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리 포핀스>, 우산 타고 내려온 이야기
하늘에서 우산을 타고 내려온 보모 메리 포핀스! 당당하면서도 자기 주장이 확실하고 심지어 본업까지 완벽하게 해내는 메리 포핀스는 오랜 시간에 걸쳐 세계적인 사랑을 받았다. 특히 한 손엔 우산을, 다른 손엔 가방을 쥐고 하늘에서 내려오는 메리 포핀스의 모습은 5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여전히 영화나 드라마에서 다양하게 패러디되고 있다. 소설에서 뮤지컬 영화로, 다시 뮤지컬 무대로, 각각 다른 이야기가 더해진 메리 포핀스의 이야기를 소개한다.
아이들을 홀린 ‘밀당’
영국의 여성 아동 문학가 파멜라 런던 트래버스가 발표한 『메리 포핀스』 시리즈는 1934년부터 1988년까지 여덟 권으로 출간됐다. 작품은 조지 5세 시절 영국 런던을 배경으로, 우산을 타고 날아온 보모 메리 포핀스가 뱅크스 가문의 아이들을 돌보면서 벌어지는 소동을 그린다. 트래버스는 어릴 때 자신을 돌봐준 보모를 모티프로 메리 포핀스라는 캐릭터를 만들었는데, 그녀의 보모는 외출했다 돌아온 후에 재미있는 이야기를 해주곤 했단다. 그런데 항상 중요한 부분에서 ‘아이들은 들어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라는 이유로 이야기를 끊고 자리에서 일어났다고. 이런 보모의 모습을 메리 포핀스에게도 그대로 투영했는데, 그녀는 마무리를 짓지 않은 채로 이야기를 끝내며 아이들과 ‘밀당’을 이어간다.
『메리 포핀스』를 원작으로 1964년 개봉한 영화 <메리 포핀스>는 초대형 프로젝트로 주목받았다. 실사 영화와 애니메이션의 결합은 최신 특수 효과를 도입한 혁신적인 시도로 평가되며 현대 특수 효과의 모체가 됐다. 시대를 앞서간 당차고 강한 여성 캐릭터인 메리 포핀스는 대중의 열광을 이끌어냈고, 활기차고 재치 넘치는 음악은 많은 사랑을 받았다. <메리 포핀스>를 말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리처드 M. 셔먼과 로버트 M. 셔먼 형제의 곡 ‘침침체리’로, 경쾌한 왈츠풍의 노래는 지금까지도 다양한 작품에서도 오마주될 정도다. 또 메리 포핀스가 외우는 독특한 주문을 제목으로 한 ‘수퍼칼리프래질리스틱엑스피알리도셔스’는 아름답고 흥겨운 선율로 아카데미 주제가상을 받았다.
유명한 영화엔 캐스팅 비화가 있기 마련인데, <메리 포핀스>에도 빼놓을 수 없는 이야기가 있다. 뮤지컬 <마이 페어 레이디>로 브로드웨이에서 뮤지컬배우로 자리 잡은 줄리 앤드루스가 주인공이다. <마이 페어 레이디>의 영화 제작사 워너브라더스픽쳐스는 그녀의 낮은 명성을 이유로 영화 캐스팅을 거절한다. 그러나 이것이 줄리 앤드루스의 터닝 포인트가 될 줄이야. 그녀는 <마이 페어 레이디> 대신 <메리 포핀스>의 주인공 메리 포핀스로 캐스팅됐고, 탁월한 노래와 연기 실력을 발휘했다. <메리 포핀스>의 인기를 말할 때 런던 올림픽도 빼놓을 수 없다. 영화감독 대니 보일이 연출한 2012년 영국 런던 올림픽 개막식에서는 <해리 포터> 시리즈의 볼드 모트, <피터 팬>의 후크선장 같은 악당들이 연이어 출연했는데, 마지막엔 메리 포핀스가 등장해 여러 악당을 시원하게 물리쳤다.
우여곡절 끝에 무대로
영화가 성공을 거뒀음에도 메리 포핀스의 이야기가 무대로 탄생하기까진 긴 시간이 걸렸다. 뮤지컬 <메리 포핀스>는 영국을 대표하는 뮤지컬 프로듀서 캐머런 매킨토시와 디즈니가 공동으로 제작했다. 매킨토시는 영화에는 담기지 않은 소설 내용에 주목했고, 공연 판권을 얻기 위해 원작자 트래버스를 설득했다. 앞서 디즈니 영화 버전 <메리 포핀스>에 불만이 많았던 트래버스는 쉽게 무대화를 허락하지 않았다. 매킨토시는 수차례에 걸쳐 그녀에게 소설의 주요 스토리와 영화의 노래를 새롭게 구성한 작품을 만들겠다고 호소했다고. 우여곡절 끝에 매킨토시는 『메리 포핀스』의 공연 판권을 손에 넣었다. 그러나 매킨토시만 <메리 포핀스>의 무대화에 욕심을 낸 게 아니었다. 디즈니 또한 <메리 포핀스>를 뮤지컬로 제작하고자 한 것. 결국 공연 판권을 가진 매킨토시와 영화 판권을 가진 디즈니는 <메리 포핀스>를 두고 분쟁을 이어갔는데, 마침내 디즈니와 매킨토시가 함께 제작하는 것으로 해피엔딩을 맞았다.
