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리어코스티
오래도록 기억될 감성
빌리어코스티의 꿈은 하나다. 보통의 이야기를 다양한 감성으로 가장 가까이에서 이야기하는 사람이 되는 것. 거창하다면 거창하고, 소박하다면 소박한 꿈. 하지만 지난 2013년 싱글 앨범으로 데뷔한 그에게 붙은 첫 번째 수식어가 ‘잔잔한 감성이 빛나는 싱어송라이터’라는 걸 생각해 봤을 때, 그는 어쩌면 이미 일상에서 건져 올린 감정을 편안하게 노래하는 뮤지션이란 꿈을 이뤘는지도 모른다.
마음에 다가오는 음악
오는 4월 블루파프리카와 합동 공연이 예정돼 있죠. 어떻게 준비하게 된 공연인가요?
사실 합동 공연 얘기는 꽤 예전부터 있었어요. 서로 마주칠 때마다 언제 같이 한번 공연하잔 얘기를 하곤 했죠. 개인적으로 이번 공연이 좀 특별한 건, 전석 스탠딩으로 공연한단 점이에요. 스탠딩 공연은 정말 오랜만이거든요. 빌리어코스티랑 스탠딩 공연은 안 어울린다고 생각하실 분들도 있을 텐데, 제가 기타리스트 출신이다 보니 록킹한 사운드에도 관심이 많아요. 그래서 이번에 그런 면을 좀 부각해 보려고요. 블루파프리카랑 블루스나 록을 기반으로 한 재미있는 컬래버레이션 무대도 준비하고 있어요.
단독 콘서트나 합동 공연, 페스티벌 출연 같은 다양한 공연 중에서 어떤 형태의 무대를 제일 좋아해요?
공연마다 느낌이 다 너무 달라요. 단독 공연은 저를 좋아해 주시는 분들이 오기 때문에 관객 호응이 좋고, 합동 공연은 다른 뮤지션과 함께 하나의 공연을 만들어가는 재미가 있죠. 페스티벌 같은 경우엔 기본적으로 즐길 마음으로 와서 그런지 사람들 표정이 진짜 밝아요. 환한 표정의 관객들을 보면 덩달아 기분이 좋아지죠. 새로운 관객들을 만날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기도 하고요. 근데 세 가지 스타일 중에서 꼭 하나를 꼽아야 한다면, 아무래도 단독 공연을 할 때가 제일 재밌는 것 같아요. 하나의 흐름을 가지고 공연하는 즐거움이 크거든요.
그럼 최근에 했던 공연 중에 가장 만족스러웠던 건 뭘까요?
지난 2월에 했던 <조용히 흐르던 우리의 시간>이라는 공연이요. 저 스스로는 다양한 음악을 시도해 왔지만, 아무래도 ‘빌리어코스티’ 하면 잔잔한 감성으로 기억해 주시는 분들이 많아서 서정적인 무대를 꾸며봤거든요. 밴드에 현악기 연주자들하고 같이 공연했는데, 진짜 좋았어요. 원래는 두 시간만 공연하려다 욕심이 과해져서 두 시간 사십 분 동안 하게 됐죠. (웃음) 음악적인 부분부터 무대 연출까지, 모든 부분에서 지금까지 공연한 것 중 제일 좋았던 것 같아요.
공연하는 거하고 노래를 만드는 것 중에선 어떤 걸 더 좋아해요?
굉장히 어려운 질문인데, 바쁘게 공연 준비할 때는 조용한 데 가서 곡이 쓰고 싶어지고, 혼자 곡 작업할 때는 차라리 공연하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가끔이요. (웃음) 어떤 쪽을 선호하느냐는 상황에 따라 달라지지만, 전 노래를 써야겠다고 마음먹고 작업하는 스타일은 아니라는 건 확실해요. 작정하고 쓰려고 하면 오히려 작업이 잘 안 되더라고요. 평소에 뭔가 떠오르면 그걸 스케치해 두었다 곡을 만드는 스타일이죠.
그럼 뭔가 떠오를 때마다 바로바로 작업해요? 안 미뤄두고?
아뇨, 다 미뤄둡니다. (웃음) 왜, 하루 중 마음이 편해질 때 있잖아요. 집에 돌아오는 길이라든지, 자기 전 샤워를 할 때라든지. 그럴 때 뭔가 잘 떠오르는데, 그럼 일단 핸드폰에 짤막하게 녹음해 놓고 나중에 이건 이렇게 표현하는 게 좋겠다 하면서 살을 덧붙여 가요. 작업실 같은 제한적인 공간에서 곡을 쓰는 것보다 이런 방식이 저한테는 더 잘 맞는 것 같아요.
