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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처 | [SPECIAL] 메타버스에 세워진 가상 공연장 [No.210]

글 |안세영 사진 |국립극장, 서울예술단 2022-09-08 2,954

메타버스에 세워진

가상 공연장

 

‘메타버스’는 메타(Meta)와 유니버스(Universe)의 합성어로 현실을 초월한 가상 세계를 뜻한다. 쉽게 말하자면 현실 세계와 비슷한 여러 체험 및 교류 활동을 할 수 있는 온라인 공간이다. 코로나19로 인해 비대면 문화가 활성화되면서 메타버스는 단기간에 사회 전 분야로 뻗어 나가고 있다. 공연계 역시 메타버스를 활용해 젊은 관객층의 흥미를 자극하는 이벤트를 내놓고 있다.

 

 

게임 속에서 전쟁 대신 콘서트를


대중음악계에서 메타버스 공연의 선구자는 미국 래퍼 트래비스 스콧이다. 트래비스 스콧은 코로나19로 공연할 수 없게 되자 2020년 4월 온라인 게임 ‘포트나이트(Fortnite)’에서 콘서트를 열었다. ‘포트나이트’는 본래 플레이어끼리 죽고 죽이는 배틀 로열 게임이지만, 서로 싸우지 않고 함께 어울릴 수 있는 ‘파티 로열’이라는 휴식 공간을 따로 마련해 두고 있다. 이곳에 준비된 빅 스크린과 메인 스테이지에서 영화 상영이나 음악 공연 같은 이벤트가 열린다. 트래비스 스콧의 콘서트가 열린 곳도 바로 이 파티 로열이다.


예고된 공연 시간이 되자 일반 아바타보다 훨씬 거대한 크기의 트래비스 스콧 아바타가 등장하여 신곡을 발표했다. 그의 아바타는 물속과 우주를 오가고 순식간에 다른 모습으로 변신하는 등 물리적 제약을 넘어선 가상 공간의 장점을 살려 10분간 환상적인 퍼포먼스를 펼쳤다. 플레이어들 또한 자신의 아바타로 뮤지션과 같은 공간에서 춤추고 비행하며 공연을 즐겼다. 이 콘서트는 1230만 명의 동시 접속자 수를 기록했고, 공연 중 트래비스 스콧의 아바타가 착용한 게임 아이템을 판매하여 2000만 달러(약 220억 원)의 수익을 올렸다.

 


트래비스 스콧이 거둔 대성공은 게임과 음악 업계가 메타버스 활용 가능성에 관심을 갖게 만드는 결정적인 사건이 되었다. 2021년 8월에는 같은 게임에서 미국 팝 가수 아리아나 그란데가 3일간 다섯 번의 투어 공연을 펼쳤는데, 전 세계에서 7800만 명이 관람하며 또 한 번 메타버스 콘서트의 가능성을 알렸다.


K팝 업계 역시 메타버스를 활용해 콘서트와 팬미팅에 나서고 있다. 2020년 9월 세계적인 K팝 그룹 방탄소년단은 포트나이트 파티 로열 내 메인 스테이지에 마련된 스크린으로 신곡 ‘다이너마이트’ 안무 버전 뮤직비디오를 최초 공개했다. 이와 동시에 영상 속 춤을 따라 출 수 있는 모션 아이템을 판매했고, 스크린 앞에 모인 팬들의 아바타는 함께 춤을 추며 뮤직비디오를 감상했다.


2020년 9월에는 블랙핑크가 네이버Z가 출시한 국내 대표 메타버스 플랫폼 ‘제페토’에서 가상 팬사인회를 열었다. 멤버들의 아바타와 함께 사진을 찍고 사인을 받을 수 있는 이 이벤트에는 전 세계 팬 4600만 명이 참여했다. 블랙핑크 아바타가 신곡 ‘Ice Cream’에 맞춰 춤추는 안무 영상도 높은 조회수를 기록했다. 2021년 8월, 블랙핑크는 데뷔 5주년을 맞아 또 한 번 메타버스 이벤트를 진행했다. 닌텐도 스위치의 인기 게임 ‘모여봐요! 동물의 숲’에 ‘인 유어 에리어(In Your Area)’라는 블랙핑크 섬을 만든 것이다. ‘인 유어 에리어’에는 블랙핑크의 온라인 콘서트 공연장, 뮤직비디오 세트장, YG엔터테인먼트 신사옥 내 녹음실과 댄스 연습실까지 다양한 공간이 구현됐다. 팬들은 게임 속 아바타로 해당 공간을 방문해 둘러보고 인증샷을 남겼다.

