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usical

더뮤지컬

magazine 국내 유일의 뮤지컬 전문지 더뮤지컬이 취재한 뮤지컬계 이슈와 인물

피처 | [PEOPLE&PEOPLE] 안소니 랩과 이건명, 두 마크의 만남 [N0.86]

글 |배경희 사진 |심주호 장소협찬 | Gobble N Go (02-511-5388) 2010-11-15 5,721


단 1초도 망설일 필요 없이 이건명이어야 했다. 지난 10년 동안 <렌트>를 거쳐 간 많은 배우들 중 오직 한 사람이 오리지널 마크 안소니 랩과 만나 이야기를 나눠야 한다면 그 말고 또 누가 있겠는가. 한국의 초연 마크, 마크와 로저를 둘 다 연기한 배우, <렌트>를, 조나단 라슨을 그 누구보다 사랑하는 사람. 두 사람의 대화는 기대 이상으로 깊고, 진실했으며, 흥미로웠다.  

 

 

A Memoir of Rent

 

기자  지난 <렌트> 투어 이후 꼭 일년 만에 다시 만나는 거네요. 그동안 어떻게 지냈나요?
안소니 랩  투어 공연이 올해 2월에 끝났으니까 한국에서 공연을 마치고 나서 몇 달 동안 공연을 더 했어요. 투어가 끝난 후엔 <위드아웃 유>로 뉴욕뮤지컬페스티벌에 참가하기 위해 연습하고, 주로 그렇게 시간을 보냈어요.
기자  <위드아웃 유>의 첫 해외 투어 공연인데요, 한국에서의 공연이 결정됐을 때 기분이 어땠나요?
안소니 랩  영광이었죠. 한국 관객들이 어떻게 받아들일지 궁금했는데 관객들의 반응이 좋아서 기뻐요. 저의 어머니와 조나단 라슨의 이야기, 제 이야기를 세상 사람들과 나눌 수 있다는 것은 행운이라고 생각해요. 
기자  한국에 로저와 마크를 둘 다 연기한 배우가 있고, 그와 함께 인터뷰하게 될 거라는 이야기를 들었을 땐 어떤 생각이 들었어요?
안소니 랩 미국에서도 역을 바꿔 공연하는 경우가 있어요. 하지만 로저와 마크는 굉장히 다른 인물이기 때문에 한 배우가 두 캐릭터를 다 연기했다는 건 굉장한 성취라고 생각해요.
이건명  <렌트> 한국 초연에서 마크를, 그 다음 공연에서는 로저를 맡았거든요. 마크를 연기하면서 카메라를 통해 객관적인 시선으로 친구들을 봤던 기억이 로저를 연기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됐어요. 
안소니 랩  맞는 말이에요. 어떤 역을 더 좋아해요?

