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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컬처 | [CULTURE REVIEW] <하이젠버그> [No.177]

글 |박병성 사진제공 |크리에이티브테이블 석영 2018-07-02 4,510

<하이젠버그>
불확실한 세계에서의 만남



연극 <하이젠버그>는 우연한, 어쩌면 의도된 하나의 사건으로 시작한다. 오후의 기차역 광장. 한 여인 조지 번스(42세, 방진의 분)가 광장 의자에 앉아 있던 한 남자 알렉스 프리스트(75세, 정동환 분)의 목덜미에 키스를 한다. 극은 일상을 깨는 도발적인 행동 그다음 순간부터 진행된다. 의자 역할을 하는 약간의 도구들만 남겨진 채 비어진 무대, 이 우주와도 같은 공간에서 조지의 입술이 알렉스의 목덜미로 달려든 이유는 알렉스의 뒷모습이 얼마 전 죽은 남자를 떠올렸기 때문이다. 조지가 처음으로 내세운 이유는 그렇다. 그러나 그것이 정말인지, 거짓인지 알 수 없다. 조지는 애초부터 의도적으로 접근한 것인지 아니면 뒷모습이 비슷한 한 남자에게 자신도 모르게 키스를 한 후 어리숙해 보이는 그를 이용할 계획으로 접근한 것인지 알 수 없지만, 조지는 알렉스를 유혹한다. 끌림인지, 의도인지 모를 접촉 이후 두 사람은 전혀 예측할 수 없는 상대방의 세계를 발견하고 조금씩 빨려 들어간다. 끌림과 의도가 길항하는 가운데 조지와 알렉스의 이야기가 전혀 예측할 수 없는 방향으로 전개된다. 이것이 연극 <하이젠버그>가 주는 매력이다. 



다른 두 행성의 만남

자신이 아는 한 남자를 떠올리는 뒷모습 때문에 키스를 하는 조지는 도발적이고 거침없이 욕을 하는 매력적인 여인이다. 그가 하는 말이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거짓인지는 명확하지 않다. 첫 만남에서 음식점 종업원으로 일을 한다던 그녀는 두 번째 만남에서 거짓임을 고백한다. 그녀의 말을 어디까지 믿어야 할지 의심이 들지만 적어도 두 가지는 확실하다. 조지에게는 아들이 있고, 아들에게 가기 위해 돈이 필요하다. 조지는 알렉스의 도움으로 그 돈을 얻으려고 한다. 이외의 모든 설정은 불명확한 상태로 남아 있다.

조지는 의도였는지, 끌림이었는지 명확하지 않지만 알렉스의 세계로 뛰어든다. 조지는 알렉스를 칠십 평생 이 도시를 벗어난 적 없는 수줍음이 많은 노인이라고 판단한다. 그녀의 예상대로 조지는 지나칠 정도로 규칙적인 패턴을 지닌 사람이지만 그것이 다가 아니었다. 조지는 전혀 예측할 수 없는 알렉스의 깊이와 아픔의 경험들을 확인하면서 점점 더 알렉스의 세계로 빨려들게 된다. 단정하고 단어를 골라 쓰는 알렉스는 학교 선생님 같은 인상을 주지만 실제 그의 직업은 정육점 주인이다. 아무런 시련과 고통 없이 평생 반복된 삶을 살았을 것 같은 그였지만 어린 시절 가족들을 잃고 홀로 살아가야 했던 과정이나 첫사랑에 대한 순정, 그리고 음악에 대한 깊은 조예를 지닌 사색적인 또 다른 알렉스를 보여준다. 딱딱한 콘크리트라고 생각하고 내딛은 곳이 한없이 빠져드는 늪일 때의 당혹감과 놀라움을 조지는 알렉스에게 느낀다. 




불확정한 사건들

정황상 40대의 조지는 돈을 얻어내기 위해 70대의 알렉스를 유혹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첫 만남에서의 도발적 키스와 거짓말도 다 그런 의도된 행동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조지의 말이 진심일 가능성도 남아 있다. 첫 만남에서의 거짓말로 모든 말이 믿기지 않지만 두 번째 만남에서 조지의 이야기는 대체로 사실로 입증된다. 조지는 알렉스와 함께 있던 순간이 좋았고 자신도 모르게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게 만드는 알렉스를 유혹했다는 가능성 역시 유효한 것이다. 

