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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처 | [TALK TALK] 2019 창작산실 올해의 신작 돌아보기 [No.199]

글 |안세영 사진제공 |라이브, 공연창작소 M.A.P,한국문화예술위원회 2020-04-29 4,127

2019 창작산실 올해의 신작 돌아보기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창작 공연 지원 사업 ‘공연예술 창작산실-올해의 신작’에 선정된 뮤지컬 네 편이 작년 12월부터 올해 3월까지 차례로 무대에 올랐다. 이 가운데 가장 늦게 개막해 관람할 수 없었던 <아티스>를 제외하고, 나머지 세 작품 <안테모사>, <봄을 그대에게>, <비아 에어 메일>이 어떤 가능성을 보여줬는지 본지 기자들이 이야기를 나누었다. 

*외부 참여자: 정수연(공연 평론가), 최영현(스테이지톡 기자)




가족 뮤지컬의 가능성 <안테모사>

최영현_ 이 이야기의 핵심은 단순하다. 마지막 노래 가사에도 나오듯 다른 건 틀린 게 아니라는 거다. 그런데 그 이야기를 하기에는 주인공 몰페와 두 할머니가 왜 혐오와 배제의 대상이 되었는지가 불분명하다. 텔레스는 너무 예쁘다는 황당한 이유로 마을에서 쫓겨나고, 페이시노에는 자기가 만든 빵을 먹은 아이가 배탈이 났다는 사소한 이유로 겁먹고 제 발로 도망친다. 알비노인 몰페는 세상과 부딪혀보기도 전에 두 할머니에 의해 집 안에 갇힌다. 사회가 이들을 추방한 게 아니라 스스로 고립된 것처럼 보인다. 
정수연_ <안테모사>의 장점은 소재가 참신하고 주제 의식이 진지하다는 거다. 현대 사회의 화두인 대안 가족, 소수자 혐오, 마녀 사냥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려 있다. 하지만 쫓겨난 세 여자의 서사가 부실하다 보니 그 어떤 이야기도 제대로 하지 못한다.
최영현_ 중간에 몰페가 마을 사람들에게 상처받고 돌아와서 할머니들에게 거침없이 화를 내는 장면도 이해가 안 간다. 어쨌거나 할머니들은 평생을 함께한 가족 아닌가. 
정수연_ 늘 자기한테 친절한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살던 몰페가 난생처음 적대적인 반응을 경험했다면 먼저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질문하게 되지 않을까? 여태 할머니들에게 속았다는 걸 알았으니 당장 쫓아가서 따질 거라는 발상은 너무 관성적이다. 디테일한 이야기를 요구하는 설정을 깔아놓고 관성에 따라 이야기를 전개시키는 점이 많아 아쉽다. 
박보라_ 마녀를 두려워하던 제논이 어느 순간 몰페의 가족들과 함께 밥을 먹으며 행복한 시간을 보내는 것도 의아하다. 또 텔레스가 우체부의 낡은 구두를 고쳐주는 에피소드는 이들이 마녀라는 오해를 풀고 마을 사람과 다시 가까워지는 계기가 될 수 있건만, 그 중요한 장면을 관객에게 보여주지 않더라. 나중에 우체부가 대사로만 구두를 돌려받았다고 설명하는데 내가 그 장면을 놓친 건가 어리둥절했다.
안세영_ 서로의 다름을 아름다움으로 받아들이는 결말로 나아가기 위한 해결책을 보여주지 못했다. 마녀의 집을 철거하러 온 마을 사람들이 자기가 버렸던 물건을 보고 추억에 잠겨 마음을 돌리는 결말은 너무 갑작스러워 감동적이지 않았다.
정수연_ 등장인물들은 공연 내내 계속 아름다움에 대해 말하는데, 정작 무대 위에서 아름다움을 찾아보기가 어렵다. 숲속의 집도 그렇고, 몰페도 그렇다. 적어도 몰페는 마녀로 의심될 만큼 매력적인 모습으로 표현되어야 하지 않을까. 의상과 소품이 인물과 이야기의 불명확함을 강조하는 면이 있다. 하지만 똑같은 세트라도 세 여자의 서사를 잘 쌓아서 그들이 아름다운 일상을 살아 왔다는 걸 보여 주면, 마을 사람들이 버린 물건으로 만든 그들의 집을 보고 아름답다고 말할 때 황당하게 다가오지만은 않았을 거다. 지금은 과정 없이 결과로만 치달으려고 하니까 억지스럽다. 
배경희_ 창작뮤지컬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어둡고 무거운 이야기가 아니라 밝고 따듯한 이야기라는 점은 좋았다. 하지만 주인공 몰페를 비롯한 등장인물들이 마치 어린이의 시선에 맞춰 그려진 듯해 구연동화를 보는 느낌이 있었다. 
정수연_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아동과 성인이 함께 볼 수 있는 가족 뮤지컬로 발전할 가능성이 있지만 현재로선 그저 타깃이 모호하게 느껴진다. 공연의 규모도 이야기와 어울리지 않았다. 규모를 줄이고 이야기의 밀도를 높일 필요가 있다. 




