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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처 | [SPECIAL] 계속되는 임금 체불, 우리가 나아갈 길은 [No.189]

글 |박보라 2019-07-01 11,289

계속되는 임금 체불, 우리가 나아갈 길은 

 

올 초 수면 위로 떠오른 일부 제작사의 임금 미지급 문제는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지난 2월 온라인에 퍼진 임금 미지급 사태는 어떻게 이렇게 큰 문제로 번지게 됐을까. 뮤지컬계에 악영향을 미치고 있는 임금 미지급 피해 사례를 살펴본다.

 

※ 제보자의 보호를 위해 작품명과 피해자는 익명으로 표기합니다.

 

임금 미지급이 낳은 피해 

지난 2월 온라인 커뮤니티에 퍼지면서 화제가 된 뮤지컬 작품 <가>의 임금 미지급 사건은 해당 작품에 출연한 한 앙상블 배우가 개인 SNS 계정에서 라이브 방송을 진행하면서 알려졌다. 당시 방송에는 제작사 대표를 찾아가 미지급된 임금을 정산해 줄 것을 요청하는 과정이 담겼는데, 이에 대해 제작사 대표는 “다른 배우들 역시 임금 정산을 기다리고 있다”는 답변을 내놓을 뿐이었다. 

본지에 피해 사례를 제보한 배우 A는 2018년 8월부터 10월까지 공연한 뮤지컬 작품 <나>에 출연했지만, 공연이 막을 내린 지 8개월이 지난 지금까지도 출연료의 50퍼센트를 지급받지 못했다. 해당 제작사가 재정난을 겪고 있기 때문이다. 배우 A가 이 작품에 출연하기 위해 쏟은 기간은 연습부터 공연까지 모두 4개월. 배우 A는 계약 당시 총 4차례에 걸쳐 개런티를 지급받기로 했는데, 연습 기간 중 정산이 이루어진 첫 번째 지급은 정상적으로 이뤄졌으나 개막 이후 예정된 두 번째 지급일부터 문제가 생겼다. 출연료 정산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자 배우와 스태프는 제작사에 항의했고, 이에 제작사는 크라우드 펀딩을 통해 투자가 성사되면 출연료를 지급하겠다며 투자확인서를 공개했다. 그러나 배우 A에 따르면 제작사는 해당 투자가 성사됐음에도 불구하고 출연료를 지급하지 않았다. 출연료 지급을 약속한 전날, 문자 메시지로 임금 지급이 예정보다 늦어질 예정이라는 내용을 안내 받았지만, 지급은 계속 미뤄졌다. 해당 작품에 출연한 다른 배우 B는 “투자 문제로 일주일 정도 임금 지급이 연기가 될 것 같다는 메시지를 받았다. 하지만 그 이후 별다른 설명 없이 ‘조금만 기다려 달라’는 답변만 반복해 들었다”고 말했다. 결국 배우 A와 B를 비롯한 출연진은 제작사 대표에게 출연료 지급을 약속하는 각서를 요구했다. 그러나 각서는 종이에 불과했다. 제작사 대표는 작품 <나>에 참여한 배우 및 스태프에게 임금 지급일을 미루며 총 두 장의 각서를 작성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출연료는 여전히 정산되지 않은 상태다. 배우 B는 “공연 당시 임금 미지급 문제 때문에 배우들 사이에서 보이콧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하지만 제작사 직원들이 임금을 지급하기로 한 당일 공연 시작 전까지 ‘미안하다’는 사과를 거듭해 어쩔 수 없이 무대에 올랐는데, 그 결과 공연 폐막 이후에도 임금 정산이 이뤄지지 않아 해당 사항을 예술인 신문고에 신고한 상태”라고 밝혔다. 이어 “뒤늦게라도 출연료를 받으면 다행”이라면서 “제작사는 약속한 기한을 지키지 않았을뿐더러, 계속해서 지급일을 미뤄 불신만 키웠다”고 말했다.

