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닌 테소리
진실한 음악의 목소리
온라인 백과사전 사이트인 위키피디아에 ‘지닌 테소리’를 검색하면 이러한 설명이 첫 번째 줄에 나온다. 공연 역사에서 가장 왕성하게 활동하며 존경받는 여성 작곡가. <펀홈>의 앨리슨처럼 인생에 캡션을 달아 설명한다면, 지닌 테소리는 위 문장을 어떻게 수정하고 싶을까. 이에 대한 그의 답변은 이렇다. “나는 내 자신이 이룬 성취에 대해 직접 이야기하는 것에 익숙하지 않다. 하지만 뮤지컬계에서 가장 명예로운 작곡가들과 함께하는 한 사람으로서 작곡가 앞에 붙은 ‘여성’이라는 단어를 삭제하고 싶다.”
*이 인터뷰는 서면으로 진행됐습니다.
극작과 작사를 맡은 리사 크론에게 작업 제안을 받아 <펀홈>에 참여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당시 리사 크론은 뮤지컬 작업 경험이 없었는데, 이 프로젝트의 어떤 점에 매력을 느껴 참여를 결정하게 됐나요. 리사 크론이 보내준 원작 그래픽 노블을 읽었을 때 곧바로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이건 엄청난 뮤지컬이 될 것이다! 이야기가 그 자체로 노래한다는 인상을 받았거든요. 제 생각에 <펀홈>은 부모라는 존재의 역설을 이해함으로써 비로소 독립적인 존재가 될 수 있다는 ‘해방’에 대한 이야기예요. 우리는 모두 원초적으로 부모에게 닿아 있지만, 그들로부터 멀리 날아갈 필요가 있죠. 시간 순서대로 흘러가는 드라마가 아니라 어려운 작업이 되겠다 싶었지만, 저는 리사가 어떤 극작가인지 잘 알고 있었어요. 그녀의 글은 생동적이고 시적이에요. 그렇기 때문에 극작은 물론 훌륭한 작사가 역할까지 해내리란 걸 알았죠.
뮤지컬에서 흔히 다루는 소재가 아닌 레즈비언의 이야기를 한다는 것에 대한 부담은 없었나요? 설령 흥행에 성공하지 못하더라도 이 이야기가 세상에 필요하다고 생각했는지요. 미국 뮤지컬에 레즈비언 주인공이 등장하는 경우는 거의 없어요. 그런 작품이 있다고 해도 레즈비언이 남성의 시각으로 그려지기 마련이죠. 아빠와 딸의 이야기를 딸 입장에서 풀어가는 작품도 찾아보기 힘들긴 마찬가지고요. 하지만 지금까지 40년 동안 공연 일을 해오면서 저는 언제나 소외된 등장인물들의 이야기에 관심을 가졌어요. 공연은 현실을 비추어 세상을 대변할 필요가 있거든요. 무대 위에서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을 그려내고, 이곳에는 말해져야 할 이야기들이 가득하다는 것을 보여줘야 해요.
앨리슨 벡델이 쓴 그래픽 노블을 뮤지컬로 바꾸는 데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점은 무엇이었나요. 앨리슨을 연령대별로 나누어 등장시키는 아이디어를 찾기까지 어떤 시행착오를 겪었는지 궁금합니다. 저는 항상 ‘지금까지 어떻게 살아왔으며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라는 주제에 관심이 있어요. 뮤지컬적으로 말하면, 우리 모두의 인생에는 지나간 과거 속 멜로디를 노래하다 새로운 노래를 써 내려가기 시작하는 순간들이 있죠. 때문에 리사와 저는 앨리슨의 이야기를 뮤지컬로 각색하기 위해선 그녀의 인생에서 중요했던 시기들을 무대에 옮겨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작업 초반 우리 둘 다 작품에 대한 아이디어가 너무 많았던 탓에 좌절에 부딪친 적이 있는데, 그때 연출가인 샘 골드가 저희에게 이런 이야기를 해줬어요. “오직 두 사람만이 쓸 수 있는 작품을 쓰는 것은 쉬울 거예요. 하지만 우리 작품이 보여줘야 하는 것은 그게 아니에요. 쉬운 목표를 가지고 성공하기보다는 작품의 야심을 좇아 실패하세요.” 그 말을 듣는 순간, 리사와 나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아이디어를 반으로 줄였고 그 결과 세 명의 앨리슨이 각각 등장하는 대본이 만들어졌죠.
이 작품의 뮤지컬 넘버 가운데 음악 작업에서 중요한 모티프가 된 곡이 있나요? 어떤 곡을 가장 먼저 썼는지요. 우리가 이 작품에서 제일 처음 쓴 것은 오프닝 곡 ‘다 기억나(It all comes back)’의 첫 가사 ‘아빠, 이리 와봐, 아빠가 필요해. 뭐 하는 거야, 오라니까!(Daddy, hey daddy, come here okay? I need you. What are you doing, I said come here….)’예요. 리사는 이전에 가사를 써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그녀가 순조롭게 작업을 시작할 수 있도록 제가 대본의 일부를 발췌해 보내줬죠. 가사 쓰기는 뮤지컬에서 가장 어려운 부분이라 처음에는 누구나 어떻게 작업을 시작해야 할지 두려울 거예요.
