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후가 세상을 만든다
공연계 입문자라면 한 번쯤은 들어 봤을 그 용어, 마니아. 하지만 공연을 향한 마니아들의 사랑과 그 힘으로 완성되는 재능의 크기는 상상을 넘는다. 각자 다른 방식으로 공연을 즐겨 온라인상에서 존재감을 발휘하고 있는 명의 마니아와 팬심이라는 위대한 사랑이 낳은 팬아트 11선, <최후진술> 사례를 통해 들여다본 팬들의 열정 어린 메모리북 제작 과정까지. 지금부터 당신을 상상 초월 마니아의 세계로 초대한다.
뮤지컬 팬아트 BEST 11
팬심이라는 위대한 사랑이 낳은 훌륭한 취미 예술. 누군가 팬아트에 대한 정의를 내려달라고 한다면 이렇게 설명하고 싶다. 과한 설명 아니냐고? 글쎄. <더뮤지컬>이 고심 끝에 엄선한 팬아트 11선을 감상한다면 당신도 분명 이 정의에 동의하게 될 거다.
<프랑켄슈타인> 미니 게임
소소하게 공연을 즐기며 트위터에 공연 후기와 팬아트 그림을 올리는 모마
어려서부터 공연이라는 장르를 좋아한 모마. 학교 졸업 후 직장인이 돼 본격적인 관극 생활을 즐기고 있는데, 2015년에 올라간 <프랑켄슈타인> 재연을 두 차례 보고 나서 공연의 매력에 완전히 매료됐다. 그 전까지는 ‘같은 공연을 왜 두 번 보는 걸까?’라고 생각했다고. 따라서 가장 좋아하는 뮤지컬은 당연히 <프랑켄슈타인>. 아름다운 뮤지컬 넘버와 웅장한 무대 때문에 작품에 반했으며, 한창 빠져 있던 시기에는 자기 전에 극 중 ‘괴물’을 생각하며 운 적도 있단다. 관극 후 ‘탈수 상태’가 되는 절절한 사랑 이야기 <리틀잭>과 맘껏 웃으며 스트레스를 날려버리고 싶을 때 생각나는 <고래고래>도 좋아하는 작품. 모마의 주력 팬아트인 그림 그리기는 학창 시절 전공과는 전혀 상관없는 취미 생활로, 공연에서 영감을 받아 그린 그림을 주위에 선물했는데 상대가 기뻐하는 모습을 볼 때 뿌듯함을 느낀다. 공연계에 전하고 싶은 말은 “기획사들이여, 관객들이 공연을 사랑하는 마음을 시험에 들지 말게 하옵시며, 공연 DVD와 OST를 발매해 주세요, 제발!”
<마마, 돈 크라이> 보드 게임
관극 일정이 없어도 대학로에 자주 출몰하는 연극 뮤지컬 마니아 갱
2014년 가을, 독일어를 배우고 싶다는 생각에 과거 지인이 알려준 독일판 <엘리자벳>을 떠올린 것이 갱의 입덕 계기. 독일 뮤지컬에 대한 관심이 자연스럽게 국내 뮤지컬로 옮겨갔는데, 당시 공연 중이던 <그날들>과 <지킬 앤 하이드> 관극을 시작으로 마니아의 길에 입성하게 된 것이다. 좋아하는 게 생기면 적극적으로 소비하는 경향 때문에 ‘이선좌’라는 팬웹진에 참여한 적이 있으며, 현재는 가장 좋아하는 배우 고훈정을 본받아 열심히 관극비를 벌며 지내고 있다. 트위터에서 화제가 된 <마마, 돈 크라이> 보드 게임은 무대 세트에 연도가 새겨져 있는 것에 아이디어를 얻어 출연진 선물용으로 자체 제작한 아이템. 촉박한 기간과 높은 비용 때문에 제작에 어려움이 있었지만, 매번 배우들에게 보드 게임을 전달해 준 공연장 안내원에게 고맙다고. 평소에는 팬아트로 이미지 카드나 캐릭터 명함을 자주 만든다. 갱이 공연계에 궁금한 점은 제작사들이 사회적 논란을 일으킨 인물을 캐스팅하는 이유. 공연을 아끼는 관객으로서 공연계가 양적 질적으로 성장하길 바랄 뿐이다.
