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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CULTURE INTERVIEW] <그 개> 김은성 작가·부새롬 연출, 지금 여기의 슬픈 우화 [No.181]

글 |박병성 사진 |심주호 2018-10-16 6,454

<그 개>  김은성 작가·부새롬 연출, 지금 여기의 슬픈 우화   

우리 사회의 풍경을 슬픈 우화로 풀어낸 <그 개>에서 김은성, 부새롬 콤비가 다시 만났다. 김은성 작가와 부새롬 연출은 극단 달나라 동백꽃 멤버로 <찌질이 신파극>부터 고전을 재창작한 <달나라 연속극>, <로풍찬 유랑극장>, <순우삼촌>, <뻘> 그리고 2016년 연극상을 휩쓴 <썬샤인의 전사들>까지 김은성 작가가 쓴 대다수의 작품을 부새롬 연출이 맡았다. <그 개>는 보통 틱 장애라고 부르는 뚜렛 증후군에 걸린 중학생 해일과 그의 개 무스탕을 중심으로 주변 사람들의 삶을 펼쳐 보인다. 이들을 통해 우리 사회의 권력 구조와 폭력적 관계 속에서 상처받은 사람들을 엿보게 된다. 김은성 작가와 부새롬 연출을 만나 작품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끝이 아닌 과정
                      
<그 개>는 어떻게 발상하게 되었나?
김은성_  동네가 성북동이라 언제부턴가 뒷산인 북악산에 자주 간다. 매일 같은 코스로 가는데 어느 하루는 개 한 마리를 만났다. 털도 깨끗하고 눈도 맑은, 분명 며칠 전까지 집에서 키운 것 같은 진돗개였다. 한 오 분쯤 따라왔다. 그 일이 있고 며칠 후 산책을 하는데 한 저택에서 아이들 웃음소리가 크게 들려왔다. 북악산 쪽에 대사관들과 큰 저택이 많아서 높은 담을 가진 집이었는데, 담벼락으로 아이들의 머리가 올라왔다 내려갔다 했다. 트램펄린을 타면서 영어로 대화하더라. 대문에 다가갔더니 커다란 셰퍼드 한 마리가 대문 밑으로 코를 박고 짖어대는데 굉장히 불쾌했다. 이질적인 두 마리의 개를 경험한 후 산에 갈 때마다 그 일들이 환기되었다. 개에 대한 이야기를 써야겠다고 생각하고 시작했는데 처음에는 스릴러물에 가까웠다. 지금은 처음에 상상하지 않았던 이야기로 발전한 것이다. 

처음 <그 개> 이야기를 들었을 때 어떤 생각이 들었나?
부새롬_ 
스릴러물 수준일 때 말로 들었는데 아무래도 이야기를 다 쫓아가지 못했다. 계속 이야기가 바뀌더니 지금의 이야기로 확정되었을 때 절반 정도 나온 대본을 봤다. 사고(극 중에서 파국으로 치닫게 되는 사고가 발생한다)가 일어나기 바로 직전까지의 대본이었는데 은성이가 이전에 쓰던 대본과 달라서 재밌었다. <뺑뺑뺑>의 드라마 버전 같기도 하고 여러 인물들이 갑자기 튀어나와서 이야기하는 방식에 흥미를 느꼈다. 
고전을 재창작한 작품이든 순수 창작이든 지금까지의 작품은 대부분 과거의 시간대를 배경으로 했다. 그런데 <그 개>의 시간적 배경은 지금 현재이다. 
김은성_  한 10년 정도 사회가 큰 이야기를 해야 할 것 같은 분위기였다. 정치적 상황이 이런데 소소한 이야기를 하는 게 겁났던 듯싶다. 그 시기가 지나가고 나니 나랑 우리 동네만 덩그러니 남겨진 느낌을 받았다. 세상의 변화가 뉴스에 나오는 큰 사건으로 변하기도 하지만 근본적인 변화는 아주 소소한 변화에서 이루어지지 않나. 그런 생각을 하다 보니 내가 사는 동네가 보이기 시작했고 나는 어떻게 살고 있는지 돌아보게 됐다. 그러다 보니 내가 지금 살고 있는 성북동 이야기를 하게 됐다. 

