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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컬처 | [NOW IN NEW YORK] <킴벌리 아킴보> 문제투성이 삶에 웃으며 대처하는 법 [No.220]

글 |여태은(뉴욕통신원) 사진 |Joan Marcus 2023-01-26 2,667

<킴벌리 아킴보>
문제투성이 삶에 웃으며 대처하는 법

 

큰 규모에 화려한 볼거리로 무장한 뮤지컬이 가득한 브로드웨이에서 작고 소박한 뮤지컬을 만나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펀홈>으로 기존 브로드웨이 뮤지컬과 다른 결의 작품을 선보였던 지닌 테소리가 이번에도 새로운 의미를 지닌 작품 <킴벌리 아킴보>와 함께 브로드웨이로 돌아왔다. 

 

 

특별한 소녀 킴벌리


나이 지긋한 여성이 십 대 소녀처럼 옷을 입고 등장해 사탕 목걸이를 한 입 베어 물면 공연이 시작된다. 나이에 걸맞지 않은 차림새로 관객을 당황하게 하는 이 여성은 작품의 주인공인 킴벌리 아킴보다. 킴벌리는 빨리 늙는 병인 조로증을 앓고 있어 할머니처럼 보이지만 사실 열여섯이다. 알코올 중독자인 아빠 버디와 임신 중인 나르시시스트 엄마 패리와 함께 살고 있는 킴벌리는 예전에 살던 동네에서 쫓기듯 떠나와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려고 노력 중이다. 괜찮은 게 하나 없는 인생이지만 킴벌리는 늘 밝고 긍정적인 태도로 살아간다. 어느 날, 킴벌리는 동네의 유일한 오락 시설인 아이스링크에서 같은 학교 친구 세스를 만난다. 세스 역시 남다른 가정사로 여러 가지 문제를 안고 있지만 킴벌리처럼 매사에 낙천적이다. 서로에게 친근감을 느낀 두 사람은 금세 친구가 된다. 세스는 친구가 된 기념으로 킴벌리에게 ‘아킴보’라는 이름을 지어준다. 세스가 가장 좋아하는 놀이는 알파벳 철자 순서를 바꿔 새로운 말을 만드는 애너그램인데, 킴벌리의 진짜 이름 킴벌리 르바코Kimberly Levaco의 철자를 바꿔서 ‘아킴보Akimbo(허리춤에 손을 얹고 팔꿈치를 양옆으로 펼친 자세)’로 지은 것이다. 생물학 수업 과제로 질병에 대한 발표를 준비하게 된 두 사람은 킴벌리가 앓고 있는 조로증을 주제로 정한다. 도서관에서 발표를 준비하며 서로를 알아가던 둘 앞에 난데없이 킴벌리의 이모 데브라가 나타난다. 온갖 범법 행위에 능숙한 데브라는 가는 곳마다 문제를 일으키는 집안의 골칫덩이다. 그녀는 킴벌리에게 어떻게 자신을 버리고 도망칠 수 있냐며 다짜고짜 따지고, 무슨 영문인지 모르는 킴벌리는 데브라와 함께 집으로 돌아간다. 하지만 데브라의 등장에 부모님 역시 상당히 불편한 기색을 보이고, 킴벌리는 이 상황이 의아하기만 하다. 
킴벌리의 열여섯 살 생일날. 여느 평범한 소녀처럼 예쁘게 차려입고 집을 나서는 킴벌리에게 부모님은 애써 생일이 아닌 것처럼 행동한다. 이들이 어색한 생일을 보내는 이유는 조로증을 앓는 사람들의 기대 수명이 열여섯 살이기 때문이다. 가족의 이런 속사정을 모르는 세스는 킴벌리의 생일 축하 파티를 열고 킴벌리와 그의 가족, 그리고 친구들을 아이스링크로 초대한다. 이 자리에서 버디는 술을 끊을 것을 다짐하고, 패리는 킴벌리에게 좀 더 신경 쓸 것을 약속한다. 킴벌리는 앞으로는 모든 것이 달라질 것이라는 희망에 차오르지만, 얼마 가지 않아 헛된 희망이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킴벌리는 남은 시간 동안 진짜 해보고 싶은 걸 하기로 결심하고, 위조 수표 사기를 치자는 이모 데브라와 손을 잡는다. 세스의 할머니로 위장해 은행을 돌며 위조 수표를 현금으로 바꾼 킴벌리는 세스와 함께 디즈니 월드로 떠난다.