<록키호러쇼> 켈리 인형
인형과 공연을 좋아해 공연 캐릭터처럼 인형을 꾸미는 게 취미인 고요
대학교에 들어가니 이상하게 주위에 공연을 좋아하는 친구들이 많았다는 고요. 친구 따라 강남 간다는 속담에 따라 한두 편씩 공연을 보다 보니 어느 순간 티켓팅 전쟁에 참전 중인 자신을 발견하게 됐다. 고요가 공연을 즐기는 방식은 바로 마텔사 바비 인형의 동생 켈리 인형을 뮤지컬 캐릭터처럼 꾸미기. 시중에서 판매되는 인형 옷 가운데 캐릭터와 비슷한 의상을 찾아서 인형을 변신시키는 것이 스트레스 해소법 중 하나란다. 순수 취미 생활인 탓에 인형 옷을 만들 만큼 손재주는 없다지만, <록키호러쇼>의 프랑큰 퍼터 켈리 인형이 착용한 빨간 퍼와 망사 장갑은 직접 만들었다. 누가 봐도 사랑스러운 이 인형은 제작사 알앤디웍스가 진행한 인증샷 이벤트에 당첨된 바 있다는 사실! <록키호러쇼>와 <배니싱>, 연극 <데스트랩>을 인생 공연으로 꼽으며, 공연을 만드는 사람과 보는 사람 모두가 행복해질 수 있는 올바른 제작 환경이 마련되는 것이 공연계에 바라는 점이다.
<스모크> 미니어처 무대
전공이나 업과는 상관없이 무대가 좋아 미니어처 무대를 만드는 교
사는 동네보다 대학로 지리가 더 익숙한 ‘일개 더쿠’라는 교. 특히 캐릭터에 대한 배우의 해석이 자신과 일치할 때면 집보다 극장 주위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낸다. 교는 학창 시절 아르바이트하던 곳의 회식 문화를 통해 뮤지컬을 접하게 됐고, 현실을 잊고 꿈꾸게 하는 뮤지컬의 매력에 빠져 ‘반복 관람자’가 됐다. 하지만 이렇게 오랜 시간 계속 공연을 보게 될 줄은 자신도 몰랐다고. 무대 제작 관련 전공자도, 실무자도 아니지만, 미니어처 무대를 만들게 된 이유는 무대에 대한 순수한 애정이다. 늘 무대를 만들어보고 싶다고 막연히 생각하다 우연히 미니어처 무대 사진을 접하곤 직접 실행에 나서게 됐단다. 처음엔 공연 영상이나 사진을 참고해 따라 만드느라 적지 않은 시간이 걸렸지만, 반복적으로 무대를 만들다 보니 최근에 만든 <스모크> 무대는 비교적 짧은 시간에 완성했다. 교가 취미 생활로 보람을 느낄 때는 미니어처 무대를 선물 받은 사람들이 어느 장면의 무대라는 것을 알아차려 줄 때!
<빈센트 반 고흐> 클레이 인형
클레이 인형으로 뮤지컬이나 연극, 영화의 한 장면을 기록 중인 12월 밤안개
12월 밤안개의 생애 첫 뮤지컬은 가슴에 두 손을 꼭 모으고 관람한<모차르트!>. 뮤지컬을 본다는 설렘에 공연 관람 전 모차르트 관련 각종 자료를 찾아보는 것은 물론 독일판 뮤지컬 OST까지 구입해 충분한 예습 기간을 가졌단다. 관람 당일 넓은 공연장을 채우는 웅장한 오케스트라 연주와 배우들의 힘 있는 소리에 푹 빠졌는데, 그 기분을 표현하자면 마치 음악 속에 제 자신이 들어가 있는 듯했다고. 12월의 밤안개가 클레이 인형으로 공연을 기록하는 것은 오랜 취미에서 비롯됐는데, 어렸을 적 동생 미술 숙제를 도와주다 클레이라는 재료를 접하곤 이 같은 취미를 갖게 됐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찰흙과 달리 손에 묻지 않고 원하는 모양을 쉽게 만들 수 있다는 게 클레이의 장점! 클레이와는 연관성 없는 학과를 전공했지만, 졸업 후 관련 회사에 취직해 전시 디오라마와 인형을 제작하는 일을 한 바 있다. 좋아하는 작품은 <빈센트 반 고흐>와 <엘리자벳>, <러브레터>. 언젠가 이 세 작품으로 디오라마를 제작하는 것이 목표라면 목표다.
