막을 내렸지만, 1974년 리바이벌되어 큰 인기를 누렸다. 번스타인은 <캉디드>에서 왈츠, 탱고, 마주르카, 세레나데 등 다양한 음악 양식을 활용했는데, 이로 인해 ‘<캉디드>는 뮤지컬인가, 오페라인가, 오페레타인가’에 대한 논쟁이 끊이지 않았다. <캉디드>는 1974년 토니상 4개 부문에서 수상했다. 



번스타인에게 최고의 명예를 안겨준 작품은 두말할 것 없이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다. 1957년 초연한 뮤지컬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는 셰익스피어의 고전 『로미오와 줄리엣』의 배경을 1950년대 뉴욕으로 옮긴 작품이다. 빈민가 웨스트 사이드에 사는 백인 청년 토니와 푸에르토리코에서 이민 온 마리아는 첫눈에 사랑에 빠진다. 하지만 토니가 속한 갱단 ‘제트파’와 마리아의 오빠가 속한 갱단 ‘샤크파’가 충돌하면서 둘의 사랑은 비극으로 치닫는다. 아메리칸드림을 꿈꿨던 뒷골목 이민자들의 암울한 현실 속에 사랑과 화해라는 보편적 주제를 녹여낸 작품이다. 번스타인은 폴란드계 미국인 ‘제트파’가 나오는 장면에는 비밥 재즈를, 푸에르토리코계 이민자 ‘샤크파’가 나오는 장면에는 맘보, 차차차, 와팡고 등 남미 음악을 활용하여 이들의 캐릭터를 표현했다. 빠른 템포의 춤곡은 갱단의 격렬한 움직임을 묘사한 안무와 완벽하게 맞아떨어졌다. 그런가 하면 두 주인공의 노래는 클래식한 오페라 스타일로, 성악 경력이 있는 배우가 아니면 소화하기 힘들었다. 번스타인은 현대적 음악 양식을 고전적인 작곡 기술로 통합시켰다. 두 갱단의 날선 대립과 토니와 마리아의 달콤한 듀엣이 오케스트라 5중주로 조화롭게 어우러지는 넘버 ‘투나잇’은 번스타인의 탁월함을 확인시켜 준다.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가 보여준 음악, 가사, 안무의 긴밀한 결합, 그리고 현대 사회의 문제를 반영한 비극적인 스토리는 이전까지의 뮤지컬 코미디와 확실한 선을 그으며 브로드웨이 뮤지컬의 수준을 단숨에 끌어올렸다. 이 작품이 성공을 거두면서 작사가 스티븐 손드하임과 안무가 겸 연출가 제롬 로빈스가 이름을 알렸고, 번스타인 역시 자신의 믿음을 증명할 수 있었다. 뮤지컬도 오페라 못지않은 훌륭한 예술 작품이 될 수 있음을 말이다.



번스타인 100주년 기념 국내 공연




WE 콘서트 3월 3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클래식 관련 콘텐츠 제작사 WE클래식의 첫 콘서트 는 클래식, 뮤지컬, 영화 음악 등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꾸려진다. 2부에서는 소프라노 손지혜가 번스타인이 작곡한 오페레타 <캉디드>의 ‘Glitter and Be Gay’를 들려준다. 번스타인의 뮤지컬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속 주요 넘버 ‘Maria’, ‘Balcony Scene’, ‘Somewhere’, ‘I Feel Pretty’도 감상할 수 있다. 뮤지컬 배우 양준모와 크로스오버 가수 배다해가 노래한다. 코리아 쿱 오케스트라가 연주하고 이태경이 지휘한다.


소프라노 다니엘 드 니스 & 루체른 페스티벌 스트링
<모차르트에서 브로드웨이까지> 3월 15일 LG아트센터

다니엘 드 니스는 오페라와 뮤지컬 무대를 오가며 활약하는 소프라노다. 브로드웨이에서 공연한 뮤지컬 <레 미제라블>, 뉴욕 메트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 2005년 영국 글라인드본 오페라 페스티벌 <줄리오 체사레>에 출연해 이름을 알렸다. 작년 12월 사이먼 래틀과 런던심포니가 바비컨센터에서 번스타인의 뮤지컬 <원더풀 타운>을 콘서트 버전으로 공연했을 때 주인공 에일린 역을 맡기도 했다. 내한 공연에서는 번스타인의 뮤지컬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피터 팬>의 넘버를 들려준다.




서울시향 오페레타 <캔디드> 10월 12~13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서울시향은 번스타인의 오페레타 <캉디드>를 콘서트 버전으로 무대에 올린다. 1956년 초연한 <캉디드>는 18세기 계몽주의 철학자 볼테르의 동명 소설을 각색한 작품이다. 스승 팡글로스의 가르침대로 ‘현재가 최선의 세계’라고 믿었던 귀족 청년 캉디드는 전쟁, 지진, 난파를 겪으면서 자신이 지나치게 낙관적이었음을 깨닫는다. 번스타인의 <캉디드>는 체념적으로 끝나는 볼테르의 소설과 달리 브로드웨이식 익살과 활기로 가득하다. 서울시향 수석객원지휘자 티에리 피셔와 국립합창단이 함께한다.


에사-페카 살로넨 &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 10월 18~19일 롯데콘서트홀
음악감독 에사 페카 살로넨과 함께 내한하는 영국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는 번스타인 교향곡 2번 ‘불안의 시대’를 연주한다. 미국 시인 W.H.오든의 시 ‘불안의 시대’를 모티프로 한 곡이다. 번스타인의 다른 교향곡 ‘에레미야’, ‘카디시’와 마찬가지로 현대인의 신앙의 위기를 주제로 삼았다. 곡에 등장하는 피아노 독주는 공연 초기 번스타인이 직접 연주했다. 이번 공연에는 15년 만에 내한하는 거장 피아니스트 크리스티안 치메르만이 협연자로 나서 기대를 모은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74호 2018년 3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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