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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컬처 | [NOW IN LONDON] <메리 스튜어트> [No.175]

글 |남윤호 사진제공 |Manuel Harlan 2018-04-16 6,523
<메리 스튜어트> 
?Mary Stuart
거울 속의 두 여왕
 

 
강인한 여성들의 이야기 
 
이번 달은 어떤 공연을 보고 어떤 소식을 전해야 할지 쉽게 결정하기 힘든 기간이었다. 일단 새로 개막하는 뮤지컬이 많지 않았던 데다, <더뮤지컬>에서 이미 소개한 작품들을 제외하면 선택지가 거의 없어 뭘 써야 할지 막막했다. 그래서 이달엔 특별히 뮤지컬이 아닌 연극을 다루기로 했는데, 연극의 경우엔 반대로 너무 많은 작품이 공연 중이라 어떤 걸 다뤄야 할지 정하는 게 문제였다. 요즘 같은 때, 아무 공연이나 보고 아무런 이야기를 던지고 싶진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던 중 지난 몇 주간 보려고 벼르고 있던 로버트 아이크 번안·연출의 <메리 스튜어트>를 보게 됐고, 공연을 보고 난 뒤 곧바로 이 작품에 대해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프리드리히 실러의 희곡 『메리 스튜어트』를 처음 접했던 건 학교에서였다. 엄청난 양의 대사와 시적인 표현 때문에 사실 당시 크게 와 닿는 작품은 아니었는데, 그래도 인상적으로 기억하는 이유는 영국의 역사를 바탕으로 한다는 점과 대본 표지에 커다랗게 쓰인 ‘메리 스튜어트’라는 제목 때문이었다. 여성을 주인공으로 하는 연극이 워낙 없다 보니 두 명의 여성, 그것도 역사적인 두 나라의 여왕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작품을 어떻게 무대화할지 무척 궁금했다. 영국의 황금기를 이끌었던 엘리자베스 1세와 사촌지간으로 스코틀랜드를 다스렸던 메리 스튜어트의 이야기는 역사적으로 유명한데(메리의 할머니가 헨리 8세와 형제지간이고, 엘리자베스 1세는 헨리 8세의 딸이기에 쉬운 표현으로 사촌지간인 것이다), 이번 공연을 보고 나서 느낀 점들에 대해 이야기해 볼까 한다.    
 
독일의 대표 고전주의 작가, 프리드리히 실러요한 크리스토프 프리드리히 폰 실러는 1759년 독일 남서부 뷔르템베르크주에서 태어난 극작가이자 시인, 철학자, 역사가, 문학 이론가이다. 주로 인간의 존엄성과 자유에 대해 탐구한 실러는 괴테와 함께 독일 고전주의의 2대 작가로 불리는데, 지난 2005년 사망 200주기를 맞아 독일 전국에서 ‘실러의 해’라는 행사가 열릴 정도였으니 그 명성이 어느 정도인지 짐작할 수 있다.  그의 인생 중 마지막 17년은 그 당시 이미 유명세를 떨치고 있던 괴테와 생산적이지만 복잡하다면 복잡했던 우정을 나누었다. 두 사람은 미학을 주제로 많은 대화를 나누었고, 실러는 괴테에게 끝내지 못한 작업을 마무리하라고 부추기기도 했다고 한다. 실러와 괴테가 시작점이 된 독일의 고전주의는 독일 연극의 르네상스 시대를 열기도 했다. 그런 이유로 독일의 작은 도시인 바이마르에는 괴테와 실러가 손을 맞잡고 있는 동상이 세워져 있기도 하다. 실러의 『메리 스튜어트』는 역사에 바탕을 두고 있지만, 역사적 사실보다는 두 여인의 기구한 운명과 두 사람의 존엄성이 더 강하게 다가오는 작품이다(어쩌면 실러가 메리와 엘리자베스라는 두 인물을 그려내는 동안, 서로 너무나 닮아 있었기에 이러한 비극을 맞이했을지도 모른다는 설정으로 요즘 흔히 쓰는 팩션을 써 내려갔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인지 이후 이탈리아 작곡가 도니제티의 오페라 <마리아 스투아르다>의 영감이 되기도 했다. 마흔여섯이라는 요즘으로 치면 젊은 나이에 절명했지만, 실러의 업적은 지금까지도 길이 남아 여전히 우리에게 많은 영감을 주고 있다. 


