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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인터뷰] 피아니스트 임동혁 [No.101]

글 |김영주 사진 |김호근 2012-02-20 5,068

무서운 아이에서, 조금 더, 한 걸음씩

 

롱티보 콩쿠르 우승과 함께 앙팡테리블이라는 찬사 속에 처음 모습을 드러냈던 신동은 2000년대 초반을 추억할 때 떠오르는 이미지 중 하나였다. 전례가 없을 만큼 많은 관심 속에서 그는 10년을 연주했고, 많은 일을 겪었다. 10년 전 사진 속에서 해사하게 웃던 예민해보이는 소년과 그다지 달라지지 않은 외양으로 테이블 맞은편에 앉은 스물여덟 청년 임동혁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스카타토처럼 짧고 빠르게 끊어서 말하는 그의 이야기들은 신기할 정도로 직선적이고 솔직해서, 만년 소년인 것 같은 그 인상은 더 선명해졌다.

 

 

바로 앞의 스케줄이 뭐였어요? 아침 8시에 일어나서 감기 때문에 약 먹고 <클래식 오디세이> 촬영을 했어요. 연주가 불만족스러워서 계속 다시 촬영을 했는데, 맘에 들지는 않았는데 한 번 더 하자고 하면 맞을 거 같아서… 스태프들이 굉장히 많더라고요. 하필 이 시기에 제가 아픈 게 잘못이죠.

 

레코딩 때는 만족할 때까지 반복을 해요? 레코딩을 할 때는 원하는 만큼 다시 해볼 수 있는 여건이 되지만 그렇다고 해서 딱 만족스러운 결과가 보장이 되는 건 아니에요. 하면 할수록 더 이상해질 때도 있고요. 그 인위적인 분위기가…

 

그럼 제일 자연스러운 건 언제에요? 연습 때? 연주회 때가 제일 자연스럽죠. 제일 긴장되기도 하고 자연스럽기도 하고.

그 긴장감이 나름 즐거운 모양이네요. 분명히 마약 같은 중독성이 있어요. 제일 기분 좋을 때가 언제냐면, 무대에 들어가서 첫 곡을 치기 시작할 때…, 제가 수전증이 정말 심하거든요. 그런데 점차 안정이 되면서 내가 음악에 빠져들고 있구나, 내 마음으로 연주를 하고 있구나 하는 걸 느끼면서 전환이 되는 순간이 제일 좋아요. 그리고 마지막 곡을 연주할 때는 … 완전히 릴렉스가 되는데 그 때 보통 제일 화려한 곡을 치잖아요. 정말 기분이 좋죠.

 

연주할 곡들은 어떻게 결정을 해요? 어느 정도 컨셉을 정하고 그에 따라 제가 생각을 해서 결정을 해요. 이번 같은 경우는 데뷔 10주년이라는 게 컨셉이고, 그럼 그동안 내가 음악적으로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낸 곳이 어딘가 생각을 해보니 러시아, 그러면 러시아 음악, 이런 식이었죠. 나름대로 의미를, 굳이 말하자면 자의적인 의미를 부여할 때도 있고요. 그런데 프로그램을 정할 때 제일 중요한 건 제가 좋아하고 잘 연주할 수 있는 곡들을 고르는 거예요.

 

나한테 잘 맞지 않는다거나 어려운 숙제 같은 곡에 도전을 하는 마음으로 선택을 하는 경우는 없어요? 바흐 골드베르크 바리에이션 같은 경우는 그랬죠. 그런데 그것도 마찬가지에요. 제가 좋아하는 곡이었기 때문에 도전을 한 거였지 그렇지 않았다면 불가능했을 곡이에요.

 

힘들어도 도전할 만큼 좋은 곡이었다는 뜻인가요? 너무 힘든 건 또 안 쳐요. 자신감이 확 떨어지니까.(웃음)

 

작곡가로는 누가 부담스럽지만 좋아요? 아무래도 고전 쪽이죠. 베토벤, 브람스. 아무래도 좀 부담스럽죠.

 

 

러시아 쪽이나 낭만파 작곡가들에 비해서는 진짜 남의 나라 사람들 같아요? 그렇다기보다는… 그 사람들의 곡이야말로 저보다 잘 연주할 수 있는 사람들이 많으니까요. 어차피 내가 잘할 수 있는 곡들이 있는데, 무대에 서는 사람은 언제나 내가 할 수 있는 최고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 하잖아요. 물론 공부 차원에서 쳐볼 수는 있지만요.

