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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CULTURE INTERVIEW] <자기 앞의 생> 오정택, 따뜻하게, 우직하게 [No.185]

글 |배경희 사진 |배임석 2019-02-24 3,981

<자기 앞의 생> 오정택, 따뜻하게, 우직하게 



소설가 김연수의 말을 빌리자면, 누군가와 함께 시간을 보내고 나면 그 사람으로 인해 우리 삶은 어쩔 수 없이 아름답게 회상된다고 한다. 이런 인생 그냥 죽어버리고 싶다고 생각하는 절망의 시간에도 누군가와 함께한 순간들이 멀리 있는 별들처럼 반짝이므로. 그리고 이 반짝이는 말은 프랑스 소설가 로맹 가리의 소설 『자기 앞의 생』에 대한 이야기다. 우리가 서로 존재하는 이유에 대해 사랑스럽게 알려주는 작품. 이를 무대로 옮긴 동명의 연극에 이름을 올린 오정택은 우리와 처음 만날 이 작품을 기대하게 하는 이유일 것이다. 

자연스럽게 생겨난 변화들
지난해 초 <톡톡>을 끝낸 후 거의 1년 만이에요. 그동안 어떻게 지냈어요?
맞아요. 1년 동안 공연을 안 했어요, 작년에 회사(매니지먼트)에 들어가게 됐는데, 회사랑 약속한 게 있어서 다른 매체 오디션을 열심히 보러 다녔거든요. 그런데 다 안 됐죠. (웃음) 사실 제안받았던 공연 중에 대본이 딱 마음에 드는 것도 없었고요. 그래서 쉬는 동안 주로 집안일 하고 가끔 아르바이트하고, 그렇게 평범하게 지낸 것 같아요. 

원래 예전부터 집안일을 잘하는 편이었어요? 
아뇨, 결혼 전에 저한테 집이란 잠만 자는 곳이었어요. 들어가면 바로 잠들어서 눈뜨면 나오는, 그런 곳. 그런데 와이프가 정말 깔끔한 성격이라 바닥에 머리카락 하나 떨어져 있는 걸 못 봐요. 그래서 쉬는 동안 집안일에 매진하게 됐죠. 매일 아침 일어나서 이부자리를 정리하는 게 아직도 좀 낯설어요. (웃음)   

연말연시는 많은 계획과 다짐을 세우게 되는 시즌이잖아요. 요즘 어떤 생각을 많이 했어요?
제가 원래 자신감이 되게 많은 편이에요. 남들은 잘 모르는데 자신감이 심하게 많아요. 근데 이번에 쉬는 동안 자존감이 바닥을 쳤다가 다시 나를 위로하며 위로 올라왔다가… 혼자 롤러코스터를 좀 많이 탔죠. (웃음) 운동도 하고, 책도 읽고, 영화도 보고, 색칠 공부하는 것도 하고. 마음을 다잡으려고 별의별 걸 다 한 것 같아요. 그리고 그 결과 제가 얻은 결론은 사람은 살던 대로 살아야 한다는 거예요. 이번에 연습을 시작하면서 ‘맞아, 난 원래 이렇게 살던 사람이잖아. 이렇게 사는 게 맞지’ 하는 기분이 확 들더라고요. 이삼십 대를 쭉 그렇게 살아와서 그런가 봐요.

스스로 용기를 북돋는 방법은 사람마다 다를 텐데, 오정택만의 방법이 있다면 뭔가요?
예전에는 제 자신을 엄청 세뇌했어요. 제가 저한테 넌 잘났어, 할 수 있어, 이런 식으로요. (웃음) 그런데 이제는 아내가 옆에서 많은 응원을 해줘서 그게 큰 위안이 되더라고요. 장인어른하고 장모님께서도 많이 격려해 주시고요. 남들보다 조금 천천히 가도 된다고 해주시는데 참 감사하죠. 사실 처음에는 좀 부담이 됐는데, 이제는 정말 든든한 가족같이 느껴져서 마음이 편해요.

<자기 앞의 생>은 어떻게 참여하게 된 작품이에요?
작년 11월인가, 국립극단에서 먼저 제안을 해주셨어요. 대본을 보고 나서 회사에 이거 하고 싶다고 졸랐죠. 제 기준에서 좋은 대본은 무조건 잘 읽히는 대본이에요. 제가 긴 글을 그렇게 잘 읽지 못해서요. 근데 <자기 앞의 생>은 대본이 정말 좋았어요. 원작 소설이 있는지도 모르고 봤는데 너무 재밌더라고요. 하나 걱정됐던 건, 제가 맡아야 하는 모모가 너무 비범한 아이라는 거죠. 예전에 청소년극을 몇 번 해본 경험이 있는데, 그땐 대본을 읽으면서 어느 정도 감이 왔거든요. 근데 이번에는 ‘얜 뭐지?’ 이 생각밖에 안 들었어요. 이건 모 아니면 도겠다 싶었죠.

