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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처 | [COLUMN] <쇼맨_어느 독재자의 네 번째 대역배우> 의도하지 않은 행동에는 책임이 없을까 [No.212]

글 |고봉주(변호사) 사진 |국립정동극장 2022-09-23 982

<쇼맨_어느 독재자의 네 번째 대역배우>
의도하지 않은 행동에는 책임이 없을까

 

 

범죄를 도왔다는 인식이 없어도 공범으로 처벌받을까


<쇼맨_어느 독재자의 네 번째 대역배우>는 노인 네불라가 우연히 만난 청년 수아에게 사진 촬영을 의뢰하면서 시작한다. 네불라가 자신이 살아온 삶을 연극처럼 재현하면 수아가 그 모습을 카메라에 담는다. 어릴 때부터 남을 흉내내는 것에 유달리 소질이 있었던 네불라는 젊은 날 고국에서 독재자 미토스의 대역을 맡아 차량 유세를 대신한다. 그러다 미토스의 시대가 끝나자 독재자 밑에서 일했다는 사실 때문에 재판을 받는다. 이 경우 현실에서라면 어떤 근거로 처벌이 가능할까?


작품에서는 독재자에 대한 죄명이 구체적으로 나오지 않으므로 임의로 죄명을 ‘갑죄’라고 하자. 네불라는 갑죄를 직접 저지른 건 아니므로 갑죄의 정범이 아닌 공범 혐의를 따져봐야 한다. 공범의 개념은 광의와 협의로 구분하는데, 흔히 교사범과 방조범을 의미하는 협의로 사용된다. 교사범은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범죄를 결의하여 실행하게 하는 자를 말하고, 방조범은 이미 범죄를 결의한 자의 범죄 실행을 용이하게 하는 자를 말한다. 네불라의 경우 문제가 되는 것은 그를 갑죄의 방조범으로 볼 수 있느냐이다. 방조범은 정범과 마찬가지로 행위에 고의성이 있어야 하는데, 이때 자신의 방조 행위에 대한 ‘방조의 고의’ 외에 정범의 실행 행위에 대한 ‘정범의 고의’도 필요하다. 이를 이중의 고의설이라고 한다. 그러나 판례는 방조범에게 필요한 정범의 고의를 엄격하게 요구하지는 않는다. 판례의 설명을 살펴보자.


형법상 방조 행위는 정범이 범행을 한다는 점을 알면서 그 실행 행위를 용이하게 하는 직접·간접의 모든 행위를 가리키는 것이다. 그리고 방조범은 정범의 실행을 방조한다는 이른바 ‘방조의 고의’와 정범의 행위가 구성요건에 해당하는 행위인 점에 대한 ‘정범의 고의’가 있어야 하나, 방조범에 있어서 정범의 고의는 정범에 의하여 실현되는 범죄의 구체적 내용을 인식할 것을 요하는 것은 아니고 미필적 인식 또는 예견으로 충분하다.


그렇다면 네불라는 방조범의 성립 요건을 충족할까. 네불라가 독재자 미토스의 대역배우가 된 것은 자신의 의지에 따른 결과는 아니었다. 그는 다른 배우의 영화 캐스팅 오디션에 동행했다가 우연히 심사 위원에게 연기를 보여달라는 제안을 받는데, 하필이면 미토스를 흉내내는 바람에 그 길로 미토스의 대역배우로 발탁된다. 그렇다고 네불라 스스로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조차 몰랐던 건 아니다. 그는 자신이 미토스의 네 번째 대역배우로서 외부 행사에서 멋지게 보이는 역할을 대신했다고 설명한다. 심지어 다른 대역배우들이 각자의 능력에 따라 어떤 역할을 맡았는지도 잘 알고 있다. 이렇듯 네불라는 자신이 독재자의 대역배우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주어진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였고, 이러한 행위는 미토스의 독재 체제를 유지하는 데 기여했으므로 방조의 고의가 있음이 분명하다.


반면 네불라에게 정범의 고의가 있었는지는 불분명해 보인다. 그는 정범 미토스의 행위에 대한 가치 판단 자체를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앞서 인용한 판례에 따르면 방조범에게 반드시 정범의 행위가 범죄에 해당한다는 인식이 있어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정범이 무슨 일을 하려 하는지에 대한 미필적 인식만 있으면 방조범이 될 수 있다. 따라서 네불라는 방조의 고의와 정범의 고의가 모두 인정되어 갑죄에 대한 방조범으로 처벌받을 가능성이 높다. 작품 속에서 네불라는 징역 4년형을 선고받는데, 현실에서도 이와 마찬가지로 전범에 대한 처벌이 이루어지고 있다.

 

 

뒤늦게 착각을 바로잡아도 사기죄가 성립할까


또 다른 주인공 수아는 유원지에서 취미로 사진을 찍다가 그를 프로 사진작가로 착각한 네불라로부터 촬영 의뢰를 받는다. 수아는 네불라와 총 3회에 걸쳐 사진을 찍어주고 대가를 받는 내용의 촬영 계약을 체결한다. 하지만 3회 차 촬영에서 자신은 사진작가가 아니라는 진실을 고백하고, 3회 차 촬영 비용을 받지 않는 것은 물론 앞서 받은 촬영 비용 또한 모두 반환하겠다고 말한다.


수아가 사진작가를 사칭해 촬영 계약을 맺은 행위는 누구나 예상하듯 사기죄가 맞다. 극 중 수아도 제 입으로 어수룩한 노인에게 사기를 쳤다고 말한다. 그런데 수아가 먼저 네불라에게 접근해 자신을 사진작가라고 속인 것이 아니라 네불라 스스로 수아를 사진작가라고 착각해 이러한 일이 벌어졌더라도 수아에게 책임이 있을까?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그렇다. 사기죄의 기망 행위에는 부작위에 의한 기망이 포함된다. 이는 상대방(피기망자)이 먼저 착오에 빠진 경우, 행위자(범인)가 그 착오를 제거해야 할 의무가 있음에도 착오를 제거하지 않고 오히려 상대방의 착오를 이용하는 것을 말한다. 수아가 네불라의 착각을 바로잡지 않고 프로 사진작가인 척 촬영 계약까지 체결한 것은 부작위에 의한 기망에 해당해 사기죄가 성립한다.


나중에라도 진실을 고백하고 돈을 돌려주면 무죄가 될까? 사기죄는 기망 행위로 인해 재산상 이익을 취득하면 기수(어떠한 행위가 일정한 범죄의 구성 요건으로 완전히 성립하는 일)가 된다. 수아는 1, 2회 차 촬영 비용을 받은 시점에 이미 기수되었고, 그 후 네불라에게 진실을 고백했어도 이미 성립한 사기죄에는 영향이 없다. 다만 3회 차 촬영은 비용을 받기 전에 진실을 밝혔으므로 사기죄 미수가 된다. 물론 작품 속에서는 네불라가 사실을 알고 난 후에도 수아한테 촬영을 맡기고 비용을 지불하므로 사기죄로 처벌받지 않을 가능성이 높지만 말이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212호 2022년 5월호 게재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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