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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PARTNERS] 왕용범 연출가와 이성준 음악감독 [No.127]

글 |배경희 사진 |김호근 2014-04-07 6,276

지란지교를 꿈꾸며

지난 3월 선보인 대형 창작뮤지컬 <프랑켄슈타인>에 대한 관객 반응이 무척 뜨겁다. <프랑켄슈타인>은 왕용범 연출가와 이성준 음악가 콤비의 첫 번째 창작뮤지컬. 두 남자는 체코 뮤지컬 <삼총사>, <잭 더 리퍼>를 국내 관객에 맞게 각색해 선보이며 대중적 감각을 인정받아왔다. 라이선스 뮤지컬로 오랜 기간 호흡을 맞추며 자신들만의 프로젝트를 준비해 온 두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믿음으로 함께 버틴 시간 

두 분의 만남은 왕용범 연출의 러브콜로 이루어졌다죠? 연출님께서 당시 신인이었던 이성준 감독에게 먼저 작업 제안을 하셨다고 들었어요. 
왕용범    그 부분은 기억을 못해요. 저는 지나간 일은 기억을 안 하기 때문에….
이성준    저는 정확하게 기억해요. 그런데 그 이야기를 하면 문제가 있을 것 같은데… 연출님, 이제 기억나세요? (일동 웃음) 저희가 처음 만난 작품은 2006년에 올라간 <도로시>라는 어린이 뮤지컬이에요. 그때 연출님이 작곡가를 찾고 계셨던 모양이에요. 아는 분 소개로  <도로시> 데모 곡을 보냈는데, 속된 말로 몇 번 까였어요. 그래서 첫인상이 썩 좋지 않았어요. (웃음) 첫 미팅에서는 뭐, 남자 둘이 만나서 밥 먹으면서 수다 떨 일은 없잖아요? 말을 많이 안 했죠. 학교도 다르고, 세대도 조금 다르고, 처음엔 연출님이 어려웠어요. 지금은 제가 말만 안 놓았지 거의 친구처럼 지내지만.
왕용범    <도로시>는 『오즈의 마법사』를 좀 더 도로시 입장에서 각색한 건데, 어디서 다시 했으면 좋겠다 싶을 정도로 아쉬운 작품이에요. 뭐 어쨌든 이성준 감독 얘기처럼 <도로시> 작곡가를 찾으면서 여러 사람에게 데모를 받았어요. 그런데 대부분의 곡이 테크닉은 좋은데, 그냥 흘러가지 마음이 안 느껴졌어요. 반면 이성준 감독 곡은 좀 특별했어요. 뭐랄까, 노래를 듣고 있으면 느껴지는 게 많은? 테크닉이 화려하진 않았지만, 감성이 따뜻했죠.


이성준 감독님의 첫 작품이 <오! 당신이 잠든 사이>(이하 <오! 당신>) 2005년 작이니까, 데뷔하고 나서 거의 바로 파트너를 만난 셈이네요?      
이성준
    네, 그때부터 지금까지 연출님과 쭉 같이했으니까. 아, 제 입봉작 <오! 당신>의 모티베이션이 연출님의 <밑바닥에서>(2005)였어요. 당시 <밑바닥에서>가 소극장 창작뮤지컬의 신화였거든요. 그 작품 인기가 아주 좋았죠. 저도 <오! 당신> 연출님하고 같이 <밑바닥에서>를 보러 갔었는데, 오프닝 신이 아직도 기억나요. 막이 오르면 갑자기 배우들이 다다닥 나와서 자기들이 무얼 할지에 대해 이야기했죠. 음악 없이 연극적인 요소로 관객들에게 공연의 시작을 알릴 수 있구나, 인상적이었어요.
왕용범    <밑바닥에서> 이야기하니까 생각난다. 저는 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스물여덟에 대학로에 입봉했어요. 브레히트 『서푼짜리 오페라』를 조폭 이야기 뮤지컬로 만들었는데, 당시 그 작품이 티켓 박스에서 <지하철 1호선>(1990년대 최장기 인기 창작뮤지컬)을 제치고 2위를 했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어린 나이에 첫 작품부터 잘되니까 거만했던 것 같아요. 아무튼 작품은 잘됐지만, 전 작품 만들 줄만 알았지 돈 벌 줄은 몰라서 경제적으론 힘들었어요. 그런데 하필 그 시기에 집안이 부도가 났어요. 닥치는 대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몇 년을 살다가 마지막으로 한 편만 더 하고 관두자는 마음으로 했던 게 <밑바닥에서>예요. 그 작품 덕분에 대극장 공연 <햄릿>(2007)을 맡게 된 거고요. 비극을 관객들이 재미있게 보게 만들었다고 <햄릿> 제작사에서 작품을 같이하자고 했죠.

