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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처 | [​SPECIAL] 뮤지컬 속 LGBT, 엔간한 제이미 [No.203]

글 |모어 드래그 아티스트 2020-08-31 3,760

뮤지컬 속 LGBT

<베어 더 뮤지컬>, <렌트>, <제이미>, <펀홈>, <킹키부츠>. 8월에 공연되는 이들 뮤지컬의 공통점은? 바로 LGBT가 주인공으로 등장한다는 것! 무대 위에서 당당하게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어느덧 흥행의 열쇠로 회자되는 LGBT. 이들은 어떤 역사를 거쳐 이 자리까지 오게 된 것일까? 과연 이들은 차별과 편견 없는 세상 속에 존재하는 것일까? 무대 위 그들의 자리를 점검해 보았다. 



엔간한 제이미               

*이 글은 드래그 아티스트로 활동 중인 모어가 드래그 퀸을 꿈꾸는 십 대 소년 이야기를 다룬 뮤지컬 <제이미>를 관람한 후 쓴 에세이입니다. 저자 고유의 글맛을 살리기 위해 표기는 그의 스타일에 따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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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대 위에 금발의 제이미가 등장했다. 얼핏 보아도 아이들에 비해 남다른 비주얼.

일천구백칠십팔 년. 전라도 끄트머리에서 임신한 엄마의 배 모양새를 보고 동네 아줌씨들은 분명코 딸이라 했다. 모두가 당연하게 딸이라고 여겼던 나는 새빨간 거짓말처럼 치부를 달고 나왔다. 나는 어려서 누이의 옷을 즐겨 입었다. 인형 놀이를 하고 오줌도 앉아서 누웠다. 여름이면 누이와 친구들은 나를 바다로 데려가 수영을 가르쳤고, 그 무리 중에 내가 유일하게 남성의 성(性)을 가진 아이였다. 누이와 친구들이 하는 짓을 따라 했고 그들은 나를 사랑스러운 여동생으로 취급했다. 적어도 그때까지는 그 사회 안에서 매우 안전했다.

초등학교에 입학하면서 치마를 입고 계집아이 노릇을 하는 내게 사람들은 그건 잘못된 일이라 가르쳤다. 그들은 내 입으로 “난 호모새끼다”라고 말하기를 강요했다. 그 말이 나올 때까지 폭언과 폭력은 일상이 되어버렸다. 어지간히 도망치려 애를 써도 인간이 인간에게 당하는 모멸감의 늪에서 허우적대기만 했다. 학교에서는 남자아이와 여자아이가 해야 하는 놀이가 명백하게 갈라졌다. 남자아이들이 공놀이를 할 때, 나는 쭈그리고 앉아 다리 사이에 달린 것이 성가셔서 울기만 했다. 그런 내게 아이들은 수치심을 얹어주었다. 어미의 배 속에서부터 세상이 규정한 성에서 조금 다른 색을 가지고 나온 것은 내가 선택하지 않은 무기징역형 불행이었다. 나의 유년기는 치욕으로 얼룩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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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이미는 엄마한테서 그토록 갖고 싶었던 빨강 하이힐을 선물받는다. 

“나는 우리 지민이가 암시렇지도 않은디 왜 사람들은 가시내냐 모시매냐 하는지 모르것씨야. 지민아 너는 노랗게 염색하고 머리띠 하고 다닐 때가 질로 이뻐야.” 제이미의 엄마와 나의 엄마는 한통속이었다. 나는 어려서 춤추기를 좋아했고, 공주 옷을 입고 춤을 추면 어른들은 용돈을 주었다. 학교에서도 장기 자랑 시간에는 항상 1번으로 불려 나갔다. 중학교 체육 시간에 나의 국민체조 춤사위를 기이하게 보신 선생님은 “넌 무용에 소질이 있으니 꼭 그 길을 가라”고 했다. 그때 접한 발레는 지긋지긋한 욕창 같은 삶에 날개를 달아주었고 언제든 날아갈 수 있다는 희망이 보였다. 하지만 여성성이 허용되는 그 세계에서도 결국 남성은 남성이고, 여성은 여성이어야만 했다. 나는 이 사회 어디에도 속할 수 없는 불완전한 죄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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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이미와 같은 반 학생 딘은 제이미가 게이 같다며 모욕을 준다.

일천구백구십팔 년. 겨울 장한평에 예우라는 바(Bar)에서 책에서나 보던 파란 눈의 키다리 아저씨를 만났다. 그는 내게 조금 수줍은 미소로 다가와 ‘당신은 아름다워요’라고 말했고, 나는 바로 그의 손을 잡고 따라나섰다. 시베리아에서 건너온 금발의 키다리 아저씨는 현재의 내 남편이 되었다. 벌써 이십 년이 훌쩍 넘은 일이다.

일천구백구십구 년. 군대에서 커밍아웃을 하자 격리 조치되었고 내 이름 모지민 석 자에 정신질환이라고 씌어 있었다. 내 정체성을 증명하기 위해 한 달간 병무청에서 지정한 정신병원에 갇혔다. 그것으로도 모자라 여성 호르몬을 투여하고 변화된 내 신체를 확인한 후에야 군 면제 5급 판정을 받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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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이미는 동네의 드래그 숍에서 ‘드래그 마더’ 휴고를 만난다.