높은 완성도의 아쉬움 <봄을 그대에게>

배경희_ <봄을 그대에게>는 세 작품 가운데 만듦새가 가장 좋았다. 하지만 오늘날의 젊은 창작자가 1987년의 젊은이들을 바라보는 새로운 관점, 그를 통해 지금의 관객에게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무엇인지 잘 전해지지 않았다. 
정수연_ 시대를 막론하고 청년들에게 세상은 봄인 적이 없었다. 그런데 이 작품은 제목부터 봄이라는 적극적인 단어를 사용했다. 젊은 창작진이 보여주고픈 봄이 뭘까 궁금했는데 작품 속에서 인물들이 꿈꾸는 봄은 여전히 피상적이더라. 이 작품이 1987년 대학생들의 시위를 그리는 방식은 운동권에 대한 낭만을 되풀이해 보여주는 데 지나지 않는다. 게다가 이 작품이 묘사하는 시대의 분위기는 1987년보다는 1970년대를 연상시킨다. 만약 학생들이 준비하는 연극이 이야기의 중심이 됐다면 디테일한 고증의 문제가 부각되지 않았을 거다. 연극은 실제 역사보다 더 보편적인 이야기지 않나. 존재하지 않는 희망을 통해 현실을 전망할 수 있는 상징적인 장치로 연극이라는 소재를 가져왔는데, 정작 그 연극을 무대에서 제대로 활용하지 못했다.  
안세영_ 이중으로 된 무대 구조는 극중극을 보여주는 동시에 중심과 주변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위한 장치인 것 같다. 대학생들은 세트의 중심에 놓인 연극 무대에서 목소리를 내지만 미란과 윤식으로 대표되는 빈민층, 노동자 계층은 그곳에 설 기회를 갖기 힘들다. 작품 속에 여러 번 인용되는 릴케의 시에서 봄은 ‘도시가 아닌 숲’에서 오는 것, ‘손잡고 함께 걷는 사람’만 볼 수 있는 것으로 설명된다. 연극반 학생들은 그 시의 내용처럼 약자가 힘을 합치면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지만, 정작 자기들 가까이 있는 가장 주변화된 존재와 손잡는 데 실패한다. 그런 면에서 세상에 맞서 권리를 얻기 위해 나보다 더 권리가 없는 사람과 어떻게 연대할 것인가에 대한 문제의식을 남기는 작품으로 이해했다. 하지만 그게 유월항쟁이라는 특정 사건을 돌아보고 그것을 조명하기에 적절했는가에 대해서는 의문이 남는다. 
최영현_ 1987년의 정치적인 상황과 맞물려 주인공 명하의 성장 서사가 두드러졌다. 요즘 젊은이들에게 군부 독재라는 시대 배경이 낯설지 몰라도 기성세대에 억눌려 사는 명하는 쉽게 공감할 수 있는 인물이다. 개인적으로 군인 아버지의 뜻에 따라 살아 왔던 명하가 대학교 연극반에 들어가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찾고 아버지에게 반항하는 과정을 따라가며 공연을 봤다. 다만 그랬을 때 성장도 퇴보도 아닌 어정쩡한 상태에서 끝나는 엔딩이 아쉬웠다.
정수연_ 성장 서사라면 주인공인 명하의 이야기에 집중해야 하는데 이 작품은 연극반 전체의 이야기다. 그렇다면 주인공은 연극이 되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했다. 결국 누구도 주인공이 되지 못한 거다. 그러다 보니 나름의 의도가 담긴 이중 구조 무대도 배우의 동선을 방해하는 것처럼 보였다. 
박보라_ 처음에는 왜 공중에 박스 조명을 매달았는지 궁금했는데 시위 장면에서 그 박스를 흔드는 걸 보니 어느 정도 의미가 읽혔다. 종소리가 메아리쳐 울리듯 한 사람 한 사람의 외침이 파장이 되어 퍼져 나가는 걸 형상화한 듯하다.
안세영_ 서정적인 음악이 듣기 좋았다. 특히 릴케의 시에 멜로디를 붙인 노래는 극장을 나와서도 계속 흥얼거리게 되더라. 같은 멜로디를 시위 장면에서 강렬한 전자음으로 변주하는 등 극의 상황에 맞게 음악을 활용했다. 
정수연_ 하지만 그 서정적인 음악에서 이 작품이 ‘87년의 봄’을 설명하는 감성은 오로지 낭만이라는 점이 확연히 드러나 아쉬웠다. 음악의 정서는 공연 내내 따뜻한 감성으로만 새어버리고 만다. 이야기의 결이 명확하지 않으니 음악도 낭비될 수밖에 없다. 