배우는 물론 작품에 참여한 스태프들도 임금 미지급 사태에 고통받기는 마찬가지다. 작품 <나>에 참여한 오케스트라 팀은 계속해서 임금 지급이 이뤄지지 않자 결국 보이콧을 선언했다. 해당 작품에 참여한 한 스태프는 “임금 지급을 약속한 당일, 제작사가 약속을 지켜줄 것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공연 직전까지 임금이 들어오지 않아 모든 팀들이 보이콧을 고민했고, 결국 오케스트라 팀은 보이콧을 진행했다”고 말했다. 이로 인해 공연이 20분 정도 지연되자 제작사 측은 관객들에게 스태프의 부상으로 공연이 지연되고 있다고 안내하며, 오케스트라 팀에 일부 금액을 지급하기로 약속한 끝에 당일 공연을 진행할 수 있었다. 하지만 공연 종료 후 제작사가 오케스트라 팀에게 보이콧을 공증하는 내용 증명을 보내 스태프들의 공분을 샀다. 작품 <가>에 참여했던 한 스태프는 “작품 <가>에는 해당 제작사의 직전 작품에 참여했던 배우와 스태프가 많았다. 물론 직전 작품도 대부분의 임금이 미지급된 상황이었다. 이런 상황이 계속되자 작품 <가>의 극장 셋업 도중에 임금 미지급 문제로 드레스 리허설이 취소되기도 했다”고 밝혔다. 보이콧은 배우와 스태프에게 최후의 보루나 다름없다. 보이콧으로 인해 공연이 중단되면 임금 미지급 문제가 대외적으로 공개되기 때문에 제작사는 배우와 스태프가 보이콧을 벌이지 않도록 대응책을 강구할 수밖에 없다. 임금 미지급 사태에 보이콧을 선언했던 오케스트라 관계자 C는 “보이콧을 해서라도 제작사에 임금 미지급 사태의 심각성을 일깨워주고 싶었다”고 심경을 밝혔다. 

작품 <나>는 폐막 이후 다른 극장에서 곧바로 재공연에 돌입할 예정이었다. 앞선 시즌의 임금 지급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지만, 제작사 대표가 배우와 스태프 들에게 재공연의 계약 조건을 더욱 좋게 제시한 것이다. 배우 A는 “제작사에 출연료 미지급 시 보이콧을 벌여도 이에 대한 책임을 묻지 말라는 각서를 요구했다. 하지만 각서를 작성한 후에 제작사가 변경됐다며 새롭게 계약을 체결해야 한다고 하더라. 특히 작품 <나>의 제작사와 재공연 제작사는 서로 관련이 없다면서 재공연 참여 여부를 물었다”고 말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작품 <나>에 출연했던 일부 배우들은 재공연에 참여하지 않았다. 물론 해당 재공연 또한 현재까지 임금 정산이 이뤄지지 않은 상태다. 

지난해 8월 충무아트센터 대극장에 오른 뮤지컬 작품 <다> 역시 최근 임금 미지급 문제로 구설수에 올랐다. 이 작품에 참여한 스태프 D에 따르면, 제작사는 총 세 차례로 나눠 임금을 지급하기로 했으나 마지막 임금 정산을 이행하지 않았다고 한다. 예정된 지급일 일주일 전부터 회사의 자금 상황이 좋지 않다는 설명과 함께 한 달 후 정산이 가능하다는 안내를 받았지만,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투자 사기 문제로 제작에 난항을 겪었다고 알려진 뮤지컬 <라>의 제작사도 임금 미지급에 항의하는 배우와 스태프 들에게 ‘일정 기간 안에 나머지 임금을 지급하겠다’고 공지했지만 이 약속 또한 지켜지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올해 초 제작사 대표가 임금 미지급 후 돌연 잠수를 탄 사례도 있었다. 임금 지급을 요구하는 피해자들의 연락을 아예 차단한 것이다. 지난 2월 대학로에서 막을 내린 뮤지컬 <마>의 경우에는 제작사 대표와 연락이 닿지 않자 일부 스태프들이 내부적인 협의를 거쳐 입금 마감 기일을 대표에게 통보했다. 마감 기일을 어길 시에는 대학로 곳곳에 성명서 형태의 게시물을 게시할 것이며, 이를 통해 임금 미지급 사태를 공론화하겠다는 내용과 함께 임금 지급을 요청했다는 것이다. 해당 제작사는 그제야 미지급된 임금을 지급했다. 

