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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컬처 | [NOW IN NEW YORK] <비틀주스>, 죽은 것의 살아 넘치는 이야기 [No.191]

글 |여지현 뉴욕 통신원 사진 |Matthew Murphy 2019-09-03 5,405

<비틀주스>
죽은 것의 살아 넘치는 이야기



무대 공연을 위한 스토리텔링

지난 6월 열린 토니 어워즈 뮤지컬 부문에서 <하데스타운> 다음으로 많은 부문에 후보가 오른 작품은 <비틀주스>였다. 1988년 개봉한 팀 버튼의 동명 영화를 배경으로 하는 이 작품은 평단의 엇갈리는 평가에도 불구하고 원작의 중년 팬은 물론 젊은 층을 아우르는 넓은 관객층을 확보하며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비 모어 칠>이나 <프롬>을 포함해 이번 시즌에 오픈한 여러 공연이 계획보다 일찍 막을 내린다는 안타까운 소식이 들리는 가운데 <비틀주스>는 2020년 1월 티켓 판매도 진행되고 있다고 하니 한동안은 이런 관심이 계속될 듯 보인다. 원작 영화의 제작사 워너브라더스는 2003년에 공연사업팀을 새롭게 출범했다. <비틀주스>는 워너브라더스가 지금까지 제작한 뮤지컬(예를 들면 <닥터 지바고>나 <찰리와 초콜릿 공장> 등이 있다) 중에 초기 반응이 가장 좋은 작품이라, 조금은 위태했던 공연사업팀에 생명을 불어넣어 주고 있다는 소문도 있다. 

<비틀주스>는 첫 시작을 잘 꿴 작품이다. 일단 원작의 내용을 간단하게 살펴보자. 주인공 아담과 바버라가 예상치 못한 사고로 죽게 되지만, 저승으로 가지 못하고 그들이 살던 집에 귀신으로 남아 떠돈다. 새로 이사 온 사람들이 집을 바꾸려 하자, 그들을 쫓아내고 싶어 이승과 저승을 넘나들며 말썽을 피우다 저주에 걸린 비틀주스의 도움을 구한다. 이사 온 사람들은 찰스와 딸 리디아, 그리고 리디아가 별로 달가워하지 않는 존재인 새엄마 딜리아다. 큰 줄거리는 리디아가 아담과 바버라와 협력하여 그들을 쫓아내고, 아담과 바버라와 새롭게 가족이 되어서 함께 산다는 이야기다. 뮤지컬 역시 이런 원작의 기본적인 구성을 따르지만, 원작과는 다른 각색 방향으로 이야기를 풀어 나간다. 그리고 이러한 선택은 무척 효과적이다.



죽은 것에 대하여

뱅글뱅글 돌아가는 조명이 비치는 커튼이 걷히고 무대가 드러나면, 리디아 엄마의 장례식이다. 장면은 리디아가 부르는 오프닝 발라드로 이어진다. 원작에서는 리디아가 죽은 엄마를 잊지 못해 슬퍼하는 모습을 직접적으로 보여주지 않는데, 뮤지컬은 예상치 못하게 시작한다. 원작의 리디아가 독특하지만 자신만의 세계가 강한 것으로 그려진 데에 반해, 뮤지컬에서의 리디아는 엄마가 돌아가신 이후 엄마의 장례식에서 자기의 존재가 없어진 것 같다는 내용의 슬픈 발라드를 부르는 인물로 그려진다. 그래서 이 첫 장면은 유독 다른 작품 같다는 생각이 들게 한다. 하지만 공연 시작 5분이 채 지나지 않아 갑작스러운 비틀주스의 등장으로 분위기가 180도 바뀐다. 비틀주스는 이승과 저승을 넘나들며 온갖 말썽을 일으키고 다닌 망나니 같은 존재로, 그는 무대 위와 관객 간의 벽을 허무는 유일한 인물이다. 갑자기 등장한 비틀주스는 관객을 향한 첫 대사를 건네는데, “벌써 발라드를 불러? 이렇게 대범하게 원작에서 벗어나냐?”다. 이를 시작으로 비틀주스는 공연 도중에 전화벨이 울리면 자기가 직접 그 사람을 죽일 거라는 둥, 자기는 이 짓을 일주일에 여덟 번을 하고 있다는 둥, 50달러짜리 와인이나 계속 마시면서(극장에서 파는 와인은 50달러까지는 아니지만 20달러에 조금 못 미치는 가격으로 비싼 편이다) 잘 감상이나 하라는 둥, 아주 건방지고 눈에 뵈는 게 없는 성격을 솔직하게 드러내며 강렬한 첫인상을 남긴다. 이 장면을 통해 비틀주스는 누군가 자신의 이름을 세 번 불러줘야만 저주가 풀린다는 자신의 처지를 관객들에게 설명하고 아담과 바버라를 관객에게 소개해 주는 역할을 한다. 또한, 이것은 ‘죽은’ 것(‘Being dead’ thing)에 대한 뮤지컬이라고 관객에게 몇 차례나 상기시킨다. 이 장면에서 비틀주스가 부르는 노래 ‘The Whole Being Dead Thing’은 공연 중 멜로디와 가사가 변주되어 여러 번 반복되는데, 결과적으로는 죽음이 아니라 살아 있는 것에 관한 작품의 전체적인 메시지와 충돌하면서 아이러니를 자아낸다.