과거에 청소년극을 하면서 새롭게 느낀 것들이 있을까요? 일반 공연과는 아무래도 객석 분위기가 좀 다르기 마련이잖아요.
제가 제일 좋아하는 청소년극은 <타조 소년들>하고 <노란 달>이에요. 둘 다 국립극단 작품들인데, 국립극단에서 청소년극을 할 때의 좋은 점은 공연 준비 과정에서 일반 청소년들하고 소통할 수 있는 기회가 마련된다는 거예요. 이 이야기에 공감되니? 진짜 이런 말을 쓰니? 등등 청소년들한테 작품에 대한 전반적인 의견을 직접 들을 수 있어요. 근데 생각보다 그 피드백들이 꽤 정확하더라고요. 제가 본 어떤 관객 후기보다 정확했어요. 심지어 되게 구체적이고요. 그리고 제가 무대에서 몇 발자국만 움직여도 학생들이 다 자기 상상으로 그 의미를 부여해서 공연 때도 굉장히 집중하게 돼요. 이 작품을 위해 쏟았던 노력들이 애들한테 통했다는 걸 느낄 때 희열이 되게 크죠. <타조 소년들>이랑 <노란 달> 둘 다 제가 인생에서 꼽는 작품들인데, 작업 과정도 그렇고, 결과물도 특별했다고 생각해요.

학생 관객들을 보면서 고등학교 때 얼결에 연극반에 들어갔던 때가 생각났겠어요. 
글쎄, 연극반은 단순히 가위바위보에 져서 들어갔던 거라… 원래 배드민턴 반에 들어가고 싶었거든요. (웃음) 근데 만약 배우가 안 돼서 일반 직장을 다녔으면 어땠을까 생각해 보면 운이 좋았던 것 같아요. 성격이 좀 많이 즉흥적인 편이라 회사 생활을 잘할 수 있었을지 모르겠거든요. 그리고 또…. 인터뷰를 하면 기자분들한테 참 죄송한 게, 재미있는 이야기를 해드려야 하는데 제가 기억력이 안 좋아요. 지나간 일은 쉽게 까먹는 성격이라서요. 그래서 스트레스는 덜 받는 편인데 어떤 때는 다른 사람들을 불편하게 하는 것 같아요. 이런 인터뷰 때도 그렇고, 와이프도 제 이런 점을 별로 안 좋아해요. (웃음) 




일상을 반짝이게 하는 이야기
그럼 현재 이야기로 돌아와서, 대본 리딩을 한 소감은 어때요?
대본을 읽으면 읽을수록 하…. 머리가 깨질 것 같아요. 양희경 선배님도 그러시는데 이걸 어떻게 손대야 할지 모르시겠대요. 물론, 제가 보기엔 선배님은 이미 너무 잘하시지만요. 아마 작품에 대한 고민이 저와는 비교할 수 없이 깊고 넓으신 것 같아요. 전 작품을 할 때 보통 내가 맡은 캐릭터를 통해 무엇을 말하고 싶은지, 그리고 오정택으로서 전하고 싶은 건 뭔지 이렇게 두 가지 의미를 찾으려고 하거든요. 안 그러면 제 기준에서는 항상 길을 잃는 기분이라서요. 그런데 이 작품에서는 그걸 아직 못 찾았어요. 지금 당장은 기대 반, 걱정 반의 마음이지만, 앞으로 계속 기대 쪽으로 퍼센트를 늘려가야겠죠. 

원작 소설은 삶을 따뜻하게 그린다는 점에서 큰 사랑을 받았는데, 이 작품의 가장 큰 가치는 뭐라고 생각해요?
모모와 로자의 관계요. 서로 의지해 살아가는 두 사람을 보다 보면 나를 바라봐 주는 누군가가 옆에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인생이 가치를 갖는다는 걸 느끼게 되거든요. 개인적으로 저는 사회 주변 자리에서 살아가는 모모나 로자를 가엽게 생각하진 않아요. 그런데 두 사람을 볼 때 마음이 좀 쓰리고 아픈 지점이 둘 다 ‘아닌 척, 안 그런 척’하려는 게 많아서 그런 것 같아요. 사실 둘은 서로에게 거의 전부거든요. 그런데 겉으로는 그런 내색을 잘 안 하죠. 모모와 로자의 관계성만 잘 표현된다면 관객들에게 꽤 큰 감동을 줄 수 있을 것 같아요.