이건명 아, 뭐라고 말을 해야 할지.(웃음) 사실 처음에 음악을 들었을 때는 로저가 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로저 역으로 오디션을 봤고요. 하지만 당시 한국 사정상 주인공인 로저와 미미는 스타 배우가 해야 했어요. 오디션에 통과해 로저를 연습했지만 결국 마크 역으로 무대에 올랐죠. 재밌는 사실은, 로저 역에 캐스팅된 남경주라는 배우는 마크를 하고 싶어 했다는 거예요. 그래서 다음 해 재공연이 됐을 때 서로 역을 바꿔서 하자는 이야기가 나왔고, 마케팅적으로 이슈가 되겠다고 생각한 제작사에서도 그렇게 하도록 했어요. 두 배역 중 하나를 골라야 한다면…, 둘 다 매력이 있기 때문에 우선순위를 두긴 힘드네요.
안소니 랩  재밌는 이야기네요. 두 역을 다 해보고 나니 마크를 연기하는 게 좋던 가요?
이건명  마크를 연기할 땐, 가슴이 너무 아팠어요. ‘나만 살아남게 될 텐데’라는 마크의 대사처럼 아픈 친구들을 별 수 없이 지켜봐야 한다는 사실이 너무 힘들었죠. 로저를 연기할 때는 진실로 사랑하면 됐거든요.  사랑의 아픔이 있긴 하지만요.
안소니 랩 하지만 로저는 항상 자기 자신을 괴롭히잖아요.
이건명  전 괴로워하는 사람을 지켜봐야 하는 게 더 아프더라고요. 마크에 관해서 궁금한 게 있어요. 마크는 극에서 사회자 역할을 하잖아요. 마크의 시선이 조나단 라슨의 시선 같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혹시 워크숍 때 조나단이 마크라는 인물에 대해 코멘트를 해준 적은 없었나요?
안소니 랩  맞아요, 어떤 면에선 그렇죠. 조나단이 연기에 대해 직접적으로 디렉션을 준 적은 없었어요. 물론 그가 대본을 썼으니까 각 인물에 대해 의견이 있었을 것이고, 그 의견을 연출가 마이클 그라이프에게는 말했을 수도 있어요. 하지만 배우들에게 연기에 대해 직접적으로 말하진 않았어요. 그건 마이클의 몫이죠. 조나단이 관여했던 건 음악에 관한 것뿐이었어요.
이건명  전 두 사람이 친구로서 사적인 자리에서 그런 얘기를 주고받진 않았을까 궁금했거든요.
안소니 랩   그런 얘기를 한 적은 없어요. 아마 제가 하는 게 마음에 들었나 봐요.(웃음)
이건명  조금 민감한 질문일지 모르지만, <렌트>와 조나단 라슨의 비극적인 죽음은 따로 생각할 수 없는 것 같아요. 그의 죽음으로 극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었을것 같다는 생각도 하고요.
안소니 랩  사실이에요. 조나단이 죽기 전에도 <렌트>를 좋아했고 그 메시지가 감동적이었지만, 그가 죽고 난 후에는 우리가 하고 있는 모든 이야기가 그 자체로 조나단의 이야기니까 더 절실하게 느낄 수밖에 없었죠. 하지만 한편으로는, 참 신기하게도 우리는 조나단이 쓴 그 이야기에 위로를 받았어요. <렌트>의 노래와 대사들을 통해서 우리들이 그의 죽음에 대해서 느끼는 감정을 정확하게 표현할 수 있었던 거죠. 그래서 내용을 더 깊이 느낄 수 있었고요.
기자  조나단 라슨도 <렌트>가 이렇게 폭발적인 반응을 얻을 것이라고 예상했을까요?
안소니 랩  드레스 리허설을 한 날 관객들의 반응이 정말 좋았고 <뉴욕 타임즈>와 인터뷰까지 했으니까 그도 성공을 예감할 수 있었겠지만, 그렇다고 해도 이렇게 전 세계적인 성공을 거둘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을 거예요. 처음에 작품을 쓸 때 누가 그걸 알 수 있겠어요. 비틀즈도 그냥 모여서 연습을 하고 자기 자신들에게 의미 있는 것을 만들었을 뿐인데 그게 세계의 사람들에게 감동을 준 거잖아요. 조나단도 마찬가지였을 텐데 자신이 만든 작품의 결과를 끝까지 보지 못했으니까 그게 좀 아쉽죠.
이건명  조나단의 추모 공연에서 누군가가 “땡큐, 조나단”으로 침묵을 깼다는 이야기요, 저도 비슷한 감정을 느껴본 적이 있어요. 스물아홉 살 겨울에 <틱틱붐>을 공연했는데 이 작품은 서른으로 넘어가기 싫어하는 조나단의 이야기잖아요. 12월 31일에 공연이 끝나고 지인들과 모여 술을 마시다가 담배를 사러 나갔더니 흰 눈이 펑펑 내리는 거예요. 그래서 하늘에 대고 외쳤죠. “조나단, 고마워요!”
안소니 랩 그 사람이 누구였는지는 아직도 몰라요. 개인적으로 <틱틱붐>은 보기 힘들 때가 있어요. <렌트>는 조나단