영화가 실사 영화와 애니메이션의 결합으로 새로운 매력을 보여줬다면, 뮤지컬은 밥 크롤리의 마술 같은 무대와 매튜 본의 창의적인 안무로 주목받았다. 인형의 집을 연상시키는 뱅크스네 거대한 이층집은 순식간에 거실, 다락방, 부엌, 굴뚝으로 변하고, 작은 가방 안에서 얇은 이불을 꺼내면 침대로 바뀌거나 난장판이 된 부엌이 깨끗하게 지워진다. 굴뚝 청소부가 거꾸로 매달려 탭댄스를 추는 장면이나 빛나는 별 사이로 우산을 펼친 채 하늘로 올라가는 메리 포핀스의 모습은 대표 장면으로 꼽힌다. 셔먼 형제의 영화 삽입곡 외에도 작곡가 조지 스틸스와 작사가 앤서니 드류는 뮤지컬을 위해 여섯 곡을 새로 창작해 풍부한 음악을 강조했다. 하지만 아쉽게도 뱅크스 부인의 여성 참정권을 얻기 위한 노력은 무대에서 볼 수 없게 됐다. 대신 무뚝뚝했던 뱅크스가 알고 보니 어린 시절 독재자 스타일의 유모에게 학대를 받았다는 설정이 더해졌다. 또 뱅크스가 은행에서 해고 위기에 처해진 것은 아들 마이클의 2펜스 소동 때문이 아니라, ‘좋은 사람과 좋은 생각 중 무엇이 더 중요하냐’는 딸 제인의 말을 듣고 전과 다른 투자를 결정했기 때문인 것으로 바뀌었다.
다시 시작된 과거의 영광
영화 <메리 포핀스>는 54년이 지난 2019년에야 속편을 공개했다. 소설 『메리 포핀스』의 후속 시리즈를 바탕으로, 전편으로부터 25년 후가 배경이다. 체트리가 17번지에 살고 있는 마이클과 세 아이들에게 보모 메리 포핀스가 다시 돌아오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하늘에서 내려온 메리 포핀스는 아내이자 엄마를 잃고 집까지 빼앗길 위기에 처한 마이클의 가족에게 나타나, 과거와 마찬가지로 마법을 부려 활기를 불어넣는다. 이번 영화 또한 디즈니 특유의 뮤지컬 시퀀스와 애니메이션의 컬래버레이션를 엿볼 수 있다. 현재 거의 찾아볼 수 없는 1960년대 유행하던 셀 애니메이션 기법으로 도자기 왕국을 고풍스럽게 되살렸고, 화려한 CG 작업을 통해 수중 왕국을 풍성하게 구현했다.
무엇보다 클래식 뮤지컬 영화로 대표될 수 있는 전편의 분위기에 독창적인 스토리와 새로운 음악을 버무리는 것이 <메리 포핀스 리턴즈>의 가장 큰 고민이었다. 당연히 새로운 이야기의 감정을 끌어올릴 수 있는 음악과 뮤지컬 시퀀스를 필요로 했다.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 <시스터 액트> 시리즈, <플립> 등에 참여한 마크 샤이먼이 작곡과 작사를 맡았고, 스콧 위트먼이 공동 작사를 맡았다. 두 사람은 이번 <메리 포핀스 리턴즈>를 위해 전편 영화의 음악을 기반으로 9개의 새로운 곡을 만들었다. 음악의 컨셉은 ‘메리 포핀스의 세계’로, 발랄한 위트를 더한 아름다운 멜로디에 시를 연상시키는 서정적인 가사가 특징이다. 또 제작진은 4개월 정도 뮤지컬 시퀀스 촬영 리허설 기간을 따로 갖기도 했다고. <메리 포핀스 리턴즈>에서 가장 눈여겨볼 장면을 꼽자면, 길을 잃은 메리 포핀스와 뱅크스 아이들에게 점등원들이 빛을 밝혀 방향을 알려주는 ‘Trip a Little Light Fantastic’다. 약 8분 길이의 곡은 영화 속에서 가장 규모가 큰 뮤지컬 시퀀스로, 가로등, 자전거, 사다리 등 다양한 도구를 활용하고 댄서들의 자전거 스턴트까지 더해져 큰 인상을 남긴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86호 2019년 3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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