 

러시아에 처음 간 게 언제에요? 94년도였어요. 처음 갔을 때는 깜짝 놀랐어요. 어린 나이에 외국이라면 다 좋을 줄 알았는데 너무 황량하고 삭막하고 무서운 분위기였으니까요. 그런데 점차 나아지더라고요. 적응을 빨리 한 편이었어요. 러시아 아이들과 초등학교 때부터 같이 다녔고, 언어는 어렸을 때 갔으니까 쉽게 습득을 했죠. 제가 갔을 때만 해도 러시아인들은 한국 사람들을 동경하는 분위기였어요. 그래서 인종 차별을 안 받았죠. (마지막으로 러시아를 방문한 건 언제에요?) 차이코프스키 콩쿠르 때요. 그런데 많이 미쳐있더라고요, 자본주의에 너무 급격히 물들면서 모스크바 물가가 뉴욕보다 비싸고 페라리가 택시처럼 다니는데 빈부 격차는 너무 심하더라고요. 제가 어렸을 때도 변해가고 있었지만 그 정도는 아니었어요.

 

몇 백 년 전에 만들어진 곡에 생명력을 부여하는 게 클래식 연주자잖아요. 그래서 동시대의 정서랄까 유행에 그리 민감하게 반응하지는 않을 것 같은 선입견이 있어요. 그들만의 세상에 살고 있을 것 같은 느낌? 저는 그런 편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다만 제가 신세대적인 감성을 못 따라가는 건 있어요. 요즘 노래들을 들어도 따라가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는데 제 또래 젊은이들은 좋다고 들으니까 난 못 따라가겠다 싶은 거죠. 그렇다고 클래식을 주로 듣는 건 아니에요. 가요 많이 들어요. 80년대, 90년대 곡들. 최용준 ‘아마도 그건’이나 김혜림의 ‘날 위한 이별’ 같은 곡들.

 

아이팟으로 그런 곡들을 듣는다고요? 그 감성이 맞아요? 네, 지금 여기 다 들어 있어요. 팝도 그때 노래들이 좋아요. 사이먼 앤 가펑클도 좋고요. 전 발라드나 우울한 곡을 많이 좋아해요. 제가 하우스 파티를 자주하는데 다운 받은 좋아하는 노래들을 거실에 틀어놓으면 애들이 다시는 안 오겠다고 그래요. 내 딴에는 다 좋은 곡들만 틀었는데, 애들이랑 안 맞더라고요. 아! 그런데 요즘에 나온 티아라 노래는 좋아요. ‘크라이, 크라이’.

 

인터넷 많이 해요? 많이도 아니고 적게도 아니고. 외국에 있으면 낙이 뭐가 있겠어요. 인터넷 들어가서 <개그 콘서트> 다운 받아서 보곤 해요.

 

하고 있는 예술과 일상생활에서의 취향이 이렇게 딴판인 사람은 흔치 않은 것 같은데요. 아니, <개그 콘서트> 봐줘야 해요. 그런데 자기들끼리 게임하고 노는 예능 프로그램은 안 좋아하고. <그것이 알고 싶다> 좋아하고, <불만 제로> 꼭 챙겨 봐요. <신기한 TV 서프라이즈 > 아주 좋아해요.

 

많은 선생님들을 거쳤잖아요. 어떤 학생이었어요? 선생님을 무서워하긴 했어요? 아주 어렸을 때는 안 무서운 선생님이 어디 있었겠어요. 그런데 커서는 무서운 선생님이 어딨어요. 전 좀 많이 기어오르는 학생이었어요. 음악적인 견해 차이가 있을 때는 많이 대들었어요.