배우나 스태프 외에 외주 계약을 맺은 업체들의 피해 상황도 비슷하다. 여러 제작사의 외주 업무를 담당하는 한 관계자는 “최근 참여한 한 작품은 계약금 중 60%가 지급되지 않았다. 계약금을 다 받지 못한 경우는 이전에도 종종 있었다. 각 제작사들의 재정 상황이 좋지 않았기 때문에 어느 정도 예상은 한 일이었지만 그래도 그때마다 피해가 크다. 우리 같은 아웃소싱 회사들은 계약금을 못 받는 상황에 대해 대비책을 세워놔야 한다는 부담감이 있다”고 말했다. 계약금 지급이 원활하지 않을 때를 대비해 무리하게 여러 건의 계약을 체결한 후 과다한 업무를 진행할 수밖에 없다는 말을 덧붙였다.

 

불신과 변명으로 생긴 상처

임금 미지급 피해를 겪은 배우나 스태프가 제작사에 분통을 터트리는 부분은 제작사의 변명과 핑계, 말 바꾸기 식의 태도다. 피해자들의 제보에 따르면, 개막 일주일 전 구두 계약 당시 제안한 개런티보다 훨씬 적은 금액으로 정식 계약을 요청하는 사례도 있다. 이런 억울한 상황에서도 배우나 스태프가 해당 계약을 진행하는 이유는 하나다. 출연을 포기하면 지금까지 들인 시간과 노력이 수포로 돌아가며, 더욱이 개막일이 가까워진 상황에서 하차할 경우 그 피해가 고스란히 다른 스태프와 배우에게 돌아가기 때문이다. 피해 사례를 제보한 한 스태프는 “정식 계약 때부터 말이 바뀌어 불길한 예감이 들었는데, 애초 약속보다 금액을 낮춘 개런티까지도 미지급될 줄은 몰랐다”며 억울함을 호소했다. 또 다른 스태프는 “계속해서 임금이 미뤄지는 상황에 답답함을 느껴 보이콧을 선언했다. 소식을 들은 제작사 관계자가 ‘오늘 안에 임금을 지급할테니 출근을 하라’고 했고, 그날 인터미션에 임금이 입금됐다. 그러나 마지막 공연이 끝나자 제작사 관계자는 태도를 돌변해 ‘해줄 수 있는 만큼은 다 해줬다’는 말을 남겼다. 앞서 공연 도중에는 뒤늦게라도 임금이 정산됐지만, 폐막 이후로 미뤄진 나머지 임금 지급은 아직까지도 받지 못했다“고 말했다. 임금 미지급 사태의 피해자들을 더욱 분노하게 하는 것은 피해 사실을 공개적으로 알리며 적극적으로 항의를 해야만 임금이 지급된다는 사실이다. 앞서 언급한 작품 <가>에 참여한 한 배우는 “출연료를 받기 위해 제작사에 매일매일 전화하고 직접 찾아가기도 했다. 생계 문제 때문에 어떤 때는 사정을 하고, 어떤 때는 화도 내면서 임금 지급을 부탁한 끝에야 밀린 출연료를 받을 수 있었다”고 속상함을 토로했다. 다른 피해자들 역시 미지급에 대해 강력하게 항의한 사람들에게 먼저 임금을 지급하는 차별적인 제작사의 태도에 상처를 입었다고 밝혔다. 스태프 D는 “임금은 누군가에는 생계가 걸린 문제다. 그런데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는커녕 돌려막기 형식으로 공연을 올리고, 적극적인 항의를 받아야만 수습하는 제작사에 불신을 느꼈다”고 말했다.


 

위태로운 제작사

그렇다면 왜 이런 임금 미지급 문제가 반복되는 것일까. 제작사들이 재정난을 겪는 가장 큰 이유로 공연 관계자들은 높은 대관료와 개런티 등으로 공연이 흥행에 성공하더라도 수익을 창출할 수 없는 기형적인 제작 구조를 꼽는다. 공연계에서 안정적으로 자리 잡지 못한 제작사의 경우 보통 원활한 투자를 유치할 수 없는 상황에서 무리하게 공연을 올리다 보니 적자가 발생하고, 이 같은 손해를 메우기 위해 급히 다음 작품을 올리는 ‘돌려막기 방식’으로 공연을 이어간다. 그런데 이전의 손해를 막기 위해 올린 다음 작품마저 적자가 발생하면 상황이 심각해지는 것이다. 그리고 이때부터 벗어날 수 없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투자 유치를 하기 위한 투자사와의 계약 조건도 공연을 무리하게 이어가는 이유 중 하나다. 예를 들어, 일정 기간 안에 몇 편의 공연을 제작한다는 계약 사항을 바탕으로 투자사의 투자를 이끌어낸다면 회사의 재정 상황이 나빠져도 계약을 이행하기 위해 제작을 강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계약서에 명시된 내용을 따르지 않으면, 투자사가 투자를 철회하게 되고 심각한 경우 고소까지 당하기 때문이다. 악화된 재정 상황에서 공연 제작을 이어간다면 해당 제작사의 재정난은 더욱 심각해질 수밖에 없다. 투자 문제를 겪은 한 뮤지컬 작품은 유명 뮤지컬배우의 출연을 내세워 투자를 유치했지만, 투자 요청서에 명시한 유명 뮤지컬배우의 출연이 무산되면서 투자사가 약속된 투자를 철회했다. 해당 작품은 폐막한 후에도 일부 배우 및 스태프에게 임금 정산을 마치지 못했다. 