 

 

젊은 관객을 겨냥한 공연 홍보 행사


대중음악계가 메타버스의 유행을 선도하고 있는 것과 달리, 현장감을 중시하는 연극, 뮤지컬과 클래식계에서는 아직까지 메타버스 활용 사례가 손에 꼽힌다. 대부분 실제 오프라인에서 열리는 공연을 홍보하기 위해 단발성으로 메타버스 이벤트를 진행했다. 2021년 9월 열린 세종솔로이스츠의 ‘힉엣눙크 페스티벌’과 같은 해 10월 열린 마포문화재단의 ‘제6회 마포 M 클래식 축제’는 2D 메타버스 플랫폼 ‘게더타운’에 가상 공연장을 세우고 관객이 그 안에서 온라인으로 연주 영상을 감상할 수 있게 했다. 서울시뮤지컬단은 2021년 11월 <작은 아씨들> 개막을 앞두고 제페토에 주인공 네 자매의 집을 구현하여, 이곳에서 아바타로 인증샷을 남긴 사용자를 추첨해 초대권을 증정하는 ‘마치家 랜선 집들이’ 이벤트를 진행했다.


국내에서 가장 지속적으로 메타버스를 활용한 행사를 이어 가고 있는 공연 단체는 국립극장이다. 2021년 11월 해외 초청작 <울트라 월드> 개막을 앞두고 작품의 소재인 가상현실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메타버스 플랫폼 ‘이프랜드’에서 ‘스테이지 로그인: 가상과 현실을 잇다’라는 강연을 개최한 것이 그 시작이다. 강연은 실제 공연장처럼 무대, 객석, 로비로 꾸며진 가상 공간에서 진행됐다. 아바타로 등장한 강사가 무대 위 스크린에 자료를 띄워 놓고 음성으로 강연을 진행했다. 청중 또한 아바타로 참석해 객석에 앉아 강연을 듣거나 극장 로비에 전시된 공연 사진을 구경했다.

 


이후에도 지난 1월까지 크리스마스 파티, 창극 강연, NTOK Live+ 프리뷰 등 다섯 번의 행사가 이프랜드 안에서 추가로 이루어졌다. 기본적으로 가상 공간 속 스크린에 영상을 띄워 공연 관련 정보를 전달하는 형식이나, 그때그때 작품 특성에 맞춰 다양한 즐길 거리로 참여를 유도했다. 크리스마스 시즌에 맞춰 아바타 드레스 코드를 산타복으로 지정하거나 NT <로미오와 줄리엣>을 소개하며 극 중에서처럼 가면 파티를 열었다. 관객의 아바타를 가상 무대 위로 불러내 창극 <변강쇠 점 찍고 옹녀>의 한 대목을 직접 연기해 볼 기회를 주기도 했다. 오는 4월에는 실제 국립극장과 극장 앞 광장의 모습을 그대로 재현한 맵도 새로 오픈할 예정이다.


국립극장 측은 메타버스 플랫폼의 주 이용자인 젊은 세대에게 공연에 대한 흥미를 유발하고 관객 저변을 확대하기 위해 이 같은 행사를 기획했다고 밝혔다. “디지털 문화에 익숙한 MZ세대는 공연과 같은 아날로그 문화에서 점점 멀어지고 있다. 우리가 먼저 그들이 많은 시간을 보내는 온라인 세상의 문을 두드리지 않으면 공연장을 찾는 관객은 점점 더 줄어들 것이다. 그런 면에서 젊은 세대가 선호하는 메타버스 플랫폼은 향후 홍보 플랫폼으로서 활용 가치가 높다고 판단했다. 현재는 여러 운영 방식을 시도해 보며 콘텐츠를 찾아 나가는 단계다.”


그렇다면 국립극장은 왜 여러 메타버스 플랫폼 가운데 이프랜드를 선택했을까? 이프랜드는 SK텔레콤이 2021년 출시한 메타버스 플랫폼으로, 2018년 출시되어 전 세계 2억 6000만 명 이상의 가입자를 확보한 제페토에 비하면 후발 주자다. 하지만 발표나 강의 등 대규모 행사에 특화된 서비스가 이프랜드만의 강점으로 꼽힌다. 호스트가 스크린을 통해 PDF 파일이나 MP4 동영상을 공유할 수 있고, 한 맵에 16명까지만 동시 접속이 가능한 제페토와 달리 최대 131명까지 동시 접속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단, 먼저 입장한 31명의 아바타만 모든 참여자의 화면에 보이고 이후 입장한 아바타는 본인의 화면에만 보인다.) 플랫폼 이용이 낯설다면 이프랜드가 활동을 지원하는 공식 인플루언서 ‘이프렌즈’와 협업해 행사를 진행할 수도 있다. 국립극장 역시 평소 공연 분야에 관심을 가지고 있던 ‘이프렌즈’들을 소개받아 행사 진행을 맡겼다.

