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usical

더뮤지컬

magazine 국내 유일의 뮤지컬 전문지 더뮤지컬이 취재한 뮤지컬계 이슈와 인물

피처 | [SPECIAL] 강병원·이헌재·한승원 프로듀서, 나는 창작뮤지컬 프로듀서다 [No.206]

글 |박병성 사진 |김지현 2020-12-08 6,525

창작뮤지컬을 돌아보다  

 

라이선스 뮤지컬이 국내 시장을 주도하던 시기를 지나 수많은 창작뮤지컬이 무대에 오르고 있다. 각종 지원 사업을 통해 신인 뮤지컬 창작자가 데뷔했고, 단단한 팬층을 다진 스테디셀러 창작뮤지컬도 탄생했다. 창작뮤지컬은 어떤 과정을 거쳐 여기까지 왔고, 또 앞으로 어떻게 나아가야 할까? 프로듀서와 비평가, 관객의 입장에서 창작뮤지컬의 현주소를 점검해보았다. 

 

강병원·이헌재·한승원 프로듀서
나는 창작뮤지컬 프로듀서다

 

프로듀서란 작품의 예술적, 경제적 책임을 지는 사람이다. 작품에 의문이 생기면 그것이 무엇이든 대답해 줄 위치에 있는 이가 프로듀서이다. 프로듀서가 모든 것을 다 알 수는 없지만 누가 그 대답을 잘할지 알고 그 사람을 불러다가 대답하게 만들 수 있는 유일한 사람. 작품에 대한 가장 큰 권한을 가지면서 동시에 막대한 책임도 지는 이가 프로듀서이다. 코로나19 시대의 프로듀서는 권한보다 책임의 무게를 더 느낀다. 대학로 창작뮤지컬 시대를 열어가고 있는 라이브의 강병원, 네오 프로덕션의 이헌재, HJ컬쳐의 한승원 프로듀서를 만나 창작뮤지컬 프로듀서의 길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뮤지컬 프로듀서 입문기

 

어떻게 공연 프로듀서로 입문하게 되었나?

한승원_ 대학 전공이 연극영화과다. 그런데 그 당시에도 연기나 연출보다는 기획 일을 좋아했다. 프로듀싱에 필요한 실재적인 업무를 체계적으로 배운 곳은 국립박물관문화재단 ‘극장용’이다. 감사하게도 극장 개관 멤버로 들어가 다양한 공연을 제작해 볼 수 있었다. 공연을 무대 위에 올린다는 것은 너무나 즐거운 일이었지만 수익을 내기 힘든, 리스크가 큰 구조에서 지속적으로 작품 제작을 한다는 게 힘들었다. 지속 가능한 제작 모델에 대한 고민을 하던 중 대학원에 들어갔다. 대학원에서 많은 고민과 배움을 통해 지속가능한 모델을 만들어내는 것을 꿈꾸며 제작사를 차리게 됐다. 

이헌재_ 영화를 전공하고 이태리에서 공연 이론과 역사 공부를 했다. 공부를 마쳤을 때  뮤지컬 <아이다>가 흥행한다는 기사를 보다가 문득 내가 공연 전공자라는 걸 깨달았다. 공연 기획사에 지원해 악어컴퍼니에 입사하게 되었다.

강병원_ 서울예대에서 극작을 전공했다. 졸업 후 연극과 뮤지컬, 영화 분야에서 작가나 조연출로 활동을 했다. 프로듀서로서 첫 작품은 뮤지컬 <파라다이스 티켓>이었다. 2011년에 싸이더스가 보유한 대본을 뮤지컬로 대행 제작할 기회가 있다고 해서 친구의 제안으로 공연 제작사 라이브를 만들었다. 제작 경험은 없었지만 투자받은 예산을 가지고 공연 제작을 할 수 있었고, 그 과정에서 많은 것을 배우면서 공연 제작 시스템을 만들 수 있었다.
 

세 분이 운영하는 제작사는 대학로에서 확고히 입지를 굳혔다. 어떤 작품을 만들고 회사의 브랜드를 어떻게 만들어가고 싶었나.