 
역사 속 메리 스튜어트와 엘리자베스 1세
 
모든 일에는 시작점이 되는 기본 바탕이 있다. 집을 짓기 전에는 그에 맞는 설계가 요구되고, 요리를 할 때는 좋은 재료 선별이 필요하다. 그림을 그릴 땐 밑그림이, 춤을 출 땐 그에 맞는 기본 훈련이 필요하다. 물론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겠지만, 일반적으로 봤을 때 말이다. 그렇기에 팩션을 말하기 전에 먼저 팩트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헨리 8세와 앤 볼린 사이에서 태어난 엘리자베스 1세는 잉글랜드가 대영 제국이 되는 중요한 발판을 마련한 인물로, 엘리자베스 1세 시대의 영국은 그야말로 황금기라 할 수 있다(엘리자베스 1세를 다룬 작품으로 영화 <엘리자베스>와 <골든 에이지>를 추천한다). 하지만 엘리자베스가 여왕의 자리에 오르기까지 과정은 결코 쉽지 않았다. 엘리자베스의 어머니 앤 볼린은 헨리 8세의 두 번째 왕비로, 엘리자베스가 태어난 후 3년 동안 스물두 차례나 간통을 저질렀다는 죄목으로 참수 당한다. 때문에 엘리자베스는 사생아 취급을 받으며 자랐는데, 군주의 기질을 타고나서인지 어린 시절부터 총명한 머리와 큰 포부를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스스로 ‘그리스, 로마의 내로라하는 학자들을 뛰어넘겠다’고  말할 정도였다니 웬만한 사내들도 그녀를 함부로 대하지 못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엘리자베스는 그 당시 헨리 8세의 왕위 계승자는 아니었다(여섯 명의 왕비를 뒀던 헨리 8세는 복잡한 여성 편력으로 유명한데, 그의 이야기가 궁금하다면 미드 <튜더스> 시리즈와 영화 <천일의 스캔들>을 추천한다. 두 작품도 팩션에 가까우니 즐기면서 보길). 헨리 8세 사망 이후 왕위는 엘리자베스의 배다른 동생이었던 에드워드에게 돌아갔는데, 에드워드가 열다섯에 병으로 사망하자 배다른 언니 메리 튜더가 왕위를 물려받는다. 엘리자베스는 앤 볼린의 불명예스러운 죽음 때문에 이들에게 왕위 자리를 양보할 수밖에 없던 것이다. 왕위에 오른 메리는 신교도들을 탄압해 ‘블러디(Bloody) 메리’라는 별명을 얻었는데, 엘리자베스가 신교도를 믿는다고 의심해 그녀를 런던탑에 가둔다. 엘리자베스는 런던탑에 갇혔던 여왕들 중에서 유일하게 살아서 걸어 나온 인물로, 메리 여왕이 서거한 뒤 스물다섯의 나이로 왕위를 계승하고 이러한 말을 남겼다. “한 시대를 통치했던 여왕이 평생 처녀로 살다 생을 마감했다는 비석만 세울 수만 있다면 그것으로 만족한다.”
 
