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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처 | [SPECIAL] 공연계 미투 운동 [No.175]

글 |안세영 2018-05-04 5,812
미투 운동은 권력 남용과 위계질서가 만연해 있는 우리 사회에 경종을 울렸기에, 무엇보다 의미 있는 움직임이다. 그에 따라 이번 호에서는 공연계 미투 운동의 기록과 공연계의 목소리, 공연계 안팎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변화들을 살펴보는 기획을 마련했다. 공연계 미투 운동에 지지를 보내며. #With You.


공연계 미투 운동
두 달 간의 기록


영화 제작자 하비 와인스타인의 상습적 성폭력에 대한 고발이 할리우드를 뒤흔든 후, 배우 알리사 밀라노는 다음과 같은 제안을 트위터에 올렸다. “만약 성희롱이나 성폭행을 당한 모든 여성이 ‘미투(Me Too)’라고 써서 알린다면, 사람들에게 문제의 심각성을 알릴 수 있을 것이다.” 2017년 10월 16일 이 트윗이 올라온 후 24시간 만에 50만 건의 미투 트윗이 뒤따랐다. 미투 운동의 시작이었다. 이제 미투 운동은 할리우드를 넘어 세계적인 흐름이 됐다. 국내에서는 올해 1월 29일 JTBC ‘뉴스룸’에 출연한 서지현 검사가 안태근 전 검찰국장에게 성추행을 당했다고 밝힌 것을 시작으로, 각계각층에 미투 운동이 일어났다. 특히 유명 문화계 인사에 대한 폭로가 줄을 이어, 2017년 SNS상에서 일어난 ‘#000_내_성폭력’ 해시태그 운동의 맥을 이었다.

공연계 미투 운동은 SNS와 더불어 온라인 커뮤니티 ‘디시인사이드 연극 뮤지컬 갤러리(이하 연뮤갤)’를 중심으로 진행됐다. 연뮤갤은 공연 마니아와 업계 관계자가 모인 곳인 만큼 가해자의 이름 초성과 활동 이력만 언급돼도 금세 정체가 밝혀지고 사건이 공론화되었다. 개인 SNS 계정보다 폭로자의 신분이 노출될 위험성도 적었다.




공연계 미투 운동의 시발점이었던 배우 이명행에 대한 고발도 연뮤갤에서 시작되었다. 2월 11일 모 남성 연극배우가 과거 여성 스태프를 성추행했다는 글이 연뮤갤에 올라왔다. 글의 정황상 배우 이명행에게 의혹이 돌아갔고, 그는 사과문을 발표하며 출연 중이던 연극 <거미여인의 키스>에서 하차했다. 12일에는 또 다른 연극인이 SNS에 미투 해시태그를 달고 이명행이 조연출인 자신을 성추행한 사실을 밝혔다. 2017년 이명행이 성추행을 저질러 두산아트센터 기획 공연 출연 금지 처분을 받은 사실도 뒤늦게 알려졌다. 이 같은 정황이 드러나자 3월 2일 극공작소 마방진은 창단 멤버인 이명행을 제명했다.

앞선 폭로의 충격이 가시기도 전, 연극 연출가 이윤택에 대한 폭로가 이어져 파문이 일었다. 2월 14일 극단 ‘미인’ 대표 김수희는 SNS에 미투 해시태그를 달고 10여 년 전 지방 공연 당시 모 연출가에게 성추행을 당했다고 밝혔다. 가해자의 실명을 거론하진 않았지만 당시 참여한 연극 제목이 <오구>라는 점에서 해당 연출가가 이윤택 전 연희단거리패 예술감독임을 알 수 있었다. 논란이 일자 연희단거리패는 공연 중이던 연극 <수업>을 조기 폐막하고, 이윤택은 밀양연극촌, 30스튜디오 예술감독에서 물러났다. 이후에도 추가 폭로가 잇따르자 이윤택은 19일 기자회견을 열어 공개 사과에 나섰다. 같은 날 연희단거리패도 해체를 선언했다. 그러나 이윤택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성추행 사실만 인정하고 성폭행 혐의는 부인했다. 또한 21일 연희단거리패 단원 오동식이 SNS에 올린 내부 고발 글을 통해 이윤택의 사과가 진정성 없는 연기였음이 드러나 공분을 샀다. 한국연극연출가협회, 한국연극협회, 서울연극협회, 아시테지한국본부는 19일 이윤택을 제명했다. 최초 폭로자 김수희를 포함한 성폭력 피해자 16명은 101명의 공동변호인단을 통해 28일 서울중앙지검에 이윤택을 고소했다. 현재 서울경찰청 성폭력범죄특별수사대가 사건을 수사 중이다.