불현듯 음악이 떠오를 때 스스로도 좀 놀라요? 나 되게 뮤지션 같다 하면서?
조금? (웃음) 근데 가끔 제 노래를 듣는 사람들한테 미안할 때가 있어요. 노래를 이렇게 써도 되는 걸까 하고요. 너무 성실하지 않은 게 아닐까 싶은 거죠. 그래서 영감을 떠올리는 부분은 자유롭게 하지만, 곡을 만드는 작업이나 활동을 할 때는 더 성실히 해야겠다고 생각할 때가 많아요.
가사 영감은 주로 어디서 받아요?
가사는 아무래도 실제 경험에서 많이 나오는 것 같아요. 특히 사랑 노래를 쓸 때는 제가 기억하는 첫눈에 반하는 순간이나 사랑에 빠지는 순간에 대한 잔상, 그리고 이별이 다가올 때의 감정들, 그런 기억들이 많이 반영되죠. 개인적인 기억들이 멜로디와 함께 음악으로 남아서 사람들의 공감을 살 수 있다는 게 싱어송라이터의 매력 아닌가 싶어요. 뮤지션이 누리는 특권인 셈이죠.
그럼 반대로 누군가의 음악에서 큰 위로를 얻었던 적도 있겠네요? 어떤 곡이 특별한 기억으로 남았을까요.
음, 이승환 선배님의 노래 중에 ‘기다림’이란 곡이 있어요. ‘기다려봐도 그대는 안 옵니다. 아마도 아직 내가 기다림의 시간 다 채우지 못한 때문인가 합니다’ 하는 말로 끝나는 노래인데, 짝사랑할 때 굉장히 많이 들었어요. 아, 아직 내가 기다림의 시간을 다 채우지 못 했나보다 하면서. (웃음) 그 노래의 ‘내 마음엔 이미 그대가 이만큼 키만큼 갇혀버릴 만큼 쌓여버렸습니다’란 가사도 정말 좋아해요. 같은 외로움을 어떻게 이런 말로 표현할 수 있을까 너무 감탄스러웠죠. 이분은 도대체 어떤 경험을 한 걸까 혼자 고민해 보면서 나도 가사를 아무렇게나 쉽게 쓰면 안 되겠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어릴 때부터요.
행복한 자아 찾기
어렸을 때 발라드를 많이 들으면서 기타를 치게 됐다고 들었는데, 음악을 해야겠다고 결심하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을까요?
고등학생 때 그런 고민 많이 하잖아요. 난 어떤 사람이 될 수 있을까,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하는 고민들. 전 공부 말고 제가 할 수 있는 무언가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우유부단해서 딱히 뭔가를 해야겠다는 결심이 있진 않았거든요. 그런데 어느 날 신해철 선배님의 ‘니가 진짜로 원하는 게 뭐야’라는 노래를 듣게 된 거예요. ‘그 나이를 먹었도록 그걸 하나 몰라’라는 가사를 듣는데, 약간 충격을 받았다고 해야 하나. 그때 음악을 해야겠다고 마음먹게 됐어요. 지금 생각해 보면, 흔히 말하는 사춘기 때 사회에 대한 불만이나 비뚤어지고 싶은 반항심을 음악으로 표출했던 것 같아요.
기타리스트로 출발해서 직접 밴드를 하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잖아요. 어떤 생각의 변화가 생겨서 솔로 프로젝트를 준비하게 된 걸까요.
학교를 졸업하고 나서 세션 기타리스트로 활동한 시간이 거의 10년 정도 될 거예요. 물론 그 분야에서 완전히 자리 잡았다고 할 순 없지만, 대선배님들 공연이나 아이돌 콘서트에도 참여해 보고 뮤지컬도 한 편 해보고, 나름 다양한 활동을 했어요. 그런데 세션 연주자는 어떤 사람이 어떤 요구를 할지 모르는 상황에 놓이는 경우가 많거든요. 다양한 장르, 다양한 템포, 다양한 감성의 음악에 대해 늘 준비돼 있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생기더라고요. 어딜 가나 늘 열심히 해야 한다는 것도 점점 부담으로 다가왔고요. 그러다 보니 음악이 조금씩 재미가 없어졌어요. 한번은 공연 중에 어떤 생각이 들어서 놀랐냐면, 저도 모르게 빨리 끝났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거예요. 그때 학교에서 처음으로 제 공연을 했을 때 생각이 나면서 내가 왜 음악을 하려고 했는지 잊고 있었구나 하는 자각이 들었어요. 곡을 쓰고 공연을 만들어서 좋아하는 사람들하고 행복한 시간을 보내는 게 제가 처음에 꿨던 꿈이었거든요. 세션 활동을 조금씩 정리하면서 제 노래를 써야겠다고 생각했죠.