1542년에 태어난 메리 스튜어트는 생후 9개월 만에 스코틀랜드의 왕위에 오른다. 영화 <브레이브 하트>의 주인공 윌리엄 월리스가 ‘프리덤(자유)’을 외치며 처형 당한 지 200년 흐른 이 시기에도 스코틀랜드는 여전히 잉글랜드와는 분리된 나라였고, 왕위를 계승할 적자 아들이 없었던 제임스 5세가 서거하자 메리가 여왕의 자리에 앉게 된 것이다. 갓난아기가 왕위에 오르니 스코틀랜드 안팎에서 보이지 않는 권력 투쟁이 시작된 건 불 보듯 뻔했다. 잉글랜드의 헨리 8세가 자신의 아들과 메리를 결혼시키겠다며 조약을 맺었는데, 헨리 8세 사후 메리의 어머니인 왕비 마리 드 기즈가 조약을 파기한다. 이 조약을 바탕으로 스코틀랜드를 지배하려던 계획이 수포로 돌아가자, 잉글랜드는 스코틀랜드를 공격했다. 그러자 이번엔 프랑스의 앙리 2세가 스코틀랜드를 도와서 잉글랜드를 물리쳐 주고 자신의 아들 프랑소와와 메리를 결혼시키겠다며 그녀를 데리고 간다. 훗날 메리는 프랑소와와 결혼해 프랑스의 왕비가 된다. 헨리 8세 사후 왕위 계승권으로 복잡했던 잉글랜드에선 가톨릭 세력에 의해 메리 스튜어트가 왕위 후보로 거론되고 있었다. 스코틀랜드의 여왕이자 프랑스의 왕비이자 잉글랜드의 왕위 계승권자 후보였던 메리 스튜어트는 어쩌면 그 당시 유럽에서 가장 막강한 영향력을 가진 인물이었을 것이다. 왕비가 된 지 1년 만에 남편인 프랑소와 왕이 병으로 죽는데, 메리를 대신해 스코틀랜드를 섭정하던 어머니 마리 드 기즈 또한 사망하기에 이른다. 때문에 메리는 미망인으로서 프랑스에 남을지 아니면 다섯 살 때 떠나온 모국 스코틀랜드로 돌아가 여왕으로 살아갈지, 선택의 기로에 놓이게 된다. 어쩌면 이때의 선택이 메리 스튜어트의 비극적인 삶의 시작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메리 스튜어트와 엘리자베스 1세의 인생사를 간단히 비교해 봐도 두 사람은 닮은 듯  굉장히 다른 삶을 살았다는 걸 알 수 있다. 왕위에 오른 엘리자베스 1세에게 당시 프랑스의 왕비였던 메리 스튜어트는 축하의 전언을 보내지 않았을 뿐 아니라, 자신의 문장에 잉글랜드의 왕관까지 새겨 넣었다. 메리 스튜어트의 이러한 행동들은 엘리자베스 1세의 자존심에 큰 상처를 냈고, 두 사람의 관계는 돌이킬 수 없게 된다. 어쩌면 두 사람을 둘러싸고 있던 숙명 같은 환경이 둘이 태어났을 때부터 둘의 관계를 이미 정해 놨는지도 모르겠다. 이야기를 조금 건너뛰자면, 메리 스튜어트는 프랑소와가 죽은 뒤 두 번의 결혼을 더 하는데 그로 인해 민심을 잃고, 스코틀랜드 귀족들의 반란으로 폐위된 후 나락으로 떨어진다. 메리 스튜어트는 복위를 위해서 스코틀랜드를 탈출한 뒤 잉글랜드의 엘리자베스 1세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본인이 엘리자베스 1세에게 모욕을 줬다는 사실도 망각한 채 말이다. 엘리자베스 1세는 메리 스튜어트를 받아주지만 스코틀랜드의 왕권을 돌려주지는 않았다. 무슨 일을 저지를지 모르는 라이벌을 옆에 두고 감시하는 게 오히려 안전할 거라 판단했기 때문이다. 메리 스튜어트는 이후 사형 당할 때까지 19년간 유폐되어 살아가는데, 엘리자베스 1세는 그녀를 죽이지도 살리지도 않은 채로 내버려둔다. 하지만 결국 귀족들의 압박을 이기지 못하고 메리 스튜어트의 사형 집행장에 사인하게 되는데, 연극 <메리 스튜어트>가 바로 이 시기의 이야기를 다룬다.


 
공연 속 메리 스튜어트와 엘리자베스 1세
 
연극은 엘리자베스가 메리의 사형 선고문에 인가를 내린 후 메리가 사형되기까지의 이야기를 그린다. 원작에서는 약 삼 일에 걸쳐서 일어나는 이야기를 이번 프로덕션에서는 24시간이 조금 넘는 시간의 흐름으로 보여준다. 역사극의 형태를 띠지만, 번안을 통해 엘리자베스 시대의 영국이나 실러가 살던 시대의 독일이 아닌, 특정한 시간이 정해지지 않은 곳을 배경으로 한다. 알메이다 시어터의 예술감독이자 이번 공연의 번안과 연출을 맡은 로버트 아이크는 “이것은 연극이다. 이것은 역사가 아니다”라고 얘기한 바 있다. 로버트 아이크는 실러의 희곡 역시 역사적 자료를 토대로 하고 있지만 픽션이 가미돼 있다고 하며, 이번 공연을 위해 각색을 감행한 이유는 공연의 길이와 열두 명이 출연하는 작품 규모라고 설명했다.