 

 

 


대극장 라이선스 뮤지컬 <햄릿>은 본격적으로 두 분의 파트너십이 시작되는 작품이죠. <햄릿>은 어떻게 기억하세요?               
이성준
    <도로시>는 어린이 뮤지컬이라서 작업 기간이 한 달 정도밖에 안 됐어요. 그러니 연출님 스타일을 제대로 경험한 건 <햄릿>이었다고 봐야죠. 그때 본 연출님은 어떤 면에선 제 생각과 달랐는데, 음, 이 사람은 연출가가 아니라 정말 뮤지컬 연출가구나 싶었어요. 그러니까 제 말은, 음악적으로도 일가견이 있는 연출이라고요. 음악적 지식이 뛰어나진 않았지만(웃음), 그 곡의 문제점을 정확하게 꼬집으셨어요. 이를테면 이 부분은 아름다운데 기쁘지 않아, 이렇게 달라졌으면 좋겠어, 이런 식으로. <햄릿>은 뮤지컬 시스템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을 때 했던 거라, 연출님 마음에 안 드는 점이 많았을 거예요. 그럼에도 많은 부분 저를 믿어주셨어요. 그땐 진짜 의욕이 넘쳐서 편곡을 막 했던 것 같아요. 좀 오버했죠.
왕용범    록 뮤지컬 <햄릿>을 이성준 감독이 클래식하면서 팝스럽게 바꿔놨죠. 그런데 그 막 편곡했다는 악보가 일본에 수출됐어요. <햄릿>이 일본에서도 라이선스로 공연됐는데, 음악을 이성준 감독이 편곡한 버전으로 사 갔거든요. 그래서 원작자들이 우리를 별로 안 좋아했어요. (웃음) 이 이야기는 지금껏 한 적이 없는데, 이성준 감독에게 한 가지 고마운 게 있어요. 이성준 감독은 엘리트 코스의 정석을 밟은 사람이에요. 서울대 음대 나와서, 그 스코틀랜드 어디죠? (이야기하지 말라고 만류하자) 왜, 학교 이야기해봐. 스코틀랜드 왕립음악원? 거기가 캐머런 매킨토시가 이사장으로 있는 학교에요. 거길 아시아인 최초로 입학해서 수석 졸업했어요. 그런 사람이 현장에서 망치질하면서 연극 배우다가 뮤지컬을 시작한 사람하고 음악 이야기를 하려니 얼마나 답답했겠어요. 사실 처음엔 말이 안 통했죠. 그때 저를 이해해주려고 이성준 감독이 참 많이 노력했어요. 그 부분이 늘 고마워요.


연출가로서의 왕용범, 또 음악가로서의 이성준은 어떻던가요?     
왕용범    평상시에 이성준 감독은 곰돌이 푸 같아요. 귀엽죠. 눈물도 많고. 그래서 가끔 안아주려고 해도 몸이 커서 안아지지가 않아. (일동 웃음) 그런데 음악가로선 카리스마가 있어요. 자기 세계가 분명한 작곡가죠. 이런저런 곡을 통일성 없이 쓰는 게 아니라, 작품 전체를 보고 치밀한 계산을 해요. 한 작품에서 각기 다른 장르의 곡을 쓰더라도 모든 곡에 하나의 일관된 흐름이 있죠.
이성준  연습실에서 연출님은….
왕용범    빽빽이지, 빽빽이. (일동 웃음)
이성준  연습실에서 연출님은 천재 같아요. 언변술이 하도 뛰어나서. 저는 배우들이 생각대로 안 따라오면 (다소곳한 목소리로) “왜 안 되죠? 더 지르세요!” 이렇게 말하는 게 다 거든요? 그런데 연출님이 배우들한테 말하는 걸 듣고 있으면 ‘역시 작가야’ 감탄스러워요. 호소력 있는 말로 감정을 끌어내기도 하고, 어떤 때는 자극적인 말로 도발하기도 하고, 배우들을 잘 이끌어 가세요.