 

그래서 보통 이겼어요, 졌어요? 결국은 내가 피아노를 치는 거니까 내가 이길 수밖에 없죠.(일동 웃음)

 

그렇게 본인이 옳다고 판단한 대로 연주를 하고 나면, 그 후에 돌아오는 반응, 평가도 내가 감당해야 하잖아요. 흔들린 적은 없어요? 그렇죠. 그런데 그 말들이 꼭 옳다는 보장도 없어요. 사람이니까 많이 흔들리고 상처도 받아요. 키보드 워리어라고 하는 사람들 있잖아요. 인터넷에서 집요하게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하는. 얼굴을 한번 보고 싶어요. 그리고 그 부모의 얼굴도. 내가 잘 안 되면 그 사람한테는 어떤 이득이 있는걸까, 이해할 수가 없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런 어두운 면들, 사람들의 비뚤어진 면들을 경험하면서 느낀 것들이 연주에 반영이 된 시기가 있어요? 그러지는 않아요. 제가 화가라면 그럴 수도 있겠죠. 그런데 연주는 그런 작업은 아닌 것 같아요. 저는 언제나 음악에 성실했지만, 엄마가 돌아가셨다고 해서 엄마의 죽음을 음악으로 표현해야겠다는 생각을 한 적은 없어요. 그저 그 곡에서 느낀 것들을 충실하게 연주했어요. 밝은 곡이면 밝게, 장엄한 곡이면 장엄하게. 비극적인 곡이면 한없이 비극적으로. 제가 느낀 만큼 진솔하게요.

 

 

처음부터 피아노가 편했어요? 저는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같이 배웠는데, 피아노의 음색과 그 가능성이 마음에 들었어요. 바이올린은 단선율밖에 못하잖아요. 피아노가 더 남성적인 악기죠. 물론 잘 치는 여성들도 많지만 피아노는 남자 악기라는 표현이 맞는 것 같아요. 원래 이렇게 허황되고 심오한 이야기 안 하는데, 저는 피아노라는 악기로 모든 것을 표현할 수 있다고 믿어요. 피아노로 바이올린 음색을 낼 수 있고, 첼로 음색도 낼 수 있고, 베이스와 바리톤의 목소리를 피아노로 낼 수 있다고 생각해요. 오케스트라 같은 악기죠. 그게 정말 좋아요.

 

어떤 연주자가 ‘내 심장 가장 가까이에 있는 작곡가’라는 표현을 쓰더라고요. 누가 그런 사람이에요? 자의든, 타의든 쇼팽과 슈베르트인 것 같아요. 사실 저는 슈베르트가 잘 맞는다고 생각해요. 물론 쇼팽 곡도 포기할 수 없을 정도로 정말로 매력적이에요. 그런데 제가 제일 잘 친다고 생각하는 건 사람들이 보통 말하는 것과 달리 슈베르트에요. (본인이 슈베르트 쪽을 더 잘 이해하고 있다고 느끼나요?) 아니, 쇼팽도 잘 치는데(일동 웃음) 슈베르트 곡을 좀 더 특별하게 치는 것 같아요.

 

자부심을 느껴요? 네, 자부심이 있어요. 더 다채롭게 느끼고 표현할 수 있어요.

 

자기 평가를 정확하게 하는 편이라고 생각해요? 그렇게 믿고 싶어요.

 

불안할 때도 있어요? 언제나 불안하죠. 그런데 무엇보다도 저는 남을 인정하지 않는 타입이라고는 생각 안 해요. 물론 도저히 인정할 수 없을 때는 인정 안 하고, 인정 안 하면서도 ‘잘하는 것 같다’는 식으로 말하지는 못해요. 그렇지만 제가 타인에 대해 엄격하지는 않아요. 왜냐면 피아노를 치면 칠수록 얼마나 더 어려운지를 알게 되니까요. 재미있는 게, 저도 나름 음악을 한다면 하는 사람이지만 바이올린 곡을 듣잖아요? 그럼 솔직히 어느 정도까지는 알지만 더 깊이 들어가서 이 사람은 어떤 생각으로 이 곡을 어떻게 해석했고, 이 사람은 저 사람보다 더 잘하고 못하고 이런 건 몰라요. 성악가의 노래도 마찬가지에요. 그런데 평론가들은 신처럼 평가를 하잖아요? 그게 참 신기해요.

 

다빈치의 일기를 본 적이 있는데, 자신의 성실하지 못함을 책망하고 자기 재능에 대해서 회의하더라고요. 그런 생각을 하세요? 의심이 들 때도 있고 확신이 들 때도 있고. 왔다 갔다 해요. 나만의 특별한 재능을 갖고 있다는 생각이 들다가도 정말 무서운 애를 보면 나는 아무것도 아니었구나 생각하기도 하고. 내 재능은 엄청나서 아무도 따라올 수 없다고 생각하고, 외부에서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 더더욱 그렇게 믿다가도 마르타(아르헤리치)가 치는 걸 들으면 아, 피아노 관둬야겠다, 생각이 들고. 그렇죠.