처음엔 아담과 바버라의 집이 표현주의적인 기법으로 그려져 무대 뒤쪽에 작게 배경으로 보이는 공원묘지였다가 곧 아담과 바버라가 아직 살아 있는 집 내부로 전환된다. 이 장면에서 아담과 바버라 부부는 노래를 통해 아직 이루지 못한 것과 원하는 것에 대해 관객들에게 넌지시 알려준다. 알콩달콩한 대사와 함께 아담이 고치고 있는 고풍스러운 아기 침대나 바버라가 만드는 도자기, 또 소소하고 시시콜콜한 마을 사람들의 이야기는 10년 차 부부의 미래에 대한 기대와 걱정이 섞인 ‘Ready, Set, Not Yet’이라는 노래로 설명된다. 그 와중에도 비틀주스는 부부에게는 보이지 않고 관객들에게만 보이는 존재로 아담과 바버라의 노래와 대사 사이사이에 끼어들며 곧 죽을 목숨인데 저런 걸 걱정한다든가, 먹지고 못할 샌드위치는 왜 만드냐고 비아냥거리며 부부의 운명을 상기시킨다. 그리고 이 장면이 끝나갈 때쯤 두 사람은 거실 중앙의 바닥이 무너져서 목숨을 잃게 된다. 원작에서는 두 사람이 운전 중  갑자기 나타난 개를 피하려다가 다리 밑으로 차가 떨어져서 죽는 것으로 나오는데, 무대 위에서 모든 것을 해결하기 위해 그 상황을 집 안으로 옮겨온 듯하다. 그렇게 그들은 죽고 떨어졌던 곳에 누워 있는 시체들을 보고 자신들이 영혼이 되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 찰나에 비틀주스는 모습을 드러내 아담과 바버라에게 자기를 소개한다. 

첫 장면을 구체적으로 설명한 이유는 이 장면이 앞으로 전개될 이야기에서 비틀주스를 비롯한 인물과 어떤 관계를 맺어야 할지 명확하게 선을 그어 주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비틀주스는 등장 순간부터 관객과 무대 위에 존재하는 제4의 벽을 마음껏 넘나들며 제멋대로인 성격을 잘 드러낸다. 원작에서는 비틀주스가 등장하기까지 거의 한 시간 가까이 걸리는데, 무대에서 이런 전개를 과감하게 쳐낸 것은 일찌감치 관객의 관심을 얻는 데에 효과적이었다. 이렇게 <비틀주스>는 원작과 다른 디테일로 이야기가 진행되지만, 이미 첫 장면에서 관객의 마음을 잘 얻어냈다. 



 

