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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인터뷰] 구혜선 - 지금 이 순간을 즐기며 살아가는 보헤미안처럼 [No.88]

글 |정세원 사진 |김호근 2011-01-14 5,093

데뷔 8년 차의 배우로, 소설  『탱고』의 저자로, 뉴에이지 앨범 「숨」의 작사.작곡가로, 자신의 일러스트로 전시회를 연 미술가로, 단편 영화 <유쾌한 도우미>와 장편 <요술>을 연출한 영화감독으로 살아가고 있는 구혜선. 멀티 플레이어로 살아가는 이들을 만나는 일이 더 이상 새로운 시대는 아니지만, 주위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고 자기만의 독특한 행보를 이어가고 있는 그녀를 한번쯤 만나보고 싶었다. 구혜선은 지금 디자인코리아 2010의 사전 이벤트의 일환인 ‘디자인코리아 2010 인 한남’에 아티스트로 참여해, 30여 명의 국내외 멀티디자이너들과 한남동 일대의 빈집 10여 채를 작업실 겸 생활 공간으로 사용하며 60일간의 자유로운 작품 활동을 펼치고 있는 중이다. ‘구혜선’이라는 이름 석 자가 붙어있는 방문을 여니 그녀가 직접 그린 일러스트 작품들이 곳곳에 놓여있다. 벽과 벽 사이 모서리에 얼기설기 걸쳐진 검정색과 빨간색 털실 사이로 걸어 놓은 액자들은 마치 거미줄에 걸린 듯한 느낌이다. 그림들 사이에서 바닥에 쪼그려 앉아 일그러진 얼굴 모형 점토를 사포질하던 구혜선을 발견했다. 익숙하게 은색 락카 스프레이를 뿌려 색감을 덧입히더니 이내 완성된 모형을 벽면을 이은 털실 사이에 끼워 넣기 시작한다. 이리저리 위치를 바꿔보던 그녀. 결국 작업하던 손을 멈추며 “아무래도 점토가 다 안 마른 것 같아요. 다시 칠해야겠어” 하고 웃는다.

 

 

작업이 재밌나 봐요.
처음에 왔을 때는 이걸 어떻게 하나 싶었는데 하다보니 재밌더라고요. 워낙에 깨부수는 걸 좋아해서….(웃음) 방만 나서면 바로 다른 분들 작품을 볼 수 있다는 게 좋은 것 같아요. 공동체 작업은 아니지만 다른 생각, 다른 개념으로 작업한 그림들을 보면서 배우는 게 많아요.


혜선 씨가 직접 꾸민 방을 설명해주겠어요?
이 방은 그냥 편하게, 쉬엄쉬엄 둘러보고 가시라고 작업을 했어요. 그림을 바닥에 그냥 놓은 것도 그래서고요. 벽에 걸린 볼펜 일러스트들은 전에 작업했던 건데 그림 자체가 다 선으로만 표현되어 있어서 실로 장식을 해본 거예요. 처음 이 방에 곰팡이가 슬어있었는데 그게 예뻐 보이더라고요. 벽지 뜯은 모양도 그대로 살리면 좋겠다 싶어서 곰팡이의 묵은 색깔 위에 은색을 덧입혔고요. 원래 단색 위주로 작업을 하는데 이렇게 핑크를 쓴 건 처음이에요. 확실히 기분은 좋아지는 것 같아요.

 

 

 

 

 

 

 

 

 

 

 

 

 

원래 색을 많이 안 쓰는 편이에요?
어렸을 때는 진짜 많이 썼어요. 서로 안 어울리는 색깔로 그림을 그리곤 했는데 나이 들면서는 두 가지 이상 안 쓰는 것 같아요. 그래서 하나 추가한 게 핑크예요. 처음엔 여기에 실 작업만 하고 싶었는데 너무 썰렁하더라고요. 그래서 새로 작업도 하고 전시했던 그림들도 가져다 놨어요.