 

연극에서 뮤지컬로, 이유 있는 변신


<킴벌리 아킴보>는 동명의 연극을 원작으로 한 뮤지컬이다. 연극은 2001년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첫선을 보인 후, 2003년 오프브로드웨이의 맨해튼 시어터 클럽에서 공연되었다. 당시 평단의 호평을 받으며 드라마 데스크 어워즈, 외부 비평가 협회상 후보로 이름을 올렸다. 뮤지컬은 연극이 초연된 지 20년 만에 오프브로드웨이 애틀랜틱 시어터 컴퍼니에서 개막했다. 오프브로드웨이 공연 당시 매진 행렬을 기록하며 브로드웨이행을 확정 지었고, 2022년 드라마 데스크 어워즈, 외부 비평가 협회상, 루실 로텔 어워즈에서 작품상을 휩쓸며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지난해 11월 20일 브로드웨이 부스 시어터에서 개막한 <킴벌리 아킴보>는 <펀홈>으로 국내 뮤지컬 팬들에게도 잘 알려진 지닌 테소리가 작곡에 참여했다. 원작 연극의 작가이자 <슈렉 더 뮤지컬>에서 지닌 테소리와 호흡을 맞춘 바 있는 데이비드 린제이-아베어가 뮤지컬 대본과 가사 작업을 맡았다. 연출은 배우 제시카 스톤이 맡아 이 작품으로 브로드웨이에서 연출가 데뷔식을 치렀다.


<킴벌리 아킴보>는 연극에서 뮤지컬로 옮기는 과정에서 크고 작은 변화가 있었다. 우선 연극에서는 햄버거 가게에서 일하는 백인 소년 제프가 뮤지컬에서는 아이스링크에서 일하는 흑인 소년 세스로 바뀌었다. 이에 따라 뮤지컬에서는 스케이트를 타는 장면이 여러 번 등장한다. 그리고 눈에 띄는 변화는 새롭게 추가된 인물들이다. 연극은 등장인물이 총 다섯 명이었지만, 뮤지컬에는 킴벌리의 학교 친구들인 델리아, 마틴, 애런, 테레사가 새롭게 등장한다. 그리스 비극의 코러스와 같은 역할을 맡은 이들은 극 중에서 앙상블은 물론 감초 역할을 톡톡히 한다. 심지어 설정도 합창단이다. 거의 모든 뮤지컬 넘버에서 코러스 역할을 하며 화음을 넣고, 때로는 춤을 추며 다소 정적일 수 있는 작품에 활력을 불어넣는다. 그뿐만 아니라 이들은 청소년기에 누구나 한 번씩 겪었을 다양한 상황과 감정을 대변하며 이야기를 더욱 풍성하게 만든다. 남의 말에 신경 쓰고, 누군가를 좋아하는 감정을 숨기지 못하고, 중요한 사람처럼 대우받고 싶어 하는 이들은 다소 찌질해 보이지만 공감을 자아낸다. 덕분에 음악과 서사적인 면에서 더욱 풍성해졌으니, 뮤지컬에 새로운 인물을 추가한 것은 탁월한 선택이었다.


지닌 테소리의 음악은 이야기를 진행하는 중요한 축일 뿐만 아니라 인물의 상태를 효과적으로 표현하는 수단으로 제 몫을 다한다. 엄마 패리가 캠코더로 배 속의 아기에게 영상 편지를 찍으며 부르는 노래 ‘Hello, Darling(안녕, 아가야)’과 ‘Hello, Darling Rep./Father Time(아빠의 시간)’은 다소 우스꽝스럽게 패리와 버디를 소개하면서 킴벌리가 아픈 게 모두 자기들의 탓인 것 같다는 부모의 죄책감도 담아냈다. 비록 제대로 된 부모 노릇은 못 하지만, 딸을 사랑하고 걱정하는 버디와 패리의 진심은 같은 멜로디에 다른 가사로 리프라이즈되어 효과적으로 전달된다. 구김살이라고는 전혀 없어 보이는 세스는 ‘Good Kid(착한 녀석)’라는 솔로 곡을 통해 엄마가 돌아가신 후 말썽을 부리다 집을 나간 형과 달리 착하게 살아야 한다는 부담감을 안고 있다고 이야기한다. 지닌 테소리의 음악은 때로는 경쾌하게, 때로는 진지하게 인물들의 감정을 실어내며 인물과 이야기에 설득력을 부여했다.  


