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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처 | [FOCUS] 정동극장 ‘창작ing’, 가까이 다가온 전통을 만나다 [No.191]

글 |박보라 사진제공 |정동극장 2019-09-03 2,913

정동극장 ‘창작ing’ 
가까이 다가온 전통을 만나다 


서울 중구 정동길에 자리한 정동극장은 고즈넉한 창경궁과 광화문을 사이에 둔 아름다운 공간이다. 대한민국 최초의 근대식 극장인 원각사를 복원한 이곳은 근현대 예술정신을 계승하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모색해 왔고, ‘창작ing’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그 목적을 충실하게 이어 나가고 있다. 2017년 시작한 창작ing는 한국 고유의 예술 소재 발굴과 작품 개발을 위한 창작 무대로, 가능성 있고 도전적인 창작진을 발굴하고 콘텐츠를 개발하는 정동극장의 제작 지원 사업이다. 2017년 <적벽>, <동동>, <판>을 시작으로 2018년에는 <판소리 오셀로>, <오셀로와 이아고>, <주름이 많은 소녀>를 비롯해 낭독 공연 <정동구락부: 손탁호텔의 사람들>과 <매화누이>를 개발하고 무대화했다. 이 프로그램은 공연 제작비는 물론 운영 전반을 지원한다. 창작ing의 전신은 ‘전통ing’로, 원래는 전통 음악 작품을 선정해 지원했다. 이후 장기 레퍼토리 공연을 확장하기로 계획한 정동극장이 장르를 확대하겠단 의지로 수정과 보완을 거쳐 창작ing를 시작하게 된 것이다. 창작ing 프로그램은 개발 가능성이 있거나 외향적인 확장이 가능한 작품을 공모를 통해 선정한다. 신작 대본뿐 아니라 재공연 작품을 접수받고 선정 작품을 직접 공연한 후 개발 가능성을 보고 장기 레퍼토리로 발전시킨다. 이 과정에서 전통 분야는 물론 연극과 뮤지컬 관계자까지 다양한 분야의 심사위원을 모집해 의견을 듣는다. 물론 가장 큰 선정 기준은 전통적인 요소를 얼마나 창의성 높게 녹여내느냐다. 

정동극장은 장르에 제한을 두지 않고 여러 전통 요소를 다양한 형식으로 대중에게 선보이겠다는 의지다. 많은 창작 지원 사업이 대본 선정 이후 트라이아웃 공연이나 쇼케이스 단계에서 멈추는 것에 반해, 창작ing는 정식 공연까지 이어질 수 있도록 한다. 대개 전통 장르의 공연은 최대 공연 기간이 10회 정도로 길지 않은데, 해당 프로그램의 선정작은 그보다 공연 기간이 길다는 것도 특징이다. 정동극장의 이수현 공연기획팀장은 “전통적인 요소가 충분히 묻어나는 작품을 장기적으로 공연할 수 있는 토대를 만들겠다는 개념으로 사업을 시작하게 됐다”고 밝혔다. 

창작ing 공모 프로그램의 대표작은 <적벽>으로, ‘적벽가가 이렇게 힘차고 재미있는 공연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혹은 ‘판소리를 이렇게 역동적인 느낌으로 볼 수 있다니 흥이 났다’는 호평을 얻으며 장기 레퍼토리로 공연 중이다. 

사실 <적벽>은 공모 심사를 거쳐 선택된 작품이 아니라, 정동극장의 적극적인 신작 발굴 의지가 반영된 케이스다. 한 대학생 페스티벌에서 중앙대학교 전통연희과 학생들이 창작한 <적벽>을 본 직원의 추천으로, 내부 심사를 거쳐 선정된 것이다. 대학교 공연 버전의 <적벽>을 선정한 것은 과감한 선택이었지만, 정식 공연으로 개발될 가능성이 상당히 높았기 때문에 놓칠 수 없었다고. 심지어 여러 버전으로 공연을 준비한 창의성이나, 주로 혼자 공연하는 판소리가 아닌 합창의 형식이나 현대 무용을 접목한 방식에서 특히 높은 점수를 샀다. 현재 두 번째 재공연을 마친 <적벽>은 한국문화예술연합회에서 운영하는 사업을 통해 지방 공연까지도 활발하게 진행하고 있다. 