이걸 다 언제 작업했을까요. 지금 드라마 촬영 중이지 않아요?
드라마 제목이 잡지 이름과 똑같은 <더 뮤지컬>이에요.(웃음) 생각보다 촬영이 길어지고 있지만 전 남는 게 시간밖에 없어요. 밤샘 촬영할 때 빼고는 늘 시간이 있어요. 밥 먹을 시간도 있고, 화장실 갈 시간도 있고. 적어도 하루에 한 시간 정도는 늘 있으니까 그 시간에 딴짓을 해요.


뮤지컬 드라마에 출연한다는 소식에 많은 분들이 혜선 씨를 실제 뮤지컬 무대에서 만날 수는 없을까 기대하시던데요.
아휴, 절대 할 수 없어요. 드라마니까 가능한 거지, 무대 위에서 편집 없이 노래하고 춤추고 연기하는 건 억만금을 줘도 못해요. 영화야 다 찍어놓고 편집하고 덧칠해서 매만질 수 있지만 뮤지컬은 라이브잖아요. (옥)주현 언니나 (김)호영 씨 공연을 보면서도 ‘저들은 신이야’ 하면서 감탄한걸요.


 

 

 

 

 

 

 

 

 

 

 

 

 

 

 

 

 

 

 

 

 

 

 

 

 

 

창작 작업을 무척 즐기는 것 같아요. 그것도 아주 여러 장르에서 말이에요.
사실 전 연기자가 된 게 신기한 사람이거든요. 어렸을 때부터 그림을 그렸고, 음악을 끼고 살았어요. 영화는 연기를 접하면서 관심을 갖게 됐는데 그동안 해왔던 작업들이 많은 도움이 된 것 같아요. 제가 연기자로 알려진 사람이라 그렇지 주위에 다양한 작업들을 동시에 하는 분들이 참 많거든요. 제 친구들도 대부분 그렇고요. 첼로 하는 친구가 바이올린도 연주하고, 시도 쓰고 벽화도 그리고. 이외수 선생님도 글 쓰기 전에 그림을 그리셨대요. 지인들에게는 ‘그림 그리는 사람’으로 더 익숙하다고 하시더라고요. 근래에는 작곡도 하신다며 들려주셨어요. 제 생각엔 많은 분들이 전문화되어야 한다는 압박 속에 살고 계신 것 같아요. 저는 이 모든 작업들이 그냥 하나의 문화 예술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요리할 때 밥, 김치찌개 등이 다른 분야가 아니라 ‘음식’ 안에 들어가는 것처럼 말이에요. 밥도 하고 찌개도 끓이고 반찬도 만드는 작업들을 그냥 하는 것뿐이에요. 그걸 다 비벼서 나오는 게 영화가 아닌가 싶고요.


영화 작업은 처음이라 힘들지는 않았어요? 상상하던 장면들이 앵글 안에서 한 폭의 그림으로 펼쳐졌을 때 무척 신기했을 것 같아요.
맨 처음 단편 <유쾌한 도우미>를 찍을 때 그랬어요. 어려움도 많고 그때그때 부딪힘은 있었지만 힘든지 모르고 작업했던 것 같아요. 그때가 스물네 살 때였는데 비록 연출을 따로 공부한 건 아니지만 연기를 하면서 오랫동안 경험했던 촬영 현장이라 남들보다 빨리 적응할 수 있었던 것 같고요. 현장에 유경험자들이 워낙 많고 또 모두 열린 마음으로 대해주셔서 아이디어 공유도 편하게 하고 고민 해결에도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었어요. <요술> 촬영할 때는 한 달 안에 다 찍어야 했거든요. 그래도 두 번째 영화니까 길은 빨리 찾았던 것 같아요. 개인적으로 굉장히 많은 가르침을 얻었고요. 영화는 혼자 하는 작업이 아니라는 점에서 참 좋더라고요. 연기를 할 때는 조심하게 되는 일들이 많거든요. 진실이 왜곡될 때가 많으니까 말과 행동도 조심하게 되고. 근데 감독을 할 때는 온전히 구혜선으로 지낼 수 있어 좋아요.