강병원_ 사람들의 꿈을 소재로 하면서 드라마가 강한 작품을 선호한다. 기획 개발 단계부터 쇼케이스, 트라이아웃, 정식 공연을 거치며 작품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노력했다. 창작뮤지컬의 해외 진출이나 공연 IP로 웹툰이나 드라마, 영화까지 확장시킬 수 있는 회사로 성장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자사의 뮤지컬 작품을 가지고 국내 및 해외 콘텐츠 마켓에 나가 피칭을 하면서 뮤지컬의 해외 진출이나 타 장르에 대한 공부를 했다. 회사의 다섯 작품이 중국, 일본, 대만에 진출했다. <총각네 야채가게>는 드라마로 만들어졌고, <마이 버킷 리스트>는 중국에서 왕가위 감독이 본인의 회사 작품 제작자로 몇 년간 프리프로덕션 단계를 밟고 있다. 지금은 그것을 실현해 가는 과정인 것 같다.

이헌재_ 하고 싶은 것을 해왔던 것 같다. 내가 하고 싶은 작품에 어떤 공통점이 있는지는 나중에 생각해 보았는데 특별한 건 없었다. 뮤지컬 <사의찬미>는 영화 <글루미 선데이>를 좋아해서 했다. 이 영화의 뮤지컬 저작권을 확보하는 과정이 복잡하고 힘들어서 친한 작가에게 그런 소재가 없냐고 했더니 윤심덕, 김우진 이야기를 해줬다. 그래서 <사의찬미>의 처음 제목이 ‘글루미 데이’였다. 연극 <트레인스포팅>은 내가 20대 때 가장 좋아했던 동명 영화와 같은 소설을 원작으로 한다. 

한승원_ 사람들에게 잃어버린 감성을 상기시키는 작품을 좋아한다. 그러면서 라이브 공연에 어울리는 작품을 제작해 왔다. 초창기에 예술가들의 이야기를 많이 한 것도 그런 이유이다. 예술가의 이야기다 보니 라이브 공연으로 펼쳐내기에 좋은 요소가 많았다. 과거 예술가의 특별한 삶에 집중하는 게 아닌 동시대인과 함께 나누고 싶은 이야기를 찾았던 것 같다. 
 

세 분은 공교롭게도 2011년 즈음 회사를 차렸다. 2010년대에 들어서면서 대학로 창작뮤지컬 시장이 별도의 리그로 여겨질 만큼 크게 성장하였다. 

한승원_ 대학로 창작뮤지컬 시장이 성장한 데에는 여러 이유가 있다. 쿠팡 같은 소셜 유통망이 생기고, 예매처가 늘어난 것도 영향을 끼쳤다. 무엇보다도 창작산실이나 콘텐츠진흥원의 지원 제도로 실력 있는 창작진들의 다양한 작품을 선보일 수 있는 장이 마련되어 대학로 창작뮤지컬을 활성화시키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코로나19 직전 대학로 뮤지컬 시장의 활기가 예전과 같지 않게 떨어지고 있는 것 같다.

이헌재_ 제작 편수나 관객 수 등 시장 규모와 같은 산업적인 수치는 절대적으로 성장하고 있다. 단지 내실 있는 성장이냐는 질문이라면 꼭 그렇지만은 않다. 원인을 어디에서 찾아야 할지 고민인데 결국 제작자가 더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강병원_ 성장이 지속되고 있다고 본다. 2011년 제작할 때보다 작품의 다양성이나 창작진의 인프라가 좋아졌다. 좋은 작품을 만들려고 노력하는 창작진이나 제작진이 계속 등장하는 것 같다. 영화가 그랬던 것처럼 상업성과 예술성을 겸비한 웰메이드 작품이 나와서 시장을 키워 나갈 거라고 본다. 

 

 

작품 이외의 비즈니스 개발

 

HJ컬쳐는 비즈니스 개발에도 신경을 많이 쓰고 있다.

