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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컬처 | [TALK TALK] 창작산실 우수신작, 릴레이 공연 대담 [No.185]

정리 | 박보라 2019-02-12 3,613

창작산실 우수신작, 릴레이 공연 대담

 

우수 창작 레퍼토리를 발굴하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대표 지원 사업인 창작산실에 선정된 뮤지컬 세 편이 연초부터 무대에 올랐다. <마리 퀴리>, <재생불량소년>, <호프: 읽히지 않은 책과 읽히지 않은 인생>이 각각 어떤 가능성을 보여줬는지 본지 기자들이 이야기를 나눴다. 

 

※ 외부 참여자: 최영현(스테이지톡 기자) 



 

<마리 퀴리>

 

최영현_ <마리 퀴리>는 이번 창작산실 선정작 가운데 가장 아쉬웠다. 왜냐면, ‘마리 퀴리’에 정작 마리 퀴리의 이야기가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공연만 본다면 마리 퀴리가 어떤 사람이었으며, 또 어떤 사람이 되고 싶었는지 전혀 알 수 없다. 마리 퀴리보다는 오히려 라듐 걸스의 이야기가 돋보여 사회 고발극 같은 느낌을 자아냈다.

안세영_ 작품은 ‘난 퀴리 부인이 아니야. 내 이름은 마리 스클로도프스카 퀴리’라는 홍보 문구를 사용하며 주체적인 여성 과학자로서의 마리 퀴리를 조명하리라는 기대감을 심어줬다. 그런데 뚜껑을 열어보니 마리 퀴리보다 남편 피에르 퀴리의 역할이 더 크더라. 그러니 배신감을 느낄 수밖에. 개인적으로 마리 퀴리와 라듐 걸스의 일화를 연결해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려 한 시도 자체는 흥미로웠다. 하지만 공부를 위해 프랑스로 온 폴란드 출신의 가난한 여성이라는 점에서 마리의 과거를 연상시키는 직공 안느와 마리 사이에 상호작용이 부족한 점이 아쉽다. 

배경희_ 마리 퀴리가 라듐의 유해성에도 불구하고 실험을 강행하는 이유는 라듐이 암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을 치료할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부분이 부각되지 않아 마리 퀴리가 단지 과학적인 성취를 위해 라듐 걸스의 안타까운 사연을 외면하는 것처럼 보였다. 

박보라_ 마리가 라듐의 부작용을 인정하고 연구를 중단해야겠다고 결심하는 장면에서 죽은 남편이 나와 뒤에서 속삭인다. 마치 마리가 죽은 남편 때문에 마음을 바꾼 것처럼 연출된 것이다. 마리의 각성 계기가 죽은 남편의 이야기라는 점이 상당히 아쉬웠다. 하지만 보통 정의로운 주장은 남성 캐릭터가 맡는 역할인데, 마리 퀴리가 이런 주장을 한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다고 본다. 

배경희_ 요즘 공연계에도 여성 인권에 대한 목소리가 높다 보니 여성을 주인공으로 하는 작품들이 하나씩 등장하는 추세다. 하지만 아직은 과도기에 있기 때문에 흥행을 생각해야 하는 제작사 입장에서 적정선을 찾으려고 한 것 같다. 예를 들어, 공연 초반 마리가 여성 최초로 노벨상을 받는 중요한 장면에서 관객들의 관심을 남편 피에르에게 돌리지 않나. 피에르가 마리가 여성이기 때문에 수상자 명단에서 제외된 것은 부당한 일이니 공동 수상을 고집할 때, 제작사가 어떤 선택을 했는지 어느 정도 감이 오더라. 조금 더 과감한 모험을 해도 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재생불량소년>

 

배경희_ <재생불량소년>은 권투라는 스포츠와 병을 앓고 있는 십 대 소년이라는 참신한 소재가 작품에 대한 기대감을 줬다. 충분한 감동과 재미를 주기에 좋은 소재인데, 창작뮤지컬에서 거의 다뤄지지 않았으니 말이다. 하지만 공연에서 소재가 지닌 장점이 제대로 살아나지 않아 아쉬웠다.

박보라_ 주인공 반석이 어떤 트라우마를 지녔는지 보여주기 위해 죽은 친구인 승민을 등장시키는데, 그에 대한 설명이 부족하다. 등장인물들의 이야기가 유기적으로 흘러가지 않고 각각 따로 노는 느낌이었다.

안세영_ 맞다, 승민의 역할이 불분명하다. 처음에는 반석에게 트라우마를 심어준 존재로 등장하다가 나중에는 트라우마를 이겨내는 힘을 주는 존재로 변하는데, 이 과정에서 반석에게 어떤 의식의 변화가 있었는지 잘 나타나지 않는다. 

최영현_ 복싱은 곧잘 인생에 비유되는 운동이지 않나. 그래서 복싱과 삶을 연결하려고 한 것 같은데, 작품이 그 지점까지 도달하지 못한 것 같다. 아픈 친구와 우정을 쌓는 과정에서 복싱의 7전 8기 정신이 드러날 줄 알았는데, 아예 동떨어지게 설명된다. 

안시은_ 작품 초반에 두 주인공이 각각 재생불량성 빈혈과 백혈병을 앓고 있는 환자며 무균실에 있다는 상황이 전달된다. 그러나 이어지는 그들의 행동은 꽤 심각한 병을 앓고 있는 환자 같지 않다. 프로듀서가 실제 이 병을 앓았던 사람이라, 이런 부분을 깊이 있게 전할 수 있을 거란 기대감이 있었는데 이를 느낄 수 없었다.  