 


 

‘그냥 구혜선’은 어떤 사람인가요?
그때그때 달라서 잘 모르겠어요. 자기 작품 세계에 빠져서 매순간 진지하거나 심오하지는 않아요. 허술하고 건망증도 심해서 늘 하나씩 빠트리죠. 어렸을 때는 제가 남들과 다르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글씨를 배우기 전부터 그림을 그렸던 터라 그림에 대한 자부심이 있었어요. 그림 그리는 친구들이 자의식이 강하거든요. 그림에 대한 자부심이 있으니까 다른 무언가를 해도 잘할 것이라는, 미래에 대한 확고한 믿음이 있었죠. 하지만 인생이라는 게 생각처럼 호락호락하지만은 않잖아요. 실패도 경험하고 부딪힘도 있을 거고. 이십 대가 되고 어느새 스물여덟 살이 된 나는 남들과 다르지 않다는 걸 느껴요. 자신을 소중하고 특별하게 여기는 것도 그게 과하면 자기 기대에 미치지 못해 불안해질 수가 있거든요. 사람이 실수도 할 수 있는 거잖아요. 한번은 사람들 많은 곳에서 넘어진 적이 있었는데 제가 너무 웃겨서 웃고 있더라고요. 어렸을 땐 상상도 못할 일이죠.


그래도 혜선 씨의 경우 데뷔 이후로 큰 실패나 좌절을 경험한 적은 없었던 것 같아요.
운이 좋았죠. 제가 잘나서라기보다 주위에 좋은 말씀을 해주시는 좋은 어른들이 많았어요. 다른 건 몰라도 인복은 정말 있는 것 같아요. 좋은 어른들이 곁에 계시는 게 정말 큰 힘이 되거든요.


돌아가신 정승혜 대표님처럼 말이죠? 네. 정 대표님과는 욕먹으면서 인연이 시작됐어요. 고등학교 때 처음 썼던 시나리오 <단추>를 대표님께 보여드렸는데 아무렇지 않게 “갖다 버려” 하시는 거예요. 두께가 백과사전만 했는데 그때는 버리지 못하는 시기였던 것 같아요. ‘밖으로 나간다’ 하면 다 알아듣는데 저는 ‘무슨 옷을 입고 어떤 머리를 하고 어떻게 걸어서 밖으로 나간다’를 설명했거든요. 생각보다 충격이 클 줄 알았는데 의외로 자신감을 얻었어요. 아마도 제발 누가 좀 그런 얘기를 해주길 바랐나 봐요. 대표님을 만나 하나씩 버리는 법을 배우면서 인생 공부도 하게 됐고, 새로운 시나리오도 쓸 수 있었어요. 그렇게 1~2년 정도 지나니까 글만 쓰지 말고 행동에 옮기라고 하시더라고요. 그 전까지는 내가 과연 영화 연출을 할 수 있을까 싶었는데 ‘때가 되면 다 하게 되어 있다’고 용기를 주셨어요. 닥치기 전에는 아무것도 모르는 거라고, 그러니 직접 현실과 부딪쳐보라고 말이에요. 그래서 생각했어요. 실패가 두려워서 도전하지도 않는 것보다는 후회하지 않는 게 더 중요하다고 말이에요.