한승원_ 그러한 목표를 가지고 한 것은 아니다. 작품이 하나하나 모이다 보니까 자연스럽게 벌어진 일이다. MD 제작 같은 경우도 1년에 여섯 작품 정도를 하니까 작품이 관객들과 꾸준히 만나기 위해선 MD 제작이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부터 회사의 모토가 관객 중심의 회원제로 운영되는 회사였다. 회원들에게 어떤 서비스를 제공할까 고민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지금의 방향으로 운영하게 되었다. 펀딩을 만든다거나 지자체와 협업한 것도 체계적인 기획으로 벌인 일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이루어진 일이다. 경영자가 아니다 보니 체계적인 기획이나 준비가 부족하다. 공연계도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 수 있는 경영자적 관점이나 실행력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공연 MD 시장도 많이 성장했다는 게 느껴진다. 과거에 공연 MD는 관객 서비스 차원에서 제작했지 실제 수익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거의 없었다. 최근에는 수익에도 쏠쏠한 도움을 주고 있는 것 같다. 

강병원_ 3개월 공연에 만 명 이상 관람해야 MD 제작비의 손익분기점을 넘길 수 있다. 그중 20~30%의 관객이 MD를 구매하지 않나 싶다. 특정 작품의 특정 MD로 수익이 생길 때도 있지만, 아직까지도 작품 홍보나 관객들과 소통하는 목적으로 제작하는 경우가 많다.
 

네오 프로덕션은 작품 제작 이외에 부가적인 비즈니스로 무엇을 하고 있나.

이헌재_ 더웨이브라는 홍보, 마케팅 회사와 웨이브 스튜디오 녹음실을 운영한다. 뮤지컬 OST 제작을 전문으로 하는 스튜디오이다. 이것도 내가 좋아서 하는 거다. 영상 촬영 스튜디오도 시도하고 있다. 오늘 <비스트> VR 첫 촬영을 했다. 최근에는 신생 제작사나 프로듀서가 안정적인 환경에서 제작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들기 위해 배급에 대한 고민을 하고 있다. 
 

공연에서 제작과 배급의 분리가 가능한가. 

이헌재_ 투자사 입장에서는 안정적으로 투자할 수 있는 회사가 필요하다. 네오나 더웨이브가 산업적으로 신뢰가 높아지면 가능하지 않을까. 
 

라이브는 해외 시장의 문을 꾸준히 두드렸다. 해외와의 협업이나 해외 시장 진출에 관해 가장 많은 모델을 개발했다. 

강병원_ 해외 진출 작품으로는 <총각네 야채가게>, <마이 버킷 리스트>, <팬레터>, <랭보>, <시간 속의 그녀>가 있다. 한국콘텐츠진흥원 지원으로 창작뮤지컬 공모전인 ‘글로컬 뮤지컬 라이브’를 5회째 운영하고 있다. 해외 진출을 염두에 둔 프로그램이다. 이곳을 통해 <팬레터>가 개발, 제작됐고 한국 창작뮤지컬 사상 처음으로 대만에 진출했다. 라이브의 첫 해외 진출 작품은 <총각네 야채가게>였다. 와타나베 엔터테인먼트의 자사 아이돌이 출연하는 라이선스 공연이었는데 도쿄와 오사카 공연은 거의 자리가 없었다. 아뮤즈 시어터에서는 오리지널 투어 공연으로 이루어졌다. 마지막 회차로 갈수록 기립 박수가 나오더라. 해외 시장의 가능성을 확인했다. 그러다 일본에서 활동하는 한인과 공동 제작을 했는데 사기를 크게 당했다. 그때는 무척 힘들고 낙담했는데 함께한 배우들이 응원해 줘서 가까스로 버텼다. 그때 해외 시장 공부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본 공연 시장과 일본 극장에 대해 공부를 했다. 이후 중국과 대만에도 진출할 수 있었다. 아시아의 해외 협력사는 믿을 수 있는 제작사인지 확인하는 것이 중요하다. <마이 버킷 리스트> 중국 공연 제안이 많이 왔는데 상해문화광장이 가장 신뢰할 수 있어서 함께했다. <팬레터> 대만 공연도 내셔널 타이중 시어터를 알아보니 믿을 수 있는 곳이라는 판단이 들어서 하게 됐다. 회사 내 일본인이나 중국인 직원을 두고 그 나라를 이해하고 소통하면서 해왔던 것 같다. 
 