생명력이 넘치는 인물들

비틀주스는 작품의 대부분에서 존재감을 과시한다. 분명히 죽어 있는 인물이지만 무대 위에 올라와 있는 누구보다도 생명력이 넘친다. 위에서도 말했듯이 <비틀주스>는 원작과 인물의 배경이나 동기가 조금씩 다르다. 예를 들면 원작에서는 리디아의 새엄마인 딜리아가 무대에서는 리디아의 ‘라이프코치’로, 아빠 찰스와는 아직 결혼하지 않은 사이로 나온다. 찰스와 딜리아가 연인 관계라는 것을 뒤늦게 깨달은 리디아는 큰 상처를 받고 집 꼭대기에서 떨어져 죽으려 한다. 그리고 그녀는 이미 집 꼭대기에서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고 있던 비틀주스를 만나 결과적으로 그와 얽힌다. 원작에서는 비틀주스가 위기에 처한 아담과 바버라를 구해 주는 대가로 리디아에게 결혼을 약속받지만 뮤지컬 속 찰스와 딜리아는 리디아와 아담, 바버라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집을 허물 생각을 멈추지 않는다. 때문에 리디아와 아담, 바버라는 비틀주스의 도움을 구한다. 2막 중간까지 진행되는 동안에도 비틀주스가 바라는 바가 이루어지지 않고 저승에서 엄마를 불러오려는 리디아의 고집으로 갈등은 심화된다. 이는 뮤지컬에서 비틀주스가 이야기 전반에 훨씬 더 중요하고 중심적인 인물로 등장한다는 것을 말해 준다. 가짜 결혼을 통해 갈등이 풀리는 상황은 비슷하지만 가장 큰 차이점은 원작에서는 저승의 상담사로 존재하는 주노가 무대에서는 알고 보니 비틀주스의 엄마이고, 갈등이 해소되는 과정에서 비틀주스와 엄마의 묵은 대립과 비밀을 알게 된다는 것이다. 결국 엄마는 모래벌레에게 잡아먹히고, 비틀주스는 다시 살아났다가 저승문이 열렸을 때 죽은 영혼이기에 자연스럽게 저승으로 간다. 그리고 리디아와 찰스, 딜리아, 아담, 바버라 모두가 그 집에서 함께 산다는 나름의 해피엔딩으로 막이 내린다. 

이렇게 무대 위에서 가장 도드라지는 인물이 비틀주스인 만큼, 비틀주스를 맡은 알렉스 브라이트만을 향한 관심이 높다. 그는 전작 <스쿨 오브 락>에서 듀이를 맡아 아주 독특한 에너지를 보여준 바 있는데, <비틀주스>에서는 처음부터 끝까지 무대를 휘어잡으며 시끄럽고 건방지지만 밉지 않은 악령 캐릭터를 찰떡처럼 소화한다. 물론 망나니 같은 원작의 비틀주스와는 달리 엄마와의 관계에서 받은 스트레스를 가지고 있는 인물이라는 점에서 호불호가 갈릴 수 있겠으나, 그런 부분조차도 브라이트만의 연기 덕분에 사족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일주일에 8번이나 이렇게 텐션 높은 인물을 연기하고 있는 브라이트만 역시 토니 어워즈 남우주연상 후보에 올랐는데 상을 받은 <투씨>의 폰타나만큼이나 상을 받아 마땅한 무대를 펼친다. 그와 함께 무대 위의 가장 중심적인 인물은 소피아 앤 카루소가 맡은 리디아다. 원작의 리디아가 워낙 쿨한 인물로 그려졌기 때문에 무대 위의 리디아가 감정적이면서도 죽은 엄마에게 집착하는 듯한 인물로 표현된 것에 반발하는 평도 없지는 않다. 그러나 17세인 카루소의 노래와 연기가 리디아의 감정을 믿음직하게 그려내 주기 때문에 공감을 살 수 있었다. 또한 브로드웨이 베테랑 레슬리 크릿처가 맡아 연기한 딜리아는 리디아의 라이프 코치라는 위장 직업을 가진 인물로 별로 똑똑하지는 않아 여러 순간 웃음을 주는데, 매너리즘적인 표현이나 말투 등 사소한 디테일에서 배우의 기량이 돋보인다. 마지막으로 언급하고 싶은 배우들은 아담과 바버라 부부 역할을 맡은 롭 맥클루어와 케리 버틀러다. 이들은 따뜻하고 다정한 인물을 잘 연기하지만, 다른 캐릭터들이 워낙 강해서 상대적으로 존재감이 묻히는 면이 없지 않다. 케리 버틀러는 특히 멜로디의 고음을 멋있게 보여주지만, 이런 장면이 많지 않아서 흐릿한 인상으로 남았다.