 

 

 


<햄릿> 다음 작품인 <삼총사>(2009)부터 대중성을 간파하는 왕용범 스타일이 드러나기 시작했던 것 같아요. <삼총사>는 라이선스 공연이었지만, 연출님께서 상당 부분 각색 작업을 하셨다죠.      
왕용범
    <삼총사>는 극장 대관 계약이 된 상태에서 오리지널 공연을 보러 체코에 갔어요. 그때 작품에 출연하기로 한 배우도 같이 갔는데, 그 친구가 공연을 보고선 “이건 강아지 탈 쓰고 공연하면 좋겠다” 하고 한국으로 가버렸어요. 그 정도로 우리가 예상했던 것과 달랐죠. 그래서 한국으로 돌아와서 제가 대본을 다시 썼어요. 그런 다음 프로듀서에게 “난 이렇게 하겠습니다” 하고 완성된 대본을 보여줬죠. 프로듀서가 처음엔 좀 당황하는가 싶더니, 대본을 보고 나선 그렇게 하자더라고요. 음악도 이성준 감독이 새로 곡을 썼다고 할 정도로 편곡한 거예요. 물론 원작자가 한 게 없다는 건 아니지만, 서울에서 올라간 <삼총사>는 재창작 작품이라고 봐야 해요. 그래서 <삼총사>에 이어서 바로 <잭 더 리퍼>(2009)를 하자는 이야기를 들었을 땐, 이걸 해야 하나, 딜레마에 빠졌어요. <잭 더 리퍼> 오리지널 공연도 <삼총사>와 상황이 비슷해서, ‘크레딧을 인정 못 받는 재창작을 또 해?’ 싶었던 거죠.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봤더니, <잭 더 리퍼>를 해야겠더라고요.
이성준     “이런 작업은 마지막이다.” 그때 연출님이 하셨던 말이에요. 재창작하는 건 이번이 마지막이라고, 그러니까 한 번 더 일을 하자고요. 사실 <잭 더 리퍼>는 안 하려고 했는데, 결국엔 연출님에게 설득당했죠. 연출님이 논리적으로 설명을 잘하시거든요. 그럼 또 저는 잘 설득당하고요. (웃음)


사실 <삼총사>나 <잭 더 리퍼>를 새로 쓴 거나 다름없다고 이야기해도 관객들은 그걸 알 도리가 없잖아요? 직접 오리지널 공연을 볼 순 없으니까. 그럼에도 재창작이 필요한 라이선스 뮤지컬을 계속하셨던 이유가 있었을 텐데요. 
왕용범
    <잭 더 리퍼>는 토씨 하나 원작에서 가지고 온 게 없어요. 원작하고 제목만 같아요, 제목만. 그게 정확한 표현이에요. <잭 더 리퍼>나 앞선 전작을 했던 이유는 우리 스스로 실력이 있는지 확인할 시간이 필요했어요. 외부의 인정도 받아야 했고요. <잭 더 리퍼> 때 이성준 감독을 설득하면서 했던 이야기가 뭐였냐면, “이게 아니면 우리가 30억 원 제작비로 대극장 공연을 해볼 수 있을까?”였어요. 지금 당장 우리에게 그런 기회 줄 사람은 없는데, 대극장 공연은 시스템을 익히지 않고선 절대 잘할 수 없으니 경험을 쌓기 위해 <잭 더 리퍼>를 하자고 했죠.

 

 

 

왕용범 프로덕션의 시작

이후 <락 오브 에이지>(2010)나, <캐치 미 이프 유 캔>(2012) 같은 라이선스 뮤지컬을 몇 편 더 하면서, 슬슬 창작뮤지컬 프로젝트 구상에 들어가셨을 테죠. 본격적인 창작뮤지컬 작업은 언제부터 시작됐나요?  