HJ컬쳐도 해외 시장 진출을 많이 해왔다. 

한승원_ 대학원에 진학하면서 어떻게 불안한 공연 시장을 극복할 수 있을까, 고민을 많이 했다. 우리나라 인구수로는 내수 시장에 한계가 있어서 많은 사람들이 해외 시장 진출을 이야기한다. 그러기 위해 우리뿐만 아니라 전 세계가 다 알고 좋아하는 소재를 찾으려고 했다. 공연 쪽 일은 사람을 통해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다. 일본 가서는 잘 모르는 회사인데도 무조건 만나달라고 하고 직원이 쓴 어설픈 일본어지만 열심히 들이밀었다. 그런 열정을 높게 사서 공연할 수 있었다. 중국에서도 원래 함께 하려던 회사가 있었지만 그곳과는 잘되지 않고 친구의 지인이 연결해 준 곳과 일이 성사되었다. 많은 일이 사람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 같다 
 

지원 사업이 창작뮤지컬 시장을 키워오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앞으로 보완되었으면 하는 점이 있나?

한승원_ 신인 창작자와 중견 창작자의 지원을 나누어 했으면 좋겠다. 배우를 포함해서 연출가나 다른 분야의 스태프에게도 실력을 쌓을 수 있는 기회를 주어야 한다. 마스터 클래스나 해외 워크숍 연수 같은 프로그램을 운영해서 다른 분야의 인력도 양성해야 한다.

이헌재_ 사업 목적이 지원인지 산업 육성인지 그 목적을 분명히 해줬으면 좋겠다. 순수 예술로 지원하는 것이면 그에 맞게, 뮤지컬을 산업적 관점에서 육성하는 사업이면 그에 맞는 콘텐츠를 선정해서 지원했으면 좋겠다. 국가가 육성하고자 하는 산업은 민간과 국가가 적정 비율로 함께 기금을 마련하는 모태 펀드를 운영하기도 하는데, 대학로 창작뮤지컬만을 위한 모태 펀드가 있었으면 좋겠다. 

강병원_ 한국 뮤지컬도 아시아 시장에서는 인지도를 쌓아가고 있고 세계 시장에 소개되었을 때 파급 효과가 큰 장르로 성장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순수 예술로의 지원도 필요하겠지만 영화나 웹툰, 드라마 K팝처럼 뮤지컬도 문화 산업 콘텐츠로 전폭적인 육성을 통해 과감한 시도가 이루어져야 한다. 공연을 관광 산업으로 연결하는 식의 시도도 가능하다고 본다. 


 

내가 꿈꾸는 프로듀서

 

코로나19로 올 한 해 지속된 이슈는 공연 영상화였다. 라이브에서는 영상 콘텐츠를 통해 해외 시장에 진출하기도 했다. 공연 영상 시장의 가능성을 어떻게 보는가?

강병원_ 현재는 위드 코로나 시대이다. 어찌됐건 공연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생업이고 버티고 살아남아야 한다. 대안을 찾을 수밖에 없고 시대는 변해 가고 있다는 걸 몸소 체감하고 있다. 라이브의 첫 영상화는 2016년 <팬레터> 전막 시연이었는데 당시 공연계 분위기가 다소 부정적이었다. 전막을 보여주면 공연장에 관객이 안 올 거라고 했다. 뮤지컬 전막 중계는 업계 첫 시도였다. 영상이 공개되고 남은 회차가 거의 매진되었다. 1만 5천 뷰 정도로 시청자 수는 많지 않았지만 네이버 TV의 풀 영상을 통해 작품이 알려지면서 공연장으로 온 것이다. 소극장 공연이라 마케팅비가 적어 홍보를 목적으로 시도했는데 반응이 좋아 안도했던 기억이 난다. 이후 공연 영상화에 대한 고민을 지속적으로 하고 있다. 최근에는 대만 내셔널 타이중 시어터에서 <랭보> 오리지널 공연을 준비하고 있었는데 코로나19 때문에 상영회로 변경했다. 영상 반응이 좋아서 추후 다른 작품도 해달라는 제안을 받았다. 대도시가 아닌 지역 공연장이나 초청료가 비싸서 하지 못하는 문화 소외 지역은 공연 영상을 통해 충분히 즐길 수 있을 것이다. 공연 연출과 영상 연출이 협업해서 잘 찍어 놓으면 아시아 시장뿐만 아니라 영미권도 진출할 수 있고 브로드웨이 HD 같은 OTT 플랫폼 진출도 충분히 가능하리라고 본다. 그래도 역시 공연은 극장에서 봐야 한다고 굳게 믿고 있다. 현장의 생동감은 영상으로 다 담을 수 없을 테니.

