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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컬처 | [NOW IN NEW YORK] ​<프리티 우먼>, 낡아버린 신데렐라 스토리 [No.181]

글 |여지현 뉴욕 통신원 사진 |Matthew Murphy 2018-10-16 6,815

<프리티 우먼>,  낡아버린 신데렐라 스토리
PRETTY WOMAN 

 

 

뮤지컬로 재탄생한 할리우드 로맨틱 코미디 

1990년에 개봉해 4억 달러(한화 4400억 원)가 넘는 수익을 올리며 할리우드 로맨틱 코미디물에 한 획을 그은 <프리티 우먼>. 국내에는 ‘귀여운 여인’이라는 제목으로 개봉한 이 영화의 흥행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인물은 누가 뭐래도 당시 신인이었던 줄리아 로버츠였다. 줄리아 로버츠라는 신인 배우 본연의 아름다움이 ‘Heart of Gold(순금 같은 마음)’를 지닌 콜걸 비비안의 캐릭터 설정과 이야기 진행에 굉장한 뼈대가 됐기 때문이다. 이야기는 단순하다. 어쩌다 할리우드 거리에서 소위 말하는 ‘거리 여자’가 된 비비안이 사업차 LA에 들른 뉴욕의 금융맨 에드워드를 우연히 만나 진실한 사랑에 빠진다. 비비안의 밝고 순수한 성격이 사회적, 금전적 성공에만 매여 있던 에드워드의 가치관을 흔들어 놓아 그의 마음을 얻게 되기 때문이다. <프리티 우먼>은 개봉 당시 상업적으로 엄청난 성공을 거두고 대중문화의 아이콘이 되었지만, 피그말리온 신화와 신데렐라 스토리를 적절히 섞어놓은 영화는 비평가들 사이에서 평이 엇갈렸다. 주인공 줄리아 로버츠와 리처드 기어의 조합에 대해서는 극찬이 이어진 반면 진부한 구성에 대한 비판이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지난 8월 브로드웨이 41번가에 위치한 네덜란더 시어터에서 오픈한 뮤지컬 <프리티 우먼>이 극복하지 못한 가장 큰 문제점이기도 하다. 
 

영화 <프리티 우먼>은 당시 신인 시나리오 작가였던 제이 에프 러튼의 <3,000>이라는 대본을 바탕으로 한다. 이 시나리오는 비비안과 에드워드의 관계 중 비즈니스적인 부분(비비안이 에드워드와 7일 동안 지내는 조건으로 받는 돈인 3,000달러)을 제목에 내세웠고, 제목에 나타나듯 영화보다 훨씬 더 어두운 할리우드의 이야기를 적나라하게 다룬다. 엔딩에도 큰 차이가 있는데, <프리티 우먼>의 동화 같은 엔딩과는 달리 <3,000>의 에드워드는 약속된 7일이 끝나갈 무렵 돈을 바닥에 던지고 차에 타고 있던 비비안을 내쫓으면서 그녀와 헤어져 뉴욕의 여자친구에게 돌아간다. 이후 비비안과 그녀의 룸메이트 킷이 멍한 눈으로 버스 정류장에 앉아 디즈니랜드행 버스를 기다리는 것으로 끝이 난다. 또한 비비안이 마약중독자라 7일간 마약을 하지 않는 조건으로 2,000달러가 아닌 3,000달러를 받고, 에드워드도 성질 고약한 인물로 그려졌다 하니 두 작품이 얼마나 다른지 대충 짐작할 수 있다. 선댄스 협회에서 초기 개발 과정을 거쳐 첫선을 보였던 <3,000>은 나름 좋은 평가를 받았지만 디즈니의 자회사인 터치스톤이 관심을 가지면서 작품 방향이 대대적으로 바뀐다. 그 끝에 탄생한 <프리티 우먼>은 할리우드의 군상을 몽타주 형식으로 그려내 어두운 부분을 보여주고, 기사가 공주를 구하고 ‘공주도’ 기사를 구해 준다는 내용으로 비비안의 능동적인 모습을 그린다. 하지만 그럼에도 20세기 자본주의 사회를 배경으로 하는 진부한 신데렐라 이야기라는 비판은 피해 가지 못했다.
 

뮤지컬에 대한 리뷰를 시작하기 전에 원작 영화를 설명한 이유는 뮤지컬 <프리티 우먼>이 영화 줄거리를 충실이 따르기 때문이다. 미투 운동을 비롯해 페미니즘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뜨거운 이 시점에 영화를 그대로 따르기엔 무리라는 것은 누구나 예상할 수 있는 문제였을 것이다. 때문에 뮤지컬 제작진은 비비안과 킷이 현실에 머무르지 않고 자신들의 ‘꿈’을 좇는 능동적인 인물로 그리려고 부단히 노력했다. 또한 뮤지컬 속 에드워드는 원작 영화에서 리처드 기어가 연기했던 에드워드보다 훨씬 더 방황하는, 아니, 미성숙한 인물처럼 그렸다. 



