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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처 | [SPECIAL] 뮤지컬배우 황주민, 새로운 곳에서 찾은 꿈 [No.188]

글 |배경희 사진제공 |황주민 2019-05-31 5,999

브로드웨이의 한국인들 

 

국가와 국적의 전통적인 의미가 조금씩 희미해지고 있는 21세기 오늘. 놀랍게도 K팝이 빌보드 차트에 오르내리고 있는 것처럼 K뮤지컬도 브로드웨이에 화려하게 입성할 수 있을까. 새로운 기회를 찾아 더 넓고 큰 곳 브로드웨이로 떠난 한국인들, 낯선 땅에서 작은 기적을 만들어가고 있는 그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뮤지컬배우 황주민, 새로운 곳에서 찾은 꿈

 

현재 브로드웨이에서 공연 중인 <프롬>에 유일한 동양인 캐스트로 이름을 올린 황주민. 그의 이런 성과가 더욱 놀라운 것은 그가 국내에서 활동하다 미국으로 건너가 길을 개척한 한국 국적을 가진 배우라는 사실 때문이다. 지난 2004년 넌버벌 퍼포먼스 <사랑하면 춤을 춰라>로 데뷔한 황주민은 2013년 미국으로 향하기까지 <브레이크 아웃>, <젊음의 행진>, <명성황후> 등에 출연한 바 있다. 그가 밝힌 앞으로의 계획은 다른 장르로 활동 영역을 넓혀 동양인 배우들에게 더욱 많은 기회가 갈 수 있도록 하는 것! 황주민이 펼칠 모험을 응원해 보자. 

 

미국으로 건너가 활동하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나요? 미국에서 배우로 활동하기 위해 어떤 사전 준비를 했는지 궁금합니다. 처음에 미국 유학을 결심하게 된 데는 교수님의 영향이 컸어요. 당시 전 명지대 콘서바토리 성악과를 다니면서 앙상블로 활동하고 있었는데, 활동에 한계를 느낄 즈음 장숙희 지도 교수님께서 미국으로 가서 브로드웨이에 도전해 보지 않겠냐고 하셨거든요. 스물아홉 살이라는 적지 않은 나이에 영어도 할 줄 몰랐지만, 새로운 도전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어 3개월 만에 유학길에 올랐죠. 다행히 저희 학교가 위스콘신주립대와 자매결연을 맺고 있어서 학교에 들어가 영어 코스를 이수하는 방식으로 편입이 가능했어요. 2013년 위스콘신주립대에 편입해 2015년에 졸업한 후 뉴욕으로 와서 오디션을 보기 시작했고, 처음 여섯 달 동안 오디션만 거의 300번 가까이 본 것 같아요. 그런데 포기하지 않고 아르바이트를 하며 1년 정도 꾸준히 오디션을 보다 보니 조금씩 기회를 얻을 수 있었어요.
 

한국 국적을 가진 배우로서 뉴욕에서 활동하기에 가장 힘들었던 점은 무엇이었나요. 유학생으로선 비자 해결이 가장 힘든 문제였어요. 어렵게 예술인 비자를 얻어도 인종의 벽이라는 문제가 존재했고요. <미스 사이공>과 <왕과 나> 같은 동양을 배경으로 하는 작품이 아닌 이상 브로드웨이 공연에 동양인이 캐스팅되는 경우는 굉장히 드물거든요. 한 팀에 배우가 서른 명이라면 그 가운데 동양인은 한 명이 될까 말까 하죠. 하지만 최근 영화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이 큰 성공을 거두면서 동양에 대한 인식이 많이 달라지고 있고, 실제 브로드웨이 내에서도 인종의 벽을 뛰어넘는 배우들이 많아지고 있어요. 이러한 움직임에 저도 작은 힘을 보탤 수 있어서 행복합니다. 
 

미국에서의 첫 정식 커리어가 된 작품 <인 더 하이츠>는 어떻게 얻게 된 기회인가요. 제가 참여한 <인 더 하이츠>는 오리지널 브로드웨이 프로덕션에서 라틴 댄스 조안무였던 루이스 살가도가 연출했던 뉴저지 지역 프로덕션이에요. 한국으로 치면 지방 공연인 셈이죠. 사실 처음 합격 연락을 받았을 때는 <그린카드> 오프브로드웨이 공연 이후 당장 월세를 벌기 위해 식당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출연을 고사했습니다. 그런데 루이스가 세 번이나 러브콜을 보내서 결국 마음을 돌리게 됐죠. 그래피티 피트 역을 맡은 동양인은 제가 처음이었기 때문에 이 이후에 끊임없이 작품을 할 수 있었어요. 루이스에게 정말 감사합니다. 
 

뉴욕 활동의 시작점이 된 에는 어떻게 참여하게 됐나요?  <케이팝(KPOP)>은 뉴욕대 뮤지컬 작곡과의 한국 유학생이었던 헬렌 박과 맥스 버논이 학교 프로젝트로 시작한 작품이에요. 이후 무대에 오르기까지 뉴욕에서 실험극으로 유명한 극장 ‘Ars Nova’의 프로듀서와 함께 4년간의 워크숍을 거쳤고요. 참고로, Ars Nova는 린 마누엘 미란다와 <나타샤, 피에르, 그리고 1812년의 대혜성>을 발굴해 크게 유명해졌는데, 차기작으로 <케이팝(KPOP)>을 올린다는 기사가 나자마자 모든 티켓이 매진될 정도로 많은 주목을 받는 극장이에요. 제가 <케이팝(KPOP)> 소식을 들었던 때가 뉴욕에 온 지 2년째 되는 해였는데, 미국에 영어와 한국어를 동시에 할 수 있는 배우가 많지 않다 보니 운 좋게 오디션에 합격할 수 있었죠. 오프브로드웨이 공연이었던 이 작품을 통해 배우 조합에 가입되면서 많은 브로드웨이 공연 오디션을 볼 수 있었고, 그 결과 <프롬>에 합류하게 돼 브로드웨이 무대라는 제 꿈을 이루게 됐어요. 

