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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SPECIAL INTERVIEW] ​PL엔터테인먼트 송혜선 대표, 뚝심 있게 걸어온 길 [No.205]

글 |배경희 사진 |김호근 2020-10-22 19,539

PL엔터테인먼트 송혜선 대표
뚝심 있게 걸어온 길  

 

뮤지컬계 대표 배우들의 오랜 조력자 역할을 해온 PL엔터테인먼트의 수장 송혜선 대표는 어떤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기 위해 필요한 자질은 좌절 앞에 쓰러지지 않고 이를 극복할 줄 아는 힘과 지혜라고 말한다. 사회생활 40년 중 20년은 한국 영화 부흥기의 영화계에서, 그리고 나머지 절반은 불모지의 뮤지컬계에서 자신의 영역을 확고히 다져온 송혜선 대표. 공연계를 이끄는 여성 리더 연재 인터뷰 시리즈의 첫 번째 자리에서 그의 이야기를 들어본다.

 

 

뮤지컬계에서 맞이한 터닝 포인트

 

영화계에서 뮤지컬계로 삶의 터전을 옮기신 지 어느새 이십 년 가까이 지났습니다. PL엔터테인먼트를 만들기까지 태흥영화사에 20여 년을 몸담으셨는데, 혼자 독립해 회사를 차리겠다고 결심한 계기가 있었는지요.

저는 어렸을 때부터 영화 일을 하고 싶었어요. 제가 첫 번째 구한 직장이 경기도 극장협회였는데, 그곳에서 태흥영화사 이태원 사장님을 처음 뵙게 됐어요. 당시 협회 회장을 맡고 계셨거든요. 이태원 사장님이 1983년에 태흥영화사를 만드실 때 저도 스카우트돼서 창립 멤버라고 할 수 있죠. (웃음) 태흥영화사에서 제가 맡았던 일은 기획, 캐스팅, 홍보였어요. 지금은 제작, 배급, 홍보·마케팅 등 영화 일이 분업화되어 있지만, 옛날에는 그런 구분 없이 일을 하다 보니 직원 한 명, 한 명이 맡아야 할 일이 정말 많았어요. 급할 때는 촬영 현장에 가서 배우들 머리도 저희가 말고. (웃음) 한 회사에서 오랜 시간 경험을 쌓았으니 막연히 마흔에는 독립해서 내 회사를 차려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춘향뎐>으로 2000년 칸 영화제에 갔다가 그 결심을 굳히게 된 것 같아요. 태흥영화사 소속으로 칸까지 와봤으니까, 이제 내 영화를 만들어보자 싶더라고요.
 

영화 쪽에서 출발하셨으니 회사를 만들 때 처음부터 뮤지컬배우 매니지먼트 사업을 목표로 삼진 않으셨을 것 같습니다. 어떻게 사업 방향을 바꾸게 되었나요.

물론 처음에는 영화 제작사를 차리려고 했어요. 그런데 태흥영화사 소속 배우들 관리를 제가 맡다 보니, 회사에서 나올 때 이태원 사장님께서 조승우, 오정해 씨를 포함한 몇몇 배우 매니저 일을 해보라고 하셨어요. 당시 제 꿈은 영화 제작자가 되는 거였지만, 일단 돈이 있어야 제작도 할 수 있는 거잖아요? 영화 한 편이 뚝딱하고 금세 만들어지는 것도 아니고, 직원 두 명을 둔 회사를 운영하려면 고정 수입원이 필요하니까, 뭐든 하자는 마음에 매니지먼트를 시작하게 된 거예요. 그러다 승우 씨가 출연한 2004년 <지킬 앤 하이드> 초연 첫 공연을 보고 뮤지컬에 빠졌어요. 무대 위에서 어마어마한 에너지를 보여주는데, 어쩌면 저렇게까지 잘할까 싶어 눈물이 다 나더라고요. 내가 이런 배우하고 같이 일하고 있단 사실이 감격스럽기도 하고. 이전에는 영화 제작을 하기 위해 매니저 일을 했다면, 그날 공연을 보고 나서 조승우라는 배우의 매니지먼트만 제대로 해도 충분히 보람 있겠단 생각이 들었어요(조승우는 2015년 새로운 소속사로 이적하기까지 15년간 PL엔터테인먼트 소속 배우로 활동했다). 
 