왕용범    <잭 더 리퍼> 앙코르 공연을 하고 나선 이제 우리 작품 준비하자고 회사(왕용범 프로덕션)를 만들었어요. 임대료가 싼 곳을 찾다보니 망한 병원 자리에 사무실을 얻었는데, 건물이 거의 폐가 수준. 다른 건 괜찮다고 해도, 너무 추운 거예요. 그래도 거기가 병원이었으니까 원장실로 쓰던 방이 있을 거잖아요? 그 온돌방을 이성준 감독에게 내줬어요. 감독님 곡 잘 쓰시라고. 나는 추운 데서 덜덜 떨면서 타이핑하고. (일동 웃음) 그때 한 첫 작업이 소설 『아르센 루팡』을 뮤지컬로 각색하는 거였어요. 그런데 대본을 탈고했더니, <아르센 루팡> 오디션 공고가 뜨더라고요. 다른 프로덕션에서 ‘루팡’을 개발 중이었던 걸 몰랐던 거죠. 똑같은 소재의 작품을 할 순 없으니까, ‘루팡’ 대본은 쓰레기통에 집어넣고 일단 거길 접었어요. 그러고 얼마 안 가 아파트에 사무실을 얻어서 <프랑켄슈타인>을 준비했고요. (잠시 사이) 요즘엔 우리가 정식으로 계약할 필요성을 느끼고 있어요. 이성준 감독을 찾는 데가 너무 많아요! 이성준 감독이 밖에 나가서 잘되면 몰라도 아직까진 제가 보호해줘야 해요. 왜냐면 이 친구가 보기보다 상당히 거만한 사람이기 때문에. (일동 웃음)
이성준    그런데 저 이미 (왕용범 프로덕션) 소속 아니에요? 회사 이름이 백점이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지만. (웃음) 뭐, 백점은 아니어도 좋은 이름이라고 생각해요. 왜냐면 저한테는 연출님이 리더가 맞거든요. 솔직히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때도 있었어요. 사람이 간사한 게 있어서, 연출님하고 몇 작품 하고 나서 다른 데서 작품하면 내가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더라고요. 실제로 그렇게 작품을 했던 적도 있고. 그런데 몇 번 해보고 알았죠. 아, 나는 연출님하고 같이해야 하는구나 하고. 사실 연출님도 중간에 다른 음악감독하고 하려고 했었어요. (일동 웃음) 서로 잠깐 방황의 시기를 거친 후 다시 돌아온 거죠.


두 분의 첫 창작뮤지컬로 40억 규모의 대작   <프랑켄슈타인>을 내놓으셨어요. 작업 과정에 대해 이야기해주셨으면 합니다.   
왕용범
    <프랑켄슈타인> 때문에 작년 일 년은 둘이서 매일 밤샌 것 같아요. 트리트먼트만 한 200번 정도 썼나? 대본 수정고도 공식적으로 서른 개가 넘어요. 우리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작품에 다 넣으면 좋겠지만, 그게 오히려 관객에게 피로감을 줄 수 있으니까 선택해야 할 때가 많았죠. 무엇을 빼고 어떤 걸 살릴 것인가, 이성준 감독과 많이 이야기했어요. 작업 에피소드 하나는 엔딩 신 얘기로 다시 안 볼 것처럼 싸웠던 거예요. 원래 작업 때 많이 싸우는 편인데, 그때는 좀 심하게. 제가 마지막 장면 프랑켄슈타인의 대사 “내게 저주를 퍼부어라, 나는 프랑켄슈타인!”을 노래로 만들자고 해서 이성준 감독이 심하게 반대했거든요. 도입부 없이 클라이맥스만 있는 건 음악이 아니라고, 절대 그렇게 못하겠다고요. 말은 그렇게 해놓고 다음 날 작업실에 갔더니 열심히 피아노를 두드리고 있었지만. (웃음) 결국엔 이성준 감독이 져준 건데, 이성준 감독의 소심한 복수가 그 악보에는 ‘작곡 이성준’을 안 넣었어요.
이성준    연출님의 의도는 이해했지만, 저한테는 그게 욕심으로밖에 안 보였던 거죠. 그런데 연출님 그때 저하고 안 보려고 싸웠어요? 저는 계속 보려고 싸운 건데?
왕용범    나는 안 보려는 건 줄 알았지. 우리는 싸우기 시작하면 서로 자존심 긁는 이야기까지 해요. 이전에 싸웠던 것까지 다 이야기 하고. “예전에도 그러더니 지금 또 그러는 거야?” 뭐 이런 식으로. (일동 웃음) 작업하다 보면 어쩔 수 없이 부딪치게 되고, 그럼 서로 상처 주는 일도 생겨요. 그래도 의견 조율이 안 될 땐 끝까지 싸우는 것밖엔 방법이 없어요. 내가 이기든, 이성준 감독이 이기든, 아니면 다른 타협점을 찾든 간에, 결론이 날 때까지 포기하지 않고 싸워야죠.

