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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CULTURE INTERVIEW] <틴에이지 딕> 하지성, 욕망하는 인간 욕망하는 배우 [No.218]

글 |최영현 사진 |맹민화 2022-11-23 1,296

<틴에이지 딕> 하지성
욕망하는 인간, 욕망하는 배우

 

 

편견의 장벽을 넘어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극단 애인에 입단했다고 들었어요. 언제 처음 배우가 되기로 결심했나요? 
학교 다닐 때 친구가 별로 없었어요. 혼자 있을 땐 주로 TV를 보면서 시간을 보냈어요. 그런데 언제부턴가 다양한 인생을 사는 TV 속 배우들이 부러워졌어요. 연기로 다른 사람들과 소통하는 게 너무 부럽더라고요. 그때부터 연기를 해야겠다고 마음먹었어요. 극단에 들어가게 된 건 아는 형의 소개를 받아서예요. 연기는 극단에서 차근차근 배웠고요. 데뷔 후 줄곧 극단 작업을 하다가 지난해부터는 외부 작품 작업도 하고 있어요. 

 

<틴에이지 딕>은 어떻게 참여하게 됐어요? 
얼마 전에 출연했던 연극 <여기, 한때, 가가>의 기획자님이 국립극장에서 기획한 무장애 공연에 장애인 배우를 뽑는다고 지원해 보라고 권하셨어요. 굉장히 의미 있는 작품이 될 거라고 하시면서요. 어떤 작품인지 궁금해서 국립극장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오디션 공고를 봤어요. 무장애 공연이라는 취지도 좋고 흥미로운 작품처럼 보였지만, 선뜻 용기가 나지 않았어요. 그런데 포기하자니 너무 아깝더라고요. 며칠을 고민하다가 오디션에 지원하기로 결심했어요. 

 

며칠을 고민할 만큼 지원을 망설였던 이유는 무엇이었나요? 
셰익스피어의 『리처드 3세』를 각색한 작품이어서 조금 걱정됐어요. 워낙 대작이니까요. 게다가 주인공 역할이어서 더 주저했던 것 같아요. 바로 직전에 출연했던 작품에서 주인공을 맡았는데 한 작품을 이끌어가는 게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더라고요. 그 어려움을 다시 겪어야 한다고 생각하니까 망설여졌어요. 하지만 배우로서 도전할 가치가 있겠다 싶어서 오디션에 지원했죠. 어려운 작업이지만 그만큼 배울 게 많을 것 같았어요. 새로운 경험을 할 수 있을 거라는 기대도 있었고요. 그리고 국립극장 무대에 꼭 한번 서보고 싶었던 것도 오디션에 지원한 이유 중 하나예요. (웃음) 

 

앞서 말한 것처럼 <틴에이지 딕>은 『리처드 3세』를 각색한 작품이에요. 이 작품 속 리처드는 어떤 인물인가요? 
『리처드 3세』가 왕위에 오르기 위한 리처드 3세의 여정을 다룬다면, <틴에이지 딕>은 학생회장이 되고 싶은 고등학생 리처드의 이야기를 다뤄요. 리처드는 리처드 3세처럼 신체장애가 있지만 명석한 인물이에요. 그리고 자신이 원하는 것을 이루기 위해 온갖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아요. 자신에게 유리한 상황을 만들려고 음모를 꾸미고, 친구들을 이용하는 데도 거리낌이 없어요. 리처드는 결국 자신이 원하는 대로 학생회장이 되지만, 그 과정에서 주변 사람들은 물론 본인에게도 큰 상처를 남기죠. 

 

지금까지 연기했던 인물들과 비교했을 때 리처드는 어떤 점이 매력적인가요? 
리처드는 자신의 욕망을 드러내고 실현하는 데 거침이 없어요. 그게 저에게는 매력적으로 느껴졌어요. 비장애인에게 장애인은 착하다는 편견이 있는 것 같아요. 학교 다닐 때 욕을 한번 한 적이 있는데 같은 반 친구들이 큰일이 난 것처럼 굴더라고요. 사춘기 때 욕 한번 안 해본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그런데 장애인인 제가 욕을 하니까 놀란 거죠. 하지만 장애인도 비장애인과 같은 사람이에요. 늘 착할 수 없죠. 화가 나거나 짜증이 날 때도 있고 때론 못되게 굴 때도 있어요. 리처드를 통해서 일반적인 장애인의 이미지와 다른 모습을 보여줄 수 있어서 좋아요. 

 

듣고 보니 그런 편견이 있는 것 같아요. 매체에 등장하는 장애인도 대체로 선량한 인물이고요. 그래서 리처드라는 인물이 신선하게 느껴지지만 리처드도 사람들의 편견에서 자유롭지 못하죠. 
극 중에서 리처드가 이런 말을 해요. 사람들이 자신을 나쁘게 생각하니까 나쁜 사람이 될 수밖에 없다고. 자신에게는 선택할 기회가 없었다고요. 저는 이 말이 리처드라는 인물을 가장 잘 설명하는 것 같아요. 친구들은 리처드가 누구인지 알려고 하지 않고 단지 장애가 있다는 이유로 미워해요. 결국 주변 사람들의 선입견과 편견이 리처드를 악하게 만들었던 거죠. 그런 면에서 리처드에게 많이 공감됐어요.  