연극 <하이젠버그>는 조지를 중심으로 보자면 적어도 두 개의 이야기의 가능성을 품고 있다. 돈을 얻어내기 위한 의도된 접근이라는 해석과, 알렉스의 분위기에 끌려 접근했다는 해석이다. 어떤 해석이든 <하이젠버그>에서는 의도와 끌림의 두 가지 요소가 긴밀하게 작용한다. 그래서 이 두 가지 해석은 또다시 수백 가지의 이야기로 확산될 가능성을 품는다. 의도와 끌림의 순간을 언제로 보느냐에 따라 조금씩 결이 다른 수십 개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조지가 알렉스에게 돈을 얻어내야겠다고 생각하는 시점이 첫 만남부터인가, 아니면 둘이 육체적 관계를 맺고 나서인가는 서로 다른 이야기지만, 작품은 서로 다른 스토리의 가능성을 모두 품고 있다. 조지조차도 알렉스에게 접근한 것이 의도였는지 아니면 끌림이었는지, 끌림이었다가 의도가 생긴 것인지 아니면 반대였는지 명확하게 알지 못한다. 의도와 끌림에 따라 다양한 가능성이 펼쳐지는 이야기는 관객 각자의 해석에 따라 다양하게 받아들일 수 있다. 그보다 그런 확정되지 않은 이야기로서의 다양한 가능성을 품고 있다는 것이 바로 <하이젠버그>의 정체성이다.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의 원리

조지와 알렉스가 등장하는 이인극인 이 작품의 제목은 <하이젠버그>이다. 작품은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의 원리에서 모티프를 얻어 만들었다고 한다. 명징한 결론을 요구하는 과학의 세계에서 불확정성은 허용되지 않는 영역이다. 아인슈타인을 비롯한 과학자들은 불확정성의 원리를 깨기 위해 노력했지만 결국 다시 불확정성으로 되돌아가는 결론을 얻고 만다. 이 작품의 제목이 ‘하이젠버그’인 것은 작가가 조지와 알렉스를 통해 우리 삶의 모습이 바로 불확정한 것임을 보여주려고 하기 때문이다. 

작품은 곳곳에 불확정한 것들이 포진해 있고 불확정된 상태로 전개된다. 작가는 둘의 대화를 하나의 주제로 집중하지 않고 분산시키는 방식을 선택한다. 조지의 화법은 하나의 주제에 머물기보다는 산만하게 비약하고 도발적으로 폭발하는 언어로 전개된다. 이렇듯 대화 역시도 분산된 느낌을 준다. 앞서 말한 대로 조지의 행동 역시 명확하지 않다. 의도와 끌림이 섞여 있고 각각의 행동 역시 의도와 끌림으로 명확하게 구분할 수 없다. 작품은 조지와 알렉스의 대화와 관계 자체를 불명확하게 설정하여 불확정된 세계를 담아내고 있다. 

알렉스는 조지의 아들을 함께 찾기 위해 평생 처음으로 고향을 벗어난다. 그곳에서 조지의 곁에 있어주고 조언을 해주던 알렉스는 조지로부터 연인이 되어달라는 투박하지만 로맨틱한 프러포즈를 받는다. 하지만 알렉스는 거절한다. 알렉스에게 조지는 너무 어린 여자이고 자신에게 남은 날들이 그리 많지 않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알렉스의 긴 이유를 듣고 그의 진심을 이해한 조지는 질문을 바꾼다. 연인이 되어 달라는 대신 며칠간 함께 있어줄 것을, 그동안 자신을 보호해 줄 것을, 자신과 함께 아들을 찾는 일을 도와줄 것을, 그리고 힘들 때 안아줄 것을 부탁한다. 연인이라는 확정된 개념 대신 연인이 하는 구체적인 행동들을 부탁함으로써 둘의 관계가 지속되며 막이 내린다. 연인이 되길 거부했지만 연인의 행동을 해주는 둘은 연인일까, 아닐까, 그것을 묻는 것은 의미가 없다. 삶은 그처럼 고정된 것들보다는 규정되지 않고 불확정적인 상태로 남아 있고 그럴 때 더욱 폭넓게 설명되기 때문이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77호 2018년 6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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