이윤택이 이사장으로 있던 밀양연극촌의 촌장 하용부도 성추행 가해자로 지목됐다. 2월 17일 연뮤갤에 이윤택으로부터 성폭행을 당했다는 글을 올린 김보리(가명) 전 연희단거리패 단원은 18일 또 다른 글에서 하용부에게 성추행을 당했다고 밝혔다. 논란이 일자 하용부는 19일 출연 예정이었던 ‘2018 평창 문화올림픽’ 공연에 불참했다. 20일 문화재청은 사실 관계가 확인될 때까지 국가무형문화재 제68호 밀양백중놀이 보유자 하용부에 대한 전수교육지원금 지급을 중단했다. 3월 18일에는 밀양시가 밀양연극촌 민간 위탁 계약을 해지하고 시설물을 복합문화예술공간으로 전환해 직영하겠다고 밝혔다.

2월 15일에는 극단 목화 대표이자 전 국립극단 예술감독인 오태석 연출가에 대한 미투 폭로가 SNS에 올라왔다. 18일 또 다른 피해자의 폭로가 이어졌으나 오태석은 입장 표명을 하지 않았다. 21일 서울예대 총학생회는 학교 측에 오태석 공연학부 초빙교수에 대한 해임과 퇴출을 요구했고, 결국 서울예대는 22일 오태석 교수를 수업에서 배제했다.

김해 극단 번작이 대표 조증윤은 미투 운동으로 체포된 첫 문화계 인사다. 2월 18일과 20일, 두 명의 전 번작이 단원이 SNS를 통해 조증윤 대표가 미성년자였던 자신을 성폭행했다고 밝혔다. 이 사건으로 조증윤은 3월 1일 검찰에 송치됐다.

공연계를 넘어 드라마, 영화에서 활약해 온 배우 오달수, 조재현에 대해서도 폭로가 쏟아졌다. 오달수는 2월 21일 미투 관련 기사 댓글을 통해 성폭력 가해자로 지목되었다. 26일에는 과거 오달수와 같은 연극에 참여한 익명의 피해자가, 27일에는 연극배우 엄지영이 JTBC ‘뉴스룸’을 통해 각각 오달수로부터 성폭행과 성추행을 당했다고 주장했다. 침묵과 부인으로 일관하던 오달수는 결국 28일 사과문을 발표했지만, 자신을 피해자처럼 묘사해 비판을 받았다.





배우 겸 공연제작사 수현재컴퍼니 대표 조재현은 연뮤갤 미투 운동 관련 글에 이름 초성이 거론되면서 성폭력 의혹에 휩싸였다. 23일 배우 최율이 SNS에 미투 해시태그를 달고 조재현의 사진과 함께 ‘올게 왔다’는 글을 올리면서 의혹은 한층 깊어졌다. 같은 날 JTBC ‘뉴스룸’에 조재현과 극단에서 함께 일했던 성추행 피해자의 증언이 나왔다. 조재현은 24일 사과문을 발표하고 출연 중이던 드라마 <크로스>에서 하차했다. 수현재컴퍼니는 오는 4월까지 공연하는 연극 <에쿠우스>와 뮤지컬 <브라더스 까라마조프>를 끝으로 폐업에 들어간다고 3월 5일 공표했다. 3월 6일에는 MBC ‘PD수첩’에 출연한 배우가 영화 촬영 당시 김기덕 감독과 조재현에게 성폭행을 당했다고 주장해 경찰이 내사에 들어갔다.

뮤지컬계도 예외는 아니었다. 2월 18일 연뮤갤에는 음악감독 변희석이 단원들을 성희롱했다는 폭로 글이 올라왔다. 이에 변희석 감독은 19일 자신의 SNS에 사과문을 게재했다. 뮤지컬 제작사 에이콤 대표 윤호진은 연뮤갤에 이름 초성이 언급되면서 의심을 받았다. 윤호진은 24일 입장문을 발표하고, 28일로 예정되어 있던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를 소재로 한 신작 뮤지컬 <웬즈데이>의 제작 발표회를 무기한 연기했다.

이 밖에도 대학 강단에서 학생들을 가르쳐온 연출가 김석만, 국악인 이오규,  배우 김태훈, 조민기, 최용민, 한명구 등이 성추행 혐의로 교수직에서 사퇴하거나 해임되었다. 미투 운동을 계기로 공연계는 성폭력 가해자 처벌과 피해자 보호, 업계의 구조적 문제에 대한 성찰, 또 다른 피해 예방을 위한 조치에 나섰다. 여러 극단과 배우들이 SNS에 미투, 위드유(With You) 해시태그를 단 글을 올려 피해자를 지지했다. 2월 22일에는 ‘성폭력 반대 연극인 행동’이 출범해 피해자 지원에 나섰다. 관객들도 2월 25일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에서 위드유 시위를 벌이며 ‘성범죄자들은 관객이 거부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3월 18일에는 공연예술인노동조합이 마로니에 공원에서 공연계 변화를 약속하는 궐기대회를 열었다. 문화체육관광부 또한 3월부터 문화예술계 분야별 성폭력 신고·상담 지원센터를 운영하는 등 대처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여기에 검정 교과서 출판사들이 성폭력 가해자로 거론된 문화계 인사의 이름을 모두 삭제하겠다고 밝히면서, 연출가 이윤택과 오태석에 관련된 내용 역시 교과서에서 삭제될 예정이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75호 2018년 4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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