인생의 어떤 부분들을 반영해서 만든 거지만 <틱틱붐>은 그의 삶 자체니까요. 성공하기 전, 이게 될까 걱정하고, 포기할까 고민하는 조나단의 이야기잖아요. 실제로 자신의 공연이 성공하는 걸 못 보고 떠났기 때문에 그 작품을 보는 건  좀 힘들어요.
기자  하지만 그는 자신이 뮤지컬의 미래라고 말하고 다녔다면서요.(웃음)
안소니 랩  사실이에요.(웃음) 그도 자신이 재능이 있다는 걸 알고 있었어요. 사람들도 그를 대단하다고 했고요. 하지만 작품을 무대에 올릴 기회는 주지 않았죠. 그래서 좌절하고 있었는데 <렌트>로 기회가 생겼고, 그런 말을 할 수 있었던 거죠. 사랑스러운 사람이에요.
이건명  <렌트>에 관련한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하나 더 있어요. 우리나라에서는 미미를 죽일 뻔했다는 거예요. 프로덕션에서 관객을 울게 만들기 위해서 미미가 다시 살아나지 않고 죽는 걸로 이야기를 끝내자고 했죠. 그 결말로 연습을 하다가 연습 막바지에 배우들이 도저히 말도 안 된다고 해서 겨우 미미를 살릴 수 있었어요. 미미가 죽으면 희망은 어디 가느냐, 희망을 살려야 한다고요.
안소니 랩  조나단도 그 결말은 절대 바꾸려 하지 않았어요. 많은 사람들이 미미의 죽음으로 이야기가 끝나는 것이 더 낫다고 말했지만, 이 문제에 대해선 그가 고집을 부렸죠. 미미가 아프다가 내일 죽을 수도 있고, 한 달 뒤에 죽게 될 수도 있지만 극 중에서는 절대로 미미를 죽이면 안 된다고요.
이건명 우리와 비슷한 상황이었네요.(웃음) 당시에 세 개의 제작사가 참여했는데, 아무래도 스폰서들은 연세가 있으시니까(웃음) 좀 더 슬픈 결말을 원했던 거죠.
안소니 랩  하하하. 오페라 <라보엠>에서는 미미가 죽지만, 그 전에 다른 캐릭터가 죽지 않잖아요. <렌트>에서는 엔젤이 이미 죽었기 때문에 다르다는 거죠.
이건명 다른 나라에서 공연된 <렌트>를 본 적이 있나요?
안소니 랩  아르헨티나 공연을 본 적이 있어요. 그들의 열정에 완전히 압도 당했죠. 또 일본에서 2002년에 <렌트> 콘서트를 한 적이 있어요. 그때 일본 가수들이 게스트로 참여해 일본어로 <렌트> 넘버를 불렀거든요. 그것도 재밌고 특별한 경험이었어요.
이건명  일본 공연과 우리나라 공연을 둘 다 본 관객들은 일본 공연은 좀 절제돼 있고, 우리나라 공연은 굉장히 파워풀하다고 하더라고요. 우리나라는 고추를 고추장에 찍어 먹는 민족이라 뜨겁고 열정적이거든요.
안소니 랩 하하하. 무슨 말인지 알 것 같아요.

 

 

About the show Without You

 