드라마 촬영으로 한창 바쁘던 시기이지 않았어요? 그때도 역시 촬영 틈틈이 시간을 내어 시나리오 작업을 했겠군요.
네.(웃음) 근데 연기자들이 바쁠 때 왕창 바빴다가 백수가 되거든요. 다음 일이 약속되어 있지 않으면 자신의 위치가 불안해지는 시기가 한 번씩 찾아와요. 그럴 때를 대비해서 저를 찾아야만 했어요. 뭔가 새로운 것을 준비하다보면 불안하고 우울한 시기를 극복할 수 있지 않을까 싶더라고요. 하지만 제가 소극적이고 나서는 걸 싫어하는 편이라 ‘어떻게 감히’, ‘사람들이 비웃지는 않을까’, ‘구혜선이 갑자기 왜 저런 걸 해?’ 하는 시선이 두려웠던 것도 사실이에요. 몇 년이나 그림을 그리고 음악을 했는지 그들은 알지 못하니까요. 근데 재밌는 건 이런 작업들을 하면서부터는 저한테 들어오는 시나리오들이 대부분 음악 하는 사람, 그림 그리는 사람이더라고요. <더 뮤지컬>처럼 말이에요.


혜선 씨를 향한 대중의 시선이 긍정적이지만은 않았죠. 지금은 그들의 시선이 어떻게 느껴지나요?
자꾸 나이 얘기를 해서 좀 민망하지만 스물다섯 살이 되면서부터는 그러려니 되더라고요. 부정적이든 긍정적이든 굉장히 생산적인 일이라고 생각해요. 꿈을 품고만 계셨던 분들은 저로 인해 자극을 받을 수 있고, ‘쟤가 뭔데’ 하셨던 분들도 ‘내가 쟤보다 더 잘해’ 하며 생산적인 결과물을 만들어낼 수도 있잖아요. 작업을 하다보면 자본에 대한 문제에도 많이 부딪히게 되거든요. ‘구혜선은 돈이 많으니까 저런 것들을 할 수 있는 것’이라 생각하시는 분들도 계시겠지만, 사실 전 돈이 없던 시절부터 작업을 해왔어요. 볼펜 일러스트야 종이와 볼펜 하나만 있으면 가능한 거고, 다니다보면 무료로 전시할 수 있는 갤러리들도 많아요. 제가 돈을 쓴 일이 있다면 서래마을에 갤러리를 차린 건데 그곳 역시 무료로 대관을 했거든요. 본인 양심껏 잠 한 시간만 줄이면 할 수 있는 일이 얼마나 많은지 몰라요. 저는 연습하면 된다, 노력하면 된다는 말을 믿으면서 작업을 해요.


그래도 대중에게 알려져 있는 배우다보니 같은 일을 하는 다른 이들보다 유리한 지점은 분명 있지 않았을까요.
저도 ‘구혜선이니까 더 쉬울 것’이라는 오만방자한 생각을 한 적이 있었어요. 근데 <요술> 투자자를 찾아다니면서 느낀 건 긍정적인 것보다 부정적인 의견이 더 많았다는 거예요. 사람들이 관심을 보일 수는 있지만 티켓을 사지는 않을 것이라는 얘기도 들었고요. 영화를 오래 준비하셨던 분들, 전공자들보다 더 많은 편견을 받았던 것 같아요. 제가 연기자가 아니라 그냥 구혜선이면 좋겠다는 생각을 할 정도로. 물론 다른 신인 감독보다 더 친절하게 대해 주시긴 하셨지만 장단점의 갭이 예상보다 훨씬 컸어요. 그래서 세상은 공평한 것 같기도 하고요.


여러 작업들을 하면서 혜선 씨가 얻는 것은 뭘까요?
일단은 스스로 ‘잘 살고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는 거요. ‘오늘 이만큼 일했다’는 기록을 매일 남기는데 그걸 볼 때면 제가 그냥 놀고먹지 않는 것 같아 뿌듯해요. 무엇보다 즐거움이 있다는 것도 기쁜 일이고요. 다른 사람들이 인정해주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그냥 즐길 수 있는 것으로도 충분히 가치가 있는 일 같아요. 요즘은 죄다 비평가들만 있는 것 같거든요. 평가를 하다보면 스트레스를 받게 되잖아요. 그냥 그걸 통해 내가 무엇을 얻어갈 수 있는지, 얼마나 즐겼는지를 생각하면 좋을 것 같아요. 이 방도 그냥 둘러보면서 ‘아, 여기가 구혜선의 방이래’ 하고 가시면 되는 거예요. 실을 엮은 걸 보면서 인테리어 아이디어를 얻어 갈 수도 있고 어떤 자극을 받을 수도 있겠지만 그냥 보기만 하셔도 좋아요.