전작인 <캐롤라인 오어 체인지>에서 피날레 장면을 스무 번에 가깝게 새로 쓴 것으로 알고 있어요. 혹시 <펀홈>에도 여러 번 고쳐 써서 완성한 곡이 있나요? 좋은 질문이네요! 리사와 나는 오프닝 넘버를 전통적인 뮤지컬 스타일에 맞게 쓰고 또 썼어요. 그런데 그중 어느 것도 최종 버전으로 만들어지지 않았어요. <펀홈>을 작업하면서 모든 작품을 고전적인 방식으로 이야기할 수 없다는 것을 배웠죠.
2015년 토니 어워즈의 음악상은 당신과 리사에게 돌아갔고, 이는 역사상 첫 여성 콤비의 수상이라는 점에서 많은 화제가 됐어요. 이 트로피가 당신에게는 어떤 의미로 다가왔나요. 뮤지컬에서 여성 콤비가 음악상을 받는 것은 이미 오래전에 이루어져야 했던 일이에요. 저희의 트로피는 사람들에게 이 사실을 상기하게 해줬죠. 물론 상을 받은 것은 명예로운 일이지만, 저희가 ‘처음’이 아니었다면 더 기뻤을 거예요.
당신의 과거 이야기를 해보자면, 세 살 때부터 피아노를 쳤지만 그건 취미에 가까웠고, 대학에 입학할 때까지 의사를 꿈꾸었던 걸로 알고 있습니다. 뮤지컬 작곡가의 길을 가야겠다고 확신을 준 작품이나 사건이 있었나요. 앞으로 어떤 길을 가야 할지 진로를 결정하는 중요한 시점에 내가 가장 진실한 사람이 될 수 있는 곳이 어디인지 생각해 봤어요. 그러자 ‘음악’이라는 답이 나왔죠. 어렸을 때 과학 공부를 좋아했지만, 그보다 더 좋아했던 게 음악이었거든요. 성장 과정에서 음악을 접할 수 있는 기회도 많았고요.
본격적으로 뮤지컬 작곡을 하기 전 오랜 기간 편곡을 맡거나 음악감독을 하면서 커리어를 쌓았습니다. 이때의 경험들이 작곡가로서 어떤 도움을 주었나요. 창작에 대한 압박이나 부담 없이 뮤지컬 작업을 해보는 것은 창작자에게 좋은 경험이에요. 일이 이루어지는 과정을 직접 겪어 보면 창작자가 갖춰야 할 친절한 태도나 일에서 품위를 잃지 않는 방법을 배울 수 있거든요. 제 경우엔 다른 작업을 했던 경험들이 각기 다른 파트의 팀원들이 어떤 일을 하는지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됐어요. 한 작품을 함께하는 사람들 각자가 일할 때 무엇을 필요로 하고, 어떤 점에서 도전해야 하는지, 동료들의 역할을 이해하는 것은 자기가 맡은 일을 하는 데에 도움을 주죠.
어떤 유명 뮤지컬 작곡가들은 본인이 작사가를 겸하기도 하지만, 당신은 순수하게 작곡가로만 활동해요. 특정 작사가를 작업 파트너로 두지도 않고요. 이는 당신이 더욱 빛나는 이유 중 하나라고 생각하는데, 이렇게 활동하는 데는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제 가사는 최악이에요! 어떤 가사가 훌륭하게 쓰였는지 알아볼 수는 있지만, 그런 멋진 가사는 쓸 수 없어요.
<펀홈> 같은 실험적인 작품과 <슈렉> 같은 상업 뮤지컬 사이를 오가며 활동할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인가요. 아직까지는 다양한 성격의 작품을 오가는 여성 창작자가 많지 않은 것이 현실이니까요. 제가 스물네 살에 만난 멘토는 음악의 창조적인 면과 비즈니스적인 면을 두루 이해하고 있었어요. 저는 그에게 창작자가 자유를 얻기 위해서는 작품을 써야 한다는 사실을 배웠죠. 제가 쓰는 작품이 오랫동안 롱런하거나 상업적인 성공을 거두지 못 하더라도요. 강렬하고 활기차고 살아 있는 작품을 쓰도록 노력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는 점을 배운 것은 저에게 큰 가르침이 됐어요.
코로나19로 인해 유례없이 전 세계 유명 극장가가 문을 닫은 요즘 같은 때, 성공한 뮤지컬 작곡가 중 한 명으로서 느끼는 바가 남다를 것 같습니다. 지금이야말로 우리가 공연을 어떻게 만들지, 공연을 하는 이유는 무엇인지 다시 점검해 봐야 할 때라고 생각해요. 사회 시스템이 돌봐주지 않는 소외된 사람들을 돕기 위해 공연계가 어떻게 바뀌어야 하는지 생각해 볼 때이죠. 지금은 잠시 지금까지 달려온 속도를 늦추고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사람들의 생각을 배우고, 무엇이 중요한지 생각해야 해요.
현재 작업 중인 새로운 프로젝트가 있을까요? 메트로폴리탄 오페라를 위한 새로운 오페라와 내년에 오프브로드웨이에 올라갈 뮤지컬 작업을 하고 있어요. 젊은 여성들을 위한 작업 트레이닝도 멈추지 않고 계속할 계획이에요.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202호 2020년 7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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