연극평론가들은 극단 달나라 동백꽃의 작업에 대해 역사적으로 소시민들의 삶에 관심을 두면서, 특히 우리말의 음색과 정서를 지역성과 역사성의 바탕 아래 담아내는 극단이라고 보더라. <그 개>에서는 일상적인 대사라기보다는 자기 고백적인 느낌의 대사가 많고 대부분의 대화가 어긋난다. 
김은성_ 
그 점이 가장 큰 변화일 것이다. 당연한 일인데 이 작품을 쓰면서 연극이 무대에서 펼쳐지는 예술이라는 것을 많이 느끼면서 썼다. 이전까지는 그런 생각을 별로 하지 않고 썼던 것 같다. 아주 사실적일 수밖에 없는 이야기를 펼치는데 세종M씨어터를 상정하고 이 상황을 쓰려다 보니 인물들이 밀접하게 앉아서 대화를 나누는 그림이 잘 안 그려지더라. 이래서 셰익스피어의 희곡에 방백이 많구나 싶었다. 방백이 올드한 방식이 아니라 중요한 연극 문법 중 하나라는 것을 깨달았다. 




완전히 사실주의 희곡은 아니다. 연출 아이디어를 어떻게 잡았나?
부새롬_ 
사실주의 장면을 쪼개서 이야기가 튀어나오거나 인물이 앞으로 나와 관객하고 이야기를 나누는 방식으로 쓰인 작품이라고 본다. 대단히 표현주의적이지는 않고 단지 서사가 연속적으로 연결되지 않는다. 튀어나오는 인물들을 어떻게 보여주어야 재미있을까 하는 생각을 많이 하고 있다. 배우들의 연기를 잘라내는 작업을 해야 하는데 그런 점이 재미있다. 드라마는 굉장히 쉬워서 관객들은 다 안다. 예를 들어 ‘바다 가 봤어’ 하고 바로 ‘와’ 해버리면 그 사이 이야기를 충분히 이해한다. 희곡은 그렇게 쓰여 있지만 배우들은 예전 습관이 남아 있어서 ‘바다 가 봤어’ 하면 ‘응’ 하고 ‘와’로 넘어가는 것이 익숙하다. ‘응’을 빼는 그 순간이 재미있다. 연극에서 할 수 있는 재미있는 시도라고 생각한다. 사실 영화에서는 이런 전환을 많이 본다. 영화에서는 영상의 변화로 보여주지만 연극에서는 아무것도 바뀌지 않아도 배우가 시선만 열어주면 관객은 그 공간을 경험하게 된다. 

미술강사인 선영은 자신이 사회적 약자라고 생각했는데 틱 장애를 앓고 있는 해일에게는 자신이 그를 판단하고 평가하는 벽이 된다는 사실을 깨닫는 장면이 인상 깊었다. 재벌 서자인 장강도 그렇고 사회의 권력 구조에서 억눌려 있는 인물들에 더 시선을 두는 것 같다. 
김은성_ 
그 부분을 잘 다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 인물들을 통해 관객들이 보았으면 하는 게 있다면 그건 전체적인 구조이다. 장강이 갑질하는 꼰대 할아버지로 기능하는 것이 아니라 저 인물의 인간적인 면모에 대해 생각하게 하고 싶었다. 인간은 무균질이 될 수 없다. 요즘 댓글을 보고 있으면 좀 무서워진다. 우리는 불편한 데가 있고 모자라고 미숙하고 그러니까 인간인 건데, 좋은 놈과 나쁜 놈으로 나누어 정리해 버린다. 우리가 왜 이렇게 됐고 이렇게 살고 있는지 보여줄 수 있으면 좋겠다. 