2007년에 김선영, 윤공주, 최민철, 홍광호, 네 배우를 영입하면서 본격적인 뮤지컬배우 매니지먼트 사업을 시작하셨어요. 전문 매니지먼트사가 없었던 공연계에서 뮤지컬배우들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셨던 걸까요? 

아무래도 승우 씨가 공연하는 작품들을 챙겨 보다 보니 뮤지컬배우들의 매력을 조금씩 알게 됐어요. 네 사람 중에 가장 먼저 알게 된 배우가 민철 씨인데, <지하철 1호선>에서 처음 민철 씨를 보고 세상에 둘도 없는 얼굴을 가진 배우라고 생각했어요. 이태원 사장님께서도 저랑 공연을 보시고선 배우들이 너무 대단하다며 영화 <하류인생> 오디션에 부르셨죠. 민철 씨가 그 오디션을 보고 <하류인생>에 나왔던 거예요. 선영 씨는 <지킬 앤 하이드> 초연 앙코르 공연에서 ‘A New Life’를 부르는 걸 듣고 완전히 반했어요. 그러다 <지킬 앤 하이드> 2006년 시즌 일본 투어 때 뮤지컬배우들하고 본격적으로 일을 해야겠다고 마음먹었어요. 승우 씨가 하는 공연의 모든 회차를 다 챙겨본 건 그때가 처음이었는데, 세상에, 반복 관람의 매력이 어마어마하더라고요! (웃음) 이 많은 대사를 어떻게 다 외워서 매번 라이브로 공연하지? 거기에 노래하고 춤까지 추면서? 앞으로 뮤지컬을 하는 이 사람들의 시대가 오겠다 싶더라고요. 제가 뮤지컬배우 매니지먼트를 한다고 했을 때 제 주위 사람들은 다들 만류했어요. 영화배우들도 많이 아는 사람이 뭣 하러 뮤지컬배우 매니지먼트를 하느냐고요. 제가 영화계에서 ‘태흥 송 실장’으로 좀 유명했거든요. 하하. 돈도 안 되는 뮤지컬 일을 왜 하려는지 모르겠다는 말을 많이 들었는데, 저는 이상하게 잘될 것 같은 자신감이 있었어요. 
 

소속 배우들을 살뜰히 챙기신다는 이야기는 많이 들어 익히 알고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홍광호 씨는 신인 시절부터 함께해 성장 과정을 지켜본 만큼 더욱 각별한 면이 있을 것 같아요.

광호 씨는 <스위니 토드> 초연을 보고 알게 됐어요. 승우 씨가 자기 후배 중에 노래를 정말 잘하는 배우가 있다면서 티켓을 예매해 줬거든요. 무려 ‘막공’ 티켓을요. 덕분에 제가 스물여섯 홍광호의 토비아스를 봤지요. 하하. 아직도 그 기억이 생생한데, 토비아스가 노래하는 장면에서는 소리가 극장 꼭대기에서 뱅글뱅글 도는 것처럼 들렸어요. 처음에는 천장에 무슨 장치라도 있나 싶어 몇 번이나 위를 올려다봤죠. 신비롭다는 말로밖에 표현이 안 되는 소리가 노래를 잘한다, 또는 못한다, 이런 판단을 뛰어넘게 하더라고요. 광호 씨는 지금이나 예전이나 한결같이 낯을 가리는 성격인데, 처음 눈빛을 보자마자 이 사람은 최고가 될 거란 생각이 들었어요. 조금의 의심도 없이, 그냥, 그렇게 되는 게 정해져 있는 사람처럼 보였어요. 그래서 광호 씨가 데뷔 초에 언젠가 서고 싶은 무대로 꼽았던 <지킬 앤 하이드>를 하게 됐을 때 너무나 행복해하던 모습, 그런 순간들이 참 소중한 기억으로 남았어요. 
 