<킴벌리 아킴보>의 주된 배경은 킴벌리의 집, 세스가 일하는 곳이자 동네의 유일한 놀이 공간인 아이스링크, 그리고 킴벌리와 세스가 함께 다니는 학교다. 무대는 접혔다 펼쳐지기를 반복하며 장면에 맞춰 각각의 세트가 등장한다. <올모스트 페이머스> <퍼니 걸>의 무대 디자인을 맡았던 데이비드 진은 배우들의 등퇴장과 함께 물 흐르듯이 변하며 상황에 맞는 장소를 소환하는 무대를 선보인다. 특히 온 가족이 둘러앉아 식사하는 장면에서 리프트로 식탁을 무대 위로 올린 후 회전시키는 방법을 이용해, 소용돌이치는 인물의 감정을 다각도에서 볼 수 있게 한 것이 인상적이었다. 


배우들의 호연도 돋보인다. 주인공 킴벌리 역은 <라이트 인 더 피아자>로 토니상을 받은 빅토리아 클라크가 맡았다. 실제 1959년생인 그녀가 조로증에 걸린 10대 소녀를 연기하는 것은 큰 도전이었을 텐데도 위화감 없이 맡은 역할을 잘 소화해 냈다. 다만, 성악 발성의 빅토리아 클라크의 목소리와 밴드 연주를 기반으로 하는 음악의 이질감이 다소 아쉬웠다. 눈에 띄는 또 다른 배우는 데브라 역의 보니 밀리건이다. 보니 밀리건은 오프브로드웨이 공연을 통해 2022년 루실 로텔 어워즈에서 여우조연상을 받으며 주목받은 바 있다. 연기와 노래 모두 나무랄 데 없는 실력으로 좌중을 사로잡았다. 특히 웃음 포인트를 정확히 캐치하는 센스가 탁월했다. 노래와 연기 그리고 센스까지 겸비한 그녀의 다음 행보도 몹시 기대된다.

 

 

유쾌한 코미디와 함께 전하는 감동


<킴벌리 아킴보>는 부모에게 보살핌을 받지 못하는 조로증 소녀가 주인공인 데다가 가정 문제, 알코올 중독, 배신, 범죄 등 다소 무거운 소재를 다루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즐겁고 유쾌한 분위기가 이어진다. 세스와 킴벌리가 서로를 알아가며 함께 부르는 ‘Anagram(애너그램)’에서는 킴벌리 르바코를 아킴보로 바꾸는 애너그램을 독창적이고 재치 있는 음악과 가사로 표현한다. 또한 이 곡에서 세스는 애너그램이 재미있는 이유에 대해 노래하는데, 시어머니라는 뜻의 영단어 ‘Mother-in-Law’를 애너그램으로 바꾸면 Hitler Woman(히틀러 우먼)이 된다는 등 재미있는 애너그램의 예시를 나열한다. 


하나같이 괴짜스러운 면모를 보이는 인물들 속에서 말썽꾸러기 이모 데브라의 등장은 강한 임팩트를 남긴다. 영어권에는 “When life gives you lemons, make lemonade(인생이 너에게 레몬을 준다면 레모네이드를 만들라)”라는 속담이 있는데, 시련을 전화위복의 기회로 삼으라는 뜻이다. 하지만 데브라는 ‘Better(낫잖아)’라는 곡에서, 망할 인생이 레몬을 주는데 대체 왜 레모네이드를 만드냐며 밖에 나가서 달콤한 사과를 훔쳐 먹으라는 가사로 관객을 폭소케 한다. 인생이 좀 더 나아질 수 있다면 범죄라도 저지르겠다는 데브라의 인생관이 드러나는 장면이다. 데브라의 활약은 ‘How to Wash a Check(수표 세탁 방법)’이라는 곡에서도 빛난다. 데브라는 킴벌리와 친구들에게 우체통을 통째로 훔쳐 와 사람들의 월급 수표에 화학 용액을 넣고 위조하는 방법을 전수하는데, 마치 오케스트라 지휘자나 마리오네트 인형 조종사처럼 행동하며 노래해 큰 웃음을 준다. 