공연계에 만연한 투자 원금 상환이라는 투자 조건 역시 제작사를 힘들게 하는 요소 중 하나다. 투자금 회수가 불투명한 현 공연계 상황에서 투자사들이 손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이 같은 방식으로 투자를 진행하는 것이다. 결국 제작사는 투자 유치를 위해 새로운 형태의 투자처를 찾게 된다. 앞서 언급된 작품 <나>의 제작사는 크라우드 펀딩의 한 종류인 P2P 투자로 제작비를 충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P2P 펀딩은 은행 등의 금융 기관을 거치지 않고 온라인 플랫폼을 통해 개인 간 자금을 대출하고 차입하는 거래다. 온라인 플랫폼은 대출을 필요로 하는 회사의 매출이나 재정 상황, 신용 등급 등을 분석해 대출 가능한 금액과 이에 따른 금리를 설정하고 대출을 원하는 사람과 투자자를 중개하게 된다. 그러나 제작사의 신용 등급이 낮은 상태에서 P2P 펀딩을 바탕으로 투자금을 모집할 경우, 금리율이 높아져 제작사에 부담 요소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배우의 높은 개런티도 제작비를 상승시켜 오히려 수익률을 낮추는 요인으로 꼽힌다. 출연료 미지급을 경험한 배우는 “일부 주연 배우들과 연예인들의 개런티가 상당히 높다. 문제는 개런티가 높아지면 이에 따른 여파로 티켓 가격도 오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티켓 가격이 높아지면 관객들은 줄고, 제작사는 수익을 낼 수 없는 악순환이 반복된다”고 문제점을 지적했다. 

 

함께 지켜가야 할 공연계

그렇다면 임금 미지급 사태를 예방하기 위해 어떤 대응책이 마련돼야 할까. 제보받은 내용 가운데 많은 의견은 공연 전에 모든 임금 지급을 완료하는 것이다. 브로드웨이나 웨스트엔드처럼 주 단위 개런티 지급 시스템을 도입한다면, 인건비 지급에 대한 제작사의 부담감을 줄일 수 있다는 의견도 있었다. 또한 배우, 스태프의 인건비를 비롯한 제작비를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았다. 한 스태프는 “임금 정산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작품 가운데 공연 개막 전 한 주연 배우의 출연료가 전액 지급된 사례가 있었다. 이는 해당 제작사의 경영난에 일부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했다. 또한 제작비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값비싼 대관료에 문제를 제기하며, “국가가 나서 대관료에 대한 제재를 가하거나 일부 대관료를 지원해 주는 제도가 생긴다면 제작비 부담을 낮출 수 있을 것”이라 전망했다.

무엇보다 공연 관계자들은 공연 제작사의 사업자 등록 절차가 까다롭게 진행돼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현재 공연계에서는 경영난으로 파산한 제작사가 이후 다른 사람의 명의로 새로운 제작사를 설립하고 다시 공연을 제작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기 때문이다. 즉, 실질적인 경영·제작자와 대표자가 일치하지 않는 일이 많다는 것. 반면 한 공연계 스태프는 “공연 제작자를 보호하는 법 제정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국내 공연계에서는 대개 제작사 대표가 홀로 손실을 책임지는 것이 대부분이다. 영세한 공연 제작사는 개인 사업자로 운영되고 있는 경우가 많아 대표 개인이 제작비 전체를 책임지는 구조는 공연 시장의 불안정성을 확대한다.

