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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처 | [SPECIAL] 뮤지컬배우 임규진, 노력의 결과 [No.188]

글 |박보라 사진제공 |임규진 2019-05-31 4,644

브로드웨이의 한국인들 

 

국가와 국적의 전통적인 의미가 조금씩 희미해지고 있는 21세기 오늘. 놀랍게도 K팝이 빌보드 차트에 오르내리고 있는 것처럼 K뮤지컬도 브로드웨이에 화려하게 입성할 수 있을까. 새로운 기회를 찾아 더 넓고 큰 곳 브로드웨이로 떠난 한국인들, 낯선 땅에서 작은 기적을 만들어가고 있는 그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뮤지컬배우 임규진, 노력의 결과

 

부상으로 발레리나의 꿈이 꺾인 소녀에게 뮤지컬배우라는 새 꿈이 생겼다. 그리고 대학 입시 대신 미국으로 향한 그녀, 임규진. 미국 뮤지컬·드라마 아카데미(AMDA)를 조기 졸업하자마자 <판타스틱스>의 주인공 루이자 역으로 데뷔했고, 이후 디즈니 크루즈 라인, <미스 사이공>, <왕과 나>에서 주인공과 앙상블로 참여했다. 이쯤 되면 노래와 언어의 장벽을 깬 그녀가 ‘아메리칸 드림’을 실현했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간단한 자기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저는 서울에서 태어나 스무 살에 뉴욕으로 유학을 왔어요. 스물다섯에 브로드웨이에 데뷔했는데, 1996년 이후 한국 국적을 지닌 배우가 브로드웨이에서 주역으로 무대에 서는 것은 제가 처음이었어요.
 

미국으로 건너가 활동하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나요? 오랫동안 발레리나의 꿈을 꿨지만 발목 부상으로 포기해야 했어요. 이후 고등학교 3학년 때 뮤지컬배우의 꿈을 꾸기 시작했고, 대학 입시를 치르는 게 현실적으로 불가능해 뉴욕으로 유학을 왔어요. 처음에는 노래와 언어로 고생했지만, 결국은 이렇게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답니다.
 

AMDA에서의 경험은 어땠나요?  혼자 한국인이다 보니 적응하는 시간이 필요했어요. 미국인보다 훨씬 많은 노력을 해야 겨우 수업을 따라갈 수 있었지만, 선생님과 친구들이 끊임없이 용기를 줬어요. 춤을 제외하고 뮤지컬과 관련된 트레이닝을 한 번도 해본 적 없던 제게 AMDA는 많은 걸 알려준 소중한 곳이죠. 한마디로, 제 삶이 뒤바뀐 곳이에요. 
 

한인 최초로 디즈니 크루즈 라인에서 뮤지컬배우로 활동했다고 알고 있습니다. 해당 활동은 어떻게 시작했으며, 어떤 경험을 쌓았나요? 디즈니 크루즈 라인에 참여하게 된 데는 긴 이야기가 있어요. 그때 OPT(미국 대학 졸업 후 1년간 전공과 관련된 분야에 한해 합법적으로 일할 수 있는 제도)가 다 끝나갈 때였는데, 아티스트 비자 발급에 지원을 약속했던 소속사와 갑작스럽게 일이 틀어졌어요. 많은 고민이 쏟아졌죠. 그러다 캐스팅된 곳이 디즈니 크루즈 라인이었습니다. 이곳은 매년 천 명이 넘는 배우들이 오디션에 몰려요. 저 또한 오디션 당일 새벽부터 기다리다 오후 3시 정도에 오디션을 볼 수 있었죠. 전 <뮬란>의 ‘Reflection’을 불렀는데, 바로 콜백 오디션 제안을 받았어요. 이후 몇 번의 오디션을 더 봤고, 연락이 없어서 포기하려던 차에 기적처럼 캐스팅 소식을 듣고 합류했어요. 완벽하게 준비된 동료 배우들을 보면서 다른 세계를 경험한 기분이었어요. 쟈스민, 뮬란, 포카혼타스를 맡으며 2년 가까이 공연한 후에 뉴욕으로 돌아왔어요. 
 

어떻게 배우 조합에 가입하게 됐나요? 디즈니 크루즈를 마치고 아티스트 비자를 받을 수 있었어요. 그리고 <왕과 나>가 20년 만에 브로드웨이에서 공연한다는 소식을 들었어요. 배우 조합에 가입하지 못한 상태에서 오픈콜 오디션에 갔고, 다행히 비조합 배우도 오디션을 볼 수 있었어요. 7번 정도 오디션이 이어졌는데, 비조합 배우는 저밖에 없더라고요. 캐스팅 소식을 듣고 영주권이 없는 상태에서 아티스트 비자만 있다는 사실을 컴퍼니에 알려줬어요. 이후 영주권이 없으면 공연에 참여할 수 없다는 최종 답변을 받았죠. 헌데 미국인인 남자친구와 결혼 후에 영주권이 나오자마자 바로 이메일을 보냈어요. 혹시 빈자리가 생기면 기회를 달라고요. 운이 좋게도 바로 캐스팅이 되었고 배우 조합에 가입이 돼서 브로드웨이에 데뷔하게 되었습니다. 노조 계약서는 배우를 보호하는 계약서라 페이가 세고 혜택이 많다고 설명해 드릴 수 있겠네요. 