최영현_ 작품을 살린 것은 음악이다. 다양한 음악 장르를 상황에 맞게 삽입했는데, 특히 인상적이었던 점은 주인공들의 샤우팅을 록 음악으로 만든 것이다. ‘라면송’도 재치 있었다. 

안세영_ 개인적으로 최근 창작뮤지컬이 노래로 풀어야 할 장면을 자꾸 대사로 풀어내는 게 불만인데, 이 작품은 노래로 장면을 만들겠다는 확고한 의식을 가지고 만들어져 좋았다. 다만 초반부에 랩이 등장하는 등 너무 여러 장르의 음악이 혼재하는 점이 아쉽다. 

박보라_ 무대 동선도 상당히 아쉬웠다. 바로 눈앞에서 권투 장면이 재현되는데 솔직히 당황했다. 

최영현_ 문제는 동선에 어떤 의미가 담겨 있는지 모르겠다는 거다. 무대와 아래, 2층 깊숙한 무대까지도 배우들이 뛰어다닌다. 그런데 그 의도가 무엇인지 제대로 전달되지 않고 배우들과 관객들 모두 불편하게 했다. 

안세영_ 혈액질환 환자의 이야기를 다루다 보니 다소 공익 광고처럼 느껴지는 면이 없지 않다. 그럼에도 창작뮤지컬의 인기 코드를 반복하지 않고 자기만의 뚜렷한 주제 의식을 가지고 있다는 점은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안무로 복싱을 활용한 점도 독특하고 재미있었다.

최영현_ 작품이 지닌 문제점이 명확해서 수정 과정을 거치면 좋은 작품이 될 거라 생각한다. 배우들의 에너지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지는 작품이 있는데, <재생불량소년>이 바로 그렇다. 

안시은_ 스포츠는 뮤지컬로 만들기 굉장히 어려운 장르이고 심지어는 성공한 적도 별로 없다. 이런 시도 자체를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호프: 읽히지 않은 책과 읽히지 않은 인생>

 

배경희_ <호프: 읽히지 않은 책과 읽히지 않은 인생>(이하 <호프>) 역시 <마리 퀴리>와 마찬가지로 현재의 젊은 여성 관객이 기대할 만한 작품이 아니었나 싶다. 여든에 가까운 여성을 주인공으로 하는 흔하지 않은 선택을 했는데, 이러한 선택이 시의성에 따른 트렌드 소비가 아니라는 점이 좋았다. 또한 과거와 현재의 이야기가 물 흐르듯 교차된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남다른 완성도에 놀랐다. <호프>는 창작산실 공연 때 이미 정식 공연화가 결정된 상태였는데, 제작사의 작품 개발 의지가 완성도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 보여주는 좋은 사례가 아니었나 싶다.

안시은_ 창작산실 첫 공연부터 이 정도로 준비된 공연은 오랜만이다. 다만 호프의 인생과 역사적 사건이 맞물리며 극이 진행되는데, 호프의 인생에 집중하다 보니 벌어진 일들이 호프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보이지 않은 점은 아쉽다.

박보라_ 30년 이어진 재판의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안무나 노래가 밝은 분위기다. 여기서 오는 전체적인 작품의 분위기가 정말 좋았다. 메시지를 무겁게 전달하면서도 밝은 분위기를 낼 수 있다는 것에 신선한 충격을 느꼈다. 단, 앙상블과 캐릭터들이 뒤섞여서 치고 빠진다는 인상이 강해서 초반부터 상당히 집중해야만 한다. 

최영현_ 극작과 음악이 이렇게 잘 결합된 창작뮤지컬이 정말 드문데, 신인 창작들이 이런 시너지를 보여줬다는 점이 놀랍다. 문제점을 꼽자면 작품 마지막 호프가 원고지가 아니라 자신을 선택할 때 논리적인 설득이 안 된다. 원고지를 갖고 있기 위해 오랜 시간 애쓴 호프가 갑자기 마음을 바꾸게 된 이유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다. 

호프 개인 의지의 변화라기보다는 K에게 설득을 당한 느낌이었는데, 그럼 이전에는 왜 마음을 바꾸지 않았던 거지 하는 의문이 드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래와 가사가 주는 뭉클함 때문에 설득당하는 부분이 있었다. 

안세영_ 독특한 소재에서 진지한 주제를 뽑아냈다는 점을 높이 산다. 수많은 등장인물을 낭비없이 움직이게 한 극작술도 좋았다. 등장인물 각자의 에피소드를 무리 없이 풀어내면서도 그 중심에 서 있는 주인공 호프의 서사를 놓치지 않는다. 다만 중반부까지 논리적으로 잘 전개되던 이야기가 후반부에서 갑작스럽고 엉성하게 마무리되는 점은 아쉽다. 창작뮤지컬에서는 종종 이야기를 어떻게 매듭지어야 할지 모를 때 비현실적인 존재를 내세워 서사의 구멍을 메우곤 하는데, 이 작품에서 K의 쓰임새 역시 크게 다르지 않아 실망스러웠다.

최영현_ K는 이번 공연에서는 남자 배우가 연기했지만, 여성이나 아이여도 상관없을 것 같다. 앞서 잠깐 언급했지만, 통일성 있는 음악이 작품의 분위기와 굉장히 잘 맞아떨어졌다. <호프>처럼 음악과 대사, 이야기가 어우러진 창작뮤지컬을 만나기 쉽지 않다는 점에서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85호 2019년 2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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