 

 

아바타가 연기하는 메타버스 뮤지컬


서울예술단도 오는 3월 <잃어버린 얼굴 1895> 개막과 동시에 이프랜드에서 메타버스 콘텐츠를 선보일 예정이다. 다수의 메타버스 이벤트를 기획한 ‘기어이 이머시브 스토리텔링 스튜디오’와 손잡고 이프랜드 안에 공연 무대를 재현한 ‘1895 대한제국’ 맵을 오픈한다. 이 맵에서는 관객이 아바타가 되어 실제 무대 세트 위를 거니는 것처럼 궁 내외부, 연회장, 사진관 등을 돌아다닐 수 있다.

 


해당 맵에서 <잃어버린 얼굴 1895>의 일부 장면을 각색한 트리뷰트 뮤지컬 공연도 펼쳐진다. 이를 위해 주요 등장인물의 무대의상을 본뜬 아바타 의상 10종과 공연 안무를 모션 캡처한 아바타 모션 10종을 제작했다. 이 의상과 모션을 활용해 아바타가 극중인물이 되어 연기와 춤을 선보인다. 각각의 아바타는 트리뷰트 공연을 위해 특별히 모집한 이프렌즈가 컨트롤하고, 실제 공연 음원을 사용해 몰입감을 높일 예정이다. 관객들도 맵에 접속하여 같은 공간에서 아바타들의 공연을 관람할 수 있다. 공연에 쓰이는 의상과 모션은 이프랜드 이용자라면 누구나 똑같이 사용할 수 있어, 관객의 아바타도 같은 옷을 입고 같은 춤을 추며 공연을 관람할 수 있다. 아바타 대신 실제 공연에서 명성황후 역을 맡은 배우 차지연의 모습이 실사로 등장하는 장면도 있다. 볼류매트릭(Volumetric,수십 대의 카메라로 인물의 움직임을 360도 촬영하여 입체 영상으로 구현해 내는 XR 기술) 기술을 사용해 주요 장면을 연기하는 배우의 모습을 가상 공간 안에 3D로 구현해, 공연의 감동을 배가하는 하이라이트 장면으로 연출할 계획이다. 이 트리뷰트 공연 실황은 차후 웹뮤지컬 형태의 영상물로 제작해 공개한다.


이러한 시도는 메타버스 플랫폼을 단순히 공연 홍보 행사 장소로 활용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 안에서 새로운 형태의 공연을 만들어 내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해 볼 만하다. 서울예술단은 이 밖에도 관객과의 대화 등 코로나19로 인해 진행이 어려워진 대면 행사를 메타버스로 옮겨와 비대면 참여형 콘텐츠로 재탄생시킬 예정이다. 실제 공연에 참여 중인 배우와 관객이 모두 아바타로 맵에 접속하여 음성과 채팅으로 대화를 나누고 사진을 찍는 이벤트를 계획하고 있다. 행사를 주관한 기어이 이머시브 스토리텔링 스튜디오 이혜원 대표는 1895 대한제국 맵을 “공연을 테마로 한 일종의 놀이터”라고 설명하며 “코로나19로 인해 배우와 가까이서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줄어든 관객들이 메타버스 안에서의 접촉을 통해 친밀감을 느끼고, 공연을 본 관객들끼리도 후기를 나누며 커뮤니티를 형성할 수 있는 공간이 되기를 바란다”라고 전했다.


향후에는 이 공간에서 일반 관객이 주체가 되어 2차 창작 콘텐츠를 만들어 나갈 수 있을까? 이혜원 대표는 긍정적인 전망을 내놓았다. “오프라인 공연이 끝난 뒤에도 작품을 좋아하는 관객들끼리 이 맵에 모여 역할을 나눠 그들만의 공연을 이어 갈 수 있을 것이다. 현재도 많은 메타버스 플랫폼 이용자가 가상 공간과 아바타를 이용한 역할극 놀이를 즐기고 있는데, 이러한 문화에 이미 공연 예술의 성격이 녹아 있다고 본다. 향후 배우의 움직임을 실시간으로 아바타 모션으로 치환할 수 있게 된다면, 메타버스 안에서도 현장감을 살린 공연을 올릴 수 있을 것이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210호 2022년 3월호 게재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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