이천 년 밀레니엄, 처음으로 힐을 신고 가발을 썼다. 꽃다운 스물세 살에는 드래그 퀸이 되었다. 세상에 조롱당하기 위해 스스로 쥐구멍 속으로 들어갔다. 이것이 내 운명을 송두리째 뒤흔들어 놓을 거란 생각은 미처 하지 못했겠지. 난 어리고 아리고 어리석었다. 발레리나가 되고 싶었던 꿈은 이태원 환락가에서 외로운 둥지를 텄다. 빛도 들지 않는 어둡고 습한 지하 세계에서는 젠더가 바뀐 성 소수자로서의 삶이 무척이나 편안하고 즐거웠다. 그 짓이 옳고 그른지도 모르는 사이 내 얼굴의 화장은 더 두터워지고 또 다른 자아가 덩실덩실 춤을 추었다. 난 밤마다 신께 기도를 드렸고 귀신은 ‘넌 결코 평범한 삶을 영위할 수 없어!’라며 내 갈 길을 인도해 주었다. 신과 남편은 내가 하는 일을 뜯어말리지 않았다. 드래그 쇼라는 키치(Kitsch) 문화에는 분명한 내가 있었다. 비로소 그곳에서 자유를 찾았다.

이천십구 년. 스톤월 항쟁 50주년 뉴욕 공연에 초청돼 맨해튼에 있는 스톤월 메모리얼을 찾았다. 아픈 역사를 등지고 피어난 알록달록한 꽃들은 과거를 말하지 않고 그저 수려한 모습으로 그 곳에 살아 숨 쉬고 있었다. 사람들 사이로는 평온한 정적이 유유히 흘렀다. 그때, 어느 백인 남성이 무지개 색으로 칠해진 피아노에서 몹쓸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위해 연주한다. 고단한 여정에 평화의 기운이 무지갯빛으로 드리워졌다. 어쩌면 이 단맛을 보기 위해 매번 고생길에 발을 딛는 고행의 연속. 여기까지 오기에는 속절없는 시간이 하염없이 걸렸다. 아름다운 일은 언제나 존재하는데, 왜 아픈 기억들이 우선인 걸까. 지천에 널린 게 꽃인데 나는 왜 눈이 멀다고만 했을까. 혹여라도 모르고 지나쳐 온 아름다움이 있다면 우연이라도 다시 마주칠 순 없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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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이미는 따로 떨어져 사는 아빠에게 수치스럽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지난해 뉴욕에서 초연한 <13 Fruitcakes>에서 배우들과 내 삶을 이야기하고 그것을 움직임으로 소통했다. 그 과정에서 어떤 상황은 너무 아름답고 처연해서 함께 울기도 했다. 그 공연을 연습하는 시간만큼은 내 존재를 의심할 필요가 없었다. 배우들은 내가 일하는 이태원 클럽에 들이닥쳐 내 쇼를 보고 아름답다고 말해 주었고, 나는 나의 아름다움을 알아봐 주는 그들에게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사람들이 말하고자 하는 아름다움과 내가 말하는 아름다움이 왜 다른지 생각해 보았다. 우린 모두가 아름다운 모습으로 세상에 등장하지만, 세상이 말하는 아름다움과 비교되는 순간 그 아름다움은 힘없이 무너진다. 

연습을 마치고 돌아가던 모월 모요일, 기억이 희미한 어린 날을 떠올렸다. 누이의 친구들과 함께했던 여성 사회에서의 아름다웠던 추억. 그들은 지금 한 가정의 평범한 엄마가 되었고 나는 한 남자의 아내가 되었다. 누군가 내 결혼 뮤직비디오에 이렇게 글을 남기고 갔다. “죽고 싶을 때마다 와서 보는 영상이에요. 영상을 보고 있으면 죽고 싶다가도 다시 살아가도 될 것 같다는 희망이 생겨요. 감사합니다.” 살아오면서 한 일 중에 결혼만큼 옳고 아름다운 짓이 또 어디 있을까. 신은 쓸쓸한 운명에게 온전한 그 시간을 선물해 주었다. 난 삶을 저주했고 내가 선택하지 않은 불행이라고만 투덜거렸다. 세상엔 너무 많은 사랑과 자유가 있는데 난 없다고만 했다. 세상 모든 부정들도 그 앞에서는 정직한 미소로 꼼짝없이 차렷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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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이미가 고교 졸업 파티에 보란 듯이 흰색 원피스를 입고 끼스럽게 걸어 나온다. 

제이미는 나와 꼭 닮아 있다. 우리는 우리의 선택과는 상관없는 모습으로 등장했지만, 남들과 조금 다르다는 것이 그렇게나 큰 죄가 되어야 했나. 그동안 우매한 인간들이 보내온 시선과 폭력은 반성도 없이 희미하게 형태를 잃어갔다. 그것들을 등에 업고 살아가기에는 하염없이 게으른 나. 그것들은 결코 내 과거와 현재, 미래를 더럽힐 수 없고 죄다 시궁창에 버려야 할 이별 못한 오물 덩어리다. 아름다운 옷을 입고 아름다운 춤을 출 때 비로소 완연한 내가 되는 것이 가장 아름다운 일인 것임을 잘 알고 있다. 차별과 차이에서 멀리도 달아난 나는 그저 나로 살아가겠다. 나는 남성도 여성도, 강자도 약자도 아닌, 아름다운 한 인간에 불과하다. 제이미도 사람들과 사회에서 던지는 상처로부터 줄행랑을 치고 지금쯤 어디선가 나처럼 웃고 울며 하염없이 아름다운 끼를 덕지덕지 떨며 살아가겠지. 세상의 모든 제이미를 응원합니다. 그리고 사랑합니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203호 2020년 8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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