대본을 읽다 보면 최근 이슈가 되었던 장애인 학교 건립 문제나 재벌의 갑질 문제가 떠오르기도 한다. 선영은 자신보다 상대적인 약자를 위해 마음을 열었던 인물이다. 그런데 상상할 수 없는 비극적인 사건을 당한다. 
부새롬_ 
우리는 아마 작품 속 인물 중에 선영과 가장 가까운 세대라고 생각할 거다.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실천하려고 촛불집회도 나가고 청원도 하고 리트윗도 하면서 옳게 살려고 노력해 왔다. 그런데 어떤 고통이 오거나 불이익이 왔을 때도 그럴 수 있을까. 장강이 처음부터 나쁜 사람은 아니었을 것이다. 작품에서는 나오지 않지만 그 사람 역시 자신을 지키기 위해 무언가를 내치고 보호하면서 이렇게 되었을 것이다. 옳게 살기 위해서는 신념이 엄청나게 강해야 한다. 사람이라는 존재는 너무 약하다. 그렇게 강할 수 있는 존재라고 믿으면 안 될 것 같다. 때로는 이해 안되는 행위를 할 수도 있고 무너지기도 한다. 어떤 위협적인 상황에 처했을 때에도 우리는 옳게 살려고 노력할 수 있을까. 선영이란 인물을 보면서 그런 생각을 많이 하게 됐다. 그러면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지. 

같은 의미로 극 중에서 “나중에 별이(선영의 딸) 위장전입 시키지 않을 자신 있어? 교육개혁 외치는 것보다 어려운 일일지 몰라”라는 대사가 가슴에 와 닿았다. 
부새롬_ 
바로 그런 점이다. 

포스터는 휴먼 판타지처럼 보이기도 한다. 실제 작품의 톤은 어떻게 나올까?
부새롬_ 
결국은 새드 엔딩이니까 관객들이 하하호호 웃으며 나갈 수는 없겠지만 전체적으로는 스피디하면서도 무겁지 않게 나올 것 같다. 그렇게 쓰여 있기도 하고. 

극은 열린 구조로 마무리된다. 열린 구조를 선택한 이유가 있나?
김은성_ 
관객들이 이 이야기에서 이들의 인생이 완결되었다고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비극적이고 슬픈 일을 겪었지만 해일이는 앞으로 70년 이상 살아가야 한다. 이러한 사건들이 성장통이고 진행 과정으로 보였으면 좋겠다. 선영도 정신적으로 힘들어서 불안한 모습을 드러내긴 하지만 반복해서 나오는 대사의 톤이 마지막에 어떻게 들리냐에 따라 선영과 영수의 삶도 이것이 끝이 아니라는 느낌을 줄 수 있을 것이다.




달나라에서 피워낸 동백꽃 

두 분은 한예종 시절부터 함께 작업을 해 극단 달나라 동백꽃을 만들었다. 극단 달나라 동백꽃이 추구하는 연극은 어떤 것인가?
부새롬_ 
내가 먼저 극단을 하자고 했다. 학교에서 작업을 하다 보니 매번 낯선 배우를 새로 만나 작업하는 게 힘든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극단은 이런 연극을 할 거야 하고 만들어지기도 하는데 우린 그런 생각이 별로 없었다. 
김은성_  좋은 동료를 만났고 현실적으로 극단이 필요해서 자연스럽게 출발했다. 호흡이 잘 맞는 연출이지만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연극관은 차이가 있다. 나는 보편적인 방식의 이야기가 주가 되는 연극을 좋아하는 반면, 부새롬 연출은 그런 작품도 좋아하지만 탈텍스트적인 작품에 흥미가 있다. 