<더데빌> 스티커
뮤지컬과 연극에 일상의 한 부분을 뺏긴 일러스트레이터 겸 배우 소요
출중한 그림 실력으로 팬아트 활동을 펼치고 있는 소요. 그의 설명에 따르면, 2013년에 관람한 <고스트>로 뮤지컬에 대한 흥미를 갖게 됐고, 2015년 지인 추천으로 <마마, 돈 크라이>를 관람한 후 본격 공연 마니아의 길에 들어섰다. 공연을 관람할수록 관극 후기를 마음속에 오래 간직하고 싶단 생각에 애니메이션 전공 이력을 살려 팬아트 그림 그리기를 시작하게 됐다고. 취미 생활로 보람을 느끼는 순간은 머리에서 사라질 기억들이 영원한 기록으로 남을 때. 또 각각의 캐릭터에서 받은 인상을 그림에 표현했는데, 사람들이 이에 공감해 줄 때다. 소요에 대한 정보를 하나 밝히자면, 그는 현재 VR 영상 제작을 전공 중이며 배우로도 활동하고 있다는 사실! 좋아하는 공연 ‘베스트 3’은 <데스트랩>, <아마데우스>, <킬롤로지>다. 공연계에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기존의 틀에 박힌 성별 캐스팅에서 벗어난 신선한 공연을 보고 싶다는 거다. “지금 당장 변하긴 힘들겠지만, 언젠가는 꼭 변화가 이뤄지길 기다리겠습니다.”
<어쩌면 해피엔딩> 배지
7년 차 덕후이자 평범한 회사원인 원(One)
컴퓨터 폴더 안에 쌓인 수많은 2차 창작 PSD 파일을 볼 때 보람을 느낀다는 원. 사연인즉슨, 미술대학을 나와 디자인 관련 일을 하다 보니 공연 소감을 그림으로 남기는 취미 생활을 덩달아 갖게 됐다고. 지난해 겨울, <어쩌면 해피엔딩> 팬들에게 사랑받은 팬 자체 제작 배지의 도안이 원이 작업한 창작물이다. 공연을 좋아하게 된 시기는 대학교 때로, 학과 특성상 오랜 시간 전공실에 갇혀 작업할 일이 많다 보니 리프레시를 할 겸 공연을 보러 갔던 게 삶의 새로운 활력소가 됐다. 원이 말하는 팬아트 취미 생활의 장점은 공연의 감동을 눈에 보이는 결과물로 간직할 수 있고, 또 공연을 추억할 수 있는 각별한 수단이 되어준다는 점이다. 누구보다 공연을 아끼는 만큼 공연계에 바라는 점도 있다. 그건 바로 보이지 않는 곳에서 고생하는 스태프들이 정당한 대우를 받을 수 있는 공연 환경이 자리 잡았으면 한다는 것! 왜냐, 공연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공연을 만드는 사람들이 지치지 않길 바라니까.
<웃는 남자> 페이퍼 커팅
페이퍼 커팅 예술가로 활동 중인 종이로 만든 대학로
종이로 만든 대학로를 공연 마니아의 세계로 이끈 작품은 열혈 마니아를 거느린 연극 <프라이드>! 이 공연을 본 건 순전히 우연이었는데, 좀 더 깊이 작품을 이해하기 위해 반복 관람하면서 공연 마니아로 거듭났다. 분명 같은 공연, 같은 배우, 같은 대사임에도 매일 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는 점 때문에 공연에 매료됐다고. 그의 이름을 연뮤계에 알린 페이퍼 커팅은 디자인 전공을 살린 취미로, 공연을 많이 보지 않았을 때부터 즐겨온 취미 생활 중 하나. 덕분에 <프라이드>를 보고 나서 곧바로 페이퍼 커팅 작업을 할 수 있었단다. 작업 중 행복한 순간은 트위터에 올린 작업물이 좋은 반응을 얻을 때. 참고로 종이로 만든 대학로가 최근에 작업한 <웃는 남자>는 1,500회에 가까운 리트윗 수를 기록했다. 공연 관람 횟수가 많아질수록 후기를 글로 남기는 것이 어려웠는데, 페이퍼 커팅을 통해 의미 있는 기록을 남길 수 있어 뿌듯하다고. 앞으로 시대적 흐름에 맞는 다양한 시선의 작품이 많아졌으면 하는 게 그의 바람이다.