이것 말고 또 작업하는 게 있어요? 뱀파이어를 소재로 한 영화는 얼마나 진행됐나요?
아, 시나리오 작업은 마쳤는데 여름이 더 나을 것 같아서 미뤘어요. 최근에 <복숭아나무>라는 제목의 가족 영화 시나리오 작업을 마쳤고 이제 캐스팅하는 단계예요. 장애가 있는 친구들에 대한 이야기인데 판타지 장르가 될 것 같아요.


왜 <복숭아나무>예요? 복숭아라는 게 동양적인 이미지가 있는 것 같아요. 『삼국지』에서도 유비, 관우, 장비가 복숭아나무 아래에서 우애를 다지잖아요. 근데, 사실은 별 의미 없어요. 그냥 과일나무를 생각하다가 감나무보다는 복숭아나무가 좋을 것 같아 정한 거예요.(웃음) 이번 영화에서는 제가 음악감독으로도 참여하려고요. 제가 만든 곡 위주로 작업할 것 같은데 편곡하는 부분에도 제 생각을 표현해야 할 것 같아 직접 하고 있어요. 제가 또 이것저것 많이 하는 것 같지만 사실 제작비를 줄이기 위해서이기도 해요. 더 나은 선택이 있다면 몰라도 그게 최선이 아니라면 제가 조금 더 고생하자는 주의거든요. 촬영장에서 필요한 페인트칠도 인건비 아끼겠다고 제가 직접 하곤 했어요. 어떤 작업을 하든지 내가 직접 하면 반드시 얻는 게 있으니까 시간이 아깝지는 않아요.


새로운 도전 앞에서 두려움이 없는 것 같아요. 호기심도 강한 것 같고.
딱히 도전 정신이 강하다기보다는 호기심인 것 같아요. 어떤 재주나 재능이 있다는 얘기를 들으면 쑥스러워요. 이런 일을 하는 게 그냥 제 일이고 삶인데 갑작스럽게들 생각하시니까요. 한국이라는 나라가 더 심한 것 같아요. 일을 많이 하는 건 옳고 그르다고 평가받을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시간이 필요한 일인 것 같아요. 제가 하는 작업들이 알려진 지 3~4년밖에 안 지났는데도 조금씩 익숙해하시거든요. 이제 제 몫은 저를 좀 더 발전시키고 더 좋은 콘텐츠를 제공하는 사람이 되는 일인 것 같아요.


혜선 씨가 궁극적으로 하고 싶은 일은 뭔가요.
음, 저는 지금까지 직업란에 구체적으로 뭘 써본 적이 없어요. 그냥 학생이죠. 근데 꼭 직업을 가져야 하나 싶기도 해요. 저는 그냥 이런 거 계속하면서 살고 싶어요. 매우 ‘한량’스러운 발언일 수도 있는데, 저한테 자본은 그리 중요한 의미를 갖지 못하더라고요. 돈이 많을 때나 적을 때나 제 삶이 크게 달라진 걸 못 느꼈어요. 아, 영화 작업하면서 스태프들에게 자장면에 탕수육도 사드릴 수 있다는 생각을 할 땐 돈 벌길 잘했다 싶긴 했지만요.(웃음) 연기 이외의 작업에서 생기는 수익금은 불우이웃 돕기에 쓰기로 한 것도 개인적으로 기부하는 것보다는 제가 한 작업들을 여러 사람들이 함께 즐기고 그걸 통해 모두 다 같이 좋은 일 하면 더 좋겠다는 생각 때문이었어요. 근데 수익을 많이 내지 못해 미안해요. 다음에 더 잘하려고요.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 88호 2011년 1월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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