배우 조합에 속해 있는 경우와 아닌 경우 활동에 어떠한 차이가 있나요. 브로드웨이 오디션의 경우, 조합법에 따라 오디션이 치러지기 때문에 조합에 가입된 배우들은 온라인에서 오디션 번호를 받을 수 있어요. 하지만 비조합 배우들은 아침 일찍부터 오디션장에 가서 줄을 서서 기다려야 하죠. 오디션 자체도 조합 배우들의 오디션이 다 끝난 후에야 도착 순서대로 볼 수 있고요. 다시 말해, 오디션 시간 내에 조합 배우들의 오디션이 끝나지 않으면 비조합 배우들은 오디션을 볼 기회조차 얻을 수 없어요. 저도 배우 조합 소속이 아니었을 때 <미스 사이공> 오디션을 보러 간 적이 있는데, 새벽부터 현장에 가서 일곱 번째 순서로 대기했지만 그냥 돌아와야 했던 기억이 있죠. 또 배우 조합에서 인정하는 브로드웨이 리그 프로덕션의 경우, 2019년 현재 앙상블 최저 주급이 2,095달러(약 238만 원)로 정해져 있어요. 이는 제가 한국에서 앙상블로 받았던 개런티와 다섯 배가량의 차이가 나는 액수죠. 이외에도 공연 중 배우들이 처하는 위험으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는 다양한 장치를 제공해 준다는 것이 배우 조합의 가장 큰 장점이에요. 


 

2018년 가을, 브로드웨이에서 개막한 <프롬>에 참여하면서 얻은 가장 값진 경험은 무엇인가요. <프롬>은 배우 조합 오디션의 한 종류라고 할 수 있는 ECC(Equity Chorus Call)를 통해 세 차례의 오디션을 거친 후 최종 합격 통보를 받았어요. 첫 공연을 마친 후에도 꿈처럼 느껴질 정도로 실감이 안 났는데, 한국인으로서 당당히 미국인들과 한 무대에 선다는 점이 너무 자랑스럽더라고요. 한국 국적을 가진 한국인이 브로드웨이 공연의 오리지널 캐스트가 된 것은 1976년 <태평양 서곡>에 출연하신 오순택 선생님 이후에 제가 두 번째거든요. 요즘 공연을 마치고 나오는 길에 관객들에게 가장 많이 듣는 인사가 동양인을 대표해 무대에 서줘서 감사하다는 거예요. 그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저 역시 매번 가슴이 벅차오르죠. 브로드웨이 오리지널 캐스트 레코딩 앨범에 제 목소리가 영원히 남을 것이라는 점, 브로드웨이 데이터베이스 사이트인 IBDB에 제 이름 ‘Joomin Hwang’이 당당히 올라갔다는 점, 그리고 오는 6월 9일 열리는 토니 어워즈 무대에 서게 됐다는 점, <프롬>이 제게 준 선물은 영원히 잊지 못할 거예요. 이 글을 쓰는 이 순간에도 아직도 모든 게 꿈만 같아요. 
 

뉴욕에 진출하려는 배우 또는 창작자에게 도움이 될 만한 커뮤니티를 소개해 준다면? 뮤지컬 관련 오디션 정보는 플레이빌(Playbill.com)에 다 올라와요. 웬만한 브로드웨이 뮤지컬 영상은 브로드웨이닷컴(Broadway.com)의 유튜브 채널에서 볼 수 있고요. 최신 브로드웨이 소식을 빠르게 얻고 싶다면 브로드웨이 브리핑(Broadwaybriefing.com)에서 무료 메일링 서비스 신청을 추천합니다. 그리고 제가 브로드웨이를 꿈꾸는 학생들과 정보를 공유하기 위해 만든 유튜브 채널 ‘브로드웨이드림’에 가시면 오디션 보는 법 같은 브로드웨이 공연에 대한 정보를 확인하실 수 있답니다. 
 

브로드웨이 무대를 꿈꾸는 한국의 학생들에게 꼭 해주고 싶은 말이 있나요? 브로드웨이 진출이 목표라면 일단 영어 공부를 정말 열심히 해야 합니다! 하지만 제일 중요한 건 진실한 마음과 강한 지구력이에요. 어떤 꿈을 꾸든 그것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노력하면 결국에는 이룰 수 있는 것 같거든요. 사실 저도 주변 사람들에게 브로드웨이에 도전할 거라 이야기했을 때 대부분 부정적인 반응을 먼저 보였어요. 하지만 제 부족한 점을 채우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서 11년 만에 ‘브로드웨이 무대에 서겠다’는 목표를 이뤘죠. 무엇이든 크게 꿈꾸고, 그 꿈을 향해 끝없이 노력하세요. 대한민국에서 꿈꾸는 모든 분들을 응원합니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88호 2019년 5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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