<프랑켄슈타인> 구체관절인형
기분 좋은 관극으로 하루를 마칠 때 가장 행복하다는 관객 H
자신을 ‘소소하게! 공연을 즐기는 관객’이라 소개하는 H. 그가 뮤지컬을 접하게 된 것은 2001년 서울예술단이 선보인 <바람의 나라>를 만나면서다. 어릴 때부터 동명의 원작 만화를 좋아했던 탓에 생애 처음으로 용돈을 모아 뮤지컬을 보러 가게 됐다고. 당시엔 학생이라 연례행사처럼 일 년에 1~2편만 관람했지만, 관람 목록이 하나둘 쌓여갈수록 무대와 의상, 조명 등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 점점 관람 빈도가 높아져 자연스레 마니아의 길에 들어섰다. 공연 관람과 더불어 생긴 취미 생활은 구체관절인형을 공연 속 캐릭터처럼 꾸미는 것! 구체관철인형은 관절이 움직이는 인형으로, 시중에서 판매되는 기성품을 구입한 후 캐릭터에 맞게 제작한 의상과 소품으로 탈바꿈시킨다. H의 뮤지컬 인생작 3은 <넥스트 투 노멀>과 <프랑켄슈타인>, <모차르트 오페라 락>. 이 지면을 빌려 H가 하고 싶은 말은 다음과 같다. “박용호 프로듀서님께서 <넥스트 투 노멀>을 다시 올려주실 날이 언젠간 올 거라 기대합니다.”
<스토리오브마이라이프> 스노볼
‘스옵마’ 스노볼 제작을 진행한 능력자 솜볼총대
공연과 친숙한 환경에서 자라 자연스레 공연계에 종사하게 된 1인. 남들이 들으면 덕업일치의 꿈을 이룬 사람 같지만, 정작 본인은 직업은 그저 직업일 뿐 사무실을 벗어나는 순간 평범하게 공연을 사랑하는 덕후란다. 다음 휴무일에 뭘 보러 갈까 고민하는 그런 평범한 덕후 말이다. <스토리오브마이라이프> 스노볼을 제작하게 된 계기는 이사한 집에 수면등을 구비해 놓기 위해 상품을 검색하던 중 스노볼 형태의 수면등을 발견하게 됐는데, 그 순간 저 안에 토마스와 앨빈이 들어가 있으면 예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곧바로 커스텀 주문 제작을 알아본 결과 제작 비용이 너무 높아 공동 구매를 진행하기로 결심하게 됐고, 구매자 모집부터 시제품 생산, 본제품 제작, 배송 완료까지 무려 10개월이 걸렸단다. ‘솜볼총대’로서 짜릿했던 순간은 최소 제작 수량 300개를 거뜬히 넘는 주문이 들어왔을 때와 작업 중간 디자이너 개인 사정으로 작업자가 교체되는 우여곡절 끝에 퀄리티 높은 제품이 완성됐을 때!
<프랑켄슈타인> 도장
자체 굿즈 제작의 달인 단무지
2016년 초, 친구와 함께 <레베카>를 보러 갔다 열정 관극러로 인생의 전환점을 맞게 된 연뮤팬 단무지. 당시엔 모 카드사에서 진행한 1+1 할인 티켓을 우연히 발견해 가벼운 마음으로 극장을 찾았던 거였는데, 아름다운 무대 연출에 관극 인생에서 처음 느끼는 감정적 충격을 받게 됐다고. 그리고 지금까지 열심히 관극 라이프를 이어가는 중이다. 참고로 그가 제일 좋아하는 배우는 한지상! 공연을 향한 애정은 기념품 자체 제작으로 이어졌는데, 3D 애니메이션을 전공한 덕분에 굿즈 제작에 큰 진입 장벽을 느끼지 않았다고. 단무지는 <프랑켄슈타인> 도장 외에도 마스킹 테이프, 배지, 텀블러 등등 한 손에 꼽기 힘든 다양한 종류의 굿즈를 제작했을 뿐 아니라, 레진공예 목걸이나 플라워 하바리움 같은 고난이도의 굿즈를 만든 바 있다. 평소 무료 나눔을 즐기는 이유? “2016년 <프랑켄슈타인> 때 무료 나눔을 받은 적이 있는데, 무언가 만드는 것을 좋아하다 보니 저도 다른 사람들과 함께 관극의 즐거움을 나누고 싶더라고요. 하지만 가장 큰 원동력은 역시 그 작품을 좋아하는 마음이죠!”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81호 2018년 10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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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처 | [SPECIAL] 뮤지컬 팬아트 BEST 11 [No.181]
글 |배경희 2018-10-15 9,672sponsored adve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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