 

<왕과 나>에서 커버 배우로 시작해 주연으로 무대에 선 소감은 어땠나요. 어떤 점이 가장 자랑스러웠는지요. 뿌듯했던 점은 저 혼자 동양 출신 배우였다는 거예요. 한 팀에 많은 동양인 배우가 캐스팅됐지만, 저를 제외하고는 미국에서 자란 동양인이었어요. 이들과 외국인으로서 겪는 어려움에는 큰 차이가 있거든요. 보통은 동양인 역할이어도 영어가 완벽한 미국인을 캐스팅해요. 부족했던 노래와 영어 실력을 극복하고, 미국인들과 경쟁해 마침내 꿈을 이뤘다는 사실이 감격스러웠죠. 
 

미국에서 1세대 한국인 배우로 활동하면서 힘든 점은 무엇이었나요? 제일 힘든 부분은 비자 문제예요. 배우 조합은 영주권이 있어야 하는데, 미국의 영주권 취득은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어요. 아티스트 비자만으로는 배우 조합에 가입할 수 없거든요. 또 경제적인 부분도 힘든 점이에요. 게다가 성인이 되어 미국으로 오면 완벽한 영어 실력을 갖기 힘들어요. 1차 오디션은 미리 연습한 장면을 보여주는 것이라 유창하게 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빠른 시간 안에 영어 대사와 노래를 습득해야 하는 소속사 오디션이나 콜백 오디션은 준비할 시간이 얼마 없어요. 또 미국 억양 외에도 영국, 아일랜드, 스코틀랜드 등의 다양한 억양을 할 줄 알아야 많은 기회를 잡을 수 있어요. 
 

운영 중인 유튜브 채널 Q Bang TV에서 영어 발음 교정을 주제로 한 영상이 인상적이었는데, 발음 교정을 위해 어떤 노력을 쏟았는지 설명 부탁드립니다.  처음 미국에 왔을 때는 제 영어 실력은 누구도 저와 연기 수업 파트너를 하고 싶지 않을 정도였어요. 어느 날 함께 점심을 먹던 친구가 저의 ‘Would’ 발음을 고쳐주더라고요. 친구들이 함께 공부하던 1년 동안 제 한국 억양을 짚어주지 않았던 거예요. 그날부터 영어 발음을 공부해야겠다고 마음을 먹고 혼자 책과 CD를 사서 공부하기 시작했어요. 그러다 AMDA에 진학하게 되면서 스피치 수업을 들었죠. 선생님들은 빨대로 혓바닥을 옮겨주시며 정확한 발음을 알려주셨고, 이후에는 배우이자 성우인 남편의 도움을 많이 받았어요. 유튜브는 발음 공부를 더 빨리 시작했더라면 좋겠다는 아쉬움때문에 시작했답니다. 미국에서 배우를 꿈꾼다면 최대한 빨리 발음 공부를 하는 게 필수예요. 
 

브로드웨이 무대를 꿈꾸는 한국의 학생들에게 꼭 해주고 싶은 말이 있나요? 전 정말 100% 노력파예요. 배우가 될 능력도 없었고, 혹여 있었더라도 그 가능성이 크지 않았죠. 최근 한국에서 많은 학생이 뉴욕으로 와 레슨을 하고 있는데, 다들 정말 뛰어나요. 하지만 대부분 자신의 능력을 과소평가하는 편이죠. 그러니 자기 자신만의 목표를 세우고, 타인과 비교하지 말았으면 좋겠어요. 특히 브로드웨이에 입성하지 않은 배우들도 실력이 뛰어난 경우가 많아요. 캐스팅에는 타이밍과 운도 중요하기 때문에, 브로드웨이를 목표로 하기보다는 본인의 실력을 제대로 바라보세요. 
 

앞으로의 활동 계획에 관해 설명해 주세요. 배우로서 어떤 목표를 가지고 있나요? 노래 욕심이 매우 커요. 직접 보컬 테크닉을 배워서 좋은 선생님이 되고 싶어요. 또 한국인 배우를 모아 서로 도움을 줄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고 싶어요. 한국에서 미국 유학을 꿈꾸시는 분들에게 용기를 드릴 수 있는 여러 프로그램을 구성 중이에요. 개인적으로 올해 제일 큰 목표는 TV 장르로 진출하는 것인데, 오랫동안 쉬지 않고 공연을 했으니 실력을 가다듬는 시간을 가지려고 해요.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88호 2019년 5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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