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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컬처 | [NOW IN NEW YORK] <오클라호마!>, 현시대의 공포물로 변주된 향수 어린 드라마 [No.182]

글 |여지현 뉴욕 통신원 사진 |Paula Court, Teddy Wolff 2018-11-07 7,617

<오클라호마!>, 현시대의 공포물로 변주된 향수 어린 드라마
Oklahoma!



 

참된 미국인에 대한 뮤지컬 

미국 뮤지컬 역사는 1943년에 초연한 리처드 로저스와 오스카 해머스타인 2세의 뮤지컬 <오클라호마!> 전후로 구분된다는 이야기가 있다. 오랫동안 이런 이야기의 근거가 되어왔던 주장은 바로 이것이다. <오클라호마!> 이전에는 스타 혹은 잘 알려진 노래로 공연이 진행됐고, 음악이나 안무가 작위적이었다면 <오클라호마!> 이후엔 스토리에 기반을 두고 음악과 안무가 탄탄한 조화를 이루는 통합 뮤지컬(Integrated musical)이 시작됐다는 것. 1944년, 1931년 작품 <오브 디 아이 싱(Of Thee I Sing)>에 이어 뮤지컬로서 두 번째로 퓰리처상을 받은 점이나 1943년 개막해 2천 회 넘는 공연을 기록하고 토니상까지 받은 사실은 당시 이 작품이 얼마나 큰 반향을 일으켰는지를 보여준다. 하지만 1990년대 즈음부터 콜 포터나 조지 거슈윈 등의 이전 작품들이 <오클라호마!>에 비해 상대적으로 이야기와 음악, 안무의 개연성이 뒤떨어지지 않다는 의견이 등장했고, 그 결과 <오클라호마!>가 역사를 새로 쓴 뮤지컬이라는 주장 역시 힘을 조금 잃게 됐다. 물론 시간이 지나면서 <오클라호마!> 이전 작품들에서는 볼 수 없었던 통칭 ‘드림 발레(노래하지 않고 안무로만 작품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장면)’는 <오클라호마!>의 역사적 중요성을 상기시켰다. <오클라호마!>가 갖는 또 다른 역사적 중요성은 1920~30년대의 뮤지컬이 세계주의적이고 도시적인 삶에 대한 동경을 다뤘던 것과 달리 처음으로 미국 중서부의 지역 문화를 찬양하는 이야기를 그렸다는 데에 있다. 즉, 땅에 뿌리를 내리고 사는 농부들의 삶이 변화하는 모습을 뮤지컬이 주목했다는 것이다. 
 

어찌 되었든 <오클라호마!>는 현재에도 여전히 미국 전역의 초중고, 그리고 대학교의 연극반에서 자주 공연되고, 또 공연을 좋아하는 미국인이라면 누구나 아는 작품이다. 때문에 미국과 해외에서 크고 작은 버전들의 공연이 이어져 왔는데, 특히 1998년에 올라간 웨스트엔드 프로덕션 공연에서는 지금의 할리우드 스타 휴 잭맨이 컬리를 맡아 성공적인 연기를 보여준 바 있다. 그는 그 이듬해에 무대를 영상으로 옮긴 버전에도 출연했고, 이는 영미권 커리어를 시작하는 계기가 됐다. 아쉽게도 한국에서는 아직 공연된 적은 없지만, 1955년에 제작된 영화 버전이 개봉한 적이 있어서 그런지 음악 자체는 꽤 잘 알려져 있다. 