광호 씨가 런던에서 <미스 사이공> 25주년 기념 공연에 출연했던 것도 잊지 못하실 테지요. 한국 배우 최초 웨스트엔드 진출이라는 사건은 소속사 대표로서도 충분히 자랑스러울 만한 일이니까요.

그럼요, 이건 적극 홍보해야겠다는 생각에 아는 방송국 관계자들을 통해 런던 특파원 연락처를 받아서 이메일을 보냈어요. <미스 사이공> 25주년 기념 공연에 한국 뮤지컬배우가 출연한다고, 현지 취재를 원하시는 분들은 연락을 달라고요. 프레스 티켓은 <미스 사이공> 국내 제작사인 KCMI가 영국 프로덕션하고 소통해서 마련해 줬어요. 그런데, 영국은 프리뷰 공연의 마지막 날이 기자들을 초대하는 날인가 봐요. 저는 그보다 하루 전날 먼저 런던에 가서 공연을 보고 다음 날 한국 기자들에게 줄 공연 보도 자료랑 선물용 작은 김 세트를 챙겨서 극장에 갔어요. (웃음) 사실 뮤지컬 전문 기자들이 아니라 그런지 공연 시작 전에는 조금 시큰둥했는데, 공연을 보고 나오자마자 다들 이렇게 대단한 배우일 줄 몰랐다며 저보고 보람차겠다고 그러는 거예요. 영국 프로덕션의 센스에 하나 놀란 게, 이들이 홍보 마케팅에 보통 선수들이 아닐 테잖아요? 투이가 죽는 장면이 바로 보이는 자리에 한국 기자들을 앉게 했더라고요. 그리고 취재 가능한 오프닝 파티에 올 수 있는 초대권까지 같이 챙겨줘서 <미스 사이공> 런던 공연 개막날 파티 현장이 MBC 9시 뉴스를 탔어요. 
 

요즘에는 뮤지컬배우들도 드라마나 영화에 활발히 진출하는 추세인데, PL엔터테인먼트 소속 배우들은 유독 뮤지컬에 집중한다는 인상이 강합니다. 혹시 회사 방침이 그러한 걸까요?

배우 개개인의 성향에 따라 조금씩 차이가 있어요. 어떤 배우는 뮤지컬만 하겠다고 하고, 어떤 배우는 드라마나 영화에도 관심을 나타내요. 그런데 뮤지컬은 보통 공연 1~2년 전에 출연을 미리 결정하다 보니, 거기에 맞춰서 다른 장르의 작품을 하기가 쉽지 않더라고요. 저는 기본적으로 영화나 드라마를 하려면 그 기간에는 공연을 쉬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고요. 특히 공연은 라이브로 하는 것이기 때문에 관객과의 약속이 중요하잖아요? 티켓 오픈 이후에는 불가피한 상황이 아니라면 자기 출연 날짜의 공연을 책임져야 해요. 그래서 더더욱 공연에 온 체력을 쏟을 배우들한테 다른 활동까지 병행하자는 말은 못하겠더라고요. 예전에 (윤)공주 씨한테 공연 개막을 앞두고 드라마 제의가 들어온 적이 있는데, 본인에게 의사를 물어봤더니 공연 준비 때문에 그럴 여유가 없다면서 고사하더라고요. 소속사 대표로서는 놓치기 아쉬운 제안이었지만, 한편으론 공주 씨가 참 멋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만큼 무대에 대한 책임감이 강하다는 거니까요.
 

대표님의 뜻을 고집하시는 대신 배우의 선택을 우선시하는 것은 축적된 경험을 통해 그게 현명한 선택이라는 깨달음을 얻으셨기 때문일까요.