기자  <위드아웃 유>의 원작이 된 당신의 회고록을 읽어보면 오랜 기간의 이야기가 세세하게 묘사되어 있어요. 당시의 대화들이 그대로 담겨있고요. 매일매일 기록한 건지, 아니면 중요한 순간들이라 기억을 하는 건지 궁금해요.
안소니 랩  따로 기록을 해둔 건 없어요. 하지만 화인이 찍힌 것처럼 강렬하게 남는 기억들이 있잖아요. 물론 단어 하나하나가 100퍼센트 똑같을 순 없겠죠. 하지만 그때 이야기했던 대화의 주제, 내가 느꼈던 대화의 리듬 같은 것은 기억하는 그대로 사실이에요.
기자  주변에서 많은 사람들이 책을 쓰라고 격려해줬다고 들었는데 책을 쓰기로 결심한 직접적인 계기가 있나요?
안소니 랩 어릴 때부터 무언가를 항상 쓰긴 했지만 책을 쓰게 된 데는 편집자이자 발행인인 롭 와이바흐의 영향이 커요. 그 역시 20대에 아버지를 잃은 경험이 있었고, 제게 어머니의 이야기를 써보라고 격려해줬어요. 저 역시 어머니와 조나단, <렌트>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고요. 서구 문화에서는 죽음이나 질병에 대해서는 이야기 하지 않으려고 하거든요. 그런 주제로 이야기를 하는 것이 즐거운 일은 아니지만 이야기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그건 잘못도 아니고, 두려워할 필요도 없고, 그저 삶의 일부일 뿐이니까요.
기자  책을 쓰는 데는 얼마나 걸렸나요?
안소니 랩 아주 오래요.(웃음) 초고를 쓰기까지 6년이 걸렸어요. 다른 일을 하면서 쓰느라 오래 걸리기도 했지만, 진실하게 쓰고 싶은데 그러려면 그 순간들을 되살려서 다시 느껴야 하고, 다시 살아야 하잖아요. 그러다 보면 때로는 감정적으로 너무 힘이 드는 거죠. 그래서 잠시 밀어놓기도 하고. 그러다 보니 시간이 오래 걸렸어요. 
기자  책의 내용 중 일부만 공연에 담아내야 했을 텐데 어떤 기준으로 고른 건가요? 아쉬운 에피소드는 없나요?
안소니 랩  책과 공연은 완전히 다른 미디어이기 때문에 똑같이 할 수 없다는 건 알고 있었어요. 이 이야기에 몰입해 있는 제가 편집할 수는 없으니까 연출가인 스티브 말러가 잘라내고 구성했어요. 그 다음에 제가 세세하게 손질했죠. 에이즈로 죽은 제 친구 벤의 이야기나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의 이야기를 많이 넣지 못해 아쉽지만 욕심을 낼 수는 없었어요. 어쩌면 그런 이야기들로 또 다른 공연을 만들 수도 있겠죠.
이건명 책 속의 4년 동안 참으로 드라마틱한 삶을 산 것 같아요. 라슨과 어머니, 그리고 벤의 죽음까지…. <렌트>에서 느끼는 감정과 흡사한 감정을 실제로 많이 느꼈으리라 생각돼요. 만약에 내 인생에서 3~4년을 잘라내서 드라마로 써보라고 한다면, 나 스스로는 감동을 받을지 몰라도 다른 사람들에게까지 감동을 줄 만한 드라마는 없을 거예요. 그런 의미에서 배우로서는 좋은 경험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드네요.
안소니 랩 네, 일단 작품을 만들기 위해서 따로 조사할 필요가 없잖아요.(웃음) 그런 강렬한 경험들이 즐거운 건 아니지만 모두 사실이거든요. 처음에 공연을 만들기로 했을 때는 내가 이걸 매일 밤 공연하는 게 힘들까, 그런 생각도 했어요. 하지만 슬픔이나 고통은 사랑만큼 자연스럽게 느끼는 거잖아요. 공연을 할 때 물론 힘든 것도 있지만 그냥 고통스럽기만 한 것이 아니라 그만큼의 사랑으로 가득 차는 걸 느껴요.
기자  자신의 이야기니까 어떤 의미에서는 연기할 필요가 없겠지만, 한편으로는 이야기에 너무 몰입해서 과장할 수도 있는데 꾸밈없이 담담하게 이야기를 전달해줘서 좋았어요. 진실성을 느낄 수 있었고요.
안소니 랩 하하. 그건 근사한 일이죠. 모든 대화가 진짜이기는 하지만 어떤 이야기를 무대에서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서는 리듬이나 강약을 바꿀 필요가 있잖아요. 엄마와 대화하는 대사 같은 것들은 내가 기억하는 것과 조금 다르게 바꾼 부분들도 있어요.
기자  극 중에 등장하는 다른 사람을 연기하는 것도 인상적이었고요. 과장되게 표현하는 게 아니라 각 인물들의 특징을 잘 잡아내서 연기해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일지 그려졌어요.
안소니 랩 고마워요. 미국에서 여배우 혼자 공연하는 원 우먼 쇼를 본 적이 있어요. 극 중에서 자기 아버지를 연기할 때도 크게 바뀌지 않는데 자연스럽게 그녀의 아버지를 느낄 수 있었어요. 제가 하고 싶은 것도 그런 연기였어요. 엄마 흉내를 낸다고 해서 눈에 띄게 바뀌는 게 아니라 작은차이로도 엄마가 느껴질수 있는 거요. 그걸 느꼈다고 하니 기쁘네요.
기자  안소니가 이건명 씨에게 궁금한 점은 없나요?
안소니 랩  <위드아웃 유>를 한국에서 라이선스로 공연할 가능성이 있어요. 그렇게 된다고 하면 이 역을 맡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요? 제가 아닌 다른 배우가 이 공연을 한다면 이상할까요? 배우로서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해요.
이건명  배우는 공연을 보면서 ‘저 역을 내가 하면 어떨까’ 라는 생각을 하게 되잖아요. <위드아웃 유>를 보면서도 공연이 좋으니까 내가 하면 어떨까라는 생각을 해봤어요. 그런데 나한테 마크를 연기하라면 하겠는데, 안소니를 하라고 하면 못할 것 같아요. 안소니가 엄마에 대해 이야기하고 조나단과의 일들을 이야기 하는 게 저에게는 먼 이야기라 진실성을 보여주기가 힘들 것 같더라고요.
안소니 랩  무슨 말인지 이해가 돼요. 하지만 생각해보면 <틱틱붐>도 조나단의 이야기잖아요. <틱틱붐>도 조나단이 모놀로그로 공연했던 것을 그가 죽고 난 후에 가족들에 의해 세 명이 등장하는 공연으로 바뀌어 올라가게 된 거죠.
이건명   아, 그러고 보니 그렇게도 생각할 수 있네요. 안소니에게 마지막으로 묻고 싶은 게 있어요. 지금까지 영화배우, 뮤지컬 배우, 작가, 디렉터로 활동했는데 앞으로 더 해보고 싶은 일이 있나요?
안소니 랩  지금 당장은 내 공연이 생명을 갖길 바라요. 한국에서 집으로 돌아가면 영화를 찍을 예정인데, 그것 역시 흥미롭고 재미있는 일이겠지만 지금은 가능한 한 <위드아웃 유>에 집중하고 싶어요.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86호 2010년 11월호 게재기사입니다.

 

네이버TV

트위터

페이스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