모모는 어린애가 어떻게 이렇게 현명할까 싶은 말을 잘하잖아요. 그중 가장 놀라웠던 대사가 있을까요? 
안 그래도 이 질문을 하실 것 같아서 오는 길에 생각해 봤어요. 근데 좋은 대사가 정말 너무 많아요. 특히 1장의 대화들이 너무 좋아요. 딱 하나만 골라야 한다면 원작 소설에서 제일 유명한 구절을 말해야 할 것 같아요. ‘사람은 사랑할 누군가가 없이는 살 수 없대요’ 이 말이요. 공연에서 모모가 이 대사를 할 때는 원작 소설에서 쓰일 때와는 그 느낌이 굉장히 다르거든요. 그 뉘앙스를 잘 전하는 게 중요할 것 같아요. 그래서 요즘 열 살 꼬마 애 말투를 어떻게 표현할지 많이 고민하고 있어요. <뽀뽀뽀> 같은 옛날 어린이 프로그램도 막 찾아보고. 아, 그렇다고 어린애 흉내를 내려는 건 아니에요. 그렇게 하면 너무 거부감이 들 테니까요. (웃음)

등장인물은 네 명이지만, 거의 2인극처럼 진행되는 작품이라 부담이 있을 것 같아요. 원 캐스트로 한 달 가까이 공연하는 것도 꽤 오랜만이잖아요. 
제 솔직한 생각은 공연은 이렇게 원 캐스트로 해야 하는 것 같아요. 한 역할에 배우가 많아야 더블 캐스트 정도가 적당하죠. 아니면 아예 팀을 짜서 팀별로 공연하거나요. 비난처럼 들리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일주일에 한두 번 같이 공연하면 서로 좋은 호흡을 보여주기란 너무 어렵거든요. 그래서 이렇게 원 캐스트로 공연할 수 있는 게 행운처럼 느껴져요. 제가 볼 때 양희경 선배님하고 이수미 선배님은 결이 많이 다르세요. 각자 다른 결의 따뜻함을 지녔다고 해야 하나. 실제 성격도 그렇고, 연기 스타일도 무척 다르시죠. 저한테는 그래서 더 좋은 경험이 될 것 같아요.  

평소에 작업할 때 동료 배우들하고 많은 이야기를 나누는 편이에요?
아뇨, 잘 안 해요. 오히려 지금보다 어렸을 때는 많이 이야기했던 것 같은데, 지금 생각하면 너무 창피해요. 제 생각은 말 그대로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이니까 그게 상대에게 득이 되지 않는 것 같더라고요. 또 제가 말투도 그렇고, 말을 잘하는 편이 아니라 전혀 긍정적인 영향이 안 됐던 것 같아요. (웃음) 지금은 상대의 이야기를 많이 들으려고 노력하는 편이에요. 상대가 저한테 더 많은 이야기를 해주길 바라죠.  

그럼 공연을 하면서 어떤 때 가장 즐거워요?
완전 결과 지향적인 말이긴 한데, 저는 박수 받을 때가 제일 좋아요. 공연이 끝나고 커튼콜 인사를 할 때 관객들 박수 소리를 들으면 이게 진짜인지 아닌지 확 느껴지거든요. 근데 스스로 오늘 잘했다고 느꼈을 때 좋은 박수 소리가 나오냐면 꼭 그렇지도 않아서, 한 해 한 해 지날수록 고개가 점점 숙여질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웃음) 어쨌든 제가 공연하면서 가장 행복할 때는 좋은 박수를 받을 때예요. 그때 제일 큰 희열을 느끼죠. 

작품을 할 때마다 배우로서 기대하는 바가 있을 테죠? 이번 공연에서 가장 기대하는 건 뭐예요?
제가 공연하면서 바라는 건 하나예요. 공연을 보는 사람들이 지금보다 더 많아졌으면 좋겠어요. 어떤 배우가 너무 멋있어서 또는 너무 아름다워서, 어떤 이유에서든 또 경로를 통해서든 한 명이라도 더 많은 사람들이 공연의 맛을 알게 됐으면 좋겠어요. 특히 <자기 앞의 생>은 모두가 봐도 좋을 만한 작품이거든요. 가족끼리, 연인끼리, 친구들끼리, 누가 봐도 공감할 수 있는 삶에 대한 이야기니까요. 하나 걱정되는 건, 원작 소설이 워낙 사랑받았던 터라 비교가 되지 않을까 싶은데, 소설이 좋아서 연극도 탄생할 수 있었던 거니까 그런 부담을 떨치려고요. 그래서 결론은, 세상 모든 사람들이 와주시길 기대하겠습니다. (웃음)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85호 2019년 2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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