 

안으로 팔이 굽는 마을

작품의 줄거리는 단순하다. 황금빛 안개가 끼는 미국 중서부 오클라호마의 작은 마을에 사는 로리와 카우보이 컬리가 마을 사람들의 축복 속에 사랑에 빠지게 되는 이야기이니 말이다. 단순한 이야기를 흥미롭게 하는 것은 둘의 사랑을 방해하는 농장 일꾼 저드 프라이와, 관심 있는 남자를 내치지 못하는 성격의 애니, 윌, 알리 하킴 간의 삼각관계 코미디다. 마을 잔치를 앞두고 컬리는 로리에게 자신의 파트너가 되어달라고 하지만 로리는 이 제안을 선뜻 허락하지 않는다. 결국 로리는 이모의 농장에서 일하는 저드와 함께 잔치에 간다. 한편 애니는 약혼자인 윌이 잠시 캔자스시티에 간 사이에 알리 하킴이라는 페르시아에서 온 장사꾼에게 마음을 빼앗긴다. 애니의 아빠는 윌에게 50불을 가져오지 않으면 딸을 줄 수 없다고 한다. 그런데 윌은 카우보이 경연 대회에 나가 받은 상금 50불을 애니를 위한 선물을 사는 데 다 써버린다. 돈이 없어 애니와 결혼할 수 없는 윌이 상심한 사이 애니는 알리 하킴과 결혼을 약속한다. 로리가 자신이 아닌 저드의 파트너가 된다는 것에 화가 난 컬리는 저드를 찾아가 그에게 물러설 것을 요구한다. 그러나 저드가 마음을 접지 않자 둘 사이엔 긴장이 고조된다. 로리 역시 컬리를 좋아하긴 하지만 저드에 대한 두려움을 떨치지 못한다. 
 

2막은 마을 잔치로 시작하는데, 마을 잔치가 끝나갈 무렵 저드는 로리에게 자신의 마음을 전하고 로리가 마음을 받아주지 않자 그녀를 협박한다. 두려움을 느낀 로리는 컬리에게 도움을 요청하고 결국 저드가 마을을 떠난다. 그 와중에 윌은 알리 하킴의 도움으로 50불을 마련하고, 애니를 하킴에게서 되찾아 올 수 있게 된다. 서로의 마음을 확인한 로리와 컬리는 결혼을 하게 되는데, 결혼식장에 저드가 나타나 컬리와 몸싸움을 벌인다. 결국 저드는 컬리의 손에 죽게 되지만, 마을 사람들이 합심해서 컬리의 무죄를 선언하고 결혼식 잔치를 이어가면서 이야기가 끝난다. 
 

간단한 줄거리 설명에서도 조금 드러나지만, ‘Oh, What a Beautiful Morning’이라는 찬가로 시작해, 같은 곡으로 끝을 맺는 <오클라호마!>의 이야기는 당시 만들어진 다른 작품과 마찬가지로 현재의 감성으로 받아들이기에는 불편한 점들이 존재한다. 표면적으로는 오클라호마의 카우보이 컬리와 농부의 딸 로리의 러브 스토리지만, 둘의 사랑을 방해하는 인물인 저드가 자신의 사랑을 받아주지 않은 로리를 협박하고, 컬리가 악역인 저드를 죽이자 마을 사람들이 다 같이 컬리를 감싸주고 무죄를 선언하는 결말은 “아름다운 아침”이라고 노래하며 넘어가기에는 섬뜩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 마을의 두 외지인(심지어 둘 중 한 명은 피부색이 상대적으로 어둡고, 다른 한 명은 페르시아에서 왔다)인 저드와 알리 하킴이 오클라호마의 작은 마을에 정작하지 못하고 죽거나 마을을 떠난다는 설정은 드라마보다 공포물에 더 적합한 결말이다. 과거에 이 이야기가 건네는 공포감을 작품에 담아낸 프로덕션이 없었다는 것이 신기할 정도다.