이헌재_ 극장이든 플랫폼이든 여러 가지 형태로 생중계하는 것을 구상하고 있다. 무대 공연은 일 회만 하고 영상으로 남기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 그런 방향으로 가지 않는 수준에서 시간과 공간의 제약 없이 관람할 수 있는 수단으로 활용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공연 영상을 주도하는 곳이 공연계여야 한다. 공연계 내에서 자체적으로 개발하지 못하고 영상을 만드는 이들에게 주도권을 내어주면 결국은 영화의 한 장르가 되어 버릴 수 있다. 한 회만 공연하고 그것을 촬영해 나머지는 영상으로 대체한다면 작가나 연출가, 제작 피디와 같은 창작진은 살아남는다. 이 산업이 성장하면 오히려 더 부가가치가 높아질 수도 있다. 그러나 배우나 스태프 들은 일자리를 잃게 된다. 그런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공연계 모두가 애써야 할 것이다. 
 

좀 더 건강한 뮤지컬 시장이 되기 위해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

한승원_ 업계 구성원 간 서로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나 역시도 내 입장에서 옳고 그름의 틀에 갇혀 있었다. 하루아침에 바뀌지는 않겠지만 다양한 분야의 다양한 위치에서 서로를 인정해야 건강해질 수 있지 않을까. 
 

뮤지컬 프로듀서로서 이루고 싶은 것이 있다면.

이헌재_ 뮤지컬 시장은 다른 장르에 비해 진입 장벽이 낮고 제작 시스템상 초반에 혼자 시작하는 게 어렵지 않다. 그러나 파트너나 투자자를 구하지 못하면 부담을 혼자 다 안고 가야 한다. 신진 제작자라면 조언을 얻거나 상의할 사람이 없어 실수를 하게 된다. 내가 공연 배급업을 하려 하고 모태펀드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이유이다. 새롭게 진입한 사람들이 산업의 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환경이 좋은 생태계라고 생각한다. 그들의 후원자나 파트너가 되어 주고 싶은 게 나의 가장 큰 목표이다. 

강병원_ 웰메이드 작품을 제작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만드는 과정 속에서 창작진과 배우, 스태프, 제작진이 즐길 수 있고, 제작된 공연이 만든 사람들과 관객들 모두에게 좋은 추억으로 남을 수 있는 작품을 만들고 싶다. 그래서 훗날 그 작품을 만들어서 행복했다고 생각되는 작품을 하나씩 하나씩 만들어가는 프로듀서가 되고 싶다. 

한승원_ 관객의 측면에서는 추억을 공유할 수 있는 회사였으면 좋겠다. 어떤 작품 하면 바로 떠오르는 회사. 엄마와 할아버지와 손주가 함께 와서 즐길 수 있는 회사라면 더 바랄 게 없을 것 같다. 회사 내부적으로는 처음 설립했을 때 대출을 받을 수 있는 회사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혼자서는 카드 하나 만드는 것도 힘들지 않나. 컴퍼니 개념의 공연 회사, 직원들이 아이들 대학도 보내고 미래를 함께 공유하고 꿈꿀 수 있는 회사였으면 좋겠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206호 2020년 11월호 게재기사입니다.
* 본 기사와 사진은 “더뮤지컬”이 저작권을 소유하고 있으며 무단 도용, 전재 및 복제, 배포를 금지하고 있습니다. 이를 어길 시에는 민, 형사상 법적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네이버TV

트위터

페이스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