공연은 시작부터 굉장히 흥미로웠다. 빈 무대에 원형으로 만들어진 플랫폼이 있고 그 위엔 벤치 대용으로 쓸 수 있는 쇠로 만들어진 구조물이 놓여 있다. 이 구조물들은 고정되어 있다가 극 중간에 무대 밖으로 옮겨진다. 뒷배경은 벽돌 모형의 벽으로 반원으로 세워져 있다. 이 벽돌들이 진짜 벽돌이었는지 그저 정말 진짜에 가깝게 만든 세트였는지는 여전히 모르겠다. 하지만 2016년 초연이 올라간 알메이다 시어터의 기본 뒷배경이 타원의 벽돌로 된 벽이기 때문에(이 뒷배경은 건물의 일부분이다.) 아마도 이번 웨스트엔드 공연에서도 같은 형식의 세트를 쓴 게 아닐까 싶다. 객석을 향해서는 화면들이 놓여 있었는데, 황금의 문장 같은 것이 떠 있었다. 공연이 시작되자 모든 배우들은 슈트를 입은 채 무대 곳곳에 올라섰고 메리 스튜어트와 엘리자베스 1세를 맡은 여배우들은 객석 양쪽에서 각자 무대로 올라왔다. 여기서 잠깐 내가 품은 의문을 얘기하자면 이렇다. 공연 전 프로그램을 읽던 도중 주인공인 두 여배우의 역할이 ‘메리 스튜어트/엘리자베스 1세’로 되어 있었다. 당연히 두 배우가 하루하루 번갈아 가면서 공연을 할 거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하지만 공연장 어디에도 누가 어느 역할을 하는지에 대한 안내를 찾을 수 없었기에 궁금증이 커졌다. 이 의문은 공연의 첫 대사와 첫 장면에서 소름으로 바뀌었다. 무대 위로 올라와 서로를 바라보던 두 여배우들 중 한 명이 “앞면(Heads)”이라고 말하자 다른 배우 한 명이 무대 앞 정중앙에 놓인 그릇에 있던 동전을 돌렸다. 알고 보니 화면에 떠 있던 것은 그 그릇을 위에서 찍고 있었던 모습이었다. 동전의 결과로 앞면이 나오자 대사를 말한 배우를 향해 다른 배우들이 인사를 했고 그렇게 역할이 정해졌다. 이런 식으로 매일 무대에서 복불복으로 두 여주인공의 역할을 정하는 것이었다. 아마도 이런 설정으로 두 인물의 비슷하면서도 너무나도 달랐던 인생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게 아닐까 생각한다. 

 
스릴러를 연상시키는 잘 만든 정치 드라마이자 강인한 두 여성의 심리극 같기도 했던 <메리 스튜어트>는 현재 우리사회를 너무나도 잘 반영하고 있었고, 엄청난 양의 대사 속에서도 심플함과 세련됨으로, 그리고 배우들의 연기로 꽉 채워진 공연이었다. 16세기 영국을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두 여인의 이야기는 현재에도 다양한 방식으로 그 강력함과 울림을 전해 주고 있는 것 같다. 사형 당하기 직전 메리 스튜어트는 엘리자베스 1세의 최측근인 윌리엄 세실에게 이렇게 말한다. “그녀에게 행운을 빈다고 전해 주세요. 결국 우린 똑같았다고요.” 내가 거울에 비친 내 자신과 매일을 싸워 나가듯, 두 사람도 그렇게 싸워 나갔던 것은 아니었을까. 누가 옳고 누가 틀렸다가 중요한 문제는 아니다. 결국 두 사람 다 이러한 선택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였던 것은 아닐까.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75호 2018년 4월호 게재기사입니다.
* 본 기사와 사진은 “더뮤지컬”이 저작권을 소유하고 있으며 무단 도용, 전재 및 복제, 배포를 금지하고 있습니다. 이를 어길 시에는 민, 형사상 법적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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