 

지금까지 공연하면서 리처드와 비슷한 극적인 인물을 연기해 본 적이 있나요? 
리처드처럼 이렇게 욕망에 충실한 인물을 연기하는 건 처음이에요. 극단에서 작업할 때는 주로 일상적인 생활 연기를 많이 했어요. 좀 더 극적인 인물을 맡게 된 건 외부 작업을 하면서부터예요. 극적인 인물은 연기할 땐 재미있지만, 준비 과정이 어려워요. 저와 인물 간의 공통점이 있으면 연기하기가 수월한데 극적인 인물들은 평범하지 않으니까 공통점을 찾는 게 쉽지 않더라고요. 그래도 리처드는 ‘욕망’이라는 키워드를 통해서 공통점을 쉽게 찾았어요. 저에게 어떤 욕망이 있는지 떠올려보고 그걸 이루는 과정을 상상해 봤죠. 

 

대본을 보니 대사량이 어마어마하더라고요. 처음 대본을 받았을 때 어땠어요? 
숨이 멎는 줄 알았어요. (웃음) <여기, 한때, 가가>도 대사가 상당히 많았어요. ‘끝까지 해낼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대사를 외우는 것 자체가 큰 도전이었어요. 그런데 저 자신을 믿고 끝까지 밀고 나갔더니 결국 해내더라고요. 이번에도 그때처럼 저를 믿어보려고요.  

 

리처드는 극 중에서 춤까지 추던데 준비는 잘 하고 있나요? 
연기할 때보다 춤을 출 때가 더 재미있어요. 몸을 움직이면 해방되는 느낌이 들어서 춤출 땐 기분이 아주 좋거든요. 정해진 안무가 있고 상대와 함께 추는 춤이라 처음엔 어려웠는데, 연습하면 할수록 조금씩 춤 실력이 느는 게 느껴져요. 아마 공연 때는 멋진 춤 실력을 보여드릴 수 있을 것 같아요. 

 


지속 가능한 장애 예술을 위해 

 

앞서 이야기한 대로 2021년부터 외부 작업을 이어오고 있어요. 첫 외부 작업이었던 <여기, 한때, 가가>는 어떻게 참여하게 됐나요? 
<여기, 한때, 가가>의 배해률 연출가님과는 전부터 알고 지낸 사이예요. 언제 한번 같이 작품을 해보자고 한 적이 있는데, 연출님이 저에게 꼭 맞는 역할이 있다고 연락을 주셔서 참여하게 됐어요. 마침 다양한 사람들과 작업해 보고 싶어서 극단에 외부 작업을 하고 싶다고 말씀드리고 극단 활동을 잠시 쉬려던 참이었어요. 솔직히 외부 작업은 저에겐 무척 힘든 일이에요. 하지만 제가 바랐던 것처럼 다양한 배우들과 소통하고 연기를 할 수 있어서 재미있게 작업하고 있어요. 

 

극단 작업과 외부 작업의 가장 큰 차이점은 무엇인가요? 
아무래도 극단에서는 단원들끼리 장애라는 공통점이 있어서 편하죠. 서로에게 익숙하니까 연기할 때도 호흡을 맞추기가 쉬워요. 반대로 외부 작업을 할 때는 모든 게 낯설어서 긴장을 늦출 수 없어요. 장애인 배우와 비장애인 배우는 연기하는 방식부터 달라요. 그래서 서로가 다르다는 걸 인지하고 적응하는 시간이 꼭 필요해요. 처음에는 어렵지만 차츰차츰 서로를 이해하고 맞춰가는 과정에서 상대와 소통하는 그 느낌이 참 좋아요. 그러면서 저도 몰랐던 걸 배우게 되고요.  

 

요즘 들어 배리어프리 공연이 늘고 있어요. 전에는 장애인 관객의 편의를 위한 배리어 프리 공연이 많았다면, 최근에는 <틴에이지 딕>처럼 장애인 배우가 출연하는 배리어프리 공연이 늘고 있는 것 같아요. 현장에서 활동하는 배우로서 변화를 느끼나요? 
저뿐만 아니라 다른 장애인 극단의 배우 중에도 외부 작업을 하는 분들이 있어요. 그런 걸 볼 때마다 장애인 배우의 연기를 보여줄 수 있는 무대가 많아지고 있다는 걸 느껴요. 장애인 극단의 공연도 많이 늘었고요. 지금의 분위기가 계속돼서 장애인 배우가 설 수 있는 무대가 늘어나면 좋겠는데, 장애인 배우들에게 쏟아지는 관심이 금방 사라지면 어쩌나 하는 걱정도 앞서요. 장애 예술에 반짝 관심을 가졌던 경우는 자주 있었거든요. 중요한 건 지속적인 관심이에요. 국립극장의 무장애 기획 공연도 계속 이어지길 바라요.  

 

마지막으로 <틴에이지 딕>을 보러 오실 관객 여러분께 한마디 부탁드려요. 
무대에 설 때는 항상 책임감을 느끼지만 이번 공연은 평소보다 더 잘해야겠다는 마음이 들어요. 관객 여러분에게 장애 예술이 어떤 건지 보여주고 싶어요. <틴에이지 딕>처럼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서는 무대가 점점 더 많아졌으면 좋겠어요. 무장애 공연을 통해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서로를 이해하는 기회를 가질 수 있도록 책임감을 갖고 열심히 해보겠습니다. 저뿐만 아니라 <틴에이지 딕>의 배우, 스태프 모두 관객 여러분을 위해 최선을 다해 준비 중이니 많이 보러 와주시면 좋겠어요.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218호 2022년 11월호 게재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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