 

그 양극단을 오가는 게 힘들지 않아요? 그렇지는 않은 게, 너무 확신을 갖고 있어도 문제고 너무 비관적으로만 생각해도 문제잖아요. 두 가지 생각을 다 가지고 가는 게 딱 알맞다고 봐요.

 

중간에서 나를 지탱하게 하는 믿음은 뭔가요? 그래도 한 가지 확실한 건 내가 완전히 재능이 없는 사람은 아니라는 것. 그건 100퍼센트 확실하니까요. 다만 나보다 뛰어난 사람이 있을 수 있다는 걸 이제 수긍해야죠.

 

그 사실을 받아들이는 게 괴로워요? 그런데 한국 클래식계는 경쟁이 너무 치열하잖아요. 기꺼운 느낌은 아니죠. 연주자들끼리 경쟁이 심한 한국의 분위기는 좋은 것도 없고, 나쁜 것도 없어요.  한국에서 잘 친다는 친구들을 들여다보면 각자 분야가 다르게 잘해요. 사석에서 잘하는 친구에 대해서 칭찬을 많이 하는데, 나중에 이야기 들어보면 그 친구도 나에 대해서 좋게 이야기를 했다는 말이 뒤에서 들려요. 그럼 나도 기분 좋고요. 서로 만나서 술 한잔하면서 이야기를 할 수도 있는 거고요.

 

 

사람이 살면서 겪는 모든 일을 다른 사람들보다 빨리 겪은 것 같아요.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왜 그런지 모르겠어요. 콩쿠르에서 일찍 입상한 건 내 의지가 들어간 거지만 어머니가 돌아가신 일은 제 의지와 관계없는 일이었죠. 그리고 결혼도 일찍 했고, 등등. 한꺼번에 큰일을 다 겪은 것 같아요. 요즘 같아서는 더 이상 저한테 별일이라는 게 없을 것 같아요. 웬만한 일은 더 이상 별일로 느껴지지 않을 테니까.

 

그런데 자기한테 일어난 일과 음악 사이에 거리를 둔다는 건 좀 신기해요. 저는 작곡가가 아니니까요. 살면서 여러 일들을 겪으면서 조금씩 쌓이는 것들이 있겠지만 엄마가 돌아가셨다고 해서 다음 날 갑자기 연주가 바뀐다거나 하는 그런 드라마틱하고 마술 같은 일은 못 믿겠어요. 예술가들이 고통을 겪거나 가난해야 좋은 결과물을 내어놓을 수 있다는 것도 저는 안 믿어요. 풍요로우면 풍요 속에서 또 다른 더 좋은 것들이 나올 수도 있죠. 예술가가 재물에 관심이 없어야 한다거나 속세와 거리를 두는 특별한 사람이길 바라는 것도 이상해요. 예술은 그 자체로 의미가 있는 거니까요. 예술가들에 대해서 그런 환상을 많이 가지고 요구를 하는데, 저는 세상에 적당히 몸담고 있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을 해요.

 

10년을 전체로 봤을 때, 잘한 것과 못한 것을 다 합치면 그 총합이 만족스러운가요, 불만족스러운가요. 불만족스러워요. 굉장히 불만족스러운데, 그래도 희망은 있어요. 사람한테는 언제나 오르막 과 내리막이 있기 마련이잖아요. 제가 요즘 토정비결 같은 걸 보면 정말 장난 아니게 나오는데, 삼재가 끝나는 2013년부터는 괜찮대요.(웃음) 점점 나아지고 있는 것 같아요. 내 자신을 무대 위에서 컨트롤할 수 있는 능력, 작품을 대할 때의 여유로움 같은 것들이요. 지금 점점 더 나아지고 있고, 앞으로 더 나아질 거예요. 사람들이 알아주든 말든, 내가 나 자신에게 좀 더 부끄러움이 없었으면 좋겠어요. 그러려면 성실해져야겠죠. 아! 성실해야죠. 연주회가 40일 남았는데.(웃음)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 101호 2012년 2월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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