 

 

 


개막 후의 뜨거운 반응으로 봐선 <프랑켄슈타인>은 좋은 흥행을 기록할 것 같아요. 사실 전작들도 흥행 성적은 좋았지만, 이번 작품이 좀 특별한 건 이번에는 뮤지컬 팬덤을 끌어들이는 데 성공했다는 점이죠. 소감은 어떠세요?   
왕용범
    <프랑켄슈타인>은 우리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그에 어울리는 배우들과 함께하고 싶다는 마음이 컸어요. 아이돌 캐스팅의 핵심에 있었던 제가 이런 말을 하면 “뭐야?” 싶을까요? (웃음) 아무래도 전작들은 일본 시장을 겨냥해 기획된 면이 있다 보니, 스타 캐스팅이 중요했어요. 하지만 이번엔 이런저런 상황 다 떠나서 작품에 집중하고 싶었어요. 그게 바로 관객들이 바라는 거 아닐까 하는 믿음이 있었고요. 그런 마음이 통하지 않았나 싶어요. <프랑켄슈타인>은 정말 모두가 헌신해서 만들었어요. 우리끼리의 얘기지만, 이게 한국 뮤지컬의 자존심이다, 이런 자세로 작품에 임했기 때문에 다들 개런티보다…, 음, 이런 말을 해도 되나. 전 이번에 연출료를 안 받았어요. 창작뮤지컬은 라이선스 뮤지컬에 비해 투자금이 덜 모일 수밖에 없는데, 예산이 부족하면 가장 먼저 삭감하는 게 무대 제작비거든요. 제일 덩치가 큰 항목이니까. 제 개런티가 얼마나 도움이 될지 모르지만, 무대 제작비에 써달라고 했더니 제작사에서 그보다 더 많은 돈을 투자해주더라고요. 그래서 라이선스 뮤지컬에 비주얼적으로 뒤처지지 않는다는 평을 들을 수 있었던 것 같아요. <프랑켄슈타인>을 보고 다음 작품에 투자하겠다는 연락이 와요. 작품 개발비부터 투자하겠다고요. 그래서 제가 그랬죠. 아니, 작품 다 만들어 놓고 더 비싸게 팔 거니까 기다리라고. (웃음) 말은 그렇게 해도 기분은 좋았죠.

 

끝으로 이번 인터뷰에서 하고 싶은 말이 있으세요?      
이성준    세 시간 공연은 이번에 처음 해보는데, 두 시간 반과 세 시간의 차이가 크더라고요. 세 시간 동안 지휘하는 건 정말 힘들어요. 공연 개막 전부터 계속된 리허설과 공연으로 너무 힘들어서 요 며칠 사무실에 안 갔거든요. 그랬더니 연출님한테 전화가 오더라고요. 왜 사무실 안 오냐고. 일 년 내내 가다가 며칠 안 간 건데? 서로 상황 파악을 하고 막 웃었어요. 이제 연출님은 작업 파트너를 넘어서 인생의 친구가 됐어요. 저희 평소에도 이야기를 진짜 많이 해서 비밀이 없어요. 서로가 서로의 비밀 창고라서 농담으로 그래요. 나중에 네가 먼저 죽어줘야겠다고. (일동 웃음)
왕용범    뮤지컬은 보통 어려운 수학 문제가 아니에요. 정확한 계산을 하려면 상당한 노력이 필요하죠. 이성준 감독은 내가 아는 사람들 중에서 제일 노력을 많이 해요. 그래서 이 사람이 작업에 들어가면 잠을 잘 못 자요. 내가 늘 미안해. 이게 많이 먹어서 살이 찐 건지, 잠을 못자서 부은 건지 잘 모르겠어요. 그런데 이게 또 이성준 감독의 매력이에요. 얼마 전에 살 빼겠다고 해서 내가 그러지 말라 그랬어요.
이성준    저부터 죽이려고 그러는 거죠. (일동 웃음) 연출님도 진짜 노력파예요. 무대 셋업 때만 봐도, 만일의 상황을 대비해서 1안, 2안, 3안을 미리 준비해 오시는데 어쩌면 그렇게 치밀한지. 아, 마지막으로 이 이야기를 해야겠어요. 저희끼리 서로 천재라고 그럴 때가 있는데, 그거 농담으로 그러는 거지, 연출님이나 저나 천재는 아니에요. 우리나라 다른 창작자들도 잘해요. 다만 저희는 운 좋게 호흡이 잘 맞는 파트너를 만난 거죠. 그리고 하나 확실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건, 우리는 누구보다 뮤지컬을 사랑한다는 거예요. 뮤지컬을 사랑하고, 뮤지컬에 최선을 다하는 사람들이죠.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27호 2014년 4월호 게재기사입니다.

* 본 기사와 사진은 “더뮤지컬”이 저작권을 소유하고 있으며 무단 도용, 전재 및 복제, 배포를 금지하고 있습니다. 이를 어길 시에는 민, 형사상 법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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