 

제대로 섬뜩한 오클라호마

맨해튼 다운타운의 스카이라인이 아름답게 보이는 브루클린 다리 공원에 위치한 극장인 세인트 앤즈 웨어하우스는 1980년에 처음 세워졌다. 2001년 브루클린 다리 부근 지역인 덤보의 창고 건물로 자리를 옮겨 운영되다 2015년 현재의 위치에 자리를 잡았다. 이 극장의 장점은 공간 변형이 꽤 자유롭다는 것이다. 무대 위엔 작품에 따라 한 면 혹은 사면에 의자를 놓을 수도 있고, 긴 무대나 원형의 무대 등 여러 방식의 무대를 만들 수 있다. 그리고 이번 <오클라호마!>는 극장이 지닌 이러한 유연함을 잘 살린다. 길쭉한 직사각형의 무대 양쪽에 객석이 있고, 한 면을 제외한 삼면이 합판으로 둘려 있다. 객석에 입장해 보이는 맞은편 합판에는 마치 연필로 스케치한 듯한 들판과 집이 한 채 그려져 있다. 또 객석의 맨 앞에는 미국식 저온 조리기가 듬성듬성 놓인 테이블이 있는데, 여기엔 ‘요리를 하는 중이어서 뜨겁다’는 안내문이 붙어 있다. 천장에는 마치 만국기처럼 형형색색의 은박종이가 매달려 있고, 객석 뒤 합판에는 다양한 색의 전구가 달린 줄이 늘어져 있어 마을 잔치가 벌어진 창고에 와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또 무대 위의 밴드를 본다면 바로 알아차릴 수 있겠지만, 이번 프로덕션의 음악은 오리지널 공연과는 확연히 다르다. 음악감독을 맡은 네이슨 코치는 오리지널 오케스트라의 고전적이고 풍성한 음색을 컨트리풍의 음악으로 편곡했다. 오클라호마라는 지역적 특성을 고려할 때 남부나 중서부에서 사랑받는 컨트리 음악을 선택한 것은 놀랍지 않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보통 컨트리 음악은 가수의 개인적인 후회나 다짐 혹은 ‘집’을 향한 갈망 등을 진솔하게 다루는데, 결과적으로 컨트리 음악의 사용은 이번 프로덕션의 목표 달성을 위한 효과적인 선택이었다. 여기에 컬리 역을 맡은 데이먼 다우노는 첫 곡 ‘Oh, What a Beautiful Morning’부터 진성과 가성을 넘나든다. 이를 통해 컬리가 결코 순수하지만은 않다는 것을 음악적으로 예고한다. 또 이 곡의 중간에 엘러 이모와 컬리가 합창을 하는데, 노래가 정점을 향해 갈 무렵 ‘Oh, What a Beautiful Morning’의 구절에서 함께 소리치듯 노래한다. 즉, 첫 곡부터 시골 마을의 평온함보다는 마을에 숨겨진 무언가를 관객들에게 넌지시 또는 대놓고 보여준다. 컬리가 농장 옆의 스모크 하우스(농장에서 잡은 가축들의 고기를 처리하는 공간)로 저드를 찾아가 차라리 목을 매어 죽으라는 식으로 그를 협박하고 저드의 장례식을 상상하며 노래하는 장면도 주목해야만 한다. 로리를 두고 갈등하는 컬리와 저드의 긴장감이 최고조에 달하는 이 장면은 스태프가 무대 조명을 다 끄고 이동용 적외선 카메라를 들고 나와 저드의 얼굴을 합판에 비추며 컬리에게 잔인한 이야기를 듣는 저드의 반응에 초점을 맞춘다. 이를 통해 원작에는 없지만 그의 공격성에 동기를 준다. 


 