배우들은 공통적으로 배우 노조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고용노동부에 임금 체불 진정서를 제출해도 공연계 배우나 스태프의 경우 프리랜서가 많고, 이 경우에는 근로자로 인정되지 않아 근로기준법의 보호를 받을 수 없는 게 현주소이기 때문이다. 임금 미지급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고용노동부를 찾아간 한 배우는 오히려 경찰에 신고를 하는 것이 어떻겠냐는 제안을 받았다고도 한다. 공연계 임금 미지급 피해자들은 예술인 신문고를 통해 진정 접수를 진행하지만, 강제적인 집행 능력이 없는 예술인 신문고는 제작사에 임금 지급을 내용으로 하는 시정 명령만 전달할 수 있을 뿐이다. 예술인 신문고에서는 시정 명령을 전달한 후에도 임금이 지급되지 않고 피해자가 소송으로 구제받기를 원하는 경우 개인당 변호사 선임 비용을 최대 200만 원까지 지원한다. 배우 E는 “예술인복지재단에서 연결해 준 변호사의 도움으로 소송을 진행하고 있다. 하지만 변호사의 설명에 따르면, 상습적으로 임금을 미지급하고 있는 악덕 제작사의 경우 이미 여러 조치를 해놓고 있기 때문에 미지급된 임금을 전부 받게 될 확률이 낮다”고 말했다. 상당한 비용과 시간을 들여 소송을 진행해서 승소한다 해도 제작사의 책임 재산이 없거나 찾아낼 수 없다면 임금을 받을 수 없다. 임금 체불 소송은 민사 재판부에서 주관하는데, 채무자의 재산을 찾아낼 책임이 채권자 개인에게 있기 때문이다. 오케스트라 관계자 C는 “법적인 조치를 알아보았지만 아무것도 해결할 수가 없었다”고 답답함을 토로했다. 공연계 인력을 보호할 수 있는 법 조항이 미비하기 때문에, 임금 미지급이나 지급일이 늦어지는 경우 처벌하는 법 조항을 신설하여 경각심을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임금 미지급 문제를 겪으면서도 피해자들이 쉽게 떠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공연계는 이들이 오랫동안 꿈꿔 온 곳이기 때문이다. 뮤지컬배우라는 꿈을 위해 준비한 시간이 긴 만큼 무대를 포기하기가 쉽지 않은 데다 당장의 생계를 위해 공연에 계속 참여할 수밖에 없다는 것. 배우 F는 “2018년에 참여한 작품의 출연료가 연달아 미지급되며 공연계를 떠나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조금만 더 버티면 좋은 일이 생길 거라고 믿었다. 공연과 무대를 사랑하지만 이런 상황이 계속된다면 미련 없이 공연계를 떠날 수 있다는 생각도 든다”고 회의적인 태도를 밝혔다. 스태프 G는 “정당한 노동의 대가인 임금을 미지급하는 것은 뮤지컬계에서 일을 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을 희망 고문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공연에 참여시켜주는 것만으로도 감사해라’라며 열정 페이를 강요하는 일부 제작자들의 낡은 인식은 바뀌어야 한다. 결국 나는 이 일로 인해 공연계를 떠나게 됐다. 나 한 사람이 일을 그만둔다고 해서 임금 미지급 사태가 없어지지는 않겠지만, 이 문제에 대해 많은 관심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임금 미지급 사태가 해결되지 못한다면 결국 열정과 실력을 지닌 공연 종사자들은 공연계를 떠나고 높아진 티켓 가격과 낮은 품질의 공연만 남아 그 피해는 고스란히 관객의 몫이 된다. 뮤지컬 홍보마케팅을 담당하고 있는 관계자 H는 “공연이라는 장르가 지니고 있는 뜨거운 무언가가 있다. ‘어떤 일이 있어도 쇼는 계속되어야 한다’는 말처럼 공연이 주는 카타르시스는 다른 것으로 대체하기 힘들다. 또한 한 작품을 함께하면서 서로 간에 쌓이는 끈끈한 유대감을 포기할 수 없다”면서 임금 미지급이 만연한 공연계를 떠날 수 없는 이유를 밝혔다. 임금 미지급 사태를 일부 제작사, 또는 피해자 개인의 문제로 여기지 않고 조금이나마 관심을 쏟아야 공연계의 장밋빛 미래를 기대할 수 있지 않을까.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89호 2019년 6월호 게재기사입니다.
* 본 기사와 사진은 “더뮤지컬”이 저작권을 소유하고 있으며 무단 도용, 전재 및 복제, 배포를 금지하고 있습니다. 이를 어길 시에는 민, 형사상 법적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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