빌리어코스티로 첫 싱글을 냈을 때만 해도 잘되리란 큰 기대는 안 했다면서요.
사실 처음에는 결과에 대한 생각 자체를 안 했어요. 앨범을 만들어 바닷가 같은 데 가서 버스킹하면서 팔자는 마음이었달까. 그냥, 스스로 좀 살아 있단 기분을 느끼고 싶어서 시작한 거였으니까요. 그런데 작업을 하면서 두 가지 마음이 들었던 것 같아요. ‘너무 안 되면 어떡하지’랑 ‘너무 잘되면 어떡하지’. (웃음) 나는 인디스럽게 음악을 하고 싶은데, 사람들이 길거리에서 날 알아보게 되면 어떡하지 혼자 이런 생각을 했어요. 하하. 그런데 역시나 그런 일은 안 일어나더라고요. 데뷔곡이 ‘쉬고 싶어’였는데, 제목처럼 진정성 있는 쉼을 누리게 됐죠. (웃음) 두 번째 싱글도 별 반응이 없었어요. 그러다 6개월쯤 후에 정규 앨범을 내고 나서부터 제 음악에 공감해 주시는 분들이 조금씩 늘어났던 것 같아요.
첫 싱글 앨범을 내고 나서 사람들이 내 음악을 몰라주면 어떡하지 하는 불안함이나 초조함은 없었어요?
아뇨, 반응이 없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어요. 왜냐면 저 스스로 준비가 많이 안 되어 있었거든요. 오랜 시간 기타리스트로 활동하면서 많은 시행착오를 겪었던 것처럼 밴드를 하면서도 비슷한 시행착오를 겪어야 할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초조하지 않았던 것 같아요. 내년엔 좀 더 잘할 수 있겠지, 다음 앨범은 이것보다 나아지겠지, 그렇게 생각했죠. 문제는 아직까지도 그런 생각을 하고 있다는 건데, 다음엔 진짜 잘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웃음)
지금까지 빌리어코스티로 활동하면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은 언제예요?
솔로 활동에는 어느 정도 부담이 따르긴 하는데, 뭔가를 성공적으로 해냈을 때의 보람은 다른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이 크다는 걸 활동하면서 많이 느꼈어요. 음악을 주체적으로 하지 않는다면 느낄 수 없는 성취감이라는 게 있더라고요. 가장 기억에 남은 순간은 아무래도 첫 콘서트를 했을 때하고 처음으로 페스티벌에 출연했을 때인 것 같아요. 티켓이 매진이 된 것도 안 믿기는데, 공연날 사람들이 진짜 공연장에 와서 앉아 있는 게 너무 신기했어요. 첫 페스티벌은 동시에 벌어지는 여러 공연 중에서 사람들이 제 공연을 선택해 줬다는 게 신기했고요. 진짜 나를 보러 왔다고? 혼자 계속 놀랐어요. (웃음) 감동스럽고 감사했죠.
다음 정규 앨범은 언제쯤 나올 거라 기대하면 좋을까요?
이번에는 한 달 주기로 싱글을 발표한 다음에 그걸 다시 모아서 정규 앨범을 내볼 생각이에요. 정규 앨범으로 발표하면 수록곡들이 빛을 발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는 것 같아서요. 그리고 이번엔 제가 곡을 쓰지 않고 다른 사람들의 곡을 제 목소리로 들려드릴 계획이에요. 주위에 좋은 음악을 하는 친구들이 참 많은데, 이번 기회에 한번 뺏어보려고요. 하하. 물론 합리적인 절차를 거쳐서요. (웃음) 예전에 발표했지만 안타깝게 묻혀버린 노래나 개인 하드에 데이터로만 남아 있는 명곡들을 열 곡 정도 선별해 놨죠. 사실은 지난겨울부터 싱글이 나왔어야 했는데, 공연 준비다 뭐다 하면서 조금 미뤄졌어요. 남은 한 해 동안 열심히 좋은 노래를 들려드릴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75호 2018년 4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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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CULTURE INTERVIEW] 빌리어코스티 [No.175]
글 |배경희 사진 |표기식 2018-04-10 5,193sponsored adve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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