1980년대의 감수성

등장인물의 성격과 디테일 수정에 가장 크게 기여한 인물은 대본을 집필한 스콧 브라운과 앤서니 킹 콤비다. 이들의 전작 중 가장 잘 알려진 작품은 한국에서도 꽤 사랑을 받았던 코미디 뮤지컬 <구텐버그>로 <비틀주스>에서도 분명한 위트를 보여준다. 그러나 상대적으로 이야기나 메시지가 단조로운 <구텐버그>에 비해 <비틀주스>는 인물의 관계나 현실과 판타지를 넘나드는 부분에서 신경 써야 할 점이 더 많은데 이 디테일을 놓친 순간들이 더러 있다. 예를 들면 2막에서 리디아는 엄마를 찾으러 저승에 내려갔다가 오는데, 리디아를 혼자 보낼 수 없었던 아빠가 리디아를 따라간다. 이들은 저승에서 엄마를 찾지 못했지만 여러 상황을 통해 서로를 이해하고 무사히 돌아온다. 이런 과정을 통해서 찰스와 리디아의 관계가 확연하게 달라진다는 점을 고려할 때 무게를 더 줘도 좋았겠지만 수박 겉핥기식으로 대충 지나간 부분은 아쉬웠다. 또한 현실에 발을 붙이고 있는 판타지를 만드는 데 중층적으로 신경을 썼어야 할 사회적인 메시지가 상당히 백인 남성 중심의 이야기가 된 점은 <비틀주스>가 갖는 문화적 가치를 고려할 때 더 실망스러웠다.

현재 브로드웨이에서 활동하고 있는 슈퍼스타 연출가 중의 한 명인 알렉스 팀버스와 음악을 맡은 에디 퍼펙트, 그리고 극작을 맡은 브라운과 킹 콤비를 비롯해 무대, 의상, 조명에 이르기까지 작품의 창작진이 모두 백인 남성이기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워낙 이런 소재에서 인지 감수성이 떨어지는 워너브라더스의 작품이기 때문이었는지 모르겠지만, 무대 위의 여성은 하나같이 코미디를 위해 정형화된 인물들이다. 심지어 비틀주스와 함께 극을 이끌어 가는 존재인 리디아마저도 필요 이상으로 감성적으로 그려졌다. 그뿐만 아니라 무대 위에 존재하는 모든 주요 인물들이 백인인 가운데 케빈 문 로라는 동양계 배우가 한 명 등장하는데, 이 인물은 딜리아의 영적 선생으로 남성성이 많이 사라진 인물로 그려진다. 다시 말해 동양인은 여성적이고 영적이라는 진부한 공식이 그대로 대입된 캐릭터였다. 느리지만 확실히 진일보하고 있는 브로드웨이에서 백인 남성을 제외한 모든 인물이 퇴보적으로 그려져 있다는 점은 굉장히 아쉬웠다. 물론 어떤 관객들에게는 나름 노스탤지어가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웃음과 감동이 있는 뮤지컬

두 시간 반의 공연을 보면서 앞의 두 시간은 정말 즐거웠다. 관객에게 대놓고 까부는 비틀주스도 재미있고, 아담과 바버라가 유령으로서의 삶에 적응해 나가는 것도 소소하게 웃음을 자아냈다. 그러나 2막의 중간이 지나면서 위에 언급했듯이 내용 면에서 그리고 작품의 메시지에서 불편하고 아쉬운 부분들이 많아지면서 개인적으로 결말이 그렇게 즐겁게만 다가오지는 않았다. 그렇지만 비틀주스라는 캐릭터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두 시간 반 가까이 이어지는 그의 독무대에 충분히 공연을 즐길 수 있을 듯하다. 알렉스 브라이트만의 광기 넘치는 비틀주스가 무대 위에 있는 한, 관객의 재미는 80% 정도는 보장되니까! 또한 20세기 초 표현주의적인 미학을 그대로 옮겨놓은 데이비드 코린스의 무대는 신선했고, 마이클 커리가 디자인한 거대한 모래벌레 인형이나 1막 마지막에 등장하는 비틀주스의 거대한 얼굴과 팔 인형도 꽤 인상적이었다. 

무엇보다도 죽음이란 소재로 웃음을 그려내 삶을 이야기한 것은 꽤 효과적이었다. 결과적으로 죽음과 카오스를 상징하는 비틀주스는 저승으로 돌아가고, 리디아와 찰스, 딜리아는 새로운 가족으로 거듭난다. 또 이미 죽었지만 죽은 다음의 여러 상황을 통해서 성장하게 된 아담과 바버라 역시 이들과 함께 대가족을 이루게 된다. 비틀주스를 제외한 모든 인물이 혼자가 아닌 함께하는 삶을 노래하는데, 이것은 공연의 시작과 함께 비틀주스가 노래를 불렀던 죽음과 대비되어 나름대로 마음 따뜻하게 끝난다. 그리고 이 부분이 이 작품의 매력이라는 생각도 든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시즌 전반적으로 기대 이상이었던 뮤지컬 코미디 신작들과 더불어 또 다른 색깔의 나름 성공적인 뮤지컬 코미디로 한동안은 계속 사랑을 받을 수 있지 않을까 점쳐 본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91호 2019년 8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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