 

무대에서 충실히 재현되는 원작 영화 

<프리티 우먼>을 무대화하는 것에 일찍부터 관심을 가지고 있었던 인물은 원작 영화의 감독 게리 마샬이었다. 지난 2016년 안타깝게도 프로젝트를 완성하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지만, 마샬이 영화의 시나리오를 썼던 러튼과 함께 뮤지컬화를 진행하고 있었고, 2015년 즈음 브라이언 아담스와 그의 오랜 작업 파트너인 짐 발란스가 작곡가와 작사가로 프로젝트에 합류했다. 이어 <헤어스프레이>, <리걸리 블론드>, <킹키부츠>에서 안무와 연출력을 인정받은 제리 미첼이 연출이자 안무가로 팀에 합류하며 창작진이 구성됐다. 무대화의 과정을 다 알 수는 없지만, 결과만을 놓고 보면 큰 사랑을 받았던 작품을 충실히 무대에 구현한다는 원칙으로 프로젝트를 진행했다는 것이 느껴진다. 무엇보다 비비안과 에드워드의 대사 대부분을 원작 영화에서 그대로 가져온 것만 봐도 그렇다. 두 사람이 처음 만나서 길을 묻는 것이나 차에 대한 이야기로 대화를 시작하는 것, 둘이 함께 간 폴로 시합에서 비비안의 정체가 탄로나자 화가 난 두 사람이 주고받는 대사 등 비비안과 에드워드의 대사는 사소한 농담까지도 영화와 거의 비슷하다. 차이점은 그 대사를 연기하는 배우들이 줄리아 로버츠와 리처드 기어가 아니라는 것과 뮤지컬은 영화보다 더 많은 얘기를 하고 싶어 한다는 것이다. 
 

비비안을 연기하는 사만다 바크스는 영화 <레 미제라블>에서 에포닌을 연기했던 배우다. 그녀는 조금 불량하면서도 선한 이미지의 비비안을 연기하는데, 무대 위에서 대사를 할 때마다 불량해 보이기 위해 부단히 노력한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특히 사만다의 껄렁한 걸음걸이는 몸을 움직이는 각도가 작위적으로 보인다. 에드워드 역은 여러 브로드웨이 뮤지컬에서 주연으로 얼굴을 알린 인지도 있는 배우 앤디 칼이 맡았다. 그의 연기는 진솔한 부분도 있었지만, 복잡한 사연을 지닌 무정한 자본가 에드워드가 비비안을 만나 달라지는 모습을 표현하기에는 아쉬움이 있었다.



 

원작 영화와 뮤지컬의 틀린 그림 찾기

물론 뮤지컬 무대로 옮겨지면서 달라진 부분들은 꽤 있다. 내용상 가장 큰 차이점은 뮤지컬에서는 킷이 비비안보다 나이가 좀 더 많은 인물로, 비비안의 큰언니 같은 역할을 한다는 것과 비비안과 킷 그리고 관객들에게 끊임없이 꿈을 상기시켜주는 ‘해피 맨’이라는 캐릭터가 등장한다는 것이다. 킷은 앤디 칼의 실제 부인이자 싱어송라이터 겸 배우인 오르페가 맡았는데, 그녀의 폭발적인 가창력과 자연스러운 건들거림은 어딘가 어색한 바크스보다 더욱 존재감을 드러낸다. 킷은 거리를 벗어나 좀 더 능동적으로 자신의 삶을 살고자 하는 비비안을 보면서 제 자신도 오래전부터 꿈꾸었던 경찰이 되겠다고 다짐한다. 그녀의 이러한 변화는 해피 맨이 부르는 꿈에 대한 노래 때문이기도 하다. 해피 맨은 1막의 시작에서 할리우드를 꿈을 좇는 사람들의 도시라며 ‘Welcome to Hollywood’를 부르고, 2막에서는 관객들과 킷에게 꿈을 상기시켜주기 위해 ‘Never Give Up on a Dream’을 노래한다. 해피 맨은 에릭 앤더슨이 맡는데, 그는 비비안의 조력자 역할을 하는 호텔 지배인 톰슨까지 두 가지 역할을 수행한다. 영화 속 톰슨이 비비안에게 고급 식당에서 포크를 쓰는 순서를 가르쳐주었던 것과 달리 뮤지컬에서는 탱고 추는 법을 가르쳐 주는 것으로 바뀌었다. 비비안이 탱고를 배워야 하는 상황이 조금 뜬금없긴 하지만, 탱고 장면을 통해 에릭 앤더슨은 두 주인공만큼 큰 존재감을 드러낸다.
 