제가 영화계에 있을 때만 해도 배우 어머니가 매니저 역할을 많이 하셨어요. 저는 어머님들과 무척 가깝게 잘 지내는 타입이었죠. (웃음) 한번은 평소에 친했던 어머니를 통해 계약을 진행한 적이 있는데, 알고 보니 딸은 그 작품을 하고 싶지 않았던 거예요. 카메라 앞에서 전혀 즐거워하지 않더라고요. 그 이후부터는 계약 전에 꼭 배우를 직접 만나서 충분한 이야기를 나누고 의사를 확인했어요. 배우가 작품에 대해 말하는 눈빛을 보면 이 작품을 정말로 원하는지 아닌지 알 수 있거든요. 진실로 원해서 하는 작품이 아니면 어떤 배우라도 최선을 다 안 해요. 이 작품이 절실한 사람의 연기는 다를 수밖에 없고요. 그래서 저는 우리 회사에 들어오는 배우들에게 처음에 이런 이야기를 꼭 해요. A와 B라는 작품이 들어왔을 때, 배우는 A를, 나는 B를 좋다고 생각하면 서로 심사숙고하더라도 마지막 선택은 본인이 하라고요.


 

마음에서 마음을 확장하는 법

 

PL엔터테인먼트가 제작한 2016년 자라섬 뮤지컬 페스티벌은 매니지먼트사가 국내 최초로 야외 뮤지컬 축제를 기획했다는 점에서 많은 화제를 모았어요. 이듬해부터는 스타라이트 뮤지컬 페스티벌이라는 명칭으로 두 차례 더 행사가 진행됐는데, 이제와 돌이켜보면 새롭게 도전한 일에서 무엇을 얻었다고 생각하시나요.

갑자기 눈물이 나는데요, 코로나19 여파가 계속되는 상황에서도 뮤지컬계는 공연을 이어나가고 있잖아요. 외부에서 볼 때는 ‘그런가 보다’ 하고 말겠지만, 사실 제작사와 공연인, 관객들 모두 굉장히 어려운 일을 하고 있는 거거든요. 심지어 사회적 거리 두기가 2.5단계로 격상됐을 때, 공연 중인 모든 작품의 제작사가 손해를 감수하고 50% 티켓만 팔면서 거리 두기 좌석제를 실시했어요. 뮤지컬 팬들은 공연 한 편을 보려면 적지 않은 수고가 따르는데도 극장을 찾아줬고요. 요즘에 공연을 보러 가면 극장 건물 밖에 서서 대기하는 관객들을 쉽게 볼 수 있어요. 커피숍 내부 이용이 안 되다 보니 공연 시작까지 시간을 보낼 곳이 마땅치 않은 거죠. 그리고 사회적 거리 두기 상황에 따라 공연 중단과 취소, 재개가 반복되다 보니 티켓 예매도 예전처럼 쉽지 않아요. 제가 왜 이 이야기를 먼저 꺼냈냐면, 저는 우리나라 뮤지컬 관객들의 남다른 열정과 애정을 페스티벌을 통해 먼저 경험했거든요. 가까운 자리에서 자기가 좋아하는 작품이나 배우에게 응원을 보내기 위해 밤새 줄을 서고, 축제장에 입장한 후에는 질서 정연하게 공연을 관람해서 행사 내내 아무 사고가 발생하지 않았어요. 2회 때는 공연장 관계자한테 쓰레기 정리가 이렇게 잘 되어 있는 축제는 처음이었다는 이야기까지 들었죠. 공연을 진정으로 사랑하지 않고서는 이렇게 못할 거예요. 그래서 항상 관객에 대한 고마움을 잊지 않으려고 해요. 
 

2019년에 초연한 <스웨그에이지: 외쳐, 조선!>은 제작을 하려고 작품을 찾은 게 아니라, 서울예대 학교 공연을 보고 나서 제작에 나서야겠다고 결심하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처음으로 정식 뮤지컬을 제작하신 건데, 초연 공연에 신인 배우들을 대거 캐스팅하는 것에 대한 부담은 없으셨나요.