아빠 버디가 킴벌리와 세스를 차에 태우고 운전하며 부르는 ‘Happy For Her(잘됐어)’는 별다른 장치 없이 음악만으로 재미를 준다. 딸이 다른 평범한 소녀들처럼 착하고 다정한 남자친구를 사귀게 되어 다행스러우면서도, 소중한 딸을 세스에게 절대 빼앗길 수 없다는 아빠의 질투심이 빠른 템포의 음악에 어우러진다. 이 장면은 감정을 주체하지 못한 버디가 빠른 속도로 운전하는 모습으로 연출되어 재미를 더한다. 


재치 있는 장면이 계속해서 펼쳐지는 가운데 <킴벌리 아킴보>는 삶과 죽음의 갈림길에서 성장하는 소녀의 이야기를 놓치지 않는다. 비록 외모는 할머니처럼 보여도 킴벌리는 아직 하고 싶은 게 많은 소녀다. 킴벌리가 간절히 원하는 것은 가족과 둘러앉아 저녁 식사를 하는 평범한 삶이지만, 킴벌리에게는 남은 시간이 많지 않다. 또래 친구들보다 성숙하고 차분한 모습으로 일관하던 킴벌리는 생물학 시간에 자신의 질병에 대해 이야기하는 ‘My Disease(내가 가진 병)’에서 참아왔던 감정을 폭발시킨다. 지금껏 애써 외면해 왔지만, 자신에게 남은 시간이 길지 않다는 사실을 직시하기 때문이다. 이 곡에서 킴벌리는 남들의 이목에 신경 쓰고, 생물학 점수에 전전긍긍하지만, 그런 것들은 시간이 지나면 나아지는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그러면서 친구들에게 나이 듦은 지금 겪고 있는 시련의 치료제이지만, 자신에게 나이 드는 것은 병일 뿐이라고 절규한다. 


극 후반 킴벌리는 자신의 소원대로 온 가족과 둘러앉아서 저녁 식사를 하며 평범한 시간을 보낸다. 모든 것이 완벽해 보이는 순간, 부모님과 이모가 숨겨왔던 비밀이 드러난다. 도망치듯 이사를 온 건 패리가 이웃집 남자와 외도를 저질렀기 때문이었다. 아내의 외도에 분노한 버디는 데브라를 시켜 겁을 주려 했지만, 이웃집 남자가 돌연 심장마비로 사망하면서 도망치듯 떠났다는 것이다. 게다가 패리의 외도 이유가 킴벌리와 달리 건강한 아이를 낳고 싶었기 때문이라는 것에 킴벌리는 충격을 받고 쓰러진다. 늘 자기 주변을 돌보며 숨죽여 살아온 킴벌리는 부모님과 이모가 변할 거라는 기대가 무너지고 나서야 남은 삶을 자신을 위해 살기로 결심한다. 작품의 마지막 장면에서 킴벌리는 세스와 로드 트립을 떠나며 ‘Great Adventure(위대한 모험)’를 불러 예고된 죽음을 기다리는 것이 아닌, 생의 마지막을 즐겁고 행복하게 보내는 모습을 보여준다.

 

<킴벌리 아킴보>는 성공적인 오프브로드웨이 공연 이후 브로드웨이에 입성했다. <킴벌리 아킴보>가 공연 중인 부스 시어터는 766석 규모의 작은 극장으로, <스토리 오브 마이 라이프> <넥스트 투 노멀> 등이 공연됐다. 아홉 명의 배우와 여섯 명의 밴드로 이루어진 소규모 뮤지컬 <킴벌리 아킴보>에 제격인 곳이다. 하지만 규모가 작은 극장은 판매할 수 있는 좌석 수가 많지 않아 손익분기점을 넘기기가 쉽지 않다. 개막한 지 한 달이 지난 지금, <킴벌리 아킴보>는 관객과 평단에 호평을 받고 있다. 새로운 이야기와 형식의 뮤지컬을 만나기 쉽지 않은 브로드웨이에서 <킴벌리 아킴보>가 어떤 성과를 낼 수 있을지 궁금하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220호 2023년 1월호 게재 기사입니다.

* 본 기사와 사진은 <더뮤지컬>이 저작권을 소유하고 있으며 무단 도용, 전재 및 복제, 배포를 금지하고 있습니다. 이를 어길 시에는 민, 형사상 법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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