극단 달나라 동백꽃은 <유리동물원>이나 <바냐 아저씨>, <갈매기>, <쇼팔로비치 유랑극단> 등 고전을 우리 식으로 번안, 재창작하는 작업을 많이 해왔다. 그런 스타일을 추구하는 이유가 있는가? 
김은성_ 
완성도 높은 플롯을 완전히 새롭게 창작해 내는 작업은 힘든 일이다. 내 취향 자체가 연극뿐만 아니라 다른 장르에서도 안정된 드라마를 기반으로 디테일한 이야기를 음미하는 작품을 좋아한다. 잘 구축된 드라마를 보면 그것이 외국 작품이라도 갖고 싶은 마음이 있다. 학교에서 연극사에 명작으로 남아 있는 희곡들을 공부했다. 희곡을 읽었을 때는 우리 주변에 벌어지는 이야기라고 느꼈는데 막상 공연으로 보면 나와 먼 이야기처럼 거리감이 느껴졌다. 그래서 번안, 재창작해서 우리 이야기로 바꿔보고 싶은 마음이 컸던 것 같다. 

최근에는 고전을 재창작하는 작업보다 완전히 새로운 창작에 집중하는 것 같다. 2016년 <햄릿>을 모티프로 한 <함익>을 올리긴 했지만 <함익>은 이전의 고전을 재창작하는 작업과는 성격이 달랐다. 
김은성_ 
<함익>은 이전의 번안 재창작 작업과 거리가 있는 작업이다. <함익>은 장르물을 써보고 싶었고 일종의 메타 연극을 시도한 결과다. 초창기 때는 일 년에 서너 편을 발표하던 적도 있었지만 지금은 이 년에 한 편 정도 쓰는 것 같다. 작업량이 많지 않아서 나 스스로도 경향이 어떻게 바뀌는지 모르겠는데 재창작 작업의 기회가 있으면 할 것이다. 다음으로 재창작하고 싶은 후보들은 <벚꽃동산>이나 <사회의 기둥들>처럼 규모가 큰 작품들이다. 소규모 민간 극단에서 단독으로 올리기에는 부담이 될 수 있는 작업이다. 가끔 기회가 되면 공공 단체에 제작을 제안 드리는데 오리지널이 아니어서 덜 좋아하시는 것 같다. 




그동안 김은성 작가와 여러 작품을 함께했다. 김은성 작가의 희곡을 연출하기 힘든 점은 무엇인가?
부새롬_ 
지문이 너무 많다. 사실 그런지 몰랐다. 다른 작가의 작품을 받았는데 지문이 없는 거다. 은성이가 지문을 많이 쓰는구나, 그때 알았다. 반은 농담이고 반은 진담인데 지문이 많다는 건 작가가 그 장면에서 바라는 정서가 굉장히 명확하다는 방증이다. 가끔은 내가 다르게 받아들이거나 다르게 하고 싶을 때가 있는데, 작가가 이렇게 바꿔서 하는 것을 받아들일까 걱정할 때가 있다. 때로는 내가 생각한 작가의 의도가 그렇지 않을 때도 있고 아무래도 가깝게 작업을 많이 해서 그런 것이 더 신경 쓰인다. 

서로에게 어떤 연출이고 어떤 작가인가?
김은성_ 
아주 신뢰하는 연출인데 ‘무섭다’는 말이 가장 어울리는 표현일 것 같다. 활동을 하다 보면 사실을 포장하고 과장하고 싶은 욕망이 들기도 한다. 관객 반응 보면서 꼼수를 부리고 싶은 유혹을 느낄 때가 있다. 이런 데서 원칙이 깨지면 부담스러운 일이 발생하게 되는데 부새롬 연출은 대단히 유연하면서도 그런 유혹에 잘 안 빠지고 작품을 잘 컨트롤한다. 이것은 능력이라기보다는 자세인 것 같은데 지나고 나면 괜히 내가 어린애 같고 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부새롬_  제일 먼저는 정말 잘 쓰는 작가이다. 모든 사람에게 그렇지는 않겠지만 지금 세상을 보면서 이런 이야기를 하고 싶다고 할 즈음에 기가 막히게 그것을 잘 써준다. 이걸 강하게 느낀 작품이 <썬사인의 전사들>이었다. 그때 세월호 문제로 괴로웠다. 너무 많은 문제가 얽혀서 해결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것도 해결하지 못하고 살아서 여러 문제들이 얽혀버렸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그때 딱 그런 작품을 써왔다. 이런 면이 잘 맞아서 좋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81호 2018년 10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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