무엇보다 창작ing 프로그램은 여성 캐릭터를 내세운 작품이나 젠더 프리 캐스팅으로 주목받고 있다. 앞서 언급한 <적벽>도 성별의 경계를 허물고 배우를 기용한 사례다. 미투 운동 이후 페미니즘이 사회적 이슈로 떠오르기 전부터 젠더 프리 캐스팅을 진행했다. 정동극장의 이수현 공연기획팀장은 “문화 예술 분야에 여성 전문가가 많고, 특히 여성 소리꾼이 많다. <적벽>은 초연부터 군무와 소리를 잘할 수 있는 배우를 찾았기 때문에 성별은 중요하지 않았다. 소리와 연기를 잘하는 여자 소리꾼을 캐스팅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남성적인 캐릭터로 인식되어 왔던 제갈공명이나 정욱에 여성 배우가 캐스팅된 것에 대해 통쾌함을 느끼는 관객이 많았다. 



미리 보는 <낭랑긔생>

정동극장은 2019년 창작ing의 두 번째 작품으로 기생 강향란을 내세운 음악극 <낭랑긔생>을 선택했다. 강향란은 조선 최초의 단발 여성이자, 남자처럼 짧은 머리를 하고 남성 양복을 입은 채 시내를 돌아다녀 주목을 받은 인물이다. 그녀는 14세에 한남 권번에 입적해 기생이 됐고, 실력이 출중해 인기가 높은 기생 중 한 명이었다고 한다. <낭랑긔생>은 누군가가 자신을 찾아주기를 기다리던 기생 향란이 단발랑 강향란이 되어 자신의 삶을 살겠다고 다짐하는 이야기에 모티프를 얻어 창작됐다. 작품은 강향란이 손을 잡고 나아갈 선생님, 친구와 동료를 얻으며 세상에 맞서 자기의 삶을 살아갈 의지를 가진 사람으로 변모하게 되는 과정을 그린다. 

작품은 가상의 한동 권번을 배경으로 다섯 여성의 욕망을 그리는데, 간난이라 불리며 주변 상황에 휩쓸려 살던 소녀가 권번에 들어가 이름을 얻고 글을 배워 세상을 깨쳐 나가며 스스로를 억압하는 세계에 질문을 던진다. 이야기는 시장에서 노래를 부르며 삯바느질을 하던 간난이 아버지의 빚 때문에 한동 권번에 기생으로 팔려 와 권번장 차순화를 만나면서 시작된다. 차순화는 권번 생활에 적응을 못하는 간난에게 예인으로서의 기생의 삶을 이야기하며 ‘향란’이라는 기명을 준다. 새로운 인생을 살게 된 향란은 5남매 생계를 책임지며 어렵게 살아가는 정숙, 비밀리에 근우회에서 활동하는 은희, 권번에서 음악을 가르치는 선생 석윤과 우정을 쌓아간다. 그러던 어느 날 요릿집 연홍관 사장 시봉이 정숙에게 수상한 일거리를 제안하고, 향란은 친구를 위해 불의에 맞서게 된다.

<낭랑긔생>은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시대와 상황에 떠밀려 살아가는 사람들이나 자신의 길을 만드는 사람들 등 다양한 인물상을 통해 현재의 우리를 되짚는다. 극본을 맡은 조은은 “이미 많은 작품에서 다룬 개화기를 배경으로 하지만, 소소한 인물의 역사에도 주목하고 싶었다”면서 “기록에서 단편적으로 등장하는 여성의 이야기와 여성이 함께함으로써 더 강해지는 연대의 힘을 보여주어 오늘날의 시대와 맞물리는 지점을 관객과 함께 생각하려 한다”고 밝혔다. 

1900년대 관기 제도 폐지 이후 조선 관기들을 중심으로 모인 권번 기생들은 전통 가무악은 물론 예와 의를 지키며 조선의 전통을 이어 나갔다. 이들은 개화기 속에서 새로운 문화를 빠르게 수용했는데, 이 과정에서 평등이나 인권 등의 개념을 함께 받아들였다. 새로운 시대의 흐름에 눈뜨게 된 기생들은 여성의 인권 신장과 조국의 독립을 위해서도 힘썼다. 기생들은 인문학적 소양과 예술적 재능을 갖춘 엘리트로 활발한 활동을 펼쳤으나, 역사 기록에서는 예인으로서도 독립운동가로서도 그 흔적을 쉽게 찾아볼 수 없다. 

정동극장의 이수현 공연기획팀장은 <낭랑긔생>의 매력 포인트로 “권번 기생들의 연대를 통해 향란이 독립적인 주체로 나아가는 과정”을 꼽으면서, 정동이라는 장소가 주목받은 시대를 녹여 낼 수 있는 이야기를 찾고 있던 중 만난 작품이라고 설명했다. 때문에 전통적인 요소를 강조하기보다는 정동극장이 지닌 정서를 되살리고 싶었다고 밝혔다. 특히 여성 캐릭터를 중심으로 여성 연대 서사를 섬세하게 보여줄 것으로 알려져 기대감을 높인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91호 2019년 8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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