‘순간’에 집중한 무대 <비아 에어 메일>

배경희_ 주인공인 파비앙과 로즈 부부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흘러갈 줄 알았는데 우편국장과 메일 보이에게까지 시선이 분산되고, 네 사람 각각의 이야기가 하나로 엮이지 않아서 아쉬웠다. 특히 메일 보이는 오프닝을 여는 중책을 맡아 놓고 본격적인 극이 시작되면 역할이 모호해진다. 
안세영_ 원작인 생텍쥐페리의 소설 『야간비행』은 비행사 파비앙과 그 동료들의 이야기다. 뮤지컬은 여기에 파비앙의 아내 로즈를 등장시켜 새롭게 이야기를 만들었다. 비행사 이야기는 뮤지컬에서 보기 드문 소재라 흥미로웠다. 파비앙과 우편국장이 서로 교신하며 비행하는 과정에는 긴장과 감동을 줄 수 있는 요소가 있었고, 포네틱 코드와 모스부호를 이용한 음악도 신선했다. 문제는 그들의 이야기와 로즈의 이야기가 너무 동떨어져 있다는 거다. 로즈는 실제로 생텍쥐페리의 비행을 만류했다던 아내와 그의 대표 소설 『어린 왕자』에 나오는 장미에서 영감을 얻은 캐릭터로 보인다. 그런데 비행사들의 용기와 책임감이 로즈와 파비앙의 사랑, 로즈가 만든 노래와 하나의 주제로 연결되지 않는다. 
정수연_ 생텍쥐페리의 작품이 지닌 소소하고 아련한 정감이 있지 않나. 생텍쥐페리의 삶과 작품에서 여러 심상을 차용해 그런 분위기를 내려고 한 것 같다. 계속 아름다운 음악과 함께 상념을 나열하는데 그러다 보니 이야기가 흘러가지 않는다. 뮤지컬이라기보다 배경 음악이 들어간 산문 낭송을 듣는 느낌이었다. 
최영현_ 이 작품은 ‘서사’를 그리기보다 무대에 ‘순간’을 펼쳐내려고 노력한 것 같다. 작곡가 로즈는 ‘순간은 음악이 되고 음악은 그 순간을 불러온다’고 말하고, 파비앙은 ‘우린 각자의 조종간을 잡고 있는 거야. 당신은 연주하고, 나는 하늘을 날고. 항상 같은 순간에’라고 얘기한다. 실제로 이 작품은 무대 위에 로즈의 집, 파비앙의 비행기, 항공 우편 회사를 나란히 배치하여 각자가 일하는 모습을 동시에 보여준다. 사건 전개 대신 같은 순간을 사는 여러 인물을 병렬적으로 보여주는 데 초점을 맞춘 색다른 형식의 뮤지컬을 시도한 게 아닌가 싶다. 
정수연_ 겉으로 별다른 사건이 일어나지 않는 내면의 드라마라 하더라도 그 내면의 흐름과 내면을 지닌 사람들의 관계는 극적이어야 한다. 그런데 이 작품은 그 극성을 관통하는 중심축이 뭔지 잘 보이지 않는다. 작품은 파비앙의 추락을 태양 가까이 날았던 신화 속 인물 이카로스의 추락, 린드버그 이전에 대서양 횡단에 나섰지만 실패해 잊힌 비행사들의 추락과 같은 선상에 놓는다. 그리고 마지막에 그 모든 게 ‘추락이 아닌 비상’이었다고 노래하는데, 하고 싶은 이야기가 그쪽이라면 처음부터 추락이 왜 비상인가에 대한 이야기를 중심으로 극을 끌고 가야 한다. 또 이런 이야기에 시간의 흐름에 따른 선형적 서사 구조가 적합한지도 고민해 봐야 한다. 공연이 시작되고 한 시간이 지나서야 비행기 추락 조짐이 보이다니. 파비앙은 추락해 죽고 관객은 지루해 죽는다.  
배경희_ 추락과 비상의 숭고함을 이야기하기에는 파비앙에게서 날고 싶은 욕망이나 자기 일에 대한 소명 의식이 잘 느껴지지 않았다. 그런가 하면 작곡가인 로즈를 보여줄 때는 곡을 쓰는 모습보다 파이를 굽는 장면을 중요하게 연출한다. 무대에서 배우가 직접 파이를 만드는 장면을 보여주는 것은 분명 분위기 환기에 도움이 되지만 캐릭터로서 본질을 흐리지 않았나 싶다. 그런데 후반부에 가서 갑작스럽게 자신들의 사명을 지키려고 하니까 그게 잘 와닿지 않더라. 
박보라_ 동감이다. 파비앙이 사랑하는 로즈를 속이면서까지 위험한 비행에 나서는 이유를 모르겠다. 후반부에 가서야 파비앙의 형제가 제때 약이 배달되지 않아 죽었다는 과거사가 나오지만, 대사로 짧게 언급하고 지나갈 뿐이다. 
최영현_ 중간중간 우편물 배달을 사람과 사람 사이를 ‘연결’하는 뜻깊은 일로 설명하는 가사와 대사가 나온다. 그래서 결국에는 네 인물이 소통하고 연결되는 이야기를 하려는 건가 싶었는데 딱히 그런 것도 아니더라. 
정수연_ ‘연결’이라는 키워드에 주목하면 파비앙의 추락에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비행사들은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기 위해 끊임없이 날아오른다. 그 과정에서 몇 번이고 목적지에 가닿지 못한 채 추락하지만, 그것이 단지 의미 없는 실패이고 아무것도 남기지 못한 소멸인가 생각해 보게 만드는 작품이 될 수 있다. 지금은 주제 의식으로 이어질 수 있는 설정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데 이것들을 분명한 지향점을 갖고 연결해야 한다.