이번 프로덕션에서 저드는 패트릭 배일이라는 호리호리한 백인 배우가 연기한다. 원작의 어두운 피부의 인물이 아닌 백인을 캐스팅함으로써 원작의 인종적인 편견을 벗어냈고, 저드를 한 명의 마을 사람 그 자체로 볼 수 있도록 했다. 패트릭 배일은 우울하고 미스터리한 저드의 어두움을 잘 표현했다. 특히 앞서 설명한 장면에서 컬리의 노래를 들을 때, 또 같이 노래할 때 미세한 얼굴 연기를 통해 저드가 느끼는 분노와 좌절, 그리고 슬픔과 우울감을 굉장히 잘 드러냈다. 이번 프로덕션의 또 다른 인상적인 장면은 ‘드림 발레’로 불리는 로리의 꿈이자 환상이다. 원작에서 로리는 저드를 향한 두려움과 컬리를 향한 호감 사이에서 마음이 복잡해지고, 알리 하킴에게서 산 물약을 먹고 잠이 든다. 이 물약은 자기가 원하는 게 무엇인지 알려주는 특별한 약인데, 로리는 꿈에서 컬리에 대한 마음을 확신하게 된다. 원작은 꿈속 발레를 통해 로리의 미래를 보여줬고, 이를 따라 많은 프로덕션은 그대로 드림 발레를 재현했다. 그러나 안무가 존 헤긴보담(John Heginbotham)이 구성하고, 흑인 배우 가브리엘 해밀턴이 로리의 분신으로 등장하는 이번 프로덕션의 드림 발레는 원작과 달리 1막 마지막이 아닌 2막 오프닝에 나온다. 해당 장면은 애시드/사이키델릭 록의 음악에 맞춘 모던 댄스로 시작부터 끝까지 혼란스러운 광기가 느껴지는 어두운 안무로 구성됐다. 무대 밖에서 비추는 스포트라이트 조명과 음악에 어우러진 로리가 순수한 농장 처녀가 아니라 내면에 불안함과 어두움을 갖고 있다는 것을 알려준다.  
 

마지막 장면은 <오클라호마!>의 이야기가 도드라진다. 컬리와 로리의 결혼식에 나타난 저드는 컬리에게 총을 선물해 준다. 그리고 로리에게 키스를 한다. 그러자 망설이는 것 같았던 컬리는 저드를 쏴 죽인다. 원작에서는 컬리의 살인이 몸싸움으로 인한 정당방위라는 무리한 주장을 했지만, 이번 프로덕션에서 이는 어불성설이 됐다. 그런데도 마을 사람들은 즉결재판을 통해 컬리가 무죄임을 선언하고 결혼식을 이어간다. 다만 원작과 다르게 이들의 축제는 조명과 음악 그리고 노래를 통해 광기 가득한 피의 축제 같은 느낌을 준다. 저드의 피가 묻은 드레스를 입은 신랑과 신부, 그리고 피 묻은 바닥에서 발을 구르며 악을 쓰듯 그들이 부르는 ‘Oh, What a Beautiful Morning’은 불편하고 섬뜩하다. 



 

이 마을의 또 다른 구성원, 관객

꺼림칙하면서도 먹먹한 기분이 드는 잘 만든 공연을 관람하고 나서 이런 마을에 살지 않아 괜찮다고 안도하기에는 무언가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다. 왜냐면 모든 관객들은 인터미션에 공짜로 제공되는 칠리를 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즉, 무대 위 테이블에서 요리되고 있던 칠리와 배우가 직접 만든 콘브레드를 같이 먹은 관객은 이상하고 어두운 마을의 일원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좋든 싫든 간에 이 마을의 문제에 대해 어느 정도의 책임 의식을 갖게 된다. 확대해 보자면, 말도 안 되는 거짓을 사실로 둔갑시키고, 저드나 알리 하킴과 같은 외부인들을 마을에 발도 붙이지 못하게 하는 이곳이 미국의 축소판이란 것이다. 물론 한국 역시 이런 소름 끼치는 마을의 또 다른 버전일지 모른다. 1943년이란 오랜 과거의 이상한 <오클라호마!>는 사실 현재에도 여전히 존재한다. 우리는 과연 자신에게 그리고 가족과 친구들에게 불러주는 피 묻은 ‘Oh, What a Beautiful Morning’에 빠져들지 않고 각자의 ‘오클라호마!’에서 잘 살아갈 수 있을까. 우리도 칠리를 먹은 값은 해야 하지 않을까. 1943년의 옛 작품으로 2018년의 우리에게 이런 질문을 던질 수 있는 이런 리바이벌 프로덕션 공연은 진정 대환영이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82호 2018년 11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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