무대 세트나 의상 등 시각적인 요소 역시 영화를 재구성하려고 노력한 듯 보인다. 줄리아 로버츠와 전혀 다른 이미지의 배우인 사만다 바스크에게 영화에서 비비안이 입었던 비슷한 옷을 입힘으로써(특히 비비안이 에드워드와 함께 오페라를 보러 갔을 때 입는 이브닝드레스는 영화의 드레스와 거의 비슷하다) 원작 영화에 대한 관객들의 향수를 자극하지만, 바스크의 매력은 반감되는 아쉬움을 남긴다. 또한 영화에서 두 사람의 만남에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했던 자동차를 대사로만 처리한 점은 굉장히 아쉬웠다. <킹키부츠>와 <헤어스프레이>의 세트를 담당했던 데이비드 록웰의 무대 디자인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공연 시작 전에 무대 뒤쪽 일부만 보이게 설치해 둔 LA의 명물 할리우드 간판의 뒷모습과 그 너머로 비친 노을이었다. 이 장면은 할리우드의 정서적, 물리적 분위기를 잘 살려냈다. 하지만 무대 하수 옆에서 들어오는 비상계단, 할리우드의 길거리를 보여주는 장치, 트랙에 달려 이동하는 호텔 가구 등은 실질적인 장소를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그 이상의 의미를 갖지 못한다.  



 

평범해서 아쉬운 음악 

뮤지컬 <프리티 우먼>에서 가장 아쉬웠던 부분 중 하나는 브라이언 아담스의 음악이었다. 1990년대 소프트 록과 록 발라드의 선두주자로 큰 사랑을 받았던 브라이언 아담스가 그의 오랜 파트너 짐 발란스와 함께 쓴 노래들은 가사나 구성 면에서 다소 진부하다. 예를 들어, 에드워드가 처음으로 부르는 곡은 ‘Something About Her(그녀에게는 뭔가 있어)’라는 노래인데, 이곡 이후에 에드워드가 비비안을 만나 변화하는 감정을 그린 음악이 별로 없다. 가사 역시 1990년대 록 발라드에서 들을 수 있는 상투적인 내용이라 인물을 입체적으로 그려내는 데에 큰 도움을 주지 못한다. 비비안이나 킷의 노래도 아쉬움을 남기긴 마찬가지이다. 멜로디 자체는 들을 만하지만, 2시간이 넘는 공연 시간 내내 듣기에는 지루하게 느껴진다. 그런 점에서 호텔 지배인 톰슨이 비비안에게 춤을 가르쳐 주면서 부르는 탱고풍의 노래가 신선하게 느껴지는데, 이 곡이 작품 전체 밸런스에 어울린다고는 할 수 없다.

비비안이 로데오 드라이브에서 쇼핑하는 장면은 영화 속 음악 ‘Oh, Pretty Woman’ 대신 에드워드와 가게의 직원들이 함께 부르는 ‘You are beautiful’이라는 곡으로 대체됐다. 노래 시작 전에 에드워드는 직원에게 자신이 오늘 돈을 엄청 쓸 계획이니까 이 아가씨한테 칭찬 세례를 퍼부어 달라고 한다. 노래 중간에는 가게 매니저처럼 보이는 사람이 에드워드에게 도대체 얼마나 쓸 생각이냐고 물어보고, 에드워드가 상상도 못할 만큼이라고 답한다. 비비안의 아름다움을 찬사하는 내용의 노래인데, 영화와 다르게 진행되는 이 장면은 에드워드가 비비안이라는 인물을 돈으로 사는 것을 드러낸다. 그 결과 동화적인 로맨스와 현실적인 이야기를 동시에 담아내려는 창작진의 욕심이 충돌하게 된다.   



 

2018년의 <프리티 우먼>

어느 작품이든, 그 작품이 왜 그때 그 시점에 만들어졌는지 생각해 보는 것은 작품을 이해하는 데 굉장히 중요한 열쇠이다. 그리고 최근 브로드웨이에 공연된 뮤지컬 가운데 이 질문에 대해 명확한 답을 주지 못하는 작품들이 많았는데, 뮤지컬 <프리티 우먼> 역시 이 질문을 피해 가지 못한다. 영화가 인기를 얻었던 1990년대에 뮤지컬로 만들어졌다면, 비비안과 에드워드의 이야기에 ‘꿈’이라는 작위적인 첨가제가 필요하지는 않았을 것 같다. 어쩌면 비비안을 영화 속 설정 그대로 그려냈어도 지금처럼 불편하게 느껴지지 않았을 것이다. 뮤지컬은 현시대를 반영하기 위해 비비안을 능동적으로 그리려 노력하고, 비비안의 조력자 킷의 비중을 강화했지만 그럼에도 남성 시각에서 쓰인 이 작품의 큰 해결책이 되지 않는다. ‘프리티 우먼’이라는 여성을 주인공으로 하는 작품이지만, 2018년 현시점에 어울리는 여성 주인공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영화를 좋아했던 팬들에게는 1990년대의 감성을 무대에서 만나는 즐거움이나 뮤지컬과 영화의 다른 점을 찾아보는 재미를 안겨주는 작품임은 분명하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81호 2018년 10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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