너무 옛날이야기지만(웃음), 영화 <장군의 아들> 캐스팅을 할 때 아무리 찾아봐도 기성 배우들 중에는 어울리는 사람이 안 나오니까 이태원 사장님께서 신인 배우들한테 눈을 돌렸어요. 덕분에 너무 좋은 결과가 나왔죠. 제가 제작자들에게 많이 듣는 이야기 중 하나가 캐스팅할 배우가 없어서 힘들다는 건데, 그 말은 보통 이미 활발히 활동 중인 배우들 가운데 캐스팅할 수 있는 사람이 없다는 뜻이에요. 그런데 때론 제작자가 신인 배우들을 과감하게 캐스팅해서 성공하는 사례도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꼭 신인이 아니더라도 무대에 설 기회를 간절히 꿈꾸는 배우들이 얼마나 많은데요. 아직 사람들에게 이름은 안 알려졌을지 몰라도 배우가 자기한테 맞는 옷을 입으면 관객들은 그 배우의 재능을 알아보고 박수를 보내요. <스웨그에이지: 외쳐, 조선!>의 (양)희준 씨가 바로 그런 경우였다고 생각해요. 희준 씨는 공연이 시작한지 2~3주쯤 지났을 때부터 작품 제안이 들어오기 시작했어요. 심지어는 드라마, 영화 출연 제의도 받았어요. 초연 창작뮤지컬에 생짜 신인 배우를 캐스팅한다고 했을 때 주위 사람들은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지만, 저는 학교 공연에서 작품은 물론 희준 씨의 가능성을 봤기 때문에 초반 한 달만 잘 버티면 입소문을 탈거란 기대가 있었어요. 
 

<스웨그에이지: 외쳐, 조선!>은 올해 코로나19라는 우여곡절 속에서 재공연을 잘 마무리했죠. 앞으로 이 작품의 생명력을 어떻게 이어갈지 생각하시는 게 있을까요.

초연 당시에 학교 공연의 작가와 작곡가, 연출가를 그대로 기용했던 이유는 하나였어요. 무대 공연에는 작가의 영혼, 작곡가의 영혼, 연출가의 영혼이 들어가야 하는데, 이 작품을 구상하고 세상에 내놓은 사람들보다 여기에 더 어울리는 영혼을 지닌 창작자들이 어디 있겠어요. 물론 경험이 부족하다 보니 미숙한 부분은 있었지만, 그건 이우형 조명 감독님이나 권도경 음향 감독님처럼 연륜 있는 다른 스태프들이 보완해주셨어요. 두 분께 참 많이 감사하죠. <스웨그에이지: 외쳐, 조선!>은 대중적이면서도 메시지가 분명한 작품이에요. 작품에 등장하는 가상의 조선 시대 백성들이 바로 우리를 대변해주고 있거든요. 마당극처럼 즐길 수 있는 요소가 있기 때문에 남녀노소 관객들이 다 즐겁게 볼 수 있고요. 창작진들이 멈추지 않고 작품의 완성도를 계속 고민해서 다시 재공연을 했을 때 ‘이 작품을 이렇게까지 공연할 수 있다고?’라는 반응을 얻었으면 좋겠어요. 사실 창작진들하고 개발 방향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아직은 말씀드릴 수가 없습니다. (웃음)
 

40년 넘는 경력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현역처럼 현장에서 일한다는 점이 개인적으론 무척 놀랍습니다. 앞으로 더 해보고 싶으신 일이 있으신지요.

원래는 55세까지만 일하고 은퇴하려고 했는데, 그날이 이렇게 빨리 올 줄 몰랐어요. (웃음) 제가 지난해에는 페스티벌을 쉬었잖아요? 사실 올해 초에 좋은 제안을 받아서 4회를 진행해볼 생각이었어요. 그런데 코로나19 때문에 계획이 무산됐죠. 다른 인터뷰에서 많이 이야기했는데, 페스티벌을 시작한 이유는 영화인들이 모이는 부산국제영화제나 전주국제영화제처럼 뮤지컬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한자리에 모일 수 있는 축제를 만들고 싶어서였어요. 그 마음은 여전히 잃지 않았어요. 그리고 언젠가는 엠넷의 ‘MAMA’처럼 해외에서 글로벌한 뮤지컬 페스티벌을 열어 보고 싶어요. 세계적인 실력을 갖춘 우리나라 뮤지컬배우들을 더 많은 사람에게 알리고 싶거든요.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205호 2020년 10월호 게재기사입니다.
* 본 기사와 사진은 “더뮤지컬”이 저작권을 소유하고 있으며 무단 도용, 전재 및 복제, 배포를 금지하고 있습니다. 이를 어길 시에는 민, 형사상 법적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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