창작산실의 미래

최영현_ 창작산실은 엄밀히 말해 신인 창작자를 지원하는 사업이 아니다. 대부분 기성 작가와 작곡가가 참여하고, 작품마다 기성 제작사가 붙어 있다. 또 순수하게 창작산실을 통해 개발된 작품이 아닌 다른 지원 사업을 통해 개발된 작품도 많다. 그렇다 보니 창작산실의 정체성이 모호한 면이 있다.
배경희_ 창작산실은 사실상 창작자보다는 제작사를 지원하는 사업이다. 그렇다면 뉴욕의 비영리 극장들처럼 제작사가 상업 무대에서 쉽게 선보일 수 없는 과감한 작품을 만들 때 이 프로그램을 이용하면 좋겠는데, 지금은 상업적 가능성을 판가름하는 발판으로 삼고 있어 아쉽다. 나라에서 1~2억 원가량의 적지 않은 돈을 지원받는데 비해 몇몇 작품들은 제작사의 충분한 투자 없이 완성도를 갖추지 못하고 무대에 오른 것 같다.
정수연_ 그래도 그 가운데 의미 있는 성과를 보여준 작품들이 있다. 최근 몇 년 사이 관객과 평단에게 두루 호평받은 <레드북>과 <호프>가 모두 창작산실 출신이지 않나. 창작산실에서는 작년부터 공연화의 강박 없이 창작자를 지원하기 위한 대본 공모 사업을 시작했다. 그렇게 개발된 작품의 가능성을 보고 제작사가 붙어서 공연을 올리는 선순환 구조가 만들어진다면 좋을 것이다. 작품 선정 기준과 방향성도 더욱 명확해질 필요가 있다. 상업적인 성공 가능성이 높은 작품을 지원할 것인가, 아니면 기존 시장에서는 나오기 힘든 실험적인 작품을 지원할 것인가. 실패하더라도 의미 있는 시도를 할 수 있는 가능성 위에서만 다양성은 확보될 수 있다. 다양성이 사라진 시장은 결국 도태할 수밖에 없지 않나. 시장성의 개념을 좀 더 넓고 길게 볼 필요가 있다.  
배경희_ 아쉬운 점도 있지만 그동안 창작산실 덕분에 기존 상업극보다 다양하고 참신한 소재의 이야기를 만날 수 있었다. 1~2회 만에 사라지는 지원 사업이 허다한 가운데 창작산실은 12년째 꾸준히 대표적인 창작뮤지컬 지원 사업으로 자리를 지키고 있다. 앞으로도 참신한 작품을 발굴하는 통로로 남아 창작뮤지컬 발전에 기여하길 바란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99호 2020년 4월호 게재기사입니다.
* 본 기사와 사진은 “더뮤지컬”이 저작권을 소유하고 있으며 무단 도용, 전재 및 복제, 배포를 금지하고 있